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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직장인 레시피] 성실과 겸손을 이길 화려한 기술은 없다!

입력 2020.08.06 14:56   수정 2020.08.08 2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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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은 묵묵하게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다. 비록 그 과정이, 그 자리가 빛나지 않고 주목받지 못해도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며 묵묵히 주어진 업무에 책임감을 발휘하는 것이다. 모든 상사는 이런 직원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 직장 생활은 0.1초를 다투는 카레이싱이 아니다. 슈퍼 카처럼 시속 200㎞로 달릴 능력은 없어도 100㎞로 24시간 달리는 성실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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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은 믿음을 동반한다

직장 생활에서 각광받는 인재는 어떤 유형일까. 일당백의 능력자, 모든 일에 앞장서는 돌격대장, 기운을 ‘업’시키는 분위기 메이커, ‘위아래’ 고루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의 대가, 회사 내외의 가장 빠른 소식을 전하는 ’정보통’ 등등일 것이다. 하지만 정작 상사들이 가장 선호하는 직원은 ‘성실맨’이다. 직장인이 갖추어야 할 덕목은 많다. 능력, 성격, 눈치, 지구력, 체력 등 열거하자면 끝이 없지만 그 어떤 덕목도 성실을 이길 수는 없다.

‘성실誠實’의 사전적 의미는 ‘정성스럽고 참됨’이다. 이는 ‘매사에 허투루 하는 것 없이 진심을 담아 정성스럽게 일한다’는 뜻이다.


많은 역사적 인물이 성실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좋은 말을 남겼다. 한비자는 “교묘하게 속이는 것보다 서투르더라도 성실한 것이 낫다”고 했고, 맹자도 “성실 하나로 살아가는 사람이 남에게 감동을 주지 못했다는 예는 이제까지 하나도 없다”며 성실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강조했다. 또 있다. 벤저민 디즈레일리는 “사람이 지혜가 부족해서 실패하는 경우는 적다. 사람에게 늘 부족한 것은 성실이다”라고 했고, B. 프랭클린은 “100권의 책에 쓰인 말보다 한 가지 성실한 마음이 더 크게 사람을 움직인다”고 남겼다. 또한 토머스 칼라일은 “나는 성실이 모든 영웅의 특징이라고 생각한다. 깊고 위대하고 진실한 성실이 그들의 덕목이다”라고 말했고, 영웅 나폴레옹은 “산다는 것은 곧 고통을 치르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성실한 사람일수록 자신을 이기려고 애쓰는 법이다”라면서 성실이 인간의 덕목 중 으뜸이라고 설파했다.

그렇다. 언어의 홍수 시대에 식상하고 올드한 단어일 수도 있는 ‘성실’이란 말은 그 자체처럼 ‘성실하게’ 인간 관계를 설정하고 또 사람의 격을 판단하는 잣대로서 여전히 유효하다. 여기서 질문이 가능하다.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과연 성실한가?’ 혹은 ‘성실의 기준은 과연 무엇인가?’다. 대답은 여러 갈래로 나올 것이다. 결과보다 과정이 중요하다는 답도 있을 것이고, 번뜩이는 ‘반짝맨’ 대신 진득한 ‘우직맨’이 더 성실에 가까워 보인다는 답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직장에서 성실을 판단하는 기준은 의외로 단순하다. 그것은 근태에서 출발한다. 성실한 자는 지각, 조퇴를 일삼지 않는다. 이는 기본이다. 9시에 사무실 의자로 겨우 세이프하거나, 자리에 앉아 있는 시간보다 커피 마시고 잡담하는 시간이 길지 않다. 점심시간도 마찬가지다. 12시가 되기도 전에 나가 1시30분쯤 커피 들고 들어오지 않는다. 게다가 모니터에 카톡, 주식 거래표, 인스타그램을 열어 놓고 적당히 업무 파일을 올리는 행동도 하지 않는다. 물론 지각도 할 수 있고 점심시간을 여유 있게 즐길 수도 있고 업무 시간에 커피 마시러 나갈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어쩌다’이다. 이런 행동이 하루 업무의 루틴이라면 이를 좋게 보고 그를 성실하다고 판단할 상사는 아무도 없다. 그리고 성실한 이들은 일의 결과에 핑계를 대지 않는다.


