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직장인 레시피] 내부 고발과 배신, 위험하지만 명확한 경계

입력 2021/09/14 10:21
수정 2021/09/14 18:18
반복적인 업무의 연속인 직장 생활. 시선을 돌려 보면 부당한 처사도 종종 눈에 띤다. 리더의 그릇된 관행과 선후배 간의 잘못된 기수 문화, 공과 과를 연차와 직급에 따라 분배하는 불공정, 부하 직원을 자신의 개인 비서처럼 부리는 상사의 뻔뻔함 등등이 있다. 이 모든 것이 고치고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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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신은 어떤 말로도 미화될 수 없다

어학 사전은 ‘배신자’를 이렇게 설명한다. ‘믿음과 의리를 저버린 사람’이라고. 직장 생활을 비롯한 그 어떤 인간관계에서도 ‘배신’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버리면 그는 야망과 꿈의 실현은 고사하고 정상적인 사회 생활 자체를 유지하기 어렵다. 그만큼 변절자, 배신자라는 낙인은 충과 효를 중시하는 유교 관념이 지배하는 한국 사회에서 가장 무겁다.


단테는 그의 저서 『신곡』에서 지옥, 연옥, 천당을 만들었고, 그중 지옥의 9단계, 즉 가장 깊고 어두운 곳에 배신자를 가두었다. 바로 예수를 배신한 가롯 유다와 카이사르를 배신한 브루투스다. 흔히 배신을 이야기할 때 이 두 사람을 대표적으로 거론한다. 유다는 주지하다시피 예수의 12사도 중 한 명이었다. 그는 대제사장과 원로들에게 은전 30닢을 받고 예수의 거처를 알려주었다. 예수가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마치고 겟세마네 동산으로 기도하러 간 그곳에서 유다는 예수의 손에 입을 맞춤으로써 그가 예수임을 다른 이에게 알렸다. 물론 ‘마태오 복음서’ 등에서는 이후 유다가 예수가 사형 판결을 받자 죄책감을 견디지 못하고 목을 매었다고 기록했다. 이후 사가와 학자들에 의해 유다의 행적을 보는 다양한 시선은 존재하지만 유다라는 이름은 배신과 가장 밀접한 관계의 상징어가 되었다.

브루투스, 그는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의 내전에서 폼페이우스 편에 섰다. 결과는 카이사르의 승리. 카이사르는 브루투스를 용서하고 품었다. 그를 갈리아 키살피나 총독으로 기용하는 등 나름 애정과 신임을 쏟다. 하지만 공화주의자 브루투스는 끝내 절대 권력을 꿈꾸는 카이사르에게 등을 돌렸다. 그는 가이우스 카시우스 롱기누스의 카이사르 암살 계획에 가담했다. 이는 원로원 의원들의 동조를 끌어내는 데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원로원에 들어선 카이사르는 의원들에 둘러싸여 불의의 기습을 받았다. 카이사르는 수십 번의 칼을 맞았다. 그리고 그 칼 중에 브루투스가 있는 것을 알았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마지막 말을 남기고 카이사르는 죽었다. 이후 복수전을 벌인 카이사르의 후계자인 안토니우스, 옥타비아누스와의 전투에서 브루투스는 패전하고 막다른 길에 몰린 끝에 결국 자살했다. 브루투스의 이 행적에 대해 셰익스피어는 저서 『줄리우스 시저』에서 이렇게 변호했다. “브루투스는 말했다. ‘나는 카이사르를 덜 사랑해서가 아니라 로마를 더 사랑했기 때문에 그를 죽였다’라고.” 하지만 브루투스가 꿈꾸던 공화정은 실현되지 않았다. 카이사르의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는 공화정의 외피를 입었지만 실질적으로 황제가 되어 로마를 지배했다. 우리는 브루투스가 갖고 있던 생각, 신념, 가치관을 떠나 그를 배신자라 부른다. 물론 역사는 승리자의 것. 만약 카이사르 사후 브루투스를 중심으로 한 공화주의자들이 옥타비아누스를 물리쳤다면 브루투스를 옥죄인 배신자 프레임은 없어졌을 것이다.

