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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직장인 레시피] 직장 생활, ‘아름다운 배신’은 없다

입력 2020.10.15 15:53   수정 2020.10.15 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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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는 배신이란 단어를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지도 모른다. 나의 행동은 배신이 아니라 회사와 상사를 위한 행위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신은 의외로 악마의 디테일처럼 주변에 포진해 있다. 일테면 무엇을 선택할 때, 선택받지 못한 자가 느끼는 감정은 ‘배신’일 수 있다. 더구나 선택의 기준이 탐욕이라면 그것은 분명한 배신이다. 직장에서 줄을 서거나 줄을 바꿔 타야 하는 선택의 순간에 처한다면, 잠시 숨을 고르고 생각해 봐야 한다. ‘지금 행동이 배신은 아닌가’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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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은 디테일에 숨어 있다

한국 사회에서 배신의 아이콘이 되는 것은 ‘사회적 사망 선고’와 다름없는 치명적 낙인이다. 이는 한국 사회를 오랫동안 지배해 온 유교 문화의 영향으로, 조직 혹은 상사에 대한 충성심이 조직원이 갖추어야 할 최고 덕목으로 미화된 측면도 크다.


더구나 초등학교 때부터 시작해 중고교, 대학교는 물론이고 상명하복이 뚜렷한 군대 생활을 경험하고 직급에 따른 위계질서가 분명한 회사 생활을 시작하는 직장인들이라면 조직원으로서의 충성심 유전자가 스며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해서 우리 사회나 조직에서 공익과 정의, 공공의 선을 위한 동기나 이름으로 행해지는 내부 고발조차 ‘배신’이라는 이름으로 매도되거나 금기시 되는 경우가 종종 발생한다. 물론 배신은 좋은 것이 아니다. 하지만 사회와 조직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움직임들, 일테면 정당한 저항, 공정을 위한 목소리 등을 모조리 배신이라는 큰 그물로 덮어 버리는 것 역시 바람직하지 않다.

기억을 오래 더듬지 않아도 정치적 혹은 가치관에 의한 선택 때문에 배신의 덫에 걸려 곤경에 처한 정치인을, 기업의 부정을 고발하려다 배신의 덫에 걸려 개인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직장인들을 쉽게 생각해낼 수 있다. 또 있다. 기업과 같은 큰 조직이 아닌 작은 모임, 동호회, 동창회 등등에서도 누군가를 내쫓기 위한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죄목’으로 ‘배신’이 사용되는 것 역시 잘 알고 있다.


물론 배신은 목적이나 방법으로서도 권장하거나 미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그 배신의 행위가 출세와 부를 위해 구멍 난 보트에서 혼자 몰래 내리는 것이라면, 이 행위의 주체자 즉, ‘배신자’에게 다시는 사회 생활을 영위할 수 없게 하는 제재 역시 그리 중하지 않다.

영화 ‘암살’은 이 배신과 배신자의 최후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일제 강점기, 임시 정부 김구 주석은 임시 정부 경무국 대장 염석진(이정재)을 필두로 한국 독립군 저격수 안옥윤(전지현), 신흥무관학교 출신 속사포와 황덕삼에게 조선 주둔 일본군 사령관 카와구치 마모루와 친일파 강인국을 암살할 것을 지시한다. 하지만 염석진은 일제에게 포섭당한 밀정. 그는 김구 주석의 의심을 ‘자결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겠다’는 행동으로 벗어나고 동지들의 명단을 일제에 넘긴다. 하지만 김구 주석은 염석진에 대한 의심을 거두지 않고 경무국 대원들에게 ‘염석진이 밀정이면 사살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그 뒤 경성에서의 격전 속에서 속사포와 황덕삼, 독립군 등이 모두 죽고 세월이 흐른 후 해방을 맞이한다.


염석진은 일제의 밀정에서 경찰로 신분을 갈아타고 여전히 잘나간다. 세월이 흘러 반민족행위특별조사위원회 재판정에 선 염석진. “나는 독립운동 외에는 한 일이 없습니다. 내 몸속에 일본 놈들의 총알이 여섯 개나 박혀 있습니다. 여기는 1921년 경성에서 테라우치 총독 암살 때 총에 맞은 자립니다. 구멍이 두 개지요. 여긴 22년 상해 황포탄에서, 27년 하바롭스크에서, 32년 이츠고 폭파 사건 때, 그리고 이 심장 옆은 33년에. 내가 동지 셋을 팔았다고 하셨는데 그 친구들 제가 직접 뽑았습니다. 그 젊은 청춘들이 어떤 심정이었는지 아십니까? 여러분들은 모릅니다. 내가 어떤 심정으로 그들을 보냈는지. 그건 죽음을 불사한 항전의 거름이었습니다. 재판장님.” 그는 이렇게 배신의 변을 늘어놓고 유유히 법정을 빠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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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정에서 나와 길을 걷던 염석진은 안옥윤을 발견하고 그녀를 뒤쫓는다. 허름한 민가 안, 염석진을 기다리는 것은 안옥윤과 자신이 죽였다고 생각했던 경무국 동지 명우. 안옥윤이 염석진에게 묻는다. “왜 동지를 팔았나?” 염석진은 말한다. “몰랐으니까, 해방이 될 줄 몰랐으니까. 알면 그랬겠나?” 안옥윤은 말한다.


