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한국의 산티아고’ 신안 기점·소악도…문득, 순례자가 되기로 했다

입력 2021/05/04 14:08
수정 2021/05/06 16:11
사람들은 그곳을 ‘섬티아고’라 부른다. 12개의 작은 예배당이 있어 ‘순례자의 섬’이라고도 한다. 스페인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모티브를 따왔음이 분명한데, 길은 사뭇 다르다. 다섯 개 작은 섬의 더 작은 예배당을 잇는 이 길은 ‘싸목싸목’ 걸어야 한다. 천천히, 느릿느릿 걸어야 한다는 말이다. 순례의 의미가 본래 그러하듯 그래야 비로소 느끼고 보이는 게 있는 법이다.

430697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순례자가 되기로 했다. 문득 신안 섬을 떠올리면서 든 생각이었다. 볕이 좋은 어느 봄날, 작은 섬 길을 따라 ‘싸목싸목’ 신안을 여행하고 싶었다. 1004개의 섬이 있다는 뜻에서 천사섬이라고 부르는 그곳에서, 천사처럼 순수하고 깨끗한 바람을 맞고 싶었다. 깜깜한 밤을 수놓은 빛나는 별도 보고 싶었다. 신안이라면 그게 가능하리라. 마음을 앞서 발은 이미 섬을 향한다.


실로 오랜만에 이어폰으로 음악을 들으며 여행길에 들었다. 그동안 사느라 필요해서 들었던 세상 돌아가는 얘기는 더 이상 듣지 않았다. 무슨 인연이었는지 마침 30년 만에 다시 만난 노래가 팍팍한 일상에 지친 내게 작은 위안과 평화의 손짓으로 말을 걸어왔다. 생전 처음 만나는 땅과 30년 만에 다시 만난 위로의 노래. 이번 여행은 그것만으로도 더없이 편하고 행복한 시간이 될 거란 생각이 기분 좋게 스며들었다.

신안 섬을 여행하는 건 이번이 처음이다. ‘1004섬’으로 불리는 신안에는 실제로 훨씬 많은 1025개의 섬이 있다고 하니, 어딜 어떻게 가야 할지 엄두가 나지 않았던 거다. 그랬는데, 코로나가 창궐하기 전, 신안의 섬들이 변하기 시작했다는 소식을 얼핏 접했다. 인적 드물던 섬들이, 뭍의 여행자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다양한 변신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였다. 날이 갈수록 인구는 줄어들고, 척박한 땅에서의 삶의 방편이 점점 사라져가는 시대에 천 개나 넘는 섬을 안고 있는 신안의 고민이 어떠했을까. 섬의 변신은 그러한 고민의 산물로 보인다. 신안을 ‘1004섬’이라 명명한 것처럼 ‘한국의 산티아고’, ‘섬티아고’란 발상 역시, 볼 것도 자랑할 것도 없는 섬을 살리기 위한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식상했고 유치해 보였다. 너무 뻔히 보이는 그림에 호기심이 생기질 않았고 그래서 애써 무시하기도 했다. 그러나 신안의 ‘가고 싶은 섬’ 프로젝트는 그 고장 말대로 ‘싸목싸목’ 꾸준히 진행됐고, 예상치 못한 코로나 사태를 거치면서 뜻밖의 반전이 이루어지고 있다. 가고 싶어도 어딜 가지 못하는 상황에서 ‘가고 싶은 섬’의 청정 자연은 누구에게나 동경의 대상이 되기에 충분했고, 거기에 마음 치유의 순례길 여행이란 매력적인 콘텐츠까지 더해져 육지 여행자들의 마음을 설레게 했다.