여기 또 다른 의미에서 ‘배신자’가 있다. 바로 에드워드 조지프 스노든이다. 그는 미국의 정보기관의 정보 분석원이었다. CIA미중앙정보부를 거쳐 NSA미국가안보국에서 근무하던 그는 이른바 정보 기관에서 실행 중인 ‘프리즘 프로젝트’의 폐해를 깨닫기 시작한다. 미국의 정보기관들이 9.11테러 이후 강화된 미국의 정보 안보를 위해 국경과 신분, 개인과 기관을 가리지 않고 무차별적으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하는 것에 스노든은 충격을 받았다. 그는 국가가 점점 ‘빅 브라더’를 지향한다고 판단하고 그 어떤 명분으로도 국민의 자유를 침해해서는 안 된다는 신념으로 내부 폭로를 결심한다. 그는 그동안 수집한 정보가 담긴 기밀 문서를 모아 홍콩으로 간다. 2013년 6월5일, 스노든은 영국의 『가디언』지 기자 글렌 그린월드와 이완 맥어스킬 등에게 미국 정보 기관의 감청과 정보 수집 실태를 폭로한다. 당황한 미국 정부는 스노든에게 귀환을 촉구하지만 스노든은 그해 8월1일 러시아로 망명한다. 미국 정부 입장에서 스노든은 배신자다. 하지만 어떤 의미에선 정의를 위한 내부 고발자다. 그는 아직도 미국에 가지 못하고 세상을 떠돌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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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는 결이 좀 다르지만 ‘미투’에서 촉발된 내부 고발도 있다. 제이 로치 감독이 샤를리즈 테론, 니콜 키드먼, 마고 로비와 함께 만든 2019년 영화 ‘밤쉘: 세상을 바꾼 폭탄선언’이다. 폭스뉴스에서 황제로 군림하며 성희롱을 일삼는 CEO 로저 에일스. 그는 여성 앵커들을 상대로 이른바 ‘소파 승진’을 강요한다.


그의 만행을 참을 수 없게 된 앵커 그레천 칼슨(니콜 키드먼)은 폭스뉴스 내부의 비리와 성적 스캔들을 폭로한다. 하지만 회사와 CEO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는다. 그레천의 용기를 단순히 개인적인 일탈이라고 몰아붙인다. 하지만 그레천의 고군분투를 지켜 본 매긴 켈리(샤를리즈 테론)를 포함한 20여 명의 여성 피해자가 용기를 내 로저 에일스의 만행을 고발하는 데 동참한다.

스노든과 그레천의 경우는 배신이 아니다. 이는 용기 있는 내부 고발이고 기관, 회사에 만연한 그릇된 관행, 비리에 대한 항거다. 그럼에도 내부 고발자는 항상 외롭다. 특히 직장에서라면 조직적인 압박과 은근한 왕따가 내부 고발을 주저하게 만든다.

배신과 내부 고발은 엄격히 다르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이 두 장벽은 힘 있는 자에 의해 변하는 흔들리는 잣대다. 우리는 그동안 수없이 많은 용기 있는 내부 고발자를 봐 왔다. 그들의 용기 있는 작은 시작으로 사회와 조직은 조금씩 발전하고 있지만 그 속도는 결코 빠르지 않다. 물론 내부 고발에 대해 회사는 물론이고 직장인의 시각이 긍정적인 것만은 것은 아니다. ‘그냥 관행대로 직장 생활 하면 되지, 뭐 잘났다고 조직을 엉망으로 만들어’, ‘저만 영웅인가. 우리도 다 생각이 있지만 어떡하겠어. 힘이 없는데’라는 자조 섞인 말로 내부 고발을 주저하고 이를 불편하게 본다. 내부 고발은 크고, 어렵고, 두려운 것만이 아니다. 리더의 그릇된 관행, 선후배 간의 잘못된 기수 문화, 공과 과를 연차와 직급에 따라 분배하는 공정하지 못한 행위, 부하 직원을 자신의 개인 비서처럼 부리는 상사의 뻔뻔함 등등이 다 고치고 바로잡아야 할 대상이다.

‘집 안에서 싸우는 소리를 담장 밖으로 넘지 못하게 하라’는 말이 있다. 이 말에서 우리는 교훈을 얻는다. 부서에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 소통과 진지한 대화로 풀어낼 수 있는 문제들을 당장 회사 전체의 문제로 확대시키는 것은 좋은 방법은 아니다. 리더와 부서원 모두 각자의 위치에서 부서 내에서 발생하는, 그러나 느끼지 못하고 인식하지 못하는 문제들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필요하다. 그것의 시작이 리더라면 가장 좋겠지만 고참 직원도, 입사 1년 차의 신입도 문제 제기를 할 수 있다. 이런 것들은 내부 고발이 아니다. 건강한 조직을 만들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다.

