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 ‘모리타니안’ 9.11 이후 인간애의 문제

입력 2021/04/06 16:51
지난 2월 열린 ‘78회 골든 글로브 시상식’에서 조디 포스터에게 여우 조연상을 안긴 ‘모리타니안’. ‘Mauritanian’은 이슬람교를 국교로 하는 서아프리카의 나라, 모리타니 공화국 사람이라는 뜻으로, 쿠바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돼 있던 9.11 테러 용의자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가 실화를 바탕으로 쓴 책 『관타나모 다이어리』를 영화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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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호사 ‘낸시’(조디 포스터)는 로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로 지목된 ‘슬라히’(타하르 라힘)의 변호를 맡게 된다. 고향의 결혼식에서 갑자기 경찰에 끌려가 9.11 테러의 핵심 용의자라는 혐의만으로 기소도 재판도 없이 6년째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된 슬라히. 한편 9.11 테러로 친구를 잃은 군검찰관 ‘카우치’(베네딕트 컴버배치)는 강력한 증거들을 내밀며 슬라히의 유죄를 확신하고, 사형을 목표로 재판을 준비한다. 모두가 꺼리는 슬라히의 무죄를 주장하는 낸시와 동료 ‘테리’(쉐일린 우들리)는 국가 기밀이란 이유로 은폐된 진실 앞에서 번번이 좌절한다.

2015년, 『관타나모 다이어리』라는 한 권의 책이 출간과 동시에 『뉴욕 타임즈』 베스트셀러에 등극한다. 9.11 테러 용의자로 잡혀간 저자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가 쿠바 미군 기지에 있는 관타나모 수용소의 실태를 고발한 최초의 수용자 증언록이었다. 책을 통해 그가 불법적으로 체포, 구금됐으며, 테러에 대한 그의 자백이 고문과 협박에 의한 것임이 세상에 드러나자, 인권 단체들은 미국 정부의 공식 사과를 요구했다. 실제 인물 슬라히는 2002년부터 2016년까지 무려 14년간 관타나모 수용소에 수감되어 있었으며, 영화 판권 계약 역시 그가 아직 관타나모에 있을 당시 진행됐다.


실화의 주인공인 모하메두 울드 슬라히를 직접 만났을 때, 이해할 수 없는 가혹한 상황 속에서도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하고 공감하려는 그의 태도에 영감을 받았다는 캐빈 맥도널드 감독은 영화 ‘모리타니안’에 대해 “손에 땀을 쥐게 하는 동시에, 관객이 사랑에 빠질 만한 훌륭한 캐릭터들이 등장하는 이야기로 만들고 싶었다”고 전한다.

영화 ‘예언자’(2009)에서 감옥에서 생존하는 방법을 배우며 냉혹한 전략가로 변하는 인물의 심리를 심도 있게 그려내 세자르 영화제를 석권했던 타하르 라힘이 고통 속에서도 인간애를 잃지 않았던 슬라히를 연기했다. 미국에서 9.11 테러리스트는 소리 내서 말하면 안 될 볼드모트 같은 이름이다. 특히나 그 용의선상에 오른 이의 체포나 구금과 관련된 인권을 위해 싸우는 변호사라면 역적에 버금가는 취급을 받았을 것이다. 연기 경력 53년에 달하는 연기의 신, 조디 포스터가 9.11 테러 용의자를 변호하는 강한 신념을 가진 변호사 낸시 역을 맡았다. 비록 의뢰인이 테러 혐의를 받을지라도 자신의 신념에 따라 냉철하고 객관적으로 사건을 바라보는 인물이다. 냉철하고 완고한 성격의 군검찰관 카우치 소령을 연기한 베네딕트 컴버배치는 제작자로 시나리오를 읽다가 ‘모리타니안’ 출연을 결심했다.


낸시와 함께 사건을 파헤치는 변호사 테리 역의 쉐일린 우들리는 정부와 맞서는 걸 두려워하고, 용의자가 진짜 테러리스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는, 어쩌면 가장 일반적인, 관객과 가까운 캐릭터다. 낸시가 이성적으로 주어진 정보와 상황에 집중한다면, 테리는 슬라히와 자신이 놓인 상황에 대한 감정에 집중한다. 영화에는 복수를 위한 인간성 말살에 관한 문제, 자신을 동물처럼 대한 이들을 인류애로 바라보는 인간애, 그리고 분노를 용서로 바꾸는 특별한 과정 등이 등장한다. 영화 말미에는 베네딕트 컴버배치와 함께 제작에도 참여한 슬라히와 낸시, 테리의 모습이 등장한다. 용서하지 못할 이들을 따뜻하게 바라보는 영화 마지막, 슬라히의 미소가 오히려 영화보다 더 영화 같다. 러닝 타임 129분.

[글 최재민 사진 ㈜퍼스트런]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73호 (21.04.06)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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