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30년 수행으로 피워낸 연꽃등…세상 비출 등불되길

입력 2021/05/18 17:48
수정 2021/05/18 19:40
부처께 꽃 올리는게 좋던 소녀
16세에 출가 연꽃등 명맥 이어

한지로 한장 한장 만든 연꽃잎
치자·홍화꽃 자연의 色 염색해
등 하나 완성까지 두시간 걸려

유네스코 무형유산 등재되며
책임 막중해진 만큼 전승 총력
◆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에 만난 紙花 장인 정명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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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스님이 경기도 청평 연화세계 작업실에서 직접 만든 연꽃등을 들어 보이고 있다.

"연꽃등을 만드는 게 제 수행입니다." 사찰 연화세계 주지로 있는 정명스님(64)은 한국 최고의 지화(紙花) 장인이다. 지화는 종이로 꽃을 만드는 것을 말하는데 정명스님은 그중에서도 연꽃등(燈)을 잘 만드는 것으로 유명하다.

불기 2565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둔 비 오는 날. 경기도 청평 연화세계 작업장에서 만난 스님은 조심스러운 손길로 연꽃을 만들고 있었다.

"한지를 재단해 연꽃잎을 만들고, 연꽃잎에 전통염색을 하고, 뼈대를 잡고, 그 위에 연꽃잎을 붙이는 작업을 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마음이 한곳으로 모여요. 수행이 아니면 못합니다. 수행의 마음이 아니면 연꽃등이 예쁘게 만들어지지도 않아요."

스님은 30년 동안 연꽃등을 만들어왔다.


매년 열리는 연등행렬과 연등회에 쓰이는 연꽃등을 만들어왔고, 큰스님들의 열반의식 등 불교계 주요 행사에도 연꽃등을 만들어 바쳤다. 마침 지난해 연등회 행사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무형유산이 되면서 스님의 역할은 더욱 중요해졌다.

"제가 연꽃등을 처음 만들기 시작한 30년 전에는 주로 비닐이나 플라스틱으로 만든 등을 썼어요. 설령 종이로 만들었다 해도 연꽃잎 수십 개를 만들어 붙인 게 아니라 종이 한 장을 뼈대에 붙인 단순한 것이었어요. 그때 연꽃이랑 똑같이 생긴 등을 부처님께 바치고 싶다는 생각을 했죠. 그래서 제대로 된 연꽃등을 재현하기 시작했어요. 염색도 천연염색으로 바꿨어요. 노란색은 치자를 썼고 분홍색은 홍화꽃을 썼으며 붉은색은 소목(蘇木)을 사용했어요. 천연염색을 하면서 염색물 때문에 지문이 다 닳았죠."

연꽃등 명맥을 지켜오는 데는 어려움이 많았다. 연꽃등을 만드는 데만 신경 쓰다 보니 사찰 관리가 안 됐다. 신도들은 노골적으로 '꽃만 만드는 스님'이라고 불만을 표시했다.


"서울 사찰에 있을 때 법회를 하고, 상담을 하고, 절 살림을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하니까 신도들이 안 좋아했어요. 그래서 제가 그랬죠. 이 세상에는 사찰도 많고 스님도 많다. 하지만 부처님께 꽃을 만들어 공양을 올리는 절은 여기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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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명스님이 개인전 `조선시대 궁중지화 재현전`에서 공개한 우담바라화 지화 작품.

열여섯 살에 출가한 스님은 일찌감치 꽃에 관심을 가졌다. 새벽에 눈을 떠서 부처님께 꽃을 바치는 게 좋았다.

"열세 살부터 고향인 경북 문경에 있던 성불사에서 스님 일을 도와드리기 시작한 게 인연이 되어 불교와 가까워졌어요. 열여섯 살 때 머리를 깎았는데 지화 만드는 건 스무 살에 배웠어요. 살 잡고 종이 붙이고 하는 걸 시작했죠. 지금은 전기로 불을 밝히지만 그때는 연꽃등 안에 촛불을 넣었어요."

연꽃등 하나를 만드는 데는 재료가 이미 준비돼 있더라도 꼬박 2시간 정도 걸린다. 한 잎 한 잎 한지를 오리고(원래 연꽃잎은 15장이지만 연꽃등은 풍성하게 보이기 위해 20장을 붙인다), 틀을 잡고 염색하고 말리는 과정을 30년간 반복하면서 스님은 점점 부처님께 가까이 가고 있다. 그렇게 평생 만들어 온 수천 개의 등이 세상을 비췄을 테니 그럴 만도 하다.


스님이 서울을 떠나 청평 연화세계에 온 것은 연꽃등을 만드는 데 전념하기 위해서다.

스님은 자신만의 연꽃등 제조법과 염색기법으로 특허를 냈고 전국 사찰에 보급하는 일도 하고 있다. 지금은 줌(ZUM)으로 스님들과 일반인에게 연꽃등 만드는 것을 가르치고 있다. 코로나19 이전에는 다양한 지화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아쉽게도 스님은 연꽃등 장인으로 국가에서 직접 지원을 받지는 못한다. 개인이 아니라 '연등회' 전체가 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연꽃등으로 큰돈도 벌지 못한다. 경제 개념도 없다. 사람들이 원하면 연꽃등 하나에 5000원도 받고 1만원도 받는다. 턱없이 싼 비용이다.

"늘 어렵죠. 고생스럽고. 그래도 장엄(莊嚴·불상이나 불전을 꾸미는 일)된 지화를 보면 모든 고생을 잊어버리게 돼요."

스님은 동국대와 동방문화대학 등에서 지화를 주제로 학위논문을 썼다. 연화세계가 위치한 인근에 기념관을 만드는 일도 구상하고 있다. 자신의 기능이 사라지지 않고 남아서 전승되는 게 스님의 소원이다.

"보통 스님들은 세상을 떠나면 모든 것을 태워버리잖아요. 하지만 연꽃등 만드는 일만큼은 계승됐으면 좋겠어요. 그래서 논문을 바탕으로 책을 만들고 있어요. 연꽃은 불심의 상징이에요. 진흙밭에서 자라고 꽃을 피우지만 때를 타지 않아요. 부처님의 가르침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게 연꽃이죠."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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