▶‘싸목싸목’ 걷는 순례자의 길

430697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노두길, 1004버스

기점·소악도는 소기점도와 대기점도, 소악도, 진섬, 딴섬 등 다섯 개의 작은 섬이 노두길로 연결된 섬을 일컫는다. 그곳에 12사도의 이름을 딴 작은 예배당이 있고, 그 예배당을 잇는 12사도 순례길이 생겼다. 기점·소악도가 바로 옆의 병풍도를 포함해 ‘순례자의 섬’으로 통하는 이유다. 순례자의 섬이면서 12사도 예배당이 만들어지지 않은 병풍도에는 맨드라미정원에 12사도의 조형물을 세워 놓았다. 기점·소악도에 세워진 12개의 예배당은 국내외 10명의 작가들이 만든 공공미술작품으로 다섯 개의 섬 곳곳에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자리하고 있다. 모든 예배당이 10㎡(3평) 규모지만 내부는 혼자 들어가면 딱 알맞을 정도로 크기가 작다. 또한 12사도의 이름을 붙이고 예배당이라 부르지만, 절대 교회만의 그것이 아니라는 것도 중요하다. 그곳은 종교를 불문하고 누구나 들어가 명상을 하고 기도를 올릴 수 있는 공간이다. 가톨릭 신자에게는 자신만의 작은 공소일 수도 있고, 불자에게는 암자, 이슬람교도에겐 기도소가 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종교가 없는 이들에게는 잠시 쉬면서 고요히 생각에 잠길 수 있는 조그만 성소이기도 하다. 첫 번째 예배당인 베드로의 집에서 열두 번째 예배당인 가롯 유다의 집까지는 약 12km로 걸어서 3시간 남짓 걸리는 거리다. 길은 모두 시멘트나 아스팔트로 포장이 돼 있어 걷기에 편하고, 한가로운 농촌의 논길과 밭길, 바다와 갯벌도 두루 만나 풍광도 빼어나다. 게다가 물이 차면 사라졌다 물이 빠지면 다시 나타나는 노두길도 있다. 노두길은 섬사람들이 발이 푹푹 빠지는 갯벌을 건너기 위해 펄밭에 돌을 던져 채우고 다시 채우기를 수없이 반복해서 만든 길이다. 바닷물이 들고남에 따라 사라졌다 나타났다 해서 ‘기적의 순례길’로도 통한다.


기점·소악도의 12개 예배당을 모두 둘러보기 위해선 네 개의 노두길과 하나의 바닷길을 건너야 한다. 따라서 한번에 순례길 전체를 걷고자 한다면 물이 빠져 노두길을 걸을 수 있는 시간을 잘 알고 가야 한다.

기점·소악도로 가는 배는 압해도의 송공항에서 출발한다. 목포에서 압해도까지 압해대교가 놓이면서 기점·소악도로 가는 길이 편해졌다. 순례길을 걷기 위해서는 대기점도 선착장에 내려 베드로의 집에서부터 가롯 유다의 집까지, 번호가 매겨진 순서대로 걷는 게 보통이다. 때론 일정에 따라 소악도 선착장에 내려 순례길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오는 여행자들도 있다. 송공항에서 출발한 배는 보통 한 시간 정도면 대기점도 선착장에 닿는다.

▶자발적 가난, 즐거운 불편을 즐기다

430697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대기점도 선착장에 내리면 파란 지붕에 눈에 띄게 흰 건물이 여행자를 맞는다. 첫 번째 예배당인 ‘베드로의 집’이다. 그리스 산토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희고 파란 작은 예배당.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로 아름답다. 작은 건물 하나가 섬의 분위기를 이렇게 바꿀 수 있다니 놀라울 따름이다. 앞으로 만나게 될 12개 예배당에 대한 기대와 설렘이 온몸을 휘감는다. 12사도 순례길의 시작점이기도 한 베드로의 집에는 ‘건강의 집’이란 이름이 붙었다. 예배당은 눈부시게 맑고 밝다. 예배당 내부 또한 특별한 장식 없이 깨끗하고 간결하다. 하얀 벽면에는 간결한 수채화가 그려져 있고 두 개의 촛대가 기도처의 분위기를 내줄 뿐이다. 베드로의 집을 만든 김윤환 작가는 예배당 옆에 순례길의 출발을 알리는 작은 종탑을 세웠고, 그 옆에 큐브 모양의 간결한 건물 하나를 더 만들어 놓았다. 저건 뭘까? 라는 궁금증이 들 만한 건물이다. 놀랍게도 화장실이다. ‘화장실도 이렇게 만드니 예술품이 되는구나’ 그런 감탄이 곳곳에서 쏟아졌다.

