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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북극으로 가는 관문, 노르웨이 트롬쇠

입력 2020.10.18 06:01   수정 2020.10.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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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톨스티넨 전망대에서 바라본 트롬쇠 전경. 중앙 왼쪽으로 보이는 트롬쇠 다리는 아래로 대형 선박이 지나갈 수 있도록 중앙부가 볼록하게 올라온 독특한 구조를 하고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랜선 사진기행-18] 북위 69도 노르웨이 북부의 트롬쇠(Tromsø)는 오래전부터 '북극으로 가는 관문'으로 여겨졌다. 1900년대 초 인류 최초로 남극점에 도달한 노르웨이의 탐험가 로알 아문센을 비롯해 많은 탐험가들이 이곳을 북극 탐험의 전진기지로 삼았기 때문이다. 현재도 유럽을 경유해 북극으로 가려는 세계인들이 트롬쇠를 찾는다. 한국에서는 노르웨이 오슬로를 경유해 들어갈 수 있다.

트롬쇠는 노르웨이에서 일곱 번째로 큰 도시로 서울 면적의 4.2배에 이른다. 인구는 7만여 명 수준이다. 면적은 크지만 실질적으로 사람들이 거주하는 도시 지역 대부분은 섬 동쪽에 밀집해 있어 아기자기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트롬쇠위아섬에 위치해 있는 트롬쇠는 동쪽으로 1036m 길이의 트롬쇠 다리와 해저터널로, 노르웨이 본토 트롬스달렌 지역과 연결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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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롬쇠 시내의 거리 모습. 트롬쇠 성당이 있는 광장을 중심으로 다양한 상점들이 즐비해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트롬쇠 다리를 건너 케이블카를 타고 올라간 해발고도 430m의 스토르스테이넨 전망대에서는 북극해와 맞닿은 트롬쇠 도시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바다 너머로 주변을 둘러싼 피오르(빙하의 침식과 이동으로 협성된 협곡)들과 각양각색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는 도시 풍경이 장관을 이뤘다. 멀리서 여객선부터 화물선까지 트롬쇠를 오가는 크고 작은 선박들도 간간이 보였다.

트롬쇠는 19세기 후반에는 북극해의 주요 무역 기지 역할을 했고 제2차 세계대전 때는 노르웨이 정부의 피난처가 됐다. 노르웨이 극지 연구의 구심점인 노르웨이극지연구소(NPI) 본부와 시민들에게 개방된 극지박물관과 북극권 수족관인 폴라리아, 세계 최북단 대학인 트롬쇠대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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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탐험에 활용됐던 MS폴스트예르나 호(왼쪽). 오른쪽은 기념품 가게에서 판매하는 노르웨이의 탐험용 선박 모형. /사진=송경은 기자

극지박물관에서는 과거 북극 탐험가들이 북극해에서 생활했던 당시의 역동적인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폴라리아 앞에는 북극을 실제 탐험했던 MS폴스트예르나 호가 복원된 형태로 전시돼 있었는데, 선박에는 탐험 도중 식량으로 바다표범을 사냥하는 데 쓰였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었다.


입구에 있는 기념품 가게에서는 현지인들이 만든 다양한 공예품과 전통 생활용품을 판매했다.

트롬쇠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건축물은 트롬쇠 다리 끝에 있는 트롬스달렌 교회다. '북극 대성당'으로 불리는 이 교회는 1965년 건축가 얀 잉게 호비그가 자연을 모티브로 설계해 지어졌다. 노르웨이에 남은 유일한 목조 성당으로, 건축적으로 독특한 경관 덕분에 관광객들 사이에서 큰 인기다. 성당 지붕 양쪽을 이루는 콘크리트 패널은 예수의 열두 사도를 나타내고 이 패널들 사이로 들어오는 빛은 북극 빙하 틈에서 새어 나오는 빛을 표현했다. 예배당에는 600명의 성도를 수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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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극 대성당’으로 불리는 트롬스달렌 교회. /사진=송경은 기자

한편 트롬쇠는 밝고 선명한 '노던 라이트(Northern Light)'가 발생하는 오로라대에 속해 있어 오로라 헌터들 사이에서 명소로 꼽힌다. 매년 9월부터 3월까지 노던 라이트가 활발하게 보인다. 개 썰매나 아이스 호텔 체험을 할 수도 있다. 북극권의 트롬쇠는 여름에 해가 지지 않는 백야가 이어진다. 반대로 해가 거의 보이지 않는 겨울의 극야 시즌에는 '트롬쇠 국제 영화제(TIFF)'가 열린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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