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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 여든 넷의 탐험가에게 배우는 인생

입력 2020.09.25 1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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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의 아들과 팔순의 어머니가 여행하는 영화? 노잼이겠군.’ 이런 생각으로 이 영화를 놓친다면 한 편의 힘 센 로드 무비를 놓치는 셈이 될 것이다. 아시아의 오지여서 젊은 여행자들도 잘 찾지 않는 티베트 카일라스. 영화를 보며 관객들은 카일라스를 순례하는 여든 넷의 할머니가 인생이라는 길의 베테랑 여행가였음을 깨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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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성지이자 ‘세계의 중심’이라고 여겨지는 티베트 카일라스 산은 힌두교, 라마교의 성지이기도 한 ‘아시아의 산티아고’다. 신의 영역이라는 믿음 때문에 정상 등반은 불가능하지만, 5000m급을 오르내리며 산 주변을 한 바퀴 도는 ‘카일라스 코라’ 순례는 허용된다. 영화 ‘카일라스 가는 길’은 여든 살이 되도록 해외여행을 가본 적 없던 어머니와 마흔 여덟의 문화인류학자 아들이 몽골 대초원에서 시작해 티베트 카일라스 산까지 2만 km를 순례하는 이야기다.


1934년생으로 대학을 다닌 신여성이자, 1956년 경남 진양군에서 초대 여성 공무원으로 농촌계몽운동에 힘쓰던 이춘숙 할머니는 서른 일곱에 일찍 남편과 사별한 후 꿈을 포기한 채 홀로 남매를 키워낸다. 경북 봉화 산골마을에서 평온한 노년을 보내고 있던 그녀는 세상 떠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싶은 마음에 아들과 함께 몽골을 종단, 고비 사막과 알타이 산맥을 지나 러시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을 거쳐 파미르 고원을 넘는다. 그리고 다시 중국의 신장 자치구로 건너가서 타클라마칸 사막과 티베트 고원을 지나 카일라스 산에 도착한다. 얼음이 수평선 끝까지 얼어버린 바이칼 호수에서 세월호 아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길에서 만난 자전거족에게 사탕을 쥐여주며, 혼자 여행하는 손녀뻘 여행객의 안전을 엄마처럼 걱정하는 팔순의 순례자. 파미르 고원에서 만난 가족의 가난에 엎드려 울며, 세상에 밥 굶는 사람들이 없게 해달라고 기도하는 그녀를 만난 여행자들은 그녀를 ‘슈퍼 마마’라고 부른다.


넘치는 모성애로 여행에서 만나는 이들을 따스하게 안아주면서도 매일 새롭게 마주하는 세상에 대한 호기심을 잃지 않는 팔순의 여행자는 여정의 과정에서 보고 느낀 것을 그때그때 표현하고, 자신만의 언어로 기록한다. 그 모습은 단순히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던가, ‘노년의 나이에 도전이 지니는 의미’ 같은 단선적 설명으로는 표현되지 않는다. 그녀에게는 황량한 들판 한가운데 서 있는 석상도, 황량한 사막에 보는 이 없이 홀로 핀 들꽃 하나도 세상의 기적이다. 매일 한 편의 문학 작품 같은 일기를 쓰고, 여행지에서 “행복하도다”, “기적이다, 기적” 이렇게 되뇌이다가 마나사로와르 호수의 아름다움 때문에 엎드려 우는 주인공. 그녀는 땅에 핀 야생초를 볼 때도, 울란바토르의 떠오르는 해를 볼 때도, 울며 무릎으로 카일라스 산의 얼음 길을 오를 때도, 혼잣말하듯 ‘부처님’을 찾으며 기도를 올린다. 그리고 아들은 그런 어머니를 카메라에 담는다.


영화 속에 우리가 늘 생각해온 ‘할머니’는 없다. 약자와 인간에 대한 끝없는 애정, 변함없이 자연에 감동하는 태도, 당당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감정과 존재를 내세우는 건강함. 젊은 나이에 사랑하는 이들을 일찍 떠나 보낸 주인공이 길 위에서 다른 이들을 위해 기도하며 슬픔을 씻어내는 모습. 어쩌면 우리가 먼저 그들을 인생의 뒤안길에서 조용히 생을 마무리하거나, 취미 활동을 하며 편안하게 말년을 보내는 모습으로 가둬놓은 것이 아닐까. 영화엔, 꿈을 포기하고 살아왔지만 그 과정에서도 자아를 잃지 않고 무한히 세상에 감동할 줄 아는 한 건강한 인간이 있을 뿐이다. 바이칼 호수의 차가운 아름다움, 고비 사막과 알타이의 눈부신 태양, 6700m가 넘는 카일라스 산이 지닌 웅장함과 ‘세계의 지붕’ 파미르 고원의 설원 등 스펙타클하게 펼쳐지는 눈부신 영상은 영화가 주는 선물이다. 온몸을 던져 기뻐하고 슬퍼하며 기도하는 그녀의 순례길은 인생을 청강하듯 사는 많은 사람들을 정신 번쩍 들게 한다. 러닝타임 89분.

[글 최재민 사진 ㈜영화사진진]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48호 (20.10.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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