“16년 전 임무, 염석진이 밀정이면 죽여라, 지금 수행합니다.” 염석진이 안옥윤의 질문에 답한 말, ‘해방이 될 줄 몰랐으니까’는 배신의 이유를 극명하게 보여 준다. 당연하다. 해방이 되고 친일파가 조리돌림 당하는 고통을 받는다는 사실을 안다면 누가 감히 조국과 동지를 팔아 버리는 배신 행위를 하겠는가. 물론 당장의 안위와 풍족한 부, 편안한 일신을 위해 배신은 그 나름의 명분을 갖고 행해진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어쩌면 우리는 배신이란 단어를 너무 멀리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지도 모른다. ‘내가 하는 모든 행동’은 배신의 범주가 아닌 그저 회사와 상사를 위한 행위라고 치부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배신은 의외로 섬세하고 조밀하게 우리 주변에 포진해 있다. ‘무엇이든 선택을 할 때’, 그것이 사람에 대한 선택이라면 당연히 선택 받지 못한 자가 느끼는 감정은 ‘배신’이다. 흔히 ‘선택을 해야 하기에 괴롭다’고 한다. 그렇다. 모든 선택에 항상 어떤 하나가 다른 조건을 압도하는 경우는 주어지지 않는다.


선택에는 모험과 책임이 따르고 그 선택이 성공적이었을 때 희열을 맛보게 된다. 하지만 탐욕을 바탕으로 한 선택은 배신과 동의어다. 직장에서 줄에 서야 하거나 줄을 바꿔 타야 하는 선택의 순간, 한번쯤 숨을 고르고 이런 생각을 해 봐야 한다. ‘혹시 나의 행동이 배신은 아닌가’를.

회사에 입사하는 순간, 여러 딱지가 붙는다. 입사 기수부터 관리부, 영업부, 기획부 등등의 부서 딱지, 또는 대학, 고교 출신 딱지와, 고향이 어디인가 혹은 ‘니 아버지 뭐 하시노?’까지, 다양한 분류 공식이 ‘개인’을 분해한다. 이 세밀한 스캔을 거친 후 직장인에게는 본인이 의도치 않아도 몇 가지 딱지가 붙게 된다. 이 딱지는 유용하기도 하지만 부담스러운 존재기도 하다. 또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능력이다. 부서의 일보다 실세가 속해 있는 대학과 고교 모임에 더 열심히 참여하는 회사원도 있고, 그런 것에 별 관심 없이 그저 충실히 내 일을 해내는 회사원도 있다.

여기 역사적 인물 중에서 배신을 논할 때 거론되는 의외의 인물이 있다.


바로 『삼국지』의 여포다. 여포는 관우, 장비, 마초 등보다 무력에서는 앞서는 인물이다. 그의 무예는 출중했고 당할 자가 없었다. ‘말 중에서는 적토마요, 사람 중에서는 여포가 최고’라는 글도 있다. 하지만 사가들은 그를 ‘배신의 무장’이라며 치욕적인 평가를 내렸다. 당대 최고의 명장에서 ‘배신의 아이콘’이 된 여포. 물론 그에게도 변명은 있다. 세상을 위해, 나라를 위해 한 행동이라는. 하지만 여포의 배신은 지극히 개인적인 탐욕이 그 추동력이다. 더구나 그는 두 번의 결정적인 배신을 했는데, 그가 뒤통수를 친 자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여포가 아버지로 모신 양아버지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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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 명장에서 ‘배신의 아이콘’으로

여포의 출신에 대해 정확한 기록은 없다. 서량 출신이라는 설 등 여러 말이 도는, 한마디로 본토인은 아니라는 게 정설이다. 그는 오원군 구원현에서 하급 무사로 살았다. 당시 한나라는 십상시가 권력을 장악하던 난세였고, 여포가 속해 있던 군 총대장 하진 장군 역시 십상시가 쳐 놓은 그물에 걸려 목숨을 잃는다. 그 뒤 여포는 형주자사 정원의 부하가 된다.