불성실한 직원은 변명이 많다. 그리고 그 결과가 자신의 실수와 오류, 불성실에 기인한 것이라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저는 잘 챙기라 했는데 김 대리가 깜빡했습니다”, “제가 기안해서 넘겨주었는데 박 대리가 보고를 안 드린 것 같습니다”라는 말이 먼저 나오는 직원은 모든 것을 남 탓으로 돌리는 습관성 핑계꾼이다. 이런 직원은 근태에서 착실한 점수를 축적해도 결코 성실맨으로 인사 카드에 기록되지 않는다.

자신이 맡은 일에 대한 시작, 과정, 결과에 대해 책임감을 한순간도 잃지 않는 직원도 성실한 직장인이다. 책임감은 일에 대한 열정, 의무 그리고 직장에 대한 애정은 물론이고 현재를 정확히 파악하는 인지 능력에서 나온다. 성실한 직장인은 결과 못지않게 시작부터 모든 프로세스를 자신의 손과 머리 그리고 눈으로 확인하는 습관이 있다.


이런 과정에서 나오는 결과가 때로는 기대에 못 미칠 수 있지만 상사들은 이런 직장인에게 ‘믿을 수 있는 사람’ 혹은 ‘일을 맡겼을 때 안심이 된다’는 표현으로 그의 성실성을 칭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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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성실한 자는 묵묵히 생활한다. 자신의 성과를 과장하거나 동료의 성공을 질투하지 않는다. 그저 내 책상에 집중할 뿐이고 그것이 부서 성과로 연결되는 것에 자신의 작은 성과가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유튜브 영상 속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교 샘 리처드 교수의 강의를 보자. 그는 서양인과 동양인의 현실과 인지의 차이점을 강의했다. 학생 중에서 한국인 여학생 한 명과 미국인 여학생 한 명을 불러 잠시 밖에 나가라고 한다. 그리고 동양인과 서양인의 의식 차이를 설명한다. 서양인은 자신을 과대평가하고 능동적이며, 동양인은 능력을 과소평가하고 어찌 보면 겸손하다는 내용이다. 그리고 두 여학생을 불러 질문한다. 미국인 학생은 테니스도 잘 치고 무엇이든 수준급으로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학점도 3.0 이상이라고 한다. 이에 반해 한국 학생은 겸손하게 대답한다. 자신의 실력도 보통이라고 말하고 교수가 학점을 묻자 그냥 3.0 이상이라고 말한다.


그러자 교수는 자신에게만 말하라고 하고 이어 한국인 여학생의 학점이 4.0 만점에 3.6임을 강의실의 학생들에게 크게 말한다. 이어 한국인 여학생은 펜실베이니아주립대를 2년 만에 조기 졸업한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를 왜 자랑하지 않느냐”는 질문에 ‘자신이 잘하고 있다는 확신과 판단이 적다’라는 식의 이야기를 한다. 물론 한 예시일 것이다. 두 학생 다 장단점이 있고, 어떤 의식을 갖는 것이 더 좋다는 기준은 당연히 없다. 하지만 한국 여학생에게서 우리는 과소평가, 소극성이라는 부정적인 단어보다 당연히 ‘겸손과 성실’이라는 두 가지 키워드를 쉽게 찾는다.

그렇다. 성실은 이렇게 묵묵하게 자신을 완성하는 것이다. 그 과정이, 그 자리가 빛이 나고 모두의 주목을 받지 못해도 묵묵히 자신의 일을 소중히 여기며 주어진 업무에 책임감을 발휘하는 것이다. 상사는 이런 직원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할 수밖에 없다. 직장 생활은 0.1초를 다투는 카레이싱이 아니다. 슈퍼 카처럼 시속 200㎞로 달리는 능력은 없을지라도 100㎞ 24시간 달리는 것이 필요하다.


마라톤에서 완주가 기록 단축보다 더 박수 받는 것처럼 말이다.

