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조용필은 歌王인 동시에 詩王…그를 통하면 가사는 문학이 된다

김유태 기자
입력 2021/03/17 17:20
수정 2021/03/17 20:11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 펴낸
유성호 평론가·한양대 교수


중학생 이후 줄곧 조씨 탐구
음악성 외에 문학성 주목
평범한 언어도 조용필 거쳐
발화되면 시가 되었다
그것이 조용필의 위대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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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대 서울 종로구 원서동. 까까머리 중학생이던 문학평론가 유성호 씨(57·사진)는 한 레코드숍에서 가수 조용필의 허스키한 저음을 처음 들었다. 이후 지금껏 가왕(歌王)의 삶과 노래를 추적해오는 중이다. 한양대 국문과 교수가 된 이후로는 '조용필 평전'을 쓰겠다고도 마음먹었다.

유 교수가 신간 '문학으로 읽는 조용필'을 출간했다. '장르 조용필'을 문학(文學)으로 읽는 책이다. 현재 한양대 인문과학대 학장인 그를 서울 성동구 캠퍼스에서 만났다.

"아직 직접 만나진 못했어요. 책을 내고 나니 이미 만난 것 같은 느낌입니다." 그는 '조용필의 시대'였던 1980년대부터 일거수일투족을 눈여겨봤다.


"책을 쓰다 인터넷에 올라온 가사가 의심스러워 원곡을 들어보면 제 기억이 정확했을 정도였어요." 하지만 유 교수가 조용필을 '애정하는' 이유는 팬심 때문만은 아니었다. 유 교수는 조용필을 그 자체로 '텍스트(text)'라고 본다.

"조용필의 가사는 양인자 김희갑 박건호 하지영 등 여러 명이 썼지만 조용필 음악의 최종적 입법자는 조용필 자신이었습니다. 매너와 창법, 장르 수용 능력, 가사와 곡조는 모두 '조용필'로 귀납됐으니까요. 가사를 따라 부른 게 아니라 조용필을 통해 육화되고 승화된 거죠."

동시대인들은 조용필 노래에서 위안을 얻었다. 명곡 '못 찾겠다 꾀꼬리'에서 '어두워져 가는 골목에 서면 어린 시절 술래잡기 생각이 날 거야. 모두가 숨어버려 서성거리다 무서운 생각에 나는 그만 울어버렸지'란 가사는 성인이 되고도 술래로 남겨진 우리 어른을 상징한다. 유 교수는 여기서 한 꺼풀 렌즈를 더 벗긴다.

"1980년대 전체를 은유하는 세계가 아닌가 싶어요.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는 술래의 공간은 조용필 음악의 원형적인 공간이기도 합니다.


막막하고 거대한 폭력의 시대 우리 모두가 잃어버린 꿈을 찾아 헤매던 술래가 아니었던가 싶기도 하고요."

'킬리만자로의 표범'처럼 인생을 대면한 명곡도 빼놓을 수 없다. 조용필은 이 노래를 통해 묵묵히 분투하는 삶의 본질을 보여준다. 운명을 인정하되 굴하지 않는 '작은 거인'이 그려지는 노래다.

"몸집도 왜소하고 미남과도 거리가 있는 미8군 무대 출신 가수가 20세기 대한민국의 거장으로 성장한 건 삶을 응시하는 자세 때문일 겁니다. 명곡 '그 겨울의 찻집'에서 가사 '웃고 있어도 눈물이 난다'처럼 누구나 짙은 슬픔이 있잖아요. 맥락 없는 긍정이 아니라 존재에 대한 끝없는 탐구가 조용필 음악의 힘이 아닌가 싶어요."

가왕은 스펙트럼도 넓다. 동요 민요 발라드 댄스 트로트 랩 록을 아우르면서 색채가 입체적이다. 명곡 '한오백년'을 부르고자 고생한 이야기는 유명하다.

"자기 갱신과 실험이 정상에서 그를 내려오지 않게 하는 힘이에요. 콘서트에서도 다른 말은 거의 없이 노래만 부르는데, 이는 진짜 팬 서비스가 자기 노래임을 알기 때문일 겁니다. 조용필은 한국음악사의 '반복 불가능한 일회성 사건'이라고 생각해요."

책에 실린 조용필 사진은 가왕이 게재를 무상으로 직접 허락한 이미지란다. '시인 조용필'을 만난다면 유 교수는 뭐라 말할까. "혹 뵙게 된다면 '마지막 기록'을 위탁해달라고 말씀드리고 싶어요. 그런데 그런 일은 있을 것 같지 않습니다. '그대로 산이 된들 또 어떠리' 하고 노래했잖아요. 그냥 사라져 버릴지도."

[김유태 기자 / 사진 = 이충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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