당연히 배신은 다르다. 개인적인 이익과 욕망을 위해 부서나 동료 혹은 회사의 원칙에서 벗어나는 것이 배신이다. 배신은 인간 대 인간의 관계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다. 신임하고 총애하는 부장을 배신하고 다른 부서에 우리 부서의 정보를 넘기고 승진을 보장받는 행위, 타 회사와의 협상에서 충분히 수익을 더 창출할 수 있음에도 개인적인 이익을 보장받고 타 회사의 이익 극대화에 일조하는 것 등도 넓은 의미에서 배신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지해야 할 점은 배신의 경계에서 일어나는 일들이다. 명확한 구분으로 배신의 영역에 있는 행위를 서슴없이 할 수 있는 간 큰 직장인은 사실 드물다. 그렇지만 자신의 행동이 배신의 영역인지 인지하지 못하고 저지르는 실수도 있는 것이 직장 생활이다. 부서나 회사의 직급, 지휘 체계를 무시하고, 학연, 지연에 의한 연대감으로 타 부서 상사의 지휘를 받는 것 또한 위계 질서 무시로 인한 징계감이지만 엄격한 의미에서 그 부서의 직접적인 지휘 라인에 있는 상사 입장에서는 일종의 배신 행위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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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욕에 의한 배신은 최악이다

여기 배신자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두 인물이 있다. 두 사람의 여정은 너무나 다르다. 그러기에 두 사람의 신념, 가치관, 역사관, 후대에 끼친 영향력 또한 차이가 크다. 그럼에도 두 사람은 후대 사가의 엄격한 잣대에 의해 ‘배신자’라는 오명을 여전히 쓰고 있다. 물론 두 사람의 배신의 동기, 명분은 하늘과 땅 차이다. 한 사람은 온전히 개인적인 욕망을 위한 배신이었고, 또 한 사람은 시대의 흐름에 동참하기 위해, 더 강하고 개혁적인 정권을 만들기 위해 배신자를 자처했다. 『삼국지』의 주연급 인물인 ‘여포’와, 조선 세조의 공신이자 충신인 ‘신숙주’ 이야기다.

여포는 오원군 구원현의 하급 무사였다. 당시 여포가 속해 있던 군의 수장 하진은 간신 십상시가 쳐 놓은 그물에 빠져 목숨을 잃었다. 그 뒤 여포는 형주자사 정원의 부하가 된다. 영원할 줄 알았던 십상시의 권력은 동탁에 의해 토벌되었고 천하는 제후들의 싸움터가 되었다. 정원 밑에서 출중한 무공을 뽐내던 여포는 정원의 오른팔로 양아들이 된다. 세력을 보면 제후들 중에서도 내세울 것이 없던 정원이지만 그는 천하제일의 무장 여포를 앞세워 조정을 전횡하던 동탁에 대항했는데, 천하의 동탁도 여포가 두려워 정원을 쉽게 대하지 못했다.

정원을 제거하려 고심하던 동탁은 여포와 동향인 이숙을 여포에게 보냈다. 이숙은 여포에게 천하의 명마인 적토마와 금은보화, 높은 관직을 보장하며 정원을 배신하라 부추겼다. 여포는 이숙의 감언이설에 넘어가 자신을 그토록 믿었던 양아버지 정원의 목을 베어 동탁에게 바친다. 기쁨에 겨운 동탁은 여포를 양아들로 삼고 금은보화를 안긴다. 동탁은 여포를 믿고 황제 헌제를 허수아비로 세워 놓은 채 화려한 미오성에서 세상을 호령한다.

충신 왕윤은 한 황실의 몰락을 걱정하며 동탁을 제거하겠다고 결심한다. 그에게는 천하의 절세미인 딸 초선이 있었다. 왕윤은 여포를 집으로 초대하고 초선에게 여포의 시중을 들게 했다.


동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여포와 동탁을 갈라 놓아야 한다고 판단한 것. 본래 여색을 좋아하는 여포는 초선에게 눈을 떼지 못한다. 여포가 초선에게 한눈에 반한 것을 눈치 챈 왕윤은 여포에게 초선을 보내겠다고 약속한다. 여포는 초선이 올 날만을 고대하지만 그녀는 오지 않는다. 여포는 왕윤을 찾아간다. 왕윤은 “동탁이 우연히 초선을 보고는 마음에 들어 초선을 자신의 첩으로 달라니 어찌할 수가 없다”며 난처한 표정을 감추지 않는다. 여포는 몸을 부르르 떤다. ‘양아들이라도 명색이 아버지인데 아들의 여자를 탐내다니, 이는 부자 관계를 떠나 남자로서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여포는 ‘어차피 피를 나눈 혈육도 아닌데’라는 생각으로 동탁을 배신할 결심을 굳힌다. 결국 여포는 동탁을 죽였고 세상은 다시 혼란에 빠진다.

