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목에 칼을 꽂은 남자…빈민가 청춘의 자화상

입력 2021/03/17 17:10
수정 2021/03/17 17:38
'80년대 반항아' 릭 프롤 개인전

뉴욕 뒷골목을 강렬한 색채로
사회 분노·절망 표출한 작품
환각 상태 표현한 그림도
"바스키아보다 낫다"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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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릭 프롤. [사진 제공 = 리안갤러리]

1980년대 뉴욕 뒷골목에서 함께 그림을 휘갈기던 낙서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1960~1988)와 키스 해링(1958~1990)은 각각 약물중독과 에이즈로 요절했다. 그들의 친구 릭 프롤(63)이 살아남아서 당시 청춘들의 절망과 분노를 증언하고 있다.

서울 창성동 리안갤러리에서 열린 프롤의 국내 첫 개인전 'Cracked Window(깨진 창문)' 그림 14점은 198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로 시곗바늘을 돌린다.

몸에 칼이 꽂힌 남자가 창문이 깨진 좁은 방에 갇혀 있는 작품들이 눈에 띈다. 깨진 창은 실직과 마약, 범죄로 황폐화된 도시를 상징한다. 임대가 잘 되지 않자 보험료를 받기 위해 집주인이 불태운 건물과 폐가는 젊은 화가들의 둥지였다.


프롤이 검게 그을린 창문에 그림을 그리거나 창틀을 화면에 붙인 작품이 전시장에 걸려 있다.

암울한 현실을 자양분으로 완성한 프롤 작품은 어둡고 기괴하지만 당시 사회 밑바닥을 관통한다. 빈민가로 내몰린 청춘의 좌절을 거친 선과 강렬한 색채로 뿜어낸다. 바스키아 그림이 어린아이 낙서 같다면 프롤 작품은 정교한 구도와 상징, 미술 역사를 담은 그라피티(거리예술)다. 바스키아는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 않았지만 프롤은 1980년 뉴욕 명문 예술대 쿠퍼유니언을 졸업한 후 자기만의 스타일을 찾아갔다. 수업료가 전액 면제되는 쿠퍼유니언은 현대 초상화 거장 알렉스 카츠 등 미술 천재들이 다녔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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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 작 `Saint Agony`(167.5 x 137.5 cm). [사진 제공 = 리안갤러리]

뉴욕에서 그들과 함께 활동했던 화가 최동열 웨이브아이 대표는 "바스키아와 프롤 작품이 걸린 전시회에 갔는데 프롤 작품이 더 세다고 생각했다. 바스키아가 프롤을 홍보하려고 애썼을 정도로 두 사람이 친했다"며 "내가 참전했던 베트남 전쟁터보다 더 열악했던 뉴욕 뒷골목에서 두 사람은 독특한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특히 프롤은 1980년대 뉴욕 이스트빌리지의 특수한 분위기를 가장 잘 담은 작가라고 생각한다"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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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작 Pies-O(183.5 x 152.5 cm). 사진제공=리안갤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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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3년작 Querelle(246 x 198 c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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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년작 S.O.S(274.5 x 396cm). 사진제공=리안갤러리

정규 교육을 받았지만 프롤은 보헤미안(방랑자) 기질이 강한 클래식 기타리스트 아버지와 배우이자 카바레 가수 어머니 아래서 성장해 자유분방했다.


바스키아와 해링 등 실험적 예술공동체 동료들처럼 약물에 손을 댄 듯 환각 상태를 그린 1983년 작 'Saint Agony'(성스러운 분노)가 전시장에 걸려 있다. 양동이에 발을 담그고 입에 칼을 꽂은 남자 주변에 뱀, 냄비, 전구, 파란 문, 불길에 휩싸인 채 몸을 굽힌 인체 등이 둥둥 떠 있다. 목과 두 손이 잘려 나간 초록색 나체 형상까지 어깨에 두른 채로. 다른 작품에서도 푸른색이나 초록색으로 등장하는 나체는 축 늘어진 시체처럼 보인다. 에이즈나 약물중독, 범죄로 목숨을 잃은 동료 예술가를 의미하는 듯하다.

눈동자가 시뻘겋고 깡마른 남자는 작가 내면의 자화상이다. 암담한 도시에 대한 분노를 극단적으로 표현한다. 1982~1983년 목이 잘린 채 손에 붕대를 감은 남자를 그린 'Bandage'(붕대)는 독일 거장 에른스트 루트비히 키르히너(1880~1938) 자화상 영향을 받았다. 온 몸이 파란 여인이 잘린 머리를 들고 가는 'S.O.S'(1985년)는 냉전 시대 미국과 러시아의 핵 협상 시기에 제작했다. 부서진 브루클린 다리와 자전거로 뉴욕을 횡단하는 장면은 당시 험난한 사회를 대변한다. 기댈 곳 없는 세상에서 동료들이 에이즈와 마약으로 죽어갔지만 프롤은 순수하게 작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다.

전시를 기획한 홍세림 큐레이터는 "프롤의 작품성이 바스키아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며 "요절한 동료들의 드라마틱한 인생에 가려 조명될 기회가 상대적으로 적었다"고 설명했다. 전시는 4월 24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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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프롤 전시 전경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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