영원할 줄 알았던 십상시의 권력은 동탁에 의해 토벌되었고 그 뒤로 천하는 여러 제후들의 싸움터로 변한다. 정원 밑에서 출중한 무공을 뽐내던 여포는 정원의 오른팔로 승진했고 공을 인정받아 정원의 양아들이 된다. 정원은 여포를 앞세워 조정을 전횡하던 동탁에 대항했는데, 천하의 동탁에게도 여포는 유일하게 두려운 존재였다.

동탁은 근심거리 정원과 여포를 제거하기 위해 꾀를 냈다. 여포와 같은 고향 출신 이숙을 여포에게 보낸 것. 이숙은 여포에게 적토마와 금은보화 그리고 중원의 권력을 장악한 동탁 밑에서 2인자급 권력을 보장한다며 정원을 배반하라 꾀었다. 팔랑귀에 욕심 많은 여포는 이숙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자신을 그토록 믿던 양아버지 정원의 목을 베어 동탁에게 바친다. 여포는 즉시 동탁의 최고 무사이자 양아들이 되어 권력과 금력의 화려함을 만끽한다. 당시 동탁은 황제 헌제를 허수아비로 세워 놓은 채 자신은 화려한 미오성을 짓고 세상을 호령한다.

이때 동탁의 압정을 견디다 못한 한나라 대신 왕윤이라는 자가 꾀를 낸다. 바로 ‘미인계’다.


왕윤에게는 초선이라는 절세미인이 있었다. 여포를 집으로 초대한 왕윤은 초선으로 하여금 여포의 시중을 들게 했다. 여포는 초선의 미모에 푹 빠지고 만다. 왕윤은 여포에게 ‘날을 잡아 초선을 첩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한다. 여포는 초선이 집으로 찾아올 날만을 고대하며 지냈으나 초선이 오지 않자 조급한 마음에 왕윤을 찾아간다. 왕윤은 ‘초선을 우연히 본 동탁이 초선을 자신의 첩으로 달라 했다’는 말로 여포를 자극했다. ‘아버지가 아들의 여자를 넘보다니’라며 화를 낸 여포는 동탁에 대한 배신감에 치를 떤다. 그 순간, 초선이 여포 옆에서 눈물을 흘리자 여포의 분노는 극에 달한다. 결국 이성을 잃은 여포는 동탁을 죽이고 세상은 다시 혼란 속으로 빠져든다.

그 뒤 여포는 진궁 등과 함께 천하를 도모하지만 세 부족을 실감한다. 원술에게 의지하려 했지만 세상은 이미 여포의 배신에 환멸하고 있었고 원술 또한 여포를 증오해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포는 원소 등 여러 제후에게 몸을 의탁하다 결국 작은 성에 거처를 정하고 조조와 유비 연합군에 대항한다. 제후들 사이에서 여포의 신뢰는 그야말로 지옥으로 떨어진 상태였으나 여전히 적수가 없는 무예와, 진궁 등의 똑똑하고 기개 있는 부하 덕에 그나마 위신을 유지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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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날 여포는 부하들에게 금주령을 내렸다. 부장 하나가 참지 못하고 금주령을 어겼다. 이 사실을 안 여포는 부장에게 태형을 내렸다. 태형이 가해진 날 밤, 부하들은 여포를 밧줄로 묶어 조조에게 넘겨 버린다. 배신을 일삼은 여포가 정작 자신의 부하들에게 배신을 당한 것이다. 정신을 차린 여포는 조조에게 목숨을 구걸한다.

“나의 무예와 경의 군대가 힘을 합하면 천하를 도모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를 받아 주십시오.” 조조는 유비에게 의견을 물었다. 유비의 대답은 싸늘했다. “공께서는 여포가 두 아버지 정원과 동탁의 목을 벤 사실을 잊었습니까. 만약 그를 살려 준다면 세 번째 희생양은 바로 조조 공이 될 것입니다.”

이 말을 들은 조조는 여포를 참수한다. 당대 적수가 없었던 최고의 무장 여포는 이렇게 비참하게 최후를 마쳤다.


