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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Citylife 제767호 (21.02.23) BOOK

입력 2021.02.23 1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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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에서 일상의 유토피아를 찾다 『도시의 깊이』

정태종 지음 / 한겨레출판사 펴냄 정태종 교수가 첫 번째 에세이로 펴낸 이 책은 자신이 관심을 둔 건축물과 도시 공간을 현대 건축에서 주요한 5가지 논점으로 해석해내는 시도를 한다. 헤테로토피아로 대표되는 건축, 현상학, 구조주의, 자연을 모방한 바이오미미크리, 스케일에 따라 건축에서 시작해 도시와 사람의 삶으로 확장되면서 다른 곳과 차이가 나는 도시 여행이 그 5가지다.

미셸 푸코는 유토피아와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면서 실제로도 존재하는, 예를 들면 다락방, 인디언 텐트, 목요일 오후 엄마의 침대, 거울, 도서관, 묘지 등 유사성을 찾기 어려운 장소들을 이렇게 불렀다. 헤테로토피아. 책의 첫머리에서 헤테로토피아의 장소로 지목되는 곳은 묘역이다. 예를 들어 서울 종묘는 엄숙한 공간을 위해 중앙을 비워내고 바닥을 돌로 채웠다. 이곳에선 순간의 현재가 거대한 과거가 된다. 스페인 이구알라다의 공동묘지와 베를린 시내의 추모공간은 노출 콘크리트라는 재료로 엄숙함과 두려움을 깃들게 한다.


또 하나 저자가 꼽는 곳은 경주의 고분군이다. 길 좌우에 집채보다 큰, 작은 산과 같은 왕릉들이 잇대어 있는데 천 년 전 고분이 21세기 도시인의 생생한 삶과 하나로 어우러지며 편안하면서도 숭고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저자는 “대지와 건축의 경계가 모호하고 연속적인 것이 특징인 현대 건축의 대지건축 개념과 1300년 전 신라시대의 건축물이 공명하는 듯하다”고 묘사한다.

유구한 지식에 접속하는 도서관도 일상 속 비일상의 공간이 된다. 책을 매개로 시간의 총서성을 담는 공간이자 지식과 권력의 공간이기 때문이다. 세상을 떠난 위대한 사람들은 실제로 만날 수 없지만 이곳에서는 그들의 삶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렘 콜하스의 시애틀 공립도서관은 서가를 자유롭게 배치해 사람들이 책을 찾아 움직이면서 다양한 공간을 체험할 수 있게 하고, 사람들 간의 우연한 만남 등 사회적 접촉의 가능성을 높였다.

책에 실린 모든 사진은 저자가 발길 닿은 곳에서 직접 찍은 것들이다.


미디어에서 익히 보아온 명소의 흔한 이미지들이 아니다. 땅과 먼지와 바람의 황톳빛이 가득한 모로코의 골목들, 페루의 도시 리마의 벽화에서 발견한 파블로 네루다의 시, 360개 방들이 360도 원형으로 배치돼 파놉티콘 같은 구조를 형성하는 덴마크 코펜하겐의 티에트겐 기숙사…. 청동의 푸르스름한 색감과 황금색이 어우러진 불가리아의 성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대성당은 서유럽식 성당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조금 기묘하지만 꼭 동유럽 날씨처럼 애잔하고 사무치는 정서를 자아낼 것이다. 파르테논 신전이나 에펠탑처럼 익히 접해온 장소 또한 저자의 시선에서 다시 태어난다. “건축을 배우는 제일 좋은 방법은 안도 다다오(Ando Tadao)가 했던 것처럼 실제 건축 작품을 살펴보고 만지고 느끼는 것”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코로나 시대에 책을 통해 만나는 ‘섬세한 비대면 여행기’가 고립의 시대를 잠시 잊게 한다.

▶인생의 끝에서 떠나는 환상 여행 『겨울이 지나간 세계』

아사다 지로 지음 / 이선희 역 / 부키 펴냄 인간의 상처에 대한 가슴 뭉클한 위로와 따뜻한 문장으로 인생의 아름다움을 조명해 온 소설가 아사다 지로의 신작이 나왔다. 2016년에서 2017년까지 1년간 일본 마이니치 신문에서 연재된 작품으로, 연재 내내 독자의 사랑을 받으며 ‘아사다 지로 감동 문학의 결정판’이라는 뜨거운 반응을 얻었던 작품이다.


정년퇴직을 맞이한 예순다섯 살의 다케와키는 송별회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뇌출혈로 지하철에서 쓰러진다. 애틋한 가족과 잊었던 친구가 잇달아 병문안을 오던 그때, 병실에 누워 있던 다케와키에게 미스터리한 방문자들이 찾아온다. 마담 네즈와 함께 병실을 빠져나가서 도쿄의 밤 풍경을 바라보며 고급스러운 저녁을 먹고, 갑자기 젊은 육체를 얻어 하얀색 선드레스를 입은 여인 시즈카와 한여름의 바닷가를 거닐기도 한다. 심지어 같은 처지의 옆 침대 환자 가짱과 같이 목욕탕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포장마차 포렴 안에서 따뜻한 정종을 마시는 등 꿈도 망상도 아닌, 이세계(異世界)를 여행한다. 그리고 기묘한 방문자들과 배회하며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 겉보기엔 지적인 엘리트, 성공한 비즈니스맨 같았던 다케와키의 비극적인 과거, 불행으로 얼룩진 인생이 드러난다.

[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67호 (21.02.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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