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남주 작가 '82년생 김지영'…묻혀 있는 진주 발굴 세상 빛 밝히는 이 직업

입력 2021/02/28 05:58
수정 2021/03/02 17:06
'82년생 김지영'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 인터뷰
"큰일 났다."

유튜브 시대를 책 편집자로서 어떻게 느끼고 있느냐는 질문에 박혜진 민음사 편집자는 단말마 같은 답을 내놓았다. 하지만 곧 뒤이어 웃으며 덧붙였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책을 읽는 사람이 많았던 시대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에게 "책 좀 읽어라"는 말을 다들 한 번쯤 들어봤을 것이다. 커서도 항상 "요즘 나는 책을 안 읽어서 문제야"라고 변명을 달고 살고, "올해는 꼭 책을 읽어야지"라는 다짐은 새해에 꼭 해본다. 그러니까 무의식적으로 우리는 은연중에 느끼고 있는 것이다. 아무리 정보가 온라인에 치이게 넘쳐나고, 유튜브·넷플릭스 등 유쾌함과 지적 매력을 두루 갖춘 콘텐츠가 범람하는 시대에도 책에는 마지막까지 지켜져야 할 '어떤 가치'가 있다고.

박 편집자는 책의 가치를 이같이 정의했다. "항상 즐겁게 볼 수는 없지만 인생의 한 지점에서 한 번은 만날 수밖에 없는. 그리고 만남은 그 어떤 만남보다 강렬한."

실제 박혜진 편집자는 '강렬한 만남'을 우리에게 선사한 바 있다. 그는 서효인 편집자와 함께 민음사 투고함으로 날아든 조남주 작가의 원고를 발견해 이 세상에 '82년생 김지영'이란 이름으로 선보였다. 이 책이 우리 사회에 가져온 돌풍은 객관적인 수치로 살펴보면 책은 100만부가 팔린 베스트셀러이고, 공유와 정유미 등이 출연한 영화는 약 400만명이 봤다. '김지영'이란 이 한국 여성의 이름은 국경도 넘었다. 미국 타임지 꼭 읽어야 할 100선에 꼽혔고, 중국과 일본에서는 '베스트셀러' 반열에 올랐다.


1분마다 유튜브에는 400시간이 넘는 분량의 새 동영상이 늘어난다. 디지털 콘텐츠의 맹공 속에도 꿋꿋이 방어전을 펼치고 있는 편집자란 직업에 대해 듣기 위해 '꽃직업 꿀직업'에서 박혜진 편집자를 만나보았다. 이번 인터뷰는 유튜브 촬영을 전제로 이뤄졌다. 촬영 후 글로 다시 정리했다. 박 편집자는 "이런 인터뷰도 해야 하고 디지털 시대의 책 편집자는 정말 고되고 힘든 일"이라는 푸념으로 인터뷰를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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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전망을 궁금해하시는데..망할 것 같나요?"


-디지털 아니 유튜브 시대입니다. 이 시대에 여전히 종이책 편집자로 산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요.

▷어렵고 고된 일이죠. 이런 것(유튜브 인터뷰)도 하고 있잖아요 (웃음).

-지금 인터뷰를 유튜브로 진행하고 있는데요. 유튜브를 보는 사람들이 점점 많아지고 그 시간도 길어지고 있어요. 편집자로서 어떤 생각이 드나요.

▷큰일 났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책을 읽는 사람들이 많았던 시대는 없지 않았나. 지금 사람들이 소설을 많이 읽지는 않지만 반대로 역설적으로 가장 많이 찾는 시대라는 생각도 듭니다. 유튜브 같은 플랫폼이 많아지고 있는데 그곳에서 사람들이 결국 찾는 건 이야기잖아요. 덕분에 원작의 가치도 올라가고 있어요. 영화화된 '82년생 김지영', 드라마화된 '보건교사 안은영'이 대표적인 예가 될 수 있겠죠. 그렇다면 이 책의 세계를 어떻게 확장할 수 있는지 고민하는 역할이 편집자에게 새롭게 맡겨진 것이고, 실제로 여기에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사람들이 편집자란 직업의 전망에 대해 많이 물어봐요. 망할 것 같나 봐요(웃음). 전망이 좋아 보이면 묻지 않겠죠? 결국 이건 이야기를 만드는 산업 안에서 편집자의 역할을 어디까지 확장해 나갈 수 있느냐에 달려 있는 것 같아요. 얼마만큼 새로운 일을 자기 일로 만들 수 있느냐, 그 일에 어떤 태도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앞으로 같은 편집자라도 전망은 나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편집자란 직업을 추천하시나요.