그의 나이 43세였다. 물론 『삼국지』를 보면 여포 이외에도 주인을 갈아탄 장수와 참모들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여포처럼 후대에 모욕적인 평가를 받은 인물은 없다. 사가들은 여포가 딱 두 번 배신을 했지만 그 이유가 정치 군사적 유불리가 아닌 순전히 자신의 탐욕 때문이었다는 것을 첫째 이유로 꼽았다. 처음 정원을 배신했을 때는 적토마와 금은보화 때문이었고, 동탁을 배신했을 때는 초선이라는 절세미인을 품겠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두 번째 이유로는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부자의 인연을 맺은 정원과 동탁을 배신했다는 점이다. 아버지라 불렀던 두 사람의 목을 베었다는 용서할 수 없는 패륜으로 여포는 후대에 최악의 배신자라는 치욕적인 평가를 받은 것이다.

‘이왕이면’으로 다가오는 배신의 유혹

흔히 ‘이왕이면’이라는 단어 뒤에 붙는 달콤한 유혹을 직장인들은 알고 있다.


‘이왕이면 고향 사람을’, ‘이왕이면 동창을’ 등등, 이 ‘이왕이면’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단어다. ‘이왕이면’은 우리 사회에 깊이 뿌리내린 엄연한 현실이고 그 ‘이왕이면’ 때문에 직장인의 앞날이 좌우되는 장면도 목격된다. 물론 ‘이왕이면’이 무조건 반칙일 수는 없다. 실력과 자격을 갖추었을 때 ‘이왕이면’은 더 빛을 발할 수 있다.

하지만 ‘이왕이면’이라는 문화에 기대서 더 좋은 줄을 잡기 위해 눈치 보고, 더 튼튼한 줄로 갈아타기 위해 작은 정치에 몰두하는 것은 어설픈 서커스처럼 위험을 동반한다. 우리 사회가 지금 앓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역시 이 ‘이왕이면’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이왕이면’이 동등한 기회를 박탈하는, 한번 맛들이면 절대 끊을 수 없는 마약 같은 ‘패거리 문화’, 즉 ‘끼리끼리’의 산물이기 때문이다. 또 하나는 ‘이왕이면’의 이면에는 질서와 공조직에 대한 반역과 배신이 숨어 있다는 점이다. 공식적인 조직 상사보다 대학 선배의 사적인 인연을 중시하는 선택의 순간이 오기 때문이다. 직장인이라면 한번쯤 경험할 수 있는 이 유혹에 넘어가는 것은 그저 가벼운 일탈이 아니다.


이는 공조직과 상사에 대한 배신이다.

S기업 박 부장, 점심시간에 나가 혼자서 술을 마시고 들어온 시간이 밤 9시였다. 박 부장은 사표를 써 내려가기 시작했다. 회사에 들어와 벌써 20년. 청춘을 던진 회사를 종이 한 장으로 정리한다는 생각에 가슴이 미어졌다. 그날 오전, 승진 인사가 있었다. 이번만은 틀림없을 것이라 기대했지만 승진자 명단에 박 부장의 이름은 없었다. 벌써 5년째 그는 이사 승진에서 누락된 참이다. 누가 보아도 ‘나가라’는 뜻이다. 더 이상 버틸 힘도 명분도 없었다. 인사 발표 후 부원들은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그들의 속마음은 ‘박 부장의 모습이 바로 배신자의 최후라니까’, ‘남의 눈에 눈물 나게 하면 제 눈에는 피눈물 나는 법이지’라는 고소한 미소가 담겨 있다는 것을 박 부장도 잘 알고 있었다.

박 부장은 영업1부에서 회사 생활을 시작했다. 영업부는 3부 체제로 서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었다.


당시의 박 사원은 어느 날, 영업2부 김 부장으로부터 ‘커피 한 잔 하자’는 제안을 받았다. 영업2부장은 박 사원에게 자신이 대학 선배라며 살뜰하게 대했고 가끔 식사를 하자고 제안했다. 박 사원은 선배가 있어 의지가 되겠다는 생각으로 이 만남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하지만 영업2부장은 이런 식으로 자신의 인맥을 형성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 그는 이렇게 형성한 인맥을 이용해 지금까지 승진을 거듭했고 3명의 부장 중 선두 주자였다.

영업2부장은 박 사원을 불러 영업1부의 상황과 전략 그리고 부서 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묻기 시작했다. ‘별로 중요하지 않은 이야기는 괜찮겠지’ 하는 마음으로 가벼운 것부터 이야기를 시작하던 박 사원은 영업2부장과 만남이 계속되면서 어느새 그의 스파이가 된 자신을 발견할 수 있었다. 박 사원은 갈등했지만 대학 선배에다가, 회사 실세 라인인 영업2부장과의 인연을 저버릴 수 없었다. 그렇게 몇 년이 지났다. 영업2부장은 이사로 승진했고 박 사원은 대리로 승진했다. 공교롭게도 자신이 소속되어 있는 영업1부장은 한직으로 쫓겨 갔다.


