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노벨문학상 수상자가 묻는다…"AI와 인간은 어떻게 교류할까"

입력 2021/04/07 17:03
수정 2021/04/07 21:19
2017년 수상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인터뷰

수상 후 첫 작품 '클라라와 태양'
AI 로봇과 인간의 공존 다뤄
전세계 30개국 순차 출간 '호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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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로봇과 인간의 경계가 점차 흐려져 가는 시기를 지금의 인류는 살아가고 있다. 바둑 AI '알파고'는 일찍이 수년 전 인간보다 더 나은 판단을 했고 현대차그룹이 인수한 로봇기업 보스턴다이내믹스 로봇들은 웬만한 인간보다 음악에 맞춰 훨씬 멋진 춤을 춘다. 혐오 표현·개인정보 침해 등 논란에 휩싸여 서비스는 중단됐지만 채팅 AI '이루다'는 AI가 정서적으로도 인간과 교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다. 이런 시대에 과연 AI와 사람을 구분하는 게 의미가 있을까?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건 무엇일까?

부커상·노벨문학상을 받은 세계적 소설가 가즈오 이시구로에게도 이는 쉬운 질문이 아니었다. 오랜 고민 끝에 결실을 본 그의 신작 '클라라와 태양'(민음사)이 최근 출간됐다. AI 로봇 '클라라'와 소녀 '조시'가 만나고 교류하고 헤어지는 얘기를 담은 작품으로, 2017년 노벨상 수상 이후 첫 저작이다. 지난달 영미판이 나온 뒤 평단과 독자의 호응을 두루 받으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고, 전 세계 30여 개국에 순차 출간 중이다. 한국에서도 출간 보름도 안 돼 호평이 쏟아진다. 소니픽처스가 판권을 사들여 영화화도 앞두고 있다.


7일 한국 언론과 서면으로 만난 작가는 "'우리 인간은 우리의 특별함을 다소 과대평가한 건 아닐까? 우리는 우리가 생각하는 것만큼 특별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고 싶었다"고 말했다. 과연 책에서 클라라는 인간 못지않은, 아니 어쩌면 인간보다 더 인간다운 모습을 보여준다. 집에서 원격교육을 받으며 급우들과 교유할 기회가 사라진 시대, 클라라와 같은 'AF(Artificial Friend·인공지능 친구)'들이 그 빈자리를 채우며 아이들을 돌봐준다. 그중에서도 클라라는 특별하다. 최신형인 B3 모델은 아니지만 다른 AF들과 달리 호기심이 많고 관찰력이 뛰어나며, 스스로 생각하고 느낄 줄 안다. 조시의 엄마 크리시가 "아무 감정이 없는 게 가끔은 좋을 거야. 네가 부럽다"고 푸념하자 "저에게도 여러 감정이 있다고 생각해요. 더 많이 관찰할수록 더 다양한 감정이 생겨요"라고 응수할 정도다. 조시와 크리시도 시간이 흐를수록 클라라에게 더 의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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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즈오 이시구로 [ⓒ Lorna Ishiguro]

이시구로는 이런 세상이 과학적으로 가능하다고 확언하진 않는다. '그런 시대에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그의 고민거리다.


"우리가 인간이 무엇인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면, 인간 간의 관계, 가족 간의 관계 그리고 서로에 대한 사랑과 다른 감정들의 본질이 바뀌게 될까요? 책 전체가 이 질문을 다루려는 시도입니다."

책은 인간 사회의 분열상도 다룬다. 로봇뿐 아니라 인간도 인위적인 유전자 편집을 통해 '향상'되는데, 이를 거부하거나 여기서 배제된 존재들 그리고 향상된 존재들 집단은 계급적·이념적으로 격렬히 대립한다. 클라라가 조시 가족과 극장에 갔을 때 낯선 여성이 "처음에는 일자리를 빼앗아 가고 이제는 극장 좌석까지 차지해?"라며 시비를 거는 장면이 이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이 대목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현대사회의 갈등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시구로는 일찍이 영국의 브렉시트와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을 예로 들며 미국과 영국 두 나라에서 거대한 분열이 존재한다고 비판한 바 있다. 그는 "책과 문화를 통해 더 많이 대화해야 한다"며 문학의 역할을 강조했다.

같은 맥락에서 국제적으로 문화 교류가 활발히 이뤄지는 것도 긍정적으로 본다. 특히 한국의 문화적 영향력을 상찬하며 "책이 한국의 '문화적 장면'의 일부를 이루게 돼 정말 기쁘다"고도 했다.


"과거 우리는 한국을 기술이나 자동차의 생산지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특히 젊은 세대들에게 한국은 K팝 같은 흥미로운 문화의 근원지입니다. 제 책이 매우 미래 지향적인 문화가 만들어지는 현장인 한국에서 읽힐 수 있다는 건 매우 신나는 일입니다."

이시구로는 1954년 일본 나가사키에서 태어나 1960년 아버지를 따라 영국으로 이주했다. 1989년 소설 '남아 있는 나날'을 발표해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부커상을 받았다. 2005년 낸 소설 '나를 보내지 마'는 주간지 타임의 '100대 영문 소설' 및 '2005년 최고의 소설'로 선정됐다. 2017년 "소설의 위대한 정서적 힘을 통해 인간과 세계를 연결하고, 그 환상적 감각 아래 묻힌 심연을 발굴해 온 작가"라는 평과 함께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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