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색채가 나를 흔들었다"…실험미술 이강소의 변심

입력 2021/06/16 16:56
수정 2021/06/16 19:20
20년간 그린 회화 30점…개인전 '몽유' 열어

생동하는 만물의 기운을
흑백 추상화로 그렸으나
20년전 사둔 물감에 끌려
화려한 색채로 신작 펼쳐
"변하지 않으면 골동품 된다"

내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한국 아방가르드 전시에 참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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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20018`.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20년 전에 사둔 아크릴 물감이 실험미술 거장 이강소(78)를 끌어당겼다. 그는 "색을 칠해보니까 너무 아름답더라. 색이 나를 유혹했다"고 말했다.

오랜 세월 흑백 추상화를 그려오던 그가 색채의 매력을 발산한 신작 '청명'을 서울 갤러리현대 개인전 '몽유(夢遊)'에 걸었다. 넓고 큰 붓으로 주황색과 연두색, 노란색, 파란색 등을 펼친 화사한 물감의 강 위에서 오리 비슷한 형상이 노닐고 있다. 작가는 앞으로도 사람에게 감흥을 주는 색채를 찾는 실험을 계속할 계획이다. 그는 "자연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색채를 억제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벌이 꽃을 향해 날아가는 이유에도, 공작새가 서로를 유혹하는 수단에도 색채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리다 만 듯한 선 몇 개만으로 오리와 나룻배, 새를 떠올리게 하는 그림은 작가의 상징이다. 겨울철 동물원 얼음 사이에서 생생하게 노는 오리에 감동해 1980년대 말부터 그리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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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생생함을 작업에 드러낼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어요. 사진처럼 사실적으로 그리는 게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싶었죠. 오리인 척하는데 다른 사람 보기에는 오리가 아닐 수 있는 그림을 그렸어요. 그 배경도 구름인지 연못인지 생각 않고 마구 칠해요. 내 그림 앞에선 관객은 오리 비슷한 오리와 연못 비슷한 배경 사이를 왔다리 갔다리 합니다.


그 간극과 찰나가 재미있어요."

관람객이 오리로 보든, 배로 보든 상관없다고 한다. 보는 사람이 인지한 후 곧 사라지는 환상이기 때문이다. 이번 개인전 주제이자 꿈속에서 노닌다는 뜻의 '몽유'와도 일맥상통한다. 작가는 "각자 보는 것과 경험이 달라서 동양철학에서는 현실을 꿈으로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 말부터 지금까지 이강소 회화 흐름을 보여주는 작품 30여 점으로 채워진다. 전시장 1층에 걸린 1999년작 '강에서'는 5일간 배를 타고 본 중국 양쯔강 풍경을 강렬하고 거친 붓질로 풀어놓은 작품이다. 1999년 프랑스 니스 갈레리데퐁세트에서 처음 발표한 추상화로 만물의 기운을 화면에 담으려는 작가의 평생 과제가 잘 드러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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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청명-20046.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갤러리에서 지금 다시 재현해보라고 했지만 안되더군요. 그 당시 나와 지금의 나는 달라요. 보이지 않은 기(氣)가 내 그림의 중요한 요소예요. 그림 그리는 사람의 에너지가 작동하면서 선이 살아 있어 사람들에게 영향을 준다고 믿어요. 의도대로가 아니라 자연스럽게 그려지는 그림을 추구해요. 수동적인 작업이죠."

그는 기를 강력하게 드러내기 위해 일필휘지하는 붓질로 수묵화 같은 그림을 그려왔다.


지하 1층 전시장에는 기와 역동적인 획을 강조한 작품들이 걸려 있다. 넓은 여백에 동양화 붓으로 선 몇 개를 '휙' 그은 작품들은 서예인지 그림인지 헷갈리게 만든다. 자연스러운 호흡에 따라 생각할 겨를도 없이 일련의 획을 캔버스에 그려갔다고 한다.

"어린이와 추사 김정희(조선시대 서예가) 선을 도저히 흉내낼 수 없듯이, 사람의 나이나 성격이 선에 반영돼요. 그래서 나한테 획은 정말 중요해요. 옛날과 지금이 달라 작가는 작업을 많이 해야 합니다. 자나 깨나 작업을 많이 해야 해요."

그는 1974년 캔버스 올을 뽑아보고 1985년에는 마구잡이 붓질을 하면서 새로운 회화를 탐구해왔다. 그 실험 정신 덕분에 내년에 미국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전시 '아방가르드: 1960~70년대 한국의 실험미술' 참여 작가로 선정됐다. 그는 "변하지 않으면 골동품이 된다"며 "정신을 번쩍 차려 노력하지 않으면 작품의 생명이 약하다"고 했다. 전시는 8월 1일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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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소 청명-17122. [사진 제공 = 갤러리현대]

[전지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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