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심금을 울리는 힘은 오직 원작에만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
입력 2021/05/04 15:17
수정 2021/05/06 11:58
코로나 뚫고 대성황 ‘피카소 특별전’ 기획 서순주 전시총감독
‘브랜드가 된 남자’ ‘미술계의 흥행 마술사’ ‘블록버스터 메이커’
그에게는 늘 화려한 수식어가 따라 붙는다.
찬사도 많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다.
‘피카소탄생 140주년 특별전’ 개막 이틀 전.
작품 전시를 지휘하느라 눈코 뜰 새 없는 그를 찾아갔다.
듣던 대로 까칠한 ‘차도남’의 첫인상이었다.
인터뷰 자체는 편안하고 재미있었다.
노련한 도슨트(docent; 작품해설자)다운 명확한 발성.
거기다 그림처럼 선명한 어휘구사가 인상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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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 특별전 작품 전시작업 중 짬을 내 한가람미술관 입구에서 포즈를 취한 서순주 총감독



먼저 늘 화제의 명작을 국내에 들여오는 네트워크의 비결을 물었다.

“무엇보다 신뢰입니다.
이번 피카소 특별전만 해도 작품 전체 가치가 수조원대이지 않습니까.
대여료 수억원 때문에 전시를 허락할 수는 없죠.
작품이 안전하게 잘 돌아올 수 있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유명 미술관들도 상대에 대한 믿음만 있다면 흔쾌히 내어줍니다.
인류가 공유해야 할 문화적 재산이라고 보기 때문이죠.
그런 신뢰는 오랜 교류 경험과 관계에서 쌓입니다.
돈만 주면 빌려올 수 있다는 생각으로 접근하면 전시의 질이 떨어집니다.
딱 그런 정도의 전시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와 전시기획의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프랑스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면서 미술계 인맥을 쌓았습니다.
가능한 많은 교류를 통해 친분을 맺으려 했습니다.
1997년 귀국해서 김포국제조각공원 설립을 맡았습니다.
현대조각가 줄리안 오피(Julian Opie)를 초청해 작품을 설치했죠.
국내에 현대조각을 이해시키려 했던 일인데 관심을 얻지 못했어요.
하지만 그때 깨달은 게 있었습니다.
‘일단은 관심있는 것, 잘 아는 것부터 보여주자’ 한 거죠
그래서 2004년 ‘색채의 마술사 샤갈(Chagall)’ 전을 열었습니다.
첫 전시였던 만큼 열정과 에너지를 다 쏟아 부었습니다.
그게 대성공을 거두면서 제가 하고 싶은 전시를 할 수 있게 됐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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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포국제조각공원 내 줄리안 오피 작품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된 ‘블록버스터 전시’라는 건 어떤 것일까?

“유명작가의 작품들은 대개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습니다.
샤갈의 작품도 러시아, 미국, 영국 등 전 세계 20~30군데에 전시돼 있죠.
그 중 대표작들을 한 자리에 모으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샤갈 작품들을 보기 위해서 그 나라를 다 다닐 수는 없잖아요.
작품을 그냥 모으는 것이 아니고 테마를 정합니다.
테마와 콘텐츠에 따라 전시기획을 하는 것이죠.
전통있는 외국 미술관의 전시에 견줄 만한 것이어야 합니다.
콘텐츠가 뒷받침되지 않으면 처음부터 기획하지 않는다는 것이 원칙입니다.”


그의 전시는 늘 ‘최고’와 ‘완벽’을 지향하다보니 추진하기 어렵다.
대중의 이해를 얻지 못하는 경우도 생긴다.



찬사와 비판이 엇갈리는 이유다.
이번 피카소 특별전도 그의 기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일까?

“사실 이번 전시는 제 인생에서 가장 힘든 전시였습니다.
육체적,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었어요.
사실 3년 넘게 기획된 전시였습니다.
원래 ‘한국에서의 학살’을 중심에 두고 테마를 잡았어요.
꼭 들여와서 보여주고 싶었던 작품이었던 만큼 의미를 부여하려고 했죠.
‘피카소, 전쟁과 평화’라는 주제였어요
기간을 1937년 게르니카부터 한국전쟁이 끝나는 1953년까지로 잡았어요.
그 시기의 작품을 통해 피카소의 메시지를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파리 뿐 아니라 스페인과 미국의 작품도 들여오려고 했어요.
그러다가 코로나가 터진 거죠.
작품을 들여올 상황이 안돼서 파리 미술관의 작품만으로 진행해야 했습니다.
피카소의 유화 작품만으로는 전시를 구성할 수 없었어요.
파리 미술관에는 작품 5000여점 있는데 유화는 300여점 뿐입니다.
박물관 정책상 한 장르에서 10%까지만 반출할 수 있거든요.
30점만 가지고는 전시가 안 되잖아요.
그래서 조각과 도예, 드로잉 등 모든 장르를 아우르기로 한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전시기획도 새로 세워야 했습니다.
특정시기가 아니라 피카소 전생애를 아우르는 회고전이 됐습니다.
결과적으로 볼거리가 더 풍성해졌습니다.
사실 테마전은 설명이 많아져서 관람객으로선 지루할 수 있습니다.
한 자리에서 다양한 피카소 작품을 볼 수 있는 진귀한 기회가 됐습니다.
한국의 미술 팬들이 피카소를 많이 보고 느낄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미술사학자로서 그는 ‘한국에서의 학살’을 어떻게 평가할까?