그렇다고 붙박이 의자처럼 책상에 앉아 있다고 성실맨이 되는 것은 아니다. 능력을 발휘하고, 소통하고, 협업에 앞장서는 것도 필요하지만, 그 모두의 기본에 성실이 있어야 한다. 성실한 직원에 대한 상사들의 인식에는 ‘신뢰’가 연관 검색어처럼 따라붙는다. 그 신뢰감은 배신하지 않을 거라는 믿음으로 연결된다. 이는 중요한 부분이다. ‘성실하고 그래서 신뢰하기 때문에 믿는다’는 평가를 직장에서, 상사로부터 받는다면 그는 지금 직장 생활에서 50%의 완성도를 이미 구축한 셈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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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튀어나온 못은 망치를 맞는다

여기, 살아서는 최고 지위에 오르고 죽어서도 자손만대까지 가문을 번창시킨 성실의 전형인 역사적 인물이 있다. 바로 한나라 창업 공신 ‘소하’다. 그는 유방이 항우와 천하 쟁패를 다툴 때 앞장서서 싸운 한신, 장량, 번쾌, 조참, 팽월 등을 제치고 공신과 직급 서열에서 모두 1위를 차지했다. 그는 유방에게 때로는 비굴할 정도로 자신을 낮추었지만 그의 업적과 명예는 개국 공신들 중에서 유일하게 후대까지 유지되었다. 소하는 진정 ‘조용한 성실맨’이었다.


술 좋아하고 여자 좋아하는 반건달 유방이 천하를 통일한 원동력은 무엇일까. 그것은 ‘인재 등용’과 ‘용인술’이다. 황제가 되기까지 유방과 함께 공을 세운 개국 공신들을 들여다보면 모두 그 면면이 미천한 출신이다. 개백정 번쾌, 옥지기 조참, 장례식 나팔수 주발, 도둑놈 팽월, 장사치 관영, 마부 하후영, 가난한 서생 한신 등이다. 그나마 관리로 진나라 녹봉을 받던 출신은 소하가 유일했다.

한나라 창업 후 유방은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건국에 공이 가장 많은 소하, 한신, 장량 중 한신은 죽임을 당했고 장량은 권력과 명예와 부를 모두 버리고 떠났기에 목숨을 부지했다. 경포, 팽월, 진희는 반역자의 이름으로 죽었다. 유방의 동서이자 동료인 번쾌마저 사형 당하려는 순간 유방이 죽는 바람에 목숨을 건졌다. 유방 살아생전에 목숨을 부지했어도 몇 대를 잇지 못하고 멸문을 당한 가문은 부지기수였다. 살기만 해도 다행인 시절이었다. 당시 유방의 피의 숙청에서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은 도망가거나, 죽거나 혹은 귀양을 가는 세 길뿐이었다.

예외인 인물이 있다.


바로 소하다. 그는 유방과 패현에서 인연을 맺어 한결같은 마음으로 유방을 모신 건국 공신이었다. 또한 유방이 한왕 시절에는 승상으로, 유방이 황제가 된 이후에는 ‘상국相國’이라는 명예를 거머쥐었다. 그리고 건국 공신 서열 1위, 직급 서열 1위를 차지했으며 유방 사후에도 2세 황제 혜제를 보필한 최고의 재상이었다. 또한 그가 죽고 난 뒤 그의 가문은 황실에서 우대한 최고의 명문가가 되었다. 물론 소하의 뛰어난 점은 이처럼 높은 직급과 큰 명예를 받았기 때문만은 아니다. 변덕스럽고 의심 많은 유방 곁에서 목숨은 물론이고 벼슬과 명예도 유지했다는 점이다. 그는 한신처럼 죽지도 않았고, 장량처럼 떠나지도 않았다.

소하는 유방과 동향인 패현 출신의 하급 관리였다. 소하는 평소 유방을 좋아하지 않았다. 다만 유방이 사람을 끌어 모으는 비상한 재주가 있고 또 대장 노릇 하는 것을 신통하게 여겼다. 소하는 유방을 정장 자리에 추천했다. 소하는 뛰어난 능력의 관리였다.


당시 조정에서 온 관리가 소하의 능력을 보고 그를 중앙으로 스카우트하려고 했지만 소하는 거절했다. 소하는 곧 진나라가 멸망하고 군웅할거 시대가 도래하리라 예측했다.