그는 짐을 싸면서도 박 대리를 원망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영업1부장과 영업1부 직원들이 박 대리의 스파이 행위를 모르는 것은 아니었다.

박 대리는 출세의 달콤한 맛을 알아 버렸다. 그는 김 이사를 통해 회사의 실세 상무를 알게 되었고, 끝내 상무 줄을 잡는 데 성공했다. 과장으로 승진한 그는 자신의 인맥을 관리하기 시작했다. 각 부서에 있는 대학, 고등학교, 고향 등 각종 연줄을 엮고 묶어 그들을 통해 상무에게 각 부서의 정보를 전달했다. 상무는 전무로 승진했고 박 과장은 차장, 부장으로 동기보다 먼저 승진했다. 하지만 박 부장의 엘리베이터는 영원하지 않았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는 법. 상무의 최고 뒷배였던 부사장이 그만 회장의 눈 밖에 나면서 해임되었고, 외줄 위에 서 있던 상무와 박 부장의 직장 인생 또한 내리막길을 걷기 시작했다. 밀려난 상무 자리에는 박 부장에게 배신당했던 영업1부장 출신 최 부장이 부임했다.


최 상무는 박 부장에게 겉으로 관대했다. 하지만 그는 박 부장의 배신을, 그로 인해 자신이 동기들보다 3년이나 늦게 승진한 수모 또한 잊지 않았다. 박 부장은 손이 발이 되도록, 낮과 밤을 다해, 온갖 수단을 총동원해 최 상무에게 아부했지만 최 상무는 그를 결코 용서하지 않았다. 승진 때마다 찾아오는 박 부장에게 “나도 힘을 쓰는데 어렵네. 위에서 박 부장의 이력을 잘 알고 계셔서 말이야. 아무튼 내년에는 한 번 더 해 보자고”라는 말만 했다.

배신의 시작은 그 실체가 잘 보이지 않아 본인도 느끼지 못한다. 누구나 처음부터 역모를 꾸미거나 회사를 들어먹을 생각을 하지는 않는다. ‘이 정도면 작은 편이고 누구나 아는 건데 뭐. 말해도 되겠지’라는 안이한 생각에서 시작한 작은 배신들은 그러나 언젠가 본인도 수습할 수 없는 규모로 커지고, 결국 그 무게에 본인이 눌리고 만다.

박 부장 역시 마찬가지다. 대학 선배 영업2부장의 제안을 거부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영업2부장이 질문하는 내용들이 자신이 속해 있는 영업1부의 기밀과 전략에 관한 것이라면 그는 멈추었어야 했다. 예의 있지만 단호하게 “부장님의 호의는 감사하지만 제가 말씀드릴 상황은 아닙니다. 저는 영업1부 소속이고 공식적인 라인을 통해서 오는 지시만 받겠습니다”라고. 그랬다면 영업2부장의 출세에 한 자리 끼어 승진하는 달콤함은 없었겠지만, 5년째 승진에서 누락돼 후배의 지시를 받는 수모를 겪거나 배신의 아이콘으로 후배들의 손가락질을 받는 비참함을 맛보지는 않았을 것이다.

박 부장 같은 상황은 누구에게나 올 수 있다. 이 ‘이왕이면’이라는 접근은 거부하기도 쉽지 않다. 하지만 회사는 공식 시스템으로 움직인다. 결재 서류의 도장과 사인을 무시하는 것은 회사의 룰을 위반하는 것이다. 결재 서류의 직급별로 받아야 하는 사인의 무게는 그만큼의 책임을 동반하고, 그것은 기안자의 도장부터 사장의 도장까지 업무의 시작과 끝을 알리는 표시다.


도장도 찍지 않고 사인도 남기지 않는, 즉 책임질 수 없는, 책임질 필요도 없는 누군가에게 프로젝트의 내용이나 회사의 전략을 공개한다는 것은 기밀을 빼돌리는 행위다. ‘공제회 대출’이나 ‘주거래 은행 융자 알선’, ‘주재원이나 해외 연수 방침’, ‘연말 성과급 지급’ 등 가벼운 커피 타임에 오갈 수 있는 내용은 말할 수 있다. 하지만 경쟁 부서의 업무 상황, 회사의 전략적 프로젝트, 승진과 지방 발령 등 인사 방향, 회사의 구조 조정과 조직 개편, 회사의 전략 변화 등은 사내에서도 쉽게 노출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그 내용을 ‘배신과 줄타기용’으로 이용하기 위해 발설한다면 그 대가를 반드시 치른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50호 (20.10.2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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