▷추천하고 싶습니다. 책 읽는 걸 좋아한다면 정말 너무 좋은 직업이에요. 작가는 굉장히 독특한 사람들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자기의 어떤 세계관을 뚜렷하게 표현하면서 살지 않잖아요. 반면 작가들은 세계관이 극대화된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작가와 만난다는 건 새로운 세계를 만나는 일이에요. 그래서 책을 만드는 일은 비슷한 프로세스를 거치지만 매번 다른 일을 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제가 1년에 책을 12권을 만들다면, 12번의 다른 일을 하는 거예요. 1년에 12번의 다른 세계를 만나는 일이죠.

-편집자란 직업의 장점과 단점을 말해주신다면.

▷보통 배움에는 끝이 있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편집자는 읽을 만한 것들을 만들어야 하고, 그것을 찾기 위해 또 읽어야 해요. 끊임없이 읽기 때문에 끊임없이 배워야 한다는 게 장점입니다. 피로하고 지치기는 해도 보통 우리가 직업인으로서 느끼는 소진감, '내 안에 남은 게 없어' 이런 느낌을 받는 경우는 거의 없는 것 같아요. 하지만 역설적으로 모든 건 지나치면 모자라는 것만 못하잖아요. 안 배워야 할 것까지 배우게 된다는 게 단점이죠.

-안 배워도 될 것 까지라면.

▷예를 들면 독자일 때는 좋은 책들을 골라서 읽을 수 있고, 책으로 선택된 글들을 읽잖아요. 그런데 편집자들은 책이 되지 않은 원고들을 굉장히 많이 읽어야 합니다. 그래서 안 봐도 되는 글까지 봐야 하고 그래서 읽고 나서 시간이 아까워질 때도 솔직히 많죠. 그런데 편집자는 이 글에서마저도 배워야 해요. 편집자들끼리는 이렇게 말해요. 잘 쓰인 것들에서는 세계관을 배우고, 잘 쓰이지 않은 것들에서는 디테일을 배운다.

-잘 쓰이지 않는 것에서 디테일을 배운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왜 내가 이 이야기는 안 좋다고 생각하는 이유를 골똘하게 생각하다 보면 내가 생각하는 좋은 원고, 좋은 소설은 무엇일지 배울 수 있죠. 편집자가 하는 일 상당 부분이 글을 더 좋게 만든 일이잖아요. 좋지 않다고 생각하게 되는 원인을 찾아보는 건 더 나은 것들을 만드는 데 중요한 배움이 될 수 있죠.

-글과 관련해서 일하는데 편집자 본인도 글을 잘 써야 하나요. 글 쓰는 능력이 편집자로서 중요한지 궁금합니다.

▷글을 잘 쓰기보다는 글을 잘 읽어야 하는 것 같아요. 읽는 게 더 힘든 일이에요. 편집자는 완성된 글을 보는 사람이 아니라 완성되는 과정에 있는 글을 봐야 해요. 쓰인 글 이면에 아직 쓰이지 않은 글을 봐야 하죠. 어떤 것들이 더 들어갈 수 있는지, 어떤 내용이 더 나올 수 있는지, 혹은 어떤 것들은 좀 덜어내는 게 좋은지. 다만, 편집자로서 책이 완성되면 소개글을 쓰게 되는데요. 결국 소개글의 목적은 이 책이 읽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를 설득하는 글이니 설득하는 데 있어서 글을 잘 쓰는 건 당연히 도움이 되겠죠.


1.5년에 한명 뽑는 민음사…'새 책' 읽어서 합격했습니다




-민음사 정말 소수만 뽑을 것 같아요.

▷저 때는 한 명 뽑았습니다. 운이 좋았죠. 솔직히 지금은 공채를 거의 실시하지 않습니다. 팀에 결원이 생겼을 때 채용을 하는 방식이에요. 그래도 1.5년에 한 번 정도. 1~2년에 한 번은 채용하는 것 같아요.

-정말 바늘구멍 들어가기네요. 본인은 어떻게 합격하셨어요.

▷저도 합격하고 이유를 물어봤어요. 그때 제가 읽고 있던 책 때문에 뽑았다고 하셨어요. 당시 '정조 어찰첩'이라는 책을 읽고 있었거든요. 그 책이 그 무렵 발견돼서 화제가 됐던 책이었습니다. 제가 합격한 건 '정조 어찰첩'이란 책이었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 시기에 '뉴스'가 되고 있던 책을 읽고 있었기 때문이에요. '책을 만드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라고 말하는 분들 대부분이 대체로 고전을 많이 읽으세요. 고전은 언제나 읽으면 좋지만 편집자는 계속 신간을 만들어야 하는 사람이거든요. 그래서 새로 나오는 책들을 계속 읽어야 해요. 베스트셀러도 읽어야 해요. 베스트셀러를 무시하면 좋은 편집자가 될 수 없어요.

-베스트셀러를 대하는 편집자의 마음가짐이란.

