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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태릉泰陵-조선 왕조 최고 권력자의 외로운 능

입력 2020.09.25 10:33   수정 2020.09.29 17: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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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원구 공릉동 태릉 지역. 그곳에는 태릉泰陵이 있다. 이 능의 주인공은 조선 왕조에서 가장 강력한 권력을 행사했던 문정 왕후. 그녀는 11대 중종의 제2계비로 아들 명종을 대신해 8년간 수렴청정한 여걸이다. 당시 문정 왕후의 집안인 윤원형은 세도 정치를 했던 인물, 그 윤원형의 애첩 정난정의 득세에 얽힌 이야기 역시 조선 왕조를 흔든 스캔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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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는 여러 가지로 불가사의하다. 한 왕조가 519년 존속한 것도 대단하지만 왕과 왕비의 무덤이 고스란히 남아 있는 것도 동서고금을 통틀어 유례를 찾기 어렵다. 조선 왕조가 만든 묘는 총 120기다. 이 가운데 왕과 왕비의 무덤인 능陵은 42기로, 40기가 서울 근교에 있고 나머지 2기는 북한 땅에 있다. 또 세자, 세자빈, 왕의 부모나 후궁을 모신 무덤 원園 42기와 64기의 묘墓가 전해진다. 2009년 유네스코는 조선 왕조 40기 능 모두를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서울 동쪽에 있는 태릉은 이름에서 짐작할 수 있듯 크기나 규모가 웅장하다. 하지만 이 태릉은 문정 왕후만 묻혀 있는 단릉單陵이다. 중종은 연산군을 몰아내고 왕위에 오른 인물. 왕위에 오르자마자 왕비 단경 왕후는 반정 공신들의 위압으로 쫓겨나고, 뒤를 이은 장경 왕후는 인종을 낳고 산후통으로 세상을 떠나고 만다. 그 뒤 17세의 문정 왕후가 왕비 자리에 오른다. 그녀는 영민하고 야심이 컸던 인물로, 34세에 명종을 낳았다. 중종이 승하하고 뒤를 이은 인종이 불과 8개월 만에 세상을 떠나자, 12세의 명종이 조선의 제13대 임금으로 즉위한다. 그 순간부터 조선의 모든 권력은 문정 왕후가 장악한다. 문정 왕후는 승려 보우를 발탁해 불교를 육성한다. 자신이 죽으면 중종 옆에 묻히고 싶었던 문정 왕후는 중종의 제1계비이자 인종의 생모인 장경 왕후의 능인 희릉(지금의 서삼릉)에 있던 중종의 능을 선릉으로 옮긴다. 풍수가 불길하다는 이유였다.


문정 왕후로서는 장경 왕후와 중종을 떼어 놓을 수 있었고, 보우로서는 봉은사와 가까운 곳에 중종을 모셔 자신의 영향력을 지속하려는 데 뜻이 일치했다. 하지만 당시 선릉 일대는 비가 오면 상습적으로 침수되었고, 이런 곳에 어머니를 모실 수 없다는 명종의 반대로 결국 문정 왕후는 지금의 태릉에 홀로 묻혀 남편인 중종과 나란히 하고 싶은 소망을 이루지 못했다.

조선의 왕릉 형식은 왕이나 왕비 한 사람의 봉분을 모신 단릉單陵, 봉분을 나란히 배치한 쌍릉雙陵, 하나의 봉분에 왕과 왕비를 같이 모신 합장릉合葬陵이 있고, 또 중종과 장경 왕후를 모신 희릉처럼 한 능 안에 있지만 서로 다른 언덕을 사용하는 것을 동원이강릉同原異岡陵이라 한다.

육군사관학교와 서울여자대학교 사잇길로 조금만 들어가면 오른편에는 요즘 핫한 지역인 태릉골프장이 있고 그 맞은 편에 태릉이 있다. 여기서 더 들어가면 삼육대학교가 있다. 태릉에서 약 1㎞ 동쪽에는 문정 왕후의 아들인 명종과 그의 비 인순 왕후의 강릉康陵이 있다. 명종이 죽어서도 어머니인 문정 왕후 곁을 지킨 셈이다.


태릉에는 2009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조선 왕릉이 등재된 것을 기념해 지은 조선 왕릉 전시관이 있다. 이 안에는 519년 27대 왕과 왕비의 왕릉에 관한 역사와 국장 절차, 산릉 제례를 포함한 왕릉의 모든 것을 모아 놓았다. 조선의 통치 이념은 유교. 당연히 왕릉 조성과 관리에 효와 예를 갖추어 정성을 다했다. 왕릉 조성 시 풍수 사상에 따라 최고의 명당을 선정하고 주변 자연 경관과 잘 어우러지도록 조성한 것도 조선 왕릉의 특징이다. 또한 왕릉 조성과 관련된 모든 절차와 이후 관리 실태를 상세한 기록으로 남겨 후대에 모범으로 삼았다. 왕릉 관리에 만전을 기해 500년 이상 된 왕조의 왕릉들이 훼손 없이 온전히 남아 있는 것은 세계적으로 드문 사례다. 특히 태릉은 임진왜란 때 왜군들이 도굴을 시도했는데 워낙 단단해 도굴을 포기했다고 한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문화재청국가문화유산포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48호 (20.10.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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