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먼나라 이웃나라' 이젠 뮤지컬로 만나요

입력 2020/11/02 17:07
수정 2020/11/02 17:27
만화가 이원복 교수·공연기획 이강 대표 인터뷰

英 민요부터 헨델·비틀스까지
탭댄스 가미한 '영국여행' 공연

"30년 베스트셀러 만화처럼
역사에 라이브 음악 곁들여
스테디셀러 공연 만들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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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강남 작업실에서 만난 만화가 이원복 교수(오른쪽)와 `먼나라 이웃나라`를 뮤지컬로 제작한 이강 이강플레이 대표가 지구본을 가운데 두고 활짝 웃고있다. [이충우 기자]

"책 인세를 다 하늘에 뿌리고 다녔죠. 작년에만 20일간 시베리아 대륙 횡단을 했고, 아르메니아와 조지아를 비롯한 코카서스 일주를 했어요. 아, 이집트와 그리스도 다녀왔군요. 숱하게 발로 뛰어다닌 결과가 올해 나온 '러시아' 편이지요."

역사만화의 대명사 '먼나라 이웃나라'의 저자 이원복 교수(74)는 지난달 28일 강남 선릉 작업실에서 기자를 만나자마자 지구본을 손바닥으로 돌리며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놓았다. 항공사 마일리지를 200만마일 쌓을 정도로 지구를 몇 바퀴 돌며 산 칠십 평생이다.

코로나19로 잠시 여행 인생에 쉼표를 찍은 사이, 그의 작품이 뮤지컬로 공연된다. 만화책을 뚫고 나온 것 같은 빵떡모자 아저씨가 엉뚱 발랄한 소녀 독자를 만나 역사 배틀을 겨루는 이야기다.


수많은 나라 중 가장 먼저 선택받은 국가는 영국. 공연 기획자인 이강 이강플레이 대표는 "처음엔 음악이 풍부한 독일이나 이탈리아를 먼저 하려고 했지만 아이들이 가장 가고 싶은 나라를 조사했더니 의외로 영국이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이 대표는 2014년 출판사 김영사를 찾아가 뮤지컬 제작을 협의했다. 애니메이션 등 다른 제안은 다 거절했던 이 교수는 "역사에 라이브 음악을 곁들인다는 생각이 좋았다"며 흔쾌히 승낙했다. 처음엔 클래식 콘서트 형식이었는데 2016년부터 음악과 춤을 가미해 뮤지컬로 만들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내고 있다. 이 대표는 "잉글랜드 초기 민요부터 헨델, 엘가 클래식에 이어 비틀스, 앤드류 로이드 웨버까지 다루고 있어요. 아일랜드에서 전래된 경쾌한 탭댄스도 흥을 달구죠. 아이들이 공연을 보고 세상을 넓게 봤으면 좋겠어요"라고 말했다. 원래는 지난 5월 공연을 기획했으나 코로나19로 연기돼 이번에 서울 무대에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영국여행'이라는 이름으로 올린다.


5일 강동아트센터에 이어 11일 압구정 광림아트센터 장천홀에서 오후 5시, 7시 30분 두 차례다.

'먼나라 이웃나라'는 1987년 단행본이 나온 뒤 30년간 1500만부 넘게 팔렸다. 2018년 덕성여대 총장에서 은퇴한 이 교수는 이제 만화가로 '영원한 현역'으로 살고 있다. 문하생을 두지 않고 직접 수작업으로 그린 작품을 스캔을 떠 컴퓨터 작업을 입힌다.

그가 만화의 위력을 실감한 것은 1970년대 독일 유학 때였다. "프랑스 대표 만화인 '아스트릭스'는 독일 불문과 교재로 씁니다. 그런데 10년간 유학하고 한국에 돌아와 보니 어린이날마다 만화책을 모아서 불을 지르더군요."

만화를 천시하던 문화에 기겁했던 그는 지금 한국 웹툰이 세계 1등으로 뻗어 나가는 게 흐뭇하기만 하다. "몇 년 전부터 유럽에 가면 사람들이 '망가'(일본 만화)라고 안 하고 만화라고 합니다. 그만큼 한국 만화의 위상이 달라진거죠."

한국 웹툰 미래도 밝게 본다. "우리 만화책은 두껍고 스토리가 강하죠. 유럽 만화는 34쪽 한 권으로 끝나요. 일본 만화는 아직도 아날로그예요. 일본 주간 잡지 중심으로 연재 문화가 강해서 디지털에서 뒤처집니다.


"

K웹툰이 글로벌 시장을 석권하는 이유엔 한국인들의 독특한 멘탈도 작용한다는 게 그의 분석이다. "한국은 백인들의 식민 지배를 받지 않았어요. 서양 문화에 대한 적개심이 없지요. 대신 항일운동을 하면서 민족적 아이덴티티를 키웠습니다. 백인 문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서 우리 식으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이 뛰어나죠. 우리 것을 서양화하는 데도 능숙하고, 서양 것을 우리 식대로 받아들이는 것도 잘 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스스로 서양화된 거라 다릅니다. 뼛속 깊이 서양 콤플렉스가 있어요."

세계 대중문화계를 이끄는 방탄소년단(BTS)이 탄생한 건 우연이 아니라는 얘기다. 그가 이름 붙인 '글로벌 믹스형 아이덴티티'는 한국인이 유일하게 갖고 있는 DNA다. "만화 '신의 물방울'을 보면 일본인들이 얼마나 백인 콤플렉스로 점철돼 있는지 알지요." 그가 와인 만화인 '와인의 세계, 세계의 와인'을 집필한 이유다.

이 교수가 한국인의 유일무이한 멘탈에 목소리를 높이자 이 대표는 "뮤지컬 역시 서구에서 유래한 장르인데 한국에서 유독 인기를 끌고 있다"고 거들었다. 이 대표는 "이제 발레를 곁들인 프랑스 편에 이어 앞으로 독일과 이탈리아 편을 선보일 예정이에요. 만화처럼 시리즈를 만들어가고 싶어요. 제대로 된 스테디셀러 가족 공연을 만드는 게 꿈"이라며 활짝 웃었다.

[이향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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