▷'이게 왜?'라는 마음은 항상 있죠. 그런데 읽고 나면 '그렇구나'라고 납득하게 되죠. 어디서든 1위가 되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에요. '치트키'를 써서 빨리 올라갔구나 하고 폄하하는 목소리도 있지만 그렇기만 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베스트셀러는 사람들의 공통적인 무언가를 건드리고 있기 때문에 계속해서 읽히는 거죠. 사람들의 숨겨져 있는 욕망을 볼 수 있는 가장 직접적인 방법이 베스트셀러 목록을 들여다보는 것 같아요. 매일경제 기사에서도 많이 보도됐지만 2020년 잘 팔린 책 목록을 보면 한국인들의 욕망이 그대로 보여요. '주식'. 편집자는 베스트셀러 책을 추구하지는 않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하고 읽을 가능성이 있는 책을 만드는 게 일인만큼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죠. 그래서 그런 능력을 보여주는 지원자들에게 눈길이 가는 것도 사실이에요. 생각보다 많은 지원자들이 지금 사람들이 많이 읽고 있는 책을 읽지 않거든요.

-편집자에 대한 편견이 여성이 많이 할 것 같은 직업인데요.

▷그냥 팩트예요. 80%는 여성이에요. 지원자도 여성이 훨씬 많고요. 저희가 만드는 책은 독자도 여자가 더 많아요.

-연봉이 짜다는 것도 팩트인가요.

▷출판계가 연봉이 높지 않죠. 민음사가 다른 출판사와 비교해보면 특별히 낮지는 않겠지만 특별히 눈에 띄게 높은 건 아니고요. 상대적으로 근속하는 시간이 길어서 임금 상승 수준이 높다고 이야기들도 많이 하시는데. 사실 호봉제가 아니라 연봉제입니다. 개별 성과에 따라 달라져서 일괄적으로 연봉을 이야기하기 어려운 부분도 있네요. 그리고 생각보다 월급은 만족할 만합니다. 부업이 많아요.

-'82년생 김지영'으로 인센티브 많이 받으셨겠어요.

▷구체적으로 밝히면 계약 위반이라. 이례적으로 성과가 많이 난 책이었기 때문에 적절한 수준의 인센티브를 받았습니다. 꽤 많이(웃음).


"할 것 많은 새해, 하고 싶지 않은 것을 적어보자"


-편집자는 계속 '지금'의 책들을 읽어야 한다고 말씀해주셨는데요. 최근에 읽고 있는 책들 추천해주세요.

▷공교롭게도 옛날 책이에요. 들통나버렸네요. 그래서 세 권 준비해왔습니다. 인생책, 최근에 읽은 책, 그리고 새해에 읽을 책 순으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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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저=yes24

-인생 책은.

▷박완서의 '도둑맞은 가난'입니다. 최근에 다시 읽어봤는데도 역시 좋더군요. 줄거리는 너무 가난해서 나를 제외하고 가족 세 명은 생을 포기했습니다.


하지만 나는 '가족들은 가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두려움을 이겨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지만 나는 이 가난을 소명으로 받아들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독특한 주인공이에요. 가난 속에서도 사랑을 하죠. 좋아하는 남자가 옆방에 살아요. 표면적으로는 둘이 같이 살면 연탄이라도 아낄 수 있다는 이유지만, 내심 좋아해요. 그런데 알고 보니 이 남자가 부잣집 아들인 거예요. 가난을 체험하기 위해서 나랑 살았던 겁니다. 주인공은 충격을 받아요. "부자로부터 모든 걸 빼앗겼을 때도 이렇게 힘들지 않았는데 내 가난마저 뺏어가다니" 이 지점이 참 인상 깊었어요. 가난마저도 잃어버렸다고 느낄 수 있는 것 자체가 인간 정신의 위대함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책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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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읽은 책은.

▷올가 토카르추크의 '죽은 이들의 뼈 위로 쟁기를 들어라'라는 책입니다. 범인이 '사슴'으로 의심받는 연쇄 살인사건이 발생하면서 범인을 추적하는 내용입니다. 동물권, 인간과 비인간 사이의 관계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목소리들이 최근에 많잖아요. 우리가 어떤 감각으로 이 문제들을 바라봐야 할지 화두를 던지는 작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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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새해에 추천하는 책은 뭔가요.

▷김연수 작가의 '일곱 해의 마지막'이라는 소설입니다. 백석의 일화를 모티브 한 소설이에요. 백석이 북한에서 당이 원하는 시를 쓰지 않고자 아무것도 쓰지 않기를 택하는, '역설적인 자유'에 대해 이야기한 책입니다. 보통 새해가 되면 해야 할 것들의 목록을 굉장히 많이 만들잖아요. 그런데 거꾸로 하지 않을 것들을 적어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너무 많이 해야 하는 삶에서, 하지 않고 싶은 것에 대한 목록을 작성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생각해 추천합니다.

[김연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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