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어머니와 한국 향한 그리움…미국을 울렸다

입력 2021/05/05 17:10
수정 2021/05/05 21:14
'H마트에서 울다' 미국서 돌풍
한국계 미셸 자우너 첫 에세이

타임 '꼭 읽어야 할 신간' 선정

인디음악 가수로 더 유명
내한공연으로 국내팬도 많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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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가 돌아가신 이후로 H마트에 가면 울음이 난다. 모르는 이들을 위해 설명하자면 H마트는 아시아 음식에 특화한 슈퍼마켓 체인이다. H는 '한아름'에서 따온 것으로, 한 손에 식료품들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어린 나이에 유학 온 아이들은 고국을 떠올리게 하는 바로 그 라면을 찾아 이곳을 들르고, 한인 가족들은 여기서 산 떡으로 떡국을 만들어 먹는다. (중략) 건식품 코너 주변에서 흐느끼며 나는 스스로에게 물어본다. '내가 더 이상 한국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자주 먹던 미역이 어디 것인지 전화해서 물어볼 사람이 없는데도?'"

지난 20일(현지시간) 미국에서 발간된 에세이집 'H마트에서 울다(Crying in H Mart)' 첫머리에 영문으로 쓰여 있는 문장들이다.


어머니를 향한 그리움과 한국에 대한 향수가 짙게 담긴 이 책은 현재 현지 서점가의 최고 화제작이다. 워싱턴포스트(WP), 뉴욕타임스(NYT), NBC 등 수십 개 매체가 찬사를 아끼지 않았고, 시사주간지 '타임'은 4월에 꼭 읽어야 할 신간으로 꼽았다. 권위 높은 NYT 베스트셀러 목록에선 논픽션 부문 주간 2위다. 평단뿐 아니라 대중의 반응도 열광적이다. 회원 수 9000만명의 전세계 최대 서평 사이트 '굿리드' 독자들은 5점 만점에 4.5점 이상의 평점을 줬다. 책이 나온 지 보름만에 벌써 1500명이 넘게 평가했고, 300여명이 리뷰를 남겼다.

놀랍게도 한국계 미국인 작가 미셸 자우너(32)의 첫 저작이다. 2018년 교양지 '뉴요커'에 기고한 동명의 에세이에 덧대어 냈다. 가족과 음식, 그리고 슬픔과 인내에 대한 차분하면서도 솔직한 필치는 당시부터 상찬 받았고, 한국 독자들 사이에서까지 회자된 바 있다. 폭발적 인기에 미국 출판사들의 단행본 출간 경쟁도 치열했다고 한다.


국내에선 문학동네가 판권을 따내 번역 중이다.

책장을 열어보면 과연 섬세한 묘사와 풍부한 정서가 독자들을 감싼다. H마트 푸트코트에서 같이 밥을 먹는 식구에 대한 시선은 특히 따뜻하다. "한 쪽 테이블에는 할머니와 엄마와 딸, 그리고 세 종류의 국이 있다. 서로의 국을 퍼가고 반찬을 집어가며, 팔은 상대방의 얼굴에 닿을 만큼 가까워진다. 이들 사이에 '개인적 공간'은 무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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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우너는 H마트를 '아름답고 성스러운 장소'라 일컫는다. 저마다의 사연을 갖고 타향에서 떨어져 나온 이들이 고향의 한 조각, 우리 자신의 한 조각을 찾기 위해 오는 곳이어서다. 한국인 어머니와 유대계 미국인 아버지 사이에서 태어난 자우너도 이곳에서 정체성의 절반을 떠올린다. 표현에 서툰 그의 엄마는 요리를 통해 딸에게 사랑을 전했다. 생일이면 같이 미역국을 먹고, 봄이 오면 밖에서 삼겹살을 구워먹던 추억들, 그리고 어머니가 종이 스푼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며 죠리퐁을 먹여주던 그 순간까지도 자우너는 빠짐없이 기억해 내 책에 써 내려갔다. 요즘도 그의 집 식탁에는 죠리퐁, 새우깡 등 한국 과자들이 가득하다고 한다.


인디 음악계에서 자우너는 '재패니즈 브렉퍼스트'(Japanese Breakfast)라는 예명으로 더 유명하다. 암으로 어머니를 잃은 슬픔을 담아낸 1집 'Psychopomp'(저승사자)로 2016년 솔로 데뷔했고, 이듬해 발표한 2집 'Soft Sounds from Another Planet'(다른 별에서 들려온 부드러운 소리)는 롤링스톤, 스테레오검 등 음악매체에서 올해의 앨범으로 선정됐다. 2017년과 2019년 내한공연 하는 등 국내 팬들도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 매거진은 그를 2021년 주목해야 할 아티스트 12인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예명이 주는 인상과 달리 그는 일본과 무관하다. 미국적인 단어 '브렉퍼스트'와 이국적인 단어 '재패니즈'를 합쳐 만든 이름이라고 한다. 워낙 문의가 많았는지 트위터 계정에 "PSA: I'm Korean(공지: 저는 한국인입니다)"라고 해명까지 했다.

1989년 서울에서 태어난 자우너는 생후 9개월 때 부모와 미국으로 옮겨 가 오레곤주 유진에서 자랐다. 그의 어머니는 2014년 암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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