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영화 ‘싱크홀’ 웃기 두려운 현재 진행형 재난

입력 2021/09/09 17:30
뉴스에 간간이 등장했던 ‘싱크홀(sinkhole)’이라는 소재를 국내 최초로 영화화한 ‘싱크홀’이 관객 수 200만명을 기록했다. 수백 미터 아래에 뚫린 초대형 싱크홀로 내 집이 내려앉는다는 설정은 매년 평균 900건 발생하는 싱크홀 현실을 반영해, 마냥 웃고 나올 수만은 없는 씁쓸함을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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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방에서 올라와 11년 만에 서울에서 내 집 마련의 꿈을 이룬 평범한 가장 ‘동원’(김성균)은 이사 첫날부터 이웃의 프로 참견러 ‘만수’(차승원)와 사사건건 부딪친다. 아침에는 헬스장, 점심에는 사진관, 저녁에는 대리운전까지 스리잡을 뛰는 만수는 하나뿐인 아들을 위해서라면 뭐든 다 하는 아들 바보다.


동원이 직장 동료들을 집들이에 초대한 어느 날, 순식간에 빌라 전체가 땅속으로 빠지면서 그는 직장 동료인 ‘김대리’(이광수)와 인턴사원 ‘은주’(김혜준)와 함께 지하 500m 싱크홀 속으로 떨어진다.

108층 초고층 주상 복합 빌딩의 화재를 다룬 영화 ‘타워’로 518만 관객을 동원했던 김지훈 감독은 ‘싱크홀’을 소재로 한 첫 한국형 재난 영화라는 모험을 택했다. 감독이 “영화의 출발부터 마지막까지 차승원이 빅 픽처였다”고 전한 차승원이 생계형 스리잡의 프로 참견러이자 401호 주민 만수로 분해 생활 밀착형 연기를 선보인다. 동원이 있는 곳이라면 언제든지 나타나 참견하는 만수는 영화 ‘홍반장’을 연상시키는 캐릭터로, 예의도 없고 어딘가 음험하지만 생존본능은 만렙일 듯한 아우라를 보여 주며 곧 벌어질 초대형 재난에서 그가 보일 활약을 예상케 한다. 한편 연쇄 살인범(‘이웃사람’), 1980년대 조폭(‘범죄와의 전성시대’), 속정 깊은 아빠(‘응답하라 시리즈’) 등 출연하는 작품마다 변신의 귀재다운 강렬한 연기를 선보인 김성균은 11년 만에 마련한 자가가 2주 만에 땅으로 꺼져 버린 비운의 가장 동원 역을 맡았다.


여기에 배우 이광수가 상사의 집들이에 왔다가 싱크홀에 떨어진 김대리로 변신해 억울함과 절박함이 더해진 코믹 연기로 활력을 더한다. 사내 커플을 꿈꾸지만 차 있고 집 있는 경쟁자에게 주눅 들어 상대에게 호감 표현조차 엄두도 못 내는 그는 다소 허술한 극 중 코미디를 메운다. 충무로가 주목하는 신예 김혜준이 전작 ‘킹덤’과는 180도 다른 반전 캐릭터 은주 역을 맡아 열정과 의욕이 넘치는 3개월 차 인턴사원을 연기한다.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세트 팀이 영화의 주 무대인 청운빌라와 각종 편의 시설 등 총 20여 채의 건물을 직접 지었다. 지반 침하로 발생하는 무거운 진흙 수렁, 암벽등반 같은 지하 500m에서의 빌라 클라이밍 장면도 긴장감을 선사한다. 11년 만에 마련한 집이 땅 밑으로 꺼져 버리는 상황은 아끼던 의자를 땔감으로 쓰는 동원의 웃픈 상황과 함께, ‘집값 고공 상승’ 시대에 사는 관객들에게 ‘서울에서의 내 집 마련은 일장춘몽 같은 것’이라는 느낌을 선사한다.

타이밍이 어딘가 어색한 극 초반의 코미디, 500m에 달하는 싱크홀이 수 초 만에 물에 잠기고 수면으로 급상승 시의 압력 문제 등 과학적, 논리적으로 개연성이 떨어지는 장면은 웃음과 감동 모두를 잡기 위한 후유증 정도로 생각하자. 빌라 안전 점검을 문의하는 동원에게 주민 전부의 동의를 얻어 오라는 구청의 안일한 대처, 이웃이 구조를 기다리는 상황에서도 집값 하락을 우려하는 주민들의 공청회 모습은 실제 현실을 반영한다. 영화 초반만 해도 “이번 생은 집도 사랑도 없다”던 ‘N포 세대’ 김대리와 은주, 그리고 집에 목숨을 걸던 동원과 생활비를 벌기 위해 아등바등하던 만수는 극 후반, 어딘가 달라진 모습을 보여 준다. 모두가 영끌해 내 집 마련에 목매는 현실을 우회적으로 비판한다. 러닝 타임 117분.

[글 최재민 사진 ㈜쇼박스]

[※본 기사에는 영화의 스포일러가 될 만한 줄거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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