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봄꽃 랜선여행] 자연과 문명이 만난 자리, 순백의 목화 城이 피었다

입력 2021/02/22 08:22
수정 2021/02/22 08:24
푸른 물 넘실대는 파무칼레
목화솜같아 '목화의 성' 명명
정상에 꼭 올라야 진짜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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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키를 떠올리면 머릿속에 가장 먼저 그려지는 세 가지 풍경이 있다. 첫 번째는 거대한 모스크의 첨탑을 품은 이스탄불 하늘일 것이고, 두 번째는 수백 개 열기구가 계곡 위로 떠오르는 카파도키아일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순백의 절벽 그 층층마다 푸른 물이 넘실대는 파무칼레일 테다.

파무칼레는 아나톨리아 남서부 데니즐리주에 위치한다. 이스탄불에서 580㎞, 앙카라에서도 480㎞가량 떨어져 있는 외딴 시골 마을이 터키의 최고 명승지가 된 이유는 명료하다. 푸른 연못을 가득 매단 순백의 목화 성(Cotton Castle)이 자리한 곳이기 때문이다. 소박한 풍경으로 채워진 마을 골목골목을 지나 파무칼레로 향한다. 한낮의 태양에 이글대는 아스팔트 도로 너머로 새하얗고 거대한 언덕이 우뚝 솟아 있다.


마치 사막 위에 만년설을 만난 듯, 푸른 하늘을 떠다니는 뭉게구름을 한 점 뚝 떼어놓은 듯 그저 신비롭고 생경하다. 수많은 매체 속에서 수도 없이 봐온 풍경이건만 실제 마주한 파무칼레의 모습은 예상보다 훨씬 놀랍고 낯설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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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이 오랜 시간 몽글몽글 빚어낸 이 새하얀 언덕이 옛 터키인 눈에는 목화솜처럼 보였던 것일까. 터키어로 파무칼레는 '목화의 성'이란 뜻을 지녔다. 파무칼레의 기묘한 지형은 고원 정상에서 분출돼 흐른 온천수와 그 안에 함유된 광물이 퇴적돼 형성된 결과물이다. 온천수가 산 절벽을 수천 년간 타고 흐르다 분지에 고이기를 반복하며 절벽·폭포·단구와 같은 신비롭고 다양한 지형을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눈길을 사로잡는 것은 단연 경사면에 형성된 일명 트래버틴 테라스(travertine terrace)다. 넓적한 접시 모양 못 안에는 물이 고여 있는데, 빛의 움직임을 따라 시리도록 푸른 쪽빛이 되거나 꿈같은 분홍빛으로 변하기도 하며 강렬한 금빛을 띠기도 한다. 예전만큼 물이 넘쳐흐르는 것은 아니지만, 그 모습은 여전히 신들이 노니는 욕조를 보는 듯 신비롭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아름다운 파무칼레지만 정상은 반드시 올라봐야 한다.


온갖 모양으로 조각된 석회층을 맨발로 조심스레 걸어 언덕 끝에 도달하면 거대한 고대 문명의 흔적, 히에라폴리스(Hierapolis)가 나타난다. '성스러운 도시'라는 뜻을 지닌 히에라폴리스는 기원전 2세기, 셀레우코스왕국의 온천 도시로 설립됐다. 당시 사람들은 이곳에서 뿜어져 나오던 섭씨 35도의 온천수가 각종 질병을 치유한다고 믿었다. 그리하여 그리스, 로마, 메소포타미아 등지에서 수많은 사람이 몰려들었고, 히에라폴리스는 일종의 치유센터이자 휴양지로 큰 명성을 누렸다. 한때는 인구 8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번영을 이뤘지만 모든 도시가 그러했듯 11세기 이후 쇠퇴의 길로 들어섰고, 1350년 발생한 대지진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다.

오랫동안 잊혔던 이 고대도시는 1887년 독일 고고학자 카를프만이 발굴하기 시작하면서 다시 세상에 드러났다. 히에라폴리스 안에는 아폴론 신전, 순교자 성 빌립보 기념성당, 1000여 개 석관묘 등 수천 년 전의 흔적이 희미하지만 분명하게 새겨져 있다. 그중 원형극장은 꽤 온전한 상태로 남아 있는데 12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엄청난 규모를 자랑한다. 온천 휴양지로 명성을 떨쳤던 곳답게 목욕탕의 흔적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는 관광객을 위한 수영장으로 사용되는데, 대리석 기둥 같은 유적이 물속에 담겨 있어 오묘함을 더한다.

고대 도시로 산책을 끝내고 다시 파무칼레로 돌아온다. 절벽 위를 부드럽게 타고 흐르는 온천수에 발을 담근 채 밤을 맞이하는 파무칼레를 바라본다. 하루의 소명을 다한 태양은 어느덧 하얀 도화지에 색을 흩뿌리는 예술가가 돼 순백의 언덕 위에 온갖 색을 가득 담아낸다. 수천 년 전 화려했던 번영이 담긴 고대 도시, 그 밑으로 꽃피운 목화의 성. 자연의 아름다움과 인간의 찬란한 문명이 이다지도 완벽하게 만난 곳이 또 있을까.

[고아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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