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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여행+] 느릿 느릿 굽이 굽이…옛 선비들의 안식처, 괴산에서 만난 치유의 길

신익수 기자
입력 2020.10.12 04:06   수정 2020.10.12 09: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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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론으로 촬영한 산막이옛길 풍경. 산막이옛길은 내내 괴산호를 끼고 걷는 7㎞ 길이의 산책로다. 머릿속에 떠올리기만 해도 마음이 차분해지는 장소가 있다. 코로나19로 압박스러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요즘, 특히 간절해지는 곳이다. 충북 괴산이 꼭 그렇다. 어딜 가나 산과 물을 끼고 있는 괴산은 전형적인 전원 풍경을 보여준다. 예전 같았으면 따분하게 느껴졌을 일상적인 풍경이 새삼스레 다가오는 건 하 수상한 요즘 분위기 때문. 불안함에 사로잡힌 일상을 잠시나마 잊기 위해 안온했던 옛 기억을 끄집어내기로 했다. 그 옛날 선비들이 안식처로 삼았던 괴산 아홉 굽이 계곡을 떠올리며 청량함 속으로 빠져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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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에도 파란 물길이…화양구곡·갈은구곡

괴산 관광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구곡'이라고 표시된 곳이 유난히 많다. 구곡(九曲), 아홉 계곡을 뜻하는 구곡을 처음 명명한 사람은 남송의 학자 주자다. 주자는 중국 푸젠성 무이산 계곡에 살면서 주변 경치를 칭송하는 '무이구곡가(武夷九曲歌)'를 지었다. 주자가 무이구곡가를 통해 단순히 자연경관만을 이야기한 건 아니다. 무이구곡은 성리학적 세계관이 담긴 이념적 이상향을 상징한다. 구곡의 유래는 알았다.


이제 궁금한 건 괴산에 수많은 구곡이 생겨난 연유다. 괴산과 구곡의 연결고리는 조선 중기 학자 우암 송시열이 쥐고 있다. 송시열은 주자를 흠모했다. 스스로를 주자에 비유했던 송시열은 괴산 화양동 계곡에 머물면서 무이구곡가를 본받아 화양구곡이라 명명했다. 이후 송시열의 후학들이 그의 뜻을 받들어 곳곳에서 비경을 찾아내 구곡을 만들어낸 것이다. 괴산에는 화양구곡 말고도 갈은구곡, 선유구곡, 쌍곡구곡, 고산구곡, 연하구곡, 풍계구곡 등 7개의 구곡이 있는데 연하구곡은 괴산호 아래에 잠겼고 풍계구곡은 문헌에만 존재한다. 괴산에서 가장 유명한 곳은 역시 화양구곡이다. 제1곡 경천벽부터 제9곡인 파천까지 이어지는 3㎞ 산책로를 따라 호젓하게 산책을 즐긴다. 넉넉한 물길을 따라 걷다가 마음 내키는 곳에 멈춰 잠시 딴청을 부려도 좋다. 하늘을 떠받친 '경천벽', 구름 그림자가 맑게 비치는 '운영담', 금모래가 넓게 펼쳐진 '금사담', 구름을 찌를 듯 웅장한 바위 '능운대' 등 이름만큼 웅장한 9개의 비경이 시원한 계곡물을 배경으로 굽이굽이 펼쳐진다.


화양구곡이 제법 정비된 모습이라면 갈은구곡은 좀 더 자연적이다.

달리 말하면 투박하달까? 갈은구곡 초입 갈론마을까지 가는 찻길부터가 그렇다. 칠성면에서 출발해 달천을 따라 이어진 길은 사은리 부근부터는 1차로로 쪼그라든다. 갈은구곡 표지석이 있는 곳에서 보통 차를 대놓고 산책을 시작한다. 이곳부터는 속리산 국립공원에 속한다. 1곡 장암석실을 지나 2곡 갈천정에 다다르면 물줄기가 보인다. 진짜 비경은 3곡 강선대 이후부터다. 강선대에 다다르면 글자를 유심히 볼 일이다. 보통 신선 선(仙)자를 쓰는데, 이곳엔 춤출 선(僊)이 새겨져 있다. 신선이 춤을 출 정도로 경치가 좋다는 의미다. 4곡 옥류벽부터는 계곡 상류로 진입한다. 계곡을 싸고 축대처럼 늘어선 바위가 인상적이다. 한국관광공사 세종충북지사가 지정한 강소형 잠재관광지인 갈은구곡은 적당히 걷고 적당히 쉬어갈 수 있어서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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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허리로 돌면 아찔한 출렁다리가…산막이옛길

괴산을 전국구 여행지로 만든 건 송시열의 화양구곡도, 신선을 춤추게 한 갈은구곡도 아니다. 충북 내륙 깊은 곳까지 사람들을 그러모은 건 7㎞ 산책로 산막이옛길이었다.


깊은 오지마을 사람들이 힘을 합쳐 만든 산막이옛길은 2011년 개장해 최고로 많을 땐 한 해 방문객이 130만명에 달할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본래 산막이옛길은 산막이마을부터 사오랑마을까지 연결하는 4㎞의 통행로였다. 첩첩산중 산막이마을 사람들은 산에 올라 나물과 버섯을 채취해 생활을 이어갔다. 마을에 위기가 닥친 건 1957년 괴산수력발전소가 생기면서다. 댐이 들어서면서 마을 대부분이 수몰되고 개울을 따라 읍내로 가던 길 역시 가라앉았다. 마을 사람들은 읍내로 가는 새로운 길을 만들었고 이것이 산막이옛길의 시작이다. 산막이옛길은 능선을 타지 않는다. 풍광을 보고자 만든 길이 아니기에 산허리를 싸고돈다. 출발과 동시에 왼쪽으로는 괴산호, 오른쪽으로는 높이 500m 남짓한 봉우리를 줄곧 품으며 걷는다. 경치를 보다 넓게 조망하고 싶다면 중간중간 이어지는 등산로를 따라 삼성봉·천장봉·등잔봉에 오르면 된다.

산막이옛길 초입에는 울창한 송림이 맞아준다. 특이한 건 소나무밭 사이로 출렁다리를 만들어놓은 것. 허공에 떠 있는 다리를 건널 땐 자연스레 발끝에 집중이 된다.


속세를 잊는다는 망세루(忘世樓)부터는 데크로드가 시작된다. 아름답게만 보이는 이 길은 그 옛날 지게꾼들이 목숨을 내놓고 걸었던 곳이다. 중간 지점 호수전망대에 서면 괴산수력발전소와 한반도 지형이 한눈에 잡힌다. 데크로드가 끝나고 흙길로 접어들면 산막이마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뜻이다. 본래 길은 산막이마을까지였다. 산막이옛길이 인기를 끌자 괴산군은 곧장 '충청도 양반길'을 조성했다. 산막이옛길을 충청도 양반길 1코스에 포함해 현재까지 1, 2, 2-1, 3코스까지 모두 25㎞ 길을 완성했다. 산막이옛길은 충청도 양반길 2코스와 '연하협구름다리'를 통해 연결된다. 양반길 2코스는 앞서 소개한 갈론구곡을 지나 사기막리, 선유대를 차례로 거친 다음 다시 연하협구름다리로 돌아와 끝이 나는 13.5㎞의 길이다. 2016년 개통한 연하협구름다리는 그 자체만으로도 명소다. 젊은 사람들은 산막이옛길보다는 이 다리에 더 관심이 많다.


다리 한가운데 서서 괴산호를 떠가는 유람선을 구경할 땐 노르웨이 피오르가 겹쳐질 만큼 장관을 연출한다.

[홍지연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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