여포는 진궁과 천하를 도모하지만 오직 무력만 있고 지모와 인덕이 없는 여포는 한계에 부딪친다. 세가 불리함을 깨달은 여포는 원술에게 의지하려 했지만 원술은 여포의 배신과 변절 행적을 증오해 그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여포는 원소 등 여러 제후에게 몸을 기탁하며 세상을 떠돈다. 여포는 조조에 대항하지만 부하들의 배신으로 결국 조조 앞에 무릎을 꿇는다. 여포는 조조에게 자신의 무공과 조조의 세를 합치면 천하를 호령할 수 있다며 목숨을 구걸한다. 간웅 조조는 옆에 있는 유비에게 슬며시 의견을 묻는다. 유비는 “여포가 두 아버지 정원과 동탁의 목을 베었습니다. 만약 조조 공이 여포를 살려 준다면 세 번째 희생양은 아마도 조조 공이 될 것입니다”라고 했다. 조조는 여포를 참수한다. 무예로는 당할 자가 없던 여포는 43세에 비참한 최후를 맞는다.

주군을 갈아타고 배신과 변절을 한 장수는 수없이 많다. 하지만 그들은 항장으로 어쩔 수 없이 그런 선택을 한 경우거나, 또 새로운 주인의 인품과 명성에 감복해 스스로 주인을 갈아탄 경우다. 마초 역시 유비의 성품과 인덕에 반해 기꺼이 유비를 주군으로 모셨다. 조조 휘하에도 많다. 조조의 아들과 조카 그리고 조조가 가장 아끼던 허저를 죽인 장수와 가후도 세가 불리하자 조조에게 몸을 의탁했고, 조조 역시 통 크게 그들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여포는 아니다. 그의 두 번의 배신은 그 이유가 정치 군사적 정황, 제후 간의 제휴가 아닌 100% 탐욕 때문이었다. 정원을 배신했을 때는 적토마와 금은보화에 눈이 멀었고, 동탁을 배신했을 때는 여인을 품겠다는 욕망 때문이었다. 이 두 번의 배신이 더 무거운 것은 비록 피를 나누지는 않았지만 양부의 인연을 맺은 정원과 동탁이 대상이었다는 점이다. 자신의 입으로 아버지라 불렀던 두 사람의 목을 베었다는 것은 아무리 무법의 시대, 칼과 창이 지배하는 시대지만 최소한의 의와 예가 있는 세상에서는 용서할 수 없는 패륜이다. 이렇게 여포는 후대에 배신의 아이콘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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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한 유능함이 그래도 명분이다

배신자라고 한마디로 규정짓기에 너무나 능력이 뛰어나고 동시대는 물론 후대까지 많은 영향을 끼친 인물이 있다. 바로 신숙주이다. 그는 성군 세종의 총애를 한몸에 받고 세종과 문종에게 어린 단종의 보위를 당부 받았다. 하지만 신숙주는 단종 대신 세조를 선택해 명재상으로의 칭송과 변절자로의 조롱을 동시에 받게 된다. 신숙주는 그러나 한마디 배신의 기준으로 재단할 수 있는 평범한 인물이 아니다. 그는 정치가, 학자, 관리, 문인, 외교가로서 조선이라는 기업의 토대를 마련한, 왕이 가장 신임한 임원이었다.