유방이 함양성 공사장으로 차출되었다. 유방은 무리를 이끌고 출발했다. 이때 패현과 사수의 관리들이 유방에게 전별금을 주었는데 모두 300전씩을 냈다. 하지만 소하는 500전을 주었다. 유방은 소하의 마음새에 감동했다. 함양으로 가는 도중 무리는 뿔뿔이 흩어지고 말았다. 이 중 일부가 유방을 우두머리 삼아 행동을 같이했다. 이들은 패현으로 들이닥쳐 현령을 죽였다. 유방이 진나라 관리를 죽인 반역자가 된 것이다. 소하는 무리를 진정시키고 유방을 현령으로 모셨다. 유방의 첫 조직은 이렇게 만들어졌다. 유방은 세를 불렸다. 소하는 이들을 군대로 개편하고 군량을 모으고 민심을 안정시켰다. 소하는 유방에게 한의 부활을 대의명분으로 삼자고 했다. 당시 진나라는 허수아비였고 군웅 중 강자는 항우였다. 항우는 일당백의 용맹으로 중원을 휩쓸고 있었다. 유방은 항우 부대에 합류했다. 이때부터 소하는 유방의 핵심 참모가 된다. 그는 다방면에서 능력을 발휘했다.


소하는 한신을 유방에게 추천한다. 한신은 항우 군대에 지원했지만 항우는 그를 의장대에 배속시켰다. 한신은 뛰쳐나왔다. 하후영은 한신을 소하에게 소개했다. 하지만 한신에게 주어진 역할은 분대장이었다. 한신은 또 뛰쳐나왔다. 그 무렵 유방은 소하가 도망을 갔다는 보고를 받았다. 유방은 분노했다. 소하에 대한 배신감을 삭힐 수 없었다. 삼일 뒤, 소하가 돌아왔다.

“도망을 갔다고 하던데 어딜 간 것인가?” “신은 천하제일의 기재, 한신을 찾으러 간 것입니다.” “일개 병사를 쫓아갔단 말인가?” “천하를 품을 야망이 있다면 한신을 내 사람으로 삼아야 합니다. 한신은 나라의 군대를 지휘할 수 있는 능력의 인물입니다.” 한신은 대장군에 임명되었다. 그 뒤 한신이 펼친 완벽한 군사 작전은 항우를 침몰시키는 결정타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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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실에는 책임과 겸손이 따른다

유방과 항우는 함양을 먼저 공략하는 경쟁에 들어갔다. 유방군이 승리했다. 유방 군대는 금은보화를 빼앗고 여인들을 찾아 몰려다녔다. 소하는 달랐다.


소하는 함양의 문서 기록소를 찾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진나라의 역사서와 법률서, 각국의 문물 기록과 호적 대장, 천혜의 요지를 기록한 지도, 각종 세금 장부 등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자료를 확보했다. 항우는 분을 참지 못하고 함양성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하지만 진나라의 소프트웨어는 이미 소하가 가져간 뒤였다. 소하의 생각은 깊고도 넓었다. 그는 이미 국가 건설과 천하 통일 이후의 국정 운영에 대한 전략을 세운 것이다.

항우는 유방에게 파촉으로 가라고 명령했다. 유방과 장수들은 분노해 항우와 일전을 벌이자고 목소리를 높였다. 소하는 냉정하고 객관적으로 상황을 분석했다. “가야 합니다. 지금 항우와 일전을 벌이는 것은 바로 항우의 노림수에 걸리는 것입니다. 우리 군대가 항우를 당할 수 없습니다. 멀리 보고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파촉은 오지라 나오기도 어렵지만 공격하기도 힘든 곳입니다. 힘을 비축하면 항우를 누를 수 있습니다.”

유방은 소하의 의견을 받아들였다. 소하는 파촉을 경영했다. 유방은 항우와 정면 대결을 벌였다. 그리고 한나라는 물자가 풍부한 관중을 손에 넣었다. 소하는 완벽한 살림꾼이었다.