예배당 건너편에 붙은 현수막도 인상적이다. ‘불편한 섬! 불편함을 즐기는 순례자의 섬’이란 문구에 살짝 놀라기도 하지만 기점·소악도의 여행 콘셉트가 ‘자발적 가난, 즐거운 불편’이란 것을 떠올리면 이내 싫지 않은 미소가 입가를 스친다. 그 말처럼, 기점·소악도에서의 여정은 불편할 수 있다. 유명 여행지가 되면 으레 앞서게 되는, 번듯한 숙소나 요식업소는 찾아볼 수가 없고 그 흔한 편의점 하나 없다. 기껏해야 마을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 하나와 그에 달린 커피숍 하나가 전부다. 교통수단이라고 해봐야 주민들이 이용하는 1004버스 하나다. 그러니 불편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그게 기점·소악도의 매력이고, 12사도 순례길의 장점이다. 그걸 아는 듯 여행자들의 불평도 많지 않다. 순례의 참 의미를 알거나 알고자 하는, 순수한 여정에 공감한 탓일 것이다.

430697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안드레아의 집, 야고보의 집

이국적 아름다움을 보여준 베드로의 집 덕에 순례길을 걷는 여정은 기분 좋은 설렘과 감동으로 시작된다. 두 번째 예배당인 안드레아의 집으로 가려면 방파제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을 걸어야 한다. 길로 접어들기 전 천사섬 자전거 대여소가 있다. 신안 섬 자전거 여행 투어를 위해 마련해 놓은 전기자전거로 누구나 일정 요금만 지불하면 이용할 수 있다. 이름만큼 커 보이지 않는 대기점도는 흔한 농촌의 모습이다. 전체 주민이 30세대가 조금 넘는 탓에 인적은 드물고 대신 고양이들만 가끔씩 오가는 한가로운 섬 풍경이다. 바다가 바라다 보이는 길을 따라 10여 분 정도 걸으면 두 번째 예배당인 ‘안드레아의 집’이 모습을 드러낸다. 병풍도가 바라다 보이는 북촌마을 동산에 위치한 안드레아의 집은 병풍도로 이어진 노두길을 배경으로 작은 공원과 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색은 옅지만 베드로의 집처럼 파란 지붕에 흰색 건물로, 지붕 첨탑에는 고양이가 두 마리, 건물 앞에도 한 마리의 고양이 조형물이 서있다. 대기점도가 ‘고양이섬’으로 통하는 만큼 그것을 소재로 삼은 듯 보인다. 예배당의 내부 역시 깨끗하고 간결하다. 해와 달의 공간으로 나뉜 실내 디자인이 독특하고 벽을 파고 넣은 십자가도 눈길을 끈다. ‘생각하는 집’이란 이름이 붙은 건물은 바다를 보며 살아가는 섬사람들의 기다림과 세월을 건축물에 잘 담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세 번째 예배당인 야고보의 집에는 ‘그리움의 집’이란 이름이 붙었다. 논길을 따라 걷다 산 쪽을 향하면 숲 입구에 예배당이 있다. 마을 이장 김영근 씨가 기증한 땅에 김강 작가가 만들어 세웠다. 건물 양쪽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붉은 기와를 얹은 건물은 내외부 모두 소박한 모습이다. 조용한 숲 속의 암자처럼 고요하면서도 편안한 공간이다. 대기점도 남촌마을 팔각정 근처에 있는 ‘요한의 집(생명평화의 집)’은 단정한 원형의 모습으로 얼핏 보면 첨성대를 닮았다. 타일로 작업된 입구에는 염소 조형물이 예배당을 지키고 있다. 예배당 터를 기증한 오지남 할아버지가 염소를 키우고 있는 것에 착안해 박영균 작가가 작품으로 보답한 것. 사연이 아름답다.


건물 내부도 단정하다. 빛의 밝기에 따라 아름다움을 더하는 천정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인상적이고 위아래로 가늘고 길게 난 창은 바다가 아닌 밭을 향해 열려 있다. 대기점도와 소기점도를 연결하는 노두길 바로 직전에 자리 잡고 있는 ‘필립의 집(행복의 집)’은 바다와 접한 풍광이 빼어나다. 프랑스 작가인 장 미셀 후비오와 얄룩 마스, 요라이 아브라함 슈발, 브루노 프루네의 공동 작품으로 프랑스 남부의 건축을 닮은 예배당이다. 인근 바닷가에서 주워온 갯돌로 벽돌 사이를 메우고 적삼목과 동판을 덧댄 유려한 지붕 곡선이 아름답다. 건물 꼭대기에 장식한 물고기 모형도 인상적이다.