조선은 태조부터 세조까지, 왕조와 왕권의 틀을 갖추는 시대였다. 태종은 반정을 일으켜 왕위에 올라 정도전이 설계한 왕권과 신권의 균형 그리고 민본의 나라를 강력한 왕권의 나라로 만들었다. 이를 위해 태종은 손에 피를 묻히기도 주저하지 않았다. 반정 공신, 처남은 물론이고 미래 권력을 위해 아들 세종의 장인까지 피의 숙청을 단행했다. 그 결과 왕권의 기틀을 마련해 세종이 성군으로 통치할 수 있는 토대를 쌓았다. 세종은 명군, 즉 대왕이었다. 그는 문화, 예술, 민생, 정치, 경제, 외교, 국방에 있어 완벽한 통치를 해냈다. 사실 조선 왕조가 500년이나 지속할 수 있었던 이유 중에는 세종 대에 이룩한 자산의 덕도 있다. 명군 아래 졸장이 없듯, 세종의 대신들은 모두 명석하고 능력자였다. 황희, 김종서, 황보인 등이다. 그러나 세종이 후대의 동량으로 삼고 애지중지 했던 인재들은 집현전 학사들이었다. 그중 신숙주는 성삼문과 더불어 세종이 자신의 후계인 문종과 단종의 든든한 버팀목으로 지목했던 당대의 인재였다.

성삼문은 단종을 위해 생살을 태우는 고문을 받으면서도 충절을 지켰다. 그는 후대에 충신의 대명사가 되었다. 이에 반해 신숙주는 세종과 문종의 고명을 어기고 세조의 집권을 도운 변절자가 되었다. 단종의 비극 이후 200년이 지나 숙종은 단종과 사육신을 복위하고 복직했다. 이는 신숙주에 대한 평가를 더욱 냉정하게 만들었다. 그는 여전히 변절과 배신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시간이 흘러 현대에 들어와 역사가들은 신숙주를 다시 보기 시작했다. 그를 단순히 배신자로 볼 것인가, 혹은 세종부터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모신 명재상으로 볼 것인가를 두고 재평가했다. 물론 보는 시각에 따라 평가는 다르겠지만 신숙주는 ‘단종에게는 배신자, 세조에게는 충신’이다.

신숙주는 1417년에 태어났다. 그는 수재였고 학문에 대한 열의가 대단했다. 세종 시대, 신숙주는 생원시, 진사시에 합격하고 바로 복시 장원, 이듬해 문과에 급제했다. 이때 신숙주와 같이 급제해 벼슬길에 오른 인물이 성삼문이다. 당대 두 천재가 동시에 등장한 것이다. 신숙주는 성균관 문묘 제례 임무를 맡았다. 당시 신숙주는 늙은 서리로 인해 곤경에 처한다. 늙은 서리가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한 것. 사헌부는 신숙주를 탄핵했다. 물론 신숙주가 사건의 전말을 밝히면 탄핵을 면할 수 있었다. 그러나 신숙주는 순순히 징계를 받았다. 늙은 서리가 파면 당하면 생계를 이을 수가 없다는 것을 알고 징계를 받아들인 것이다. 후에 세종이 이를 알고 신숙주를 용서했고 관리들은 신숙주의 깊고 넓은 성품을 칭송했다.

신숙주는 집현전 학사가 되어 ‘훈민정음’ 창제에 참여했다. 특히 성삼문과 함께 요동을 13차례나 왕복했다. 당시 요동에는 명나라 언어학자 황찬이 귀양 와 있었다. 그 과정에서 황찬은 신숙주의 재주와 정성에 감탄했다. 신숙주는 특히 언어에 해박했다. 그는 중국어, 일본어, 여진어 등 8개 언어를 구사해 외교의 중책을 맡았다. 명나라 사신 응대는 중요한 업무. 명나라 사신 예겸은 시문에 뛰어난 인물로, 작은 나라 조선에 자신과 대적할 인물이 없다 여기는 오만한 성품을 지녔다. 신숙주는 예겸을 응대했고 얼마 후 예겸은 신숙주의 인품과 시문에 반했다.

병약했던 문종은 즉위 2년 만에 죽고 어린 단종이 즉위했다. 이때 신숙주는 수양 대군과 조우한다. 수양 대군은 명나라 사은사를 자청한다. 신숙주는 서장관으로 수양 대군을 수행했다. 두 사람은 긴 여정에서 많은 이야기를 나눈다. 이후 1453년, 피의 계유정난이 벌어진다. 수양은 김종서 등 원로를 제거하고 권력을 장악한다. 신숙주는 거사에 참여하지 않았지만 공신 첩지를 받는다. 2년 뒤, 수양 대군은 왕위에 오른다. 이가 바로 세조다. 신숙주는 대제학이 되었다. 그리고 세조의 즉위를 승인 받는 주청사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신숙주에 대한 세조의 신임은 더욱 깊어졌다. 성삼문, 박팽년 등 사육신이 단종의 복위를 계획한다. 하지만 거사는 김질의 고변으로 발각되어 사육신은 모두 죽임을 당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신숙주를 배신자, 변절자라 부르기 시작했다. 후대 사림파가 관료의 주류로 등장하면서 신숙주는 많은 비판을 받았다.