그는 병사가 부족하면 사내들을 모아 파병했고, 물자가 부족하면 이내 보충했다. 그리고 유방에게 군량미를 부족하거나 늦게 보낸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소하는 단지 군수물자만 보급한 것이 아니다. 그는 태자를 보좌해 정치와 법률 체제를 정비했고 종묘를 세웠으며 궁전도 지었다. 소하는 승상이 되었다. 하지만 소하는 선을 넘지 않았다. 그는 자신의 위치를 잘 알고 있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최고 권력자 유방의 존재를 한시도 잊지 않았다. 소하는 항상 유방에게 보고하고 행동에 옮겼다. 단 한 번도 독단적인 결정을 내리지 않았다. 유방은 소하에게 사신을 보냈다. 사신은 “왕께서 고생하는 승상의 노고를 치하한다고 하셨습니다”라는 말을 전했다. 소하는 사신의 전언을 유별나게 생각하지 않았다. 참모가 소하에게 충고했다.

“승상, 왕은 지금 생사를 건 전투를 하고 있습니다. 여러 차례 사신을 보내 승상을 위로하는 것은 승상을 의심하는 증거입니다. 승상의 자제나 친척 중에서 장정을 뽑아 전선으로 보내야 왕의 의심이 풀립니다.” 소하는 곧바로 수십 명의 장정을 선발해 유방에게 보냈다.


유방의 사신은 더 이상 오지 않았다.

유방은 천하를 통일했다. 논공행상이 이어졌다. 모두 자신의 공이 가장 크다고 생각했다. 누구를 1등급으로, 최고 직급을 줄지 갑론을박이 1년간 지속됐다. 유방은 소하에게 공신 서열 1위를 주었다. 무신들의 반발이 컸다. 유방은 “사냥을 할 때 사냥개는 사냥감을 쫓아가 죽이는 역할을 한다. 하지만 사냥개는 사냥꾼이 줄을 놓아 주며 사냥감의 위치를 알려주기 전까지는 꼼짝도 못한다. 그대들의 공은 사냥감을 물어오는 사냥개와 비슷하다. 하지만 소하는 사냥개의 줄을 조종하는 사냥꾼이다. 또한 그대들은 혼자서 싸웠지만 소하는 가문을 총동원해 수십 명이 전장에서 공을 세웠다. 소하의 공을 넘을 수 있겠는가”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직급을 정하는 자리에서 또 논란이 일었다. 무장들은 조참의 공이 크다고 주장했다. 조참은 패현에서부터 유방을 따랐고 모든 전투에 참여했으며 70여 군데의 상처를 입은 전쟁 영웅이었다. 이때 누군가 소하를 지목했다.


“조참이 공을 세웠지만 이는 전투에서만 있을 수 있는 공입니다. 폐하가 항우와의 전쟁에서 군사를 잃고 몸만 피하는 일도 몇 차례였지만 그때마다 소하는 군대를 보냈고 군량을 조달했습니다. 천하 통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관중을 보존한 소하의 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유방은 소하에게 최고 직급을 주었다. 다음이 조참이었다. 유방은 공신들에게 5000호 식읍을 주었지만 소하에게는 7000호를 하사했다. 소하는 바로 2000호를 반납했다. 각처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유방은 원정길에 올랐다. 그때마다 황제의 권한을 대행한 이는 소하였다. 유방이 제일 두려워한 한신이 반란을 일으켰다. 소하는 계교를 냈다. 궁에서 모든 제후를 모아 잔치를 한다는 구실로 한신을 불렀다. 의심 많은 한신은 이에 응하지 않았다. 소하는 한신을 찾아 참석을 권했다. 한신은 자신을 대장군으로 천거한 소하만은 믿었다. 한신은 궁에 들어서자 잡혔다. 소하는 작은 의리보다 천하의 안정을 바라는 마음이 더 컸다.

한신의 반란이 진압되자 유방은 진심으로 기뻐했다.