“사실 예술적 완성도나 감동을 추구한 작품은 아닙니다.
하지만 역사를 기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가 있습니다.
구도가 반전(反戰) 3부작 중 ‘게르니카’나 ‘시체구덩이’와는 다릅니다.
두 작품은 본인이 구도를 직접 창안했죠.
하지만 이 작품은 마네와 고야의 작품 구도를 차용했습니다.
시대상황에 대한 작가의 소리를 내야 한다는 의무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 두 작품이 흑백인 반면 이 작품은 가운데 초록색을 사용했습니다.
죽음을 그린 두 작품과는 다른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봅니다.
그것은 진행 중인 전쟁이후의 평화에 대한 희망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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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시스코 고야 `1808년5월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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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두아르 마네 `막시밀리안의 처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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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한국에서의 학살`



다 아시다시피 이 작품은 큰 오해를 받고 있습니다.



6.25 전쟁 중 벌어진 ‘신천리 학살’을 그린 것이라고 하죠.
작품 속 중세시대 기사처럼 보이는 군인들이 미군이라는 해석입니다.
하지만 피카소는 그림속의 가해자가 누군지 개의치 않았다고 밝혔습니다.
전쟁이라는 행위 자체에 대한 고발이었다는 거죠.
한국에서의 학살은 1951년 1월18일에 완성됐습니다.
신천학살을 그렸다면 피카소가 그 사건을 알았어야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1950년부터 1953년까지 프랑스 신문을 샅샅이 살펴보았습니다.
특히 피카소가 보았다는 공산당 기관지를 자세히 보았습니다.
대부분 한국전의 전황 소식이고 신천학살 이야기는 1952년에야 나옵니다.
이번 기회에 작품에 대한 오해가 바로 잡혀야 하리라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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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의 학살’ 앞에서 작품을 설명 중인 서순주 총감독



기자의 문외한적 관점에서 예술의 사명이 현실 고발은 아닐 것 같았다.
서 감독의 생각은 달랐다. 바로 그 점에 피카소의 위대함이 있다는 것이었다.

“피카소의 첫 번째 위대함은 입체주의, 큐비즘을 창안한데 있습니다.
큐비즘이 없었다면 우리가 아는 피카소는 없을 것입니다.
입체주의는 서양미술 400년 전통을 송두리째 무너뜨렸습니다.
20세기 현대미술의 길을 열어준 획기적이고 위대한 예술혁명입니다.
브라크와 함께 그 중심에 선 피카소는 불세출의 천재입니다.
또 하나의 위대성은 게르니카입니다.
그는 이를 통해 예술이 현실의 부조리를 고발할 힘이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이미지가 가진 힘으로 ‘행동하는 예술가’의 길을 열었습니다.”


게르니카를 볼 수 없는 건 아쉽지만, 이번 전시에서 특히 주목해야 할 작품은 무엇일까?

“큐비즘의 정수가 담긴 작품이 왔습니다.
‘만돌린을 든 남자’입니다.
분석적 입체주의의 걸작이고 큐비즘의 정수를 보여주는 작품입니다.
비 유화작품 중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기타와 배스병’입니다.
입체주의 부조형태로 만든 것인데 현대조각이 여기서 비롯됐습니다.
현대조각사의 기념비적 작품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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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블로 피카소 `만돌린을 든 남자` 1911년작 유화 /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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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의 1913년작 `기타와 배스병`. /사진제공=비채아트뮤지엄 ⓒ 2021 - Succession Pablo Picasso - SACK (Korea)



기자가 평소 궁금했던 것을 물어보고 싶었다.
발품을 팔아가면서 원화를 직접 본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라는 의문이다.
과연 그는 명쾌한 답변을 내놓을 수 있을까.

“예술은 정신활동의 산물이죠.
보고 느끼고 생각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디지털이나 레플리카(모작)가 되는 순간 원작과 관객사이에 막이 생깁니다.
원작이 가진 짜릿한 감동의 전류가 흐르지 않게 되는 겁니다.
심금을 건드릴 수 있는 것은 오로지 원작 뿐입니다.
원작은 ‘소통’을 위한 것이고 레플리카는 ‘유통’을 위한 것이기 때문이죠.
‘스탕달 신드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원작을 감상하다가 다리가 후들거리고 가슴이 두근거리는 증상입니다.
저와 같이 미술관을 찾은 관람객들 중 그런 분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감수성이 예민할수록 쉽게 그런 증상을 보이기도 하죠.
원작의 감동은 단순히 느낌이 아니라 신경생리학적으로도 증명됩니다.
그런 면에서 레플리카 전시는 전시가 아닙니다.
전 세계에서 레플리카 전시를 하는 나라는 우리나라 뿐입니다.
설사 하더라도 레플리카임을 명시하고 참고자료로만 해야 합니다.
우리나라 전시문화가 바뀌어야 할 부분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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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시회 개막을 목전에 두고 전시작품 큐레이션에 분주한 서순주 총감독



우리나라 미술전시에서 서 감독의 역할은 독보적이다.
그의 바통을 이을 후진은 어떤 자질을 갖춰야 할까?

“여러 자질이 복합적으로 필요하지요.
가장 중요한 것은 외국어와 기획력입니다. 둘 중 하나만으로는 안 됩니다.
기획력과 통찰력, 전시 구성에 대한 비전 이런 것들도 고민해야겠죠.
그런 자질을 가진 후진을 찾아 양성하려고 노력하기도 했었습니다.
하지만 보이지 않더군요. 만약 있다면 힘껏 밀어주겠습니다.”


[글 사진 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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