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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종묘 정전宗廟 正殿-신이 된 왕들의 518년 제례 공간

입력 2021.02.23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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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는 1392년 이성계의 건국부터 1910년 한일 병탄까지, 518년간 27명의 왕이 존재했다. 그 역사가 20세기 초까지 이어져 현대에도 서울에서 왕조의 흔적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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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세계 학자들이 가장 놀라는 조선 왕조의 유적은 바로 종묘다. 종묘는 한마디로 왕조의 역대 국왕, 왕후의 신주를 모시고 제례를 지낸 유교 사당이다. 흔히 왕조에서 가장 중요한 ‘종묘와 사직’에서 그 종묘다. 종묘는 실체로서 우리 곁에 있다. 본래 창덕궁, 창경궁과 맞닿아 있던 것을 일제가 왕조의 정기를 끊기 위해 궁을 분리하고 도로를 만들었다. 종묘는 1394년 태조가 한양으로 천도한 후 지어졌다. 이후 태종, 성종 때 중건했고 임진왜란 때 소실 된 것을 광해군이 1608년에 복원했다. 종묘는 온통 국보와 보물로 가득하다.


종묘는 사적 제125호이고, 정전은 국보 제227호, 영녕전은 보물 제821호, 종묘 제례악은 국가 무형 문화재 제1호, 종묘 제례는 국가 무형 문화재 제56호이며, 종묘는 1995년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종묘에서도 가장 중요한 공간은 ‘정전’이다. 유교에서 사람이 죽으면 ‘혼魂과 백魄’으로 나뉘고 혼은 하늘로, 백은 땅으로 간다. 이때 백을 모시는 것이 바로 ‘묘墓’이고 혼을 모시는 공간이 ‘사당祠堂’이다. 사당에 혼이 깃든 ‘신주神主’를 모시고 그 앞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애초 정전은 5칸이었다. 태조는 자신과 4대조(목조, 익조, 도조, 환조)를 왕으로 추존하고 종묘에 모시라 했다. 하지만 이내 정전은 ‘만실’이 되었다. 세종 원년에 큰아버지인 정종이 승하한 것. 해서 정전 옆에 영녕전을 지었다. ‘조상과 자손이 함께 길이 평안하라’는 뜻의 영녕전에는 세자로 죽었으나 후에 왕이 된 분 등을 모셨다. 이후 명종 때 11칸, 영조, 헌종 때 증축하여 지금의 19칸이 되었다.

정문으로 들어서면 웅장한 정전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 외곽은 담을 쌓아 밖과 구분지었다.


남쪽에 ‘신문神門’, 동서쪽에 제례 때 왕과 제관이 드나드는 동문, 악공이나 종사원이 출입하는 서문을 두었다. 가운데 신문은 조종의 신주만이 출입 가능했다. 정전은 동서 109m, 남북 69m의 거친 박석으로 만든 거대한 월석 위에 있다. 이처럼 돌을 다듬지 않고 거칠게 놓은 것은 신중하게 걸으라는 뜻과 햇빛의 난반사를 막기 위해서다. 이 월대에는 ‘삼도三道’가 있는데 중앙 길은 역시 신주만이 다닐 수 있다. 그리고 월대 위에 길이 101m의 정전이 있다. 당시 건물로는 가장 넓은 구조로 단순하면서도 장중하게 지었다. 월대와 기단 위에 정전을 지은 것은 이곳이 지상, 즉 인간의 세상이 아닌 천상의 공간이며 신들의 세계라는 표시이다. 정전을 정면에서 바라보면 하월대, 상월대, 정전 처마, 용마루 선이 수평으로 겹쳐 있다. 이 선들은 마치 이 모든 것이 하나의 공간처럼 보이게 한다.

정전의 전면부는 기둥만 서 있고 벽체가 없지만 옆과 뒤는 두꺼운 전벽돌로 만들었다. 자연광이 정면에서만 스며드는 구조로, 약간의 어둠은 장소의 신성함을 더한다.


각 칸에는 부러 맞지 않게 달아 놓은 문이 있는데 이는 혼이 자유롭게 드나들라는 뜻이다. 감실 뒷면에는 신주 모신 곳이 있다. 신주를 모시는 것도 예법에 따라 서쪽은 왕, 동쪽은 왕비이며 정전은 서쪽을 제일 윗자리로 여겨 제1실인 서쪽 첫 번째 칸에 태조 이성계의 신위를 모셨고, 19개의 감실에 왕과 왕비 49위를 모셨다. 이 정전을 학자와 건축가들은 ‘위대한 고요’라 표현했다. 구겐하임미술관을 건축한 프랭크 게리는 “아름다움을 말로 형언할 수 없다. 종묘의 단조롭고 정교한 공간이 나란히 이어지는 모습에서 무한의 우주가 느껴진다. 이같이 장엄한 공간은 세계 어느 곳에서도 찾기 힘들다. 굳이 꼽는다면 아테네의 파르테논 신전이 있을까”라고 격찬했다. 크나 과하지 않고, 비어 있으나 허하지 않은 곳. 산 자와 죽은 자가 함께 자리했을 때 그 빛이 나는 곳이 바로 종묘이며 정전이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국가문화유산포털]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67호 (21.02.2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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