유방은 소하의 공을 높게 치하하며 소하에게 ‘상국相國’의 지위를 부여했다. 그리고 식읍 5000호를 더 하사했고 호위대 500명도 내주었다. 하지만 소하는 바보가 아니었다. 그는 이 모든 것을 황제와 국가에 헌납하고 오히려 유방에게 머리를 더 조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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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둘을 받으면 하나를 내놓는 전략

경포가 어느날 반란을 일으켰다. 유방은 원정길에 올랐다. 내정은 소하가 담당했다. 원정 중 유방은 사신을 보내 소하가 무엇을 하는지 알아보았다. 소하는 평소와 다름없이 백성을 다독이고 사재를 털어 군비를 마련했다. 소하의 빈객이 소하를 찾았다. “상국께서는 멸족을 당하실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열심히 할 일을 하고 있는데. 내가 역모라도 꾸밀 사람으로 보이는가?” “상국께서는 더 올라갈 수 없는 지위고 건국에 공도 큽니다. 그리고 10년째 관중을 잘 다스려서 백성도 상국을 믿고 따릅니다. 폐하가 상국의 근황을 묻는 까닭은 바로 상국이 관중의 백성을 동요시킬까 두렵기 때문입니다. 백성들의 원성을 사야 합니다. 그래야 황제의 의심이 풀릴 것입니다.”

소하는 상국의 지위를 이용해 백성의 땅을 싼값에 수용하고 비싸게 되팔아 이득을 취했다.


유방이 돌아오는 길에 백성들이 상소문을 올렸다. 상소문에는 소하의 파렴치한 행동이 모두 기록되어 있었다. 유방은 소하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이 상소문이 상국을 원망하는 내용이네. 상국이 그렇게 욕심이 많은 사람인 줄은 몰랐네.”

소하는 죄를 청했다. 유방은 호쾌하게 용서했다. 유방은 진심으로 소하를 믿기 시작했다. 소하는 나이 60세에 스스로 명예를 더럽힌 것이다. 유방이 죽었다. 혜제가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소하는 상국으로 황제를 보필했다. 그렇게 2년이 지난 후 소하는 병에 걸렸다. 황제가 친히 문병을 왔다. 소하는 황제에게 자신의 후임으로 조참을 추천했다. 사람들은 조참을 추천한 소하에게 감탄했다. 소하는 죽으면서 후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반드시 외딴곳에 마련하고 집을 지을 때에도 담장을 치지 말라. 그리고 나의 검소함을 배워라. 그래야 가문이 유지될 수 있다.’

소하는 수십 년을 유방과 함께했지만 번쾌, 조참 등의 공신과는 다른 부류의 사람이었다.


즉, 번쾌나 주발, 조참 등은 유방의 동료이자 친구였다. 공적으로는 황제와 신하지만 사적으로는 술을 주고받는 막역한 사이였다. 하지만 소하는 달랐다. 그는 공적인 관계를 사적으로 연결시키지 않았다. 이런 소하를 유방도 신임해 믿고 부렸지만 함부로 대하지 않았다.

직장에서 상사와 부하 직원의 관계는 공적이다. 물론 학연, 지연으로 인해 친분을 도모하고 때로는 그것을 과시할 수 있다. 하지만 공적 관계에 사적 영역이 개입되는 것이 출세의 보증 수표가 되는 것은 아니다. 상사와 부하 직원은 거리 유지, 즉 약간의 긴장감이 있는 것이 좋다. 서로의 부족함을 채워 주고 장점을 인정하는 선에서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관계의 생명력’을 길게 만드는 방법이다. 그 이유는 서로에 대한 기대치를 조율할 수 있고 또 능력을 객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부장과 팀원은 서로가 갖고 있는 권한과 의무로 일을 하고 능력을 평가받는 관계다.


객관적이고 공평해야 한다. 하지만 부장과 팀원이 사적으로 친해져, 일테면 ‘형제의 의리’를 맺고 있다면 아무리 부장이 객관성을 유지해도 조직원의 불신을 받게 된다. 조직원들은 향후 부장의 권한을 의심할 것이다. 또한 ‘형제’처럼 지냈던 부하 직원이 자신의 기대치에 미치지 못하는 결과가 나오면 이 또한 실망감과 불만의 원인이 된다. 공적으로도 완벽하고, 사적으로도 형제처럼 지낼 수 있는 직장은 찾아서도 안 되고 찾을 수도 없다. 묵묵히 성실하게 자리를 지키며 일하는 직장인은, 시간 문제일 뿐이지 상사의 눈에 들기 마련이다. 그런 역할을 하라고 부장 자리에 앉힌 것이 바로 회사이기 때문이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41호 (20.08.11)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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