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 ‘트립 투 그리스’ 두 남자의 그리스 알쓸신잡

입력 2021/07/29 17:58
스크린에서 음식 냄새가 날 듯한 영화 ‘트립 투 그리스’는 미식과 이야기가 함께하는 여행이 얼마나 흥미로울 수 있는지, 코로나19 이전의 우리의 삶이 어땠는지를 풍경과 함께 보여 준다. 음식을 먹다가도 급발진하는 두 남자의 성대모사와 즉흥 연기를 보는 재미도 크지만, 여행도 인생처럼 일과 사랑, 죽음이 늘 함께하는 것이라는 점도 잘 버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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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에 자신과 함께 영화를 찍던 영국의 유명 배우 스티브 쿠건, 롭 브라이든과 점심 식사를 한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 그는 식사 자리에서 풍부한 지식과 유쾌한 유머를 구사하는 둘의 모습을 보고, 음식을 먹으며 둘이 함께 여행하는 ‘트립’ 시리즈를 생각해 낸다.


감독의 고향인 영국 북부를 배경으로 영국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를 따라간 ‘트립 투 잉글랜드’에서 시작, 낭만파 시인 바이런과 셸리가 이탈리아에서 머물렀던 곳의 발자취를 따라간 ‘트립 투 이탈리아’, 돈키호테와 산초가 되어 떠나는 ‘트립 투 스페인’까지 이어 오며 성공한 시리즈물로 자리매김할 ‘트립’ 시리즈는 마지막이자 네 번째 여행지로 ‘그리스’를 선택했다.

마이클 감독과 『옵저버』 잡지사의 제안으로 6일 동안의 그리스 여행을 떠난 스티브와 롭 두 배우는 『오디세이』 속 오디세우스가 모험을 시작하는 터키 아소스를 시작으로 그리스 아테네, 이타카까지 오디세우스의 발자취를 따라가며 인생과 예술, 사랑에 관해 유쾌한 대화를 나눈다. 다재다능한 능력만큼 자신감이 넘치고 승부욕이 강한 스티브는 여행 중, 아버지의 병세가 심각해졌다는 아들의 연락을 받는다. 한편 쉴 틈 없는 성대모사와 유머로 분위기를 즐겁게 하던 롭은 아내가 자신에게 말도 없이 저녁 약속에 나갔다는 딸의 이야기에 혼란스러워한다.


10년간의 ‘트립’ 시리즈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 두 사람은 여행을 통해 현재까지의 삶을 돌아보고, 다시 현실과 마주한다.

배우 스티브 쿠건은 ‘앨런 패트리지’ 캐릭터로 범국민적 인기를 얻고, ‘필로미나의 기적’ 각본으로 아카데미와 골든글로브에 노미네이트된 제작자이며 각본가다. 여기에 BBC 라디오 진행과 애니메이션 성우로 활약하며 대영 제국 훈장까지 받은 롭 브라이든이 여행의 동반자로 활약한다. 호메로스의 대서사시 『오디세이』는 트로이 전쟁의 영웅 오디세우스가 고향으로 돌아오는 10년간의 모험을 담은 작품. 트로이에서 이타카로 귀향한 오디세우스처럼 10년간의 ‘트립’ 여정을 끝낸 둘은 긴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간다. 영화 속 두 배우의 모습은 각색과 연출을 거쳐 실제 두 사람의 모습을 과장한 것에 가깝다.


아프간 난민 소년들이 파키스탄에서 런던으로 향하는 여행길을 그린 ‘인 디스 월드’(2002), 관타나모 수용소에서의 죽음 같은 고통을 담아낸 ‘관타나모 가는 길’(2006) 등 자신에게 베를린영화제 수상의 영광을 안겨 준 영화들에서 다큐와 극영화의 경계를 잘 오갔던 마이클 윈터바텀 감독은 이번에도 그 장기를 잘 살린다. 두 배우는 대본 없이 실제로 운영하고 있는 레스토랑에 들어가 음식을 먹으며 즉흥적으로 현지 상황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며 다양한 주제로 이야기를 나눈다. 성공에 대한 야망이 강하고 남들보다 특별한 존재가 되길 원하는 스티브와 끊임없이 개그를 던지며 분위기를 즐겁게 만드는 롭은 경력이 출중한 배우이자 중년을 넘은 남자의 고뇌는 물론 친한 친구와의 유쾌한 여행의 순간도 실감나게 연기한다.

‘미식, 여행, 우정’. 어쩌면 전 세계인들에게 지금 가장 필요한 세 가지 키워드가 아닐까. “시리즈의 완벽한 피날레”(『Film Inquiry』)라는 평을 받은 ‘트립 투 그리스’는 ‘트립’ 시리즈 중 가장 웃기다는 평이 나올 정도로, 두 절친이 경쟁하듯 던지는 연기와 개그가 흥미롭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고향 스타기라, 세계의 중심 델포이, 그리스 최고의 해산물 레스토랑이라 평가받는 바룰코 시사이드 등이 영화 속에 등장, 막힌 하늘 길에 대한 답답함을 조금이나마 풀어 준다. 러닝 타임 103분.

글 최재민 사진 찬란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90호 (21.08.03)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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