▶섬과 섬 사이에 노두길이 있다

430697 기사의 4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필립의 집, 토마스의 집

이제 대기점도에서 소기점도로 넘어갈 차례. 두 섬 사이에는 노두길이 있다. 섬사람들이 긴 시간 동안 하나둘씩 차곡차곡 돌을 쌓아 만들었다는 길. 바닷물이 들어와 노두길이 잠길 때와 드러날 때의 풍광은 무척 다르다. 또 필립의 집과 필립의 집에서 바라다 보이는 소기점도의 모습도, 꼭 비교해서 보고 싶을 만큼 각각 빼어난 아름다움을 만들어 낸다. 소기점도에는 감사의 집인 ‘바르톨로메오의 집’과 인연의 집인 ‘토마스의 집’이 있다. 아직 공사 중인 미완의 예배당인 바르톨로메오의 집은 12사도 예배당 중 유일하게 저수지 한 가운데 있어 들어갈 수가 없다. 장 미셀 후비오는 저수지의 물을 빼고 건물을 만든 다음 다시 물을 채워, 물 위에 뜬 한 송이 꽃과 같은 예배당을 만들어 냈다. 건물 전체가 스테인드글라스처럼 보이는 예배당은 색유리와 스틸이 앙상블을 이뤄 저수지 물에 반영된 모습이 유독 아름답다. 소기점도 범바우산 끝자락,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언덕에 서있는 토마스의 집은 단정한 사각형의 흰색 건물이다. 코발트빛 짙은 파란색 문과 창문이 눈을 사로잡는 이 예배당은 김강 작가가 ‘오병이어의 기적’을 표현했다. 하늘의 별들이 내려와 박힌 듯한 건물 내부의 바닥도 아름답다. 신비한 색깔의 파란 물감은 모로코에서 가져온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소기점도에는 12사도 순례길을 걷는 동안 만날 수 있는 유일한 식당이자 커피숍이 있다. 게스트하우스도 함께 운영한다. 최근 들어 순례길을 걷는 여행자들이 늘어나면서 섬 주민들이 운영하는 민박도 여럿 생겨나고 있지만 여행자들이 잠시 쉬며 식사도 할 수 있는 곳은 이곳이 유일하다. 게스트하우스 앞 나무 탁자에 앉아 커피나 차를 한 잔 마시는 것도 좋다. 눈앞으로 드넓게 펼쳐진 바다와 갯벌의 풍경은 보면 볼수록 새롭다. 그 앞에 특이하면서도 멋들어진 건물이 보인다. 마치 러시아 정교회의 구세주 성당을 닮은 그런 건물이다. 소기점도와 소악도를 잇는 노두길 옆 갯벌에 만든 김윤환 작가의 ‘마태오의 집(기쁨의 집)’이다. 황금빛 계단과 지붕이 햇빛을 받아 멀리서도 눈에 띄는 특별한 예배당이다. 황금빛 돔 지붕은 이 섬에서 많이 재배하는 양파를 형상화했다. 건물 내부는 사방으로 창문이 나 아름다운 바다의 정경을 볼 수 있고 시원한 바닷바람을 온몸으로 맞을 수 있다.

430697 기사의 5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작은 야고보의 집, 마태오의 집



