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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길고양이 급식소-“밥은 먹고 다니냐?”

입력 2020.09.25 1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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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빌라 앞을 지나다 ‘공고문’이란 것이 붙어 있어 무심코 읽었다. 내용은 이랬다. “빌라 주차장에 둔 길고양이 밥그릇을 치웁니다. 길고양이들의 잦은 출몰로 아이들과 임산부가 놀라고 차를 주차할 때도 불편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밥을 주지 마세요. 모두의 안전과 편의를 위해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 뭐, 그럴 수 있겠다 싶으면서도 이내 씁쓸한 기분이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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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고양이 급식소’가 있다. 길고양이에게 위생적이고 안정적으로 먹이를 공급하고, 이를 통해 주변 환경을 청결히 하면서, 먹이로 유인한 길고양이를 포획해 중성화 사업을 펼칠 목적으로 시작된 공적 사업이다. 우리나라 최초로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한 곳은 서울시 강동구다. 2013년에 20여 개의 길냥이 식당을 오픈하면서다. 처음에는 말도 많고 탈도 많았다. 떠돌이 길고양이들에게 굳이 밥을 챙겨 줘야 하느냐를 두고 주민들 사이에 갑론을박이 벌어졌다.


찬성하는 쪽은 다음과 같은 면을 강조했다. 먹을 것이 있으면 길고양이들이 굳이 쓰레기봉투를 뒤지지 않을 거라고, 개인적으로 길고양이에게 먹이를 주는 일도 줄어들 거고, 길고양이 포획이 용이해 중성화 수술을 하기 좋다고 말이다. 반대하는 쪽은 급식소 주변이 배설물로 지저분해지고, 낮에는 비둘기가 급식소를 점령할 거고, 여전히 자기 집 근처에서 몰래 길고양이에게 밥을 주는 사람이 많기 때문에 실효성이 낮다고 반박했다. 이 같은 곡절을 거쳐 길고양이 급식소를 설치한 결과는 어땠을까.

이제 강동구의 길고양이 급식소는 60개를 훌쩍 넘었다. 급식소가 생기기 전과 비교하면 민원이 1/6로 줄었다. 강동구가 지역 통장 443명에게 설문을 실시한 결과 48%가 ‘길고양이가 주택가에 쓰레기봉투를 헤집는 일이 줄었다’고 답했다. 17%는 ‘동물 복지와 생명 존중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됐다’고 했고, 42%는 ‘향후에도 길고양이의 인식 개선을 위한 홍보·교육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런 성공 사례를 벤치마킹해 서울의 여타 구들과 부산, 포항, 인천, 완주, 전주, 대구 등지에서도 길고양이 급식소를 속속 개업하고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진행형이다. 누군가 급식소를 망가뜨리고 먹이에 오물을 버리고 심지어 독극물을 넣는 일도 있다. 밥을 먹으러 온 길냥이들을 폭행하거나 죽였다는 소식도 듣는다.

집냥이 평균 수명이 15년인 데 반해 길냥이의 평균 수명은 3년이라고 한다. 터무니없이 짧은 이 시간조차 대부분 배고픔을 걱정하고 각종 위협에 시달린다. 물론 사람 사는 환경에 위생도 중요하고 안전도 확보해야 한다. 마구잡이로 불어나는 길냥이의 개체 수 조절 역시 필요한 일이다. 이런 정책 마련과 함께, 당장 우리 눈앞에서 쓰레기봉투를 뒤지는 이 아이들에게 최소한 먹이 정도를 내줄 수 있는 이유는 단순하다. 안락하지도 안전하지도 않은 삶이지만 어떻게든 최선을 다해 살아내고 있는 생명이기 때문이다.

다시 위의 ‘공고문’으로 돌아가 보자. 그럴 수도 있겠다는 지점은 이거다.


고양이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을 수 있고, 그들이 예기치 않게 길고양이를 마주치면 놀라고 싫은 마음이 드는 거야 이해가 된다. 그렇다고 길냥이들의 ‘존재 자체’가 ‘위협’이 된다는 당위성은 그 어디에도 없다. 내가 불편하고 싫다고 그 존재마저 사라져야 한다는 건 굉장히 끔찍한 폭력 아닌가. 그래서 더더욱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들에게 공간을 할애하고 그 영역을 존중하며 우리의 영역도 존중받을 수 있는 방법 말이다. 그것은 어쩌면 길고양이가 살아가는 방식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시작될 것이다. 생존 방식을 알면 공존의 해법을 못 찾을 리 없다. 그리고 길고양이 급식소는 그 해법의 가장 기초일 수 있다. 동물보호법 제3조 2항은 이렇게 명시하고 있음을 잊지 말자. ‘동물이 갈증 및 굶주림을 겪거나 영양이 결핍되지 아니하도록 할 것.’

[글 이경혜(프리랜서, 댕댕이 수리맘)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48호 (20.10.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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