신숙주는 병조 판서와 예조 판서를 겸직했다. 특히 예조 판서는 10여 년 재직하며 외교 사령탑 역할을 수행했다. 또한 신숙주는 평안도, 함길도 도체찰사로 2차례나 여진을 소탕했다. 신숙주는 나이 46세에 영의정이 되었다. 신숙주는 지위가 높아지자 세조에게 사직을 청했으나 세조는 만류했다. 세조는 신숙주를 신뢰했다. 절대 권력 세조가 죽고 예종이 즉위했다. 신숙주는 한명회, 정인지와 원상이 되어 예종을 보필했다. 하지만 예종은 불과 1년 만에 죽고 성종이 즉위했다. 성종 역시 신숙주를 신뢰했다. 신숙주는 영의정 사임을 청했으나 성종은 반려했다.

신숙주의 정치적·학문적 영향력은 더욱 커졌다. 그럼에도 신숙주는 사치를 멀리하고 겸손했다. 1475년 59세에 신숙주는 죽었다. 그는 후손에게 장례는 검소하게 치르고 서책 몇 권을 함께 묻어 달라고 유언했다. 여섯 임금을 모셨던 신숙주는 관리, 외교가, 군사 지휘자, 언어학자로서 뛰어난 활약을 한 능력자다. 그에게는 ‘현실은 무엇보다 중요한 것. 그리고 후대에 남는 것은 인간의 성취인 업적이다’라는 소신이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단종에게 충신은 아니었지만 세조에게는 충신의 역할을 했을 것이다. 그에게는 배신과 변절의 낙인이 찍혔다.

신숙주 역시 역사적 선택의 순간에 인간적인 번민과 고뇌가 있었을 것이다. 그가 우선한 것은 정치적 안정과 제도와 인적 개혁을 해야 한다는 평소의 소신이었을 것이다. 신숙주가 살아온 시대는 변혁기다. 선택을 해야 했고 그것은 삶과 죽음까지 동반하는 무거운 것이었다. 신숙주에 대한 역사의 냉정한 평가도 필요하지만, 재상, 외교관 그리고 무엇보다 학자로서의 빛나는 업적을 부정할 수는 없다.

직장에 들어서는 순간 나도 모르게 여러 딱지가 붙는다. 입사 기수부터, 마케팅팀, 기획부실, 영업본부 등등의 부서, 또는 어느 대학을 졸업했느냐, 고향이 어디인가까지 다양한 분류 딱지다. 이 딱지는 유용하기도 혹은 부담이 되기도 한다. 그것을 이용하는 것은 각자의 선택이고 능력이다. 업무보다 실세가 속해 있는 모임에 더 적극적인 직장인도 있고 내 일만 묵묵히 해내는 직원도 있다. 하지만 줄을 잡았다는 기대에 더 좋은 줄, 더 두꺼운 줄로 갈아타기 위해 눈치만 보다가는 언제나 자신의 설 자리가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직장은 일을 하는 곳이다. 하지만 눈치 없이 일만 해서도 살아남을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이 두 가지 능력을 요구하는 직장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겸손한 유능함이다. 신숙주, 그는 단종에게 충신은 아니었지만 조선 왕조에게는 유능한 인재였다. 이 점이 직장인에게 필요하다. 유능한 직원은 회사가 어떤 위기에 처해도 우선해서 구명보트에 태워진다. 이기적인 리더도 자신의 공을 위해 유능한 인재를 원한다. 세조의 충신 신숙주의 또 하나의 미덕은 자신의 공을 내세우지 않았다는 점이다. 요동을 13번이나 왕복하며 훈민정음 창제를 도왔고 이후 명나라와 왜국을 왕래하는 외교의 최전선에 있었다. 또 군대를 지휘해 여진을 토벌한 장수이기도 했다.

선택의 순간은 괴롭다. 그리고 선택지에 놓인 두 덩어리는 어떤 하나가 다른 하나를 압도하는 조건을 갖추지 못한 것도 선택의 특색이다. 그럼에도 선택에는 모험과 책임이 따르고 선택이 성공적이었을 때는 희열을 맛본다. 하지만 원칙, 도덕, 팀워크 등을 도외시한 채 개인의 이익과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선택은 어쩌면 배신일 수 있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97호 (21.09.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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