▶치유의 섬 위로의 노래

소악도로 향하는 노두길 위에 선다. 갯벌 위에 새파랗게 피어난 진초록의 파래 무더기를 보며 울컥하는 가슴은 또 뭘까. 두 섬을 오가고자 저리 긴 바다 한 가운데 수도 없이 많은 돌을, 길이 될 정도로 오랜 세월 던져 넣었다니, 그토록 지난하고 또 외로웠을 섬사람들의 삶이 생생하게 되살아나는 듯했다. 과연 그들은 무엇으로 위로를 받았을까. 그 시절에, 지금처럼 작은 예배당이라도 하나 있었다면 어땠을까, 그런 생각이 절로 드는 순례길이다. 순례길을 걷는 내내 나를 위로해준 건 노래였다. 30년 만에 다시 만난 노래는 깊었고 진했다. 긴 세월 동안 켜켜이 쌓인 회한이 고스란히 묻어나는, 아픔의 노래이자 성찰의 시였다. 30년 전, 노래는 제법 알려졌지만 노래를 부른 이는 볼 수 없었다. 사연이야 분명 있었겠지만, 당시의 흔한 홍보 전략 중 하나였던 ‘얼굴 없는 가수’ 프로젝트는 아니었으니 의아한 일이었다. 그렇게 가수는 전설이 됐고 세상은 그에게 ‘저주받은 걸작’이란 훈장을 덜컥 달아주고 말았다. 그렇게 30년의 은둔. 일부러 숨으려고 했던 게 아닌데 그야말로 ‘저주’를 받은 셈이었다. 그 시간 동안 가수는 제대로 익어 돌아온 듯하다. 순례길 내내 동행했던 ‘돌아온 노래’가 그걸 증명하고 있었다. 과거 자신을 위해 불렀던 노래는 위로와 위안이 필요한 세상 사람들을 향해 열려 있었고 감동도 충만했다.

430697 기사의 6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유다 타대오의 집, 시몬의 집, 가롯 유다의 집

이제 가수는 세상 사람들을 위한 노래를 부를 것이다. 소원의 집이라 불리는 작은 야고보의 집에서, 생전 처음 예배당 바닥에 무릎을 꿇고 기원이란 걸 해보았다. 며칠간 노래로 내가 받은 위로가 세상 구석구석의 아픔과 외로움 사이로 스며들기를. 그의 노래가 힘들어 하는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어루만져주기를 기원했다. 작은 욕심도 부렸다. 아무쪼록 그가 전설처럼 멋진 모습으로 내 앞에 나타나주기를, 그래서 30년 동안의 동경과 흠모가 결코 헛됨이 아니었음을 증명해주기를. 그러면서 작은 예배당에 어울리는 소박한 기도이자 기원이라고 생각해봤다.

소악도에 딸린 진섬으로 가는 길에도 노두길이 있고 그걸 건너면 ‘유다 타대오의 집(칭찬의 집)’이 있다. 손민아 작가가 만든 이 예배당은 네 개의 뾰죽 지붕과 작고 파란 창문, 하얀 건물이 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배당 내부에는 바다를 찍는 창틀이 있어 포토존으로도 인기가 높다. 강영민 작가가 만든 ‘시몬의 집(사랑의 집)’은 바닷가 가까이에 있다. 모든 공간이 바다로 열려 있어 파도소리와 바람소리가 예배당을 관통한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낙조도 일품이다. 마지막 열두 번째 예배당인 ‘가롯 유다의 집(지혜의 집)’은 소악도 끝 딴섬에 있다. 손민아 작가가 만든 이 예배당은 붉은 벽돌의 요철과 높게 솟은 첨탑이 매력적이다. 순례길에 있는 12개의 예배당 중 가장 아름답지만, 바닷길을 건너야 한다는 이유로 이곳을 빼먹는 여행자들이 많다. 모름지기, 12사도 예배당의 모든 아름다움을 다 갖춘 최고의 성지가 아닐까 싶은데 그걸 보지 못하는 순례자들이 많아 안타깝다. 그래서 바닷물이 밀려나가 예배당까지 걸을 수 있는 시간을 잘 맞춰오는 게 필요하다.

대기점도 선착장에서 딴섬까지, 12개의 예배당을 잇는 12사도 순례길을 모두 걸었다면, 대기점도 안드레아의 집 앞으로 난 노두길을 따라 병풍도에도 가볼 것을 권한다. 매년 가을 맨드라미축제로 유명한 ‘맨드라미섬’답게 마을 집집마다 담장에 각양각색의 맨드라미꽃이 피어있는 아름다운 섬마을이다. 12사도의 조형물이 있는 맨드라미단지에는 현재 유채꽃이 활짝 펴있다. 신선이 내려와 살았다고 할 정도로 아름다운 병풍바위가 그곳에 있어 병풍도란 이름을 하사했다는 섬이다.

▶섬과 길, 작은 예배당이 준 선물

430697 기사의 7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병풍도 선착장

이제 소악기점도를 떠나야 할 시간. ‘싸목싸목’ 걸었던 순례길이 하나둘 생생하게 되살아나며 가슴 깊이 감동으로 또 추억으로 내려앉는다. 이런 시간을 언제 또 가질 수 있을까. 길을 걸으며, 예배당을 보며, 온전한 나를 바라볼 수 있었던 건 정말 놀라운 경험이자 기적 같은 이야기였다. 아무 것도 아니었던 섬이 그 배경이 되는.

다시 노래를 듣는다. 섬과 길, 작은 예배당이 선물해준 작지만 밝은 희망이 노래에서도 그대로 느껴진다. 이제 12사도의 이름을 얻은 섬과 길, 예배당은 다시 세파에 시달린 여행자들을 맞을 것이고, 30년 만에 다시 만난 노래는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의 가슴을 파고들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마침내 걱정이 희망으로 바뀌는 봄이 될 것이다. 육지로 돌아갈 배를 기다리는 병풍도 선착장에서 12개의 작은 예배당을 하나하나 다시 떠올려본다. 모두 반갑게 손을 흔들며 이제 괜찮다고, 다 잘될 거라고 위로해주는 듯하다.

▶여행자의 쉼터

▷순례자의 섬 게스트하우스 & 카페

430697 기사의 8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게스트하우스 카페, 카페에서는 LP음악을 들을 수 있다.

소기점도 해변에 자리 잡은 ‘순례자의 섬 게스트 하우스’는 도미토리 형태의 숙소다. ‘이방’과 ‘저방’이란 이름의 객실에 모두 16개의 침상이 마련돼 있다. 마을 조합에서 공동으로 운영하는 곳으로, 숙박비도 1인당 2만 원으로 저렴하고 함께 운영하는 식당에서는 천연 재료로 직접 만든 음식도 맛볼 수 있다. 게스트하우스 옆에 있는 카페도 특별하다. 커피와 함께 주인장이 직접 틀어주는 LP음악을 생생하게 감상할 수 있다. 인적 드문 바닷가 카페에서 듣는 LP음악이라니, 호사가 따로 없다. 카페에서는 기점·소악도의 12사도 순례길을 기념하는 다양한 기념품들과 지역 특산물도 판매하고, 하계웅 대표가 직접 만든 목공예 제품을 구경하거나 구매할 수 있다.

위치 전남 신안군 증도면 소기점길 23-58

▶또 다른 섬 여행

▷신안 섬 자전거 여행

430697 기사의 9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신안의 섬들을 걷다 보면 종종 자전거 여행객들을 만나게 된다. 신안은 도보여행지 이상으로 자전거 여행으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신안섬 자전거 여행 코스는 모두 8개로, 압해도, 기점·소악도, 증도, 임자도, 암태도, 자은도, 안좌도, 팔금도, 비금도, 도초도, 흑산도, 하의도, 신의도 등 10여 개의 섬에 514km로 조성되어 있다. 코스 전체를 돌기 위해서는 적잖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자은도에서 암태도와 팔금도를 거쳐 안좌도까지, 하루에 돌 수 있는 약 120km의 코스도 있다. 각 코스마다 인증 지점이 있고, 전 코스를 완주하면 완주 메달도 받을 수 있다. 전체 코스의 길이는 길지만 섬의 지형 상 고도가 그리 높지 않고 평탄한 길이 대부분이어서 자전거 여행을 하기에 좋다. 거기에 시종일관 맞이하게 되는 청정 자연의 모습은 여행의 감동을 높여준다. 도보 여행으로 신안 섬의 아름다움을 느껴보았다면 이제 자전거로 도전해 보는 것도 좋겠다. 자전거 대여소는 1코스 기점·소악도와 5코스 박지·반월도에 있다. 신안군 홈페이지를 통해 ‘신안섬 자전거 투어’를 신청하면 다양한 인센티브를 제공받을 수 있다.

[글과 사진 이상호(여행작가)]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77호 (21.05.04)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