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itylife 제797호 (21.09.28) BOOK

입력 2021/09/14 15:51
▶복부인의 기원을 찾아서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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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시현 지음 / 창비 펴냄

저자의 박사학위 논문 ‘한국 중산층 여성의 주택실천과 투기화된 삶’에서 출발한 이 책은 1950~80년대 사이에 출생한 중산층 여성 25인의 다채로운 주거생애사를 추적한다. 자녀 교육을 위해 아파트를 갈아탄 여성, 명의 위장 등 편법으로 부를 일군 여성, 그리고 사회적 소수자일수록 내 집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페미니스트 여성 등 다양한 이유로 집을 욕망한 이들의 삶을 면밀히 들여다보면 지금까지 우리가 간과한 다면적이고 복합적인 여성의 모습이 드러난다.

전후 한국사회에서 여성은 바깥일 하는 남편 대신 집안에서 가사노동을 수행해야 했다.


가족주의 규범 속에서 아내, 엄마, 딸로서의 여성은 홀로 계급성을 갖거나 자력으로 계급을 성취하기 어려운 구조 속에 놓여 있었다.

그런데 1980년대 초반, 주식시장의 호황과 집값 폭등은 집안에서 열심히 저축만 하던 알뜰주부들의 태도를 변화시켰다. 한국에서 처음으로 부동산투기에 뛰어든 이들은 중산층 여성이 아니었다. 1970년대 초반까지 투기 열풍은 기업가, 고위 관료, 토지 브로커 등 특수 계층이 주도했다. 그런데 강남 개발이 본격화되고 주택의 상품화 경향이 가속화되면서 자금 운용 능력이 있는 중산층까지 투기에 뛰어들었다. 그야말로 투기의 대중화 시대가 열린 셈이다. 당시 여론은 부동산 중개업소나 아파트 분양권 추첨 현장 등 대중화된 투기의 장에 등장한 중산층 가정주부들에 주목했다. 이들은 ‘복부인’이라는 수상한 이름으로 불리며 투기의 주범으로 지목됐다.

예를 들어 고영실 씨(가명)는 소위 ‘강남사람’으로 계모임으로 돈을 모았고 부동산투자에도 성공했다. 하지만 여전히 더 좋은 주소로의 이동을 꿈꾸는 자신을 중산층이 아닌 서민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서민’이라는 그녀의 주장은 자신이 기득권층이 아님을 강변하고 정부의 세금 환수에 대한 불만을 정당화하기 위한 것이다. 차미경 씨는 다주택자 규제를 피하기 위해 명의 위장을 했다. 이것이 범법 행위임을 알고 있지만 다들 알면서 저지르는 똑똑한 절세 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남편의 소득을 넘어선 막대한 자본이익을 창출했고, 그 자본력을 바탕으로 가정 내 자율성과 주체성을 획득했다. 결혼제도 속에서 직장을 그만두고 육아와 살림에 매여 있던 여성들에게 부동산 투자는 한번쯤 접근해볼 만한 계급 창출 수단이자 자신의 사회적 능력을 입증할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가정의 경제관리자인 여성은 부동산 투자를 통해 자신과 가정의 물질적 기반을 확립하고 자가 소유에 기초한 현대 도시 중산층의 몸에 밴 행동 양식, 즉 투기 아비투스를 형성했다는 것이다.

남성 공직자들의 ‘나몰라’ 투기가 심심치 않게 논란이 되고, 이것이 고질적인 사회 문제로 대두된 지금, 이를 비난만 할 것이 아니라 여성주의적 관점에서 왜 이런 현상이 반복되고 있는지를 물어야 한다고 이 책은 강조한다.


▶크리스마스의 기적 『겨울』

영국을 대표하는 작가 앨리 스미스가 브렉시트 격변을 겪은 영국 사회의 현재를 담아내기 위해 쓰기 시작한 ‘사계절 4부작’의 두 번째 책이 나왔다.

주인공 소피아 클리브스는 사회적으로나 경제적으로도 성공을 거둔 중년 여성이다. 똑똑하고 세상사에 밝은 소피아에겐 아서 혹은 아트라는 애칭으로 불리는 아들이 있는데, 둘 사이는 늘 데면데면하다. 아트의 연락을 받고 옛 집을 찾아온 아이리스, 가뜩이나 지금의 삶도 힘겨운데 버거운 언니까지 맞닥뜨리게 된 소피아, 곧 자신에게 놀라운 변화가 찾아오리라는 걸 알지 못하는 아트, 그리고 어딘가 모르게 신비롭고 지혜로운 이방인 럭스. 이 네 사람이 한지붕 아래에서 크리스마스를 보내며 작지만 놀라운 기적이 일어난다.

크리스마스이브에 유령이 찾아와 삶의 변화를 맞이하게 되는 영국의 대문호 찰스 디킨스의 우화 ‘크리스마스 캐럴’. 이 작품은 찰스 디킨스의 우화가 지닌 틀을 빌려와 동시대 영국의 눈 덮인 시골 풍경 속에 펼쳐 놓았다. 작가는 삶의 무의미함과 타인에 대한 적대에 지쳐 피폐해진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정신을 통해 거듭난다는 모티프로 영국 근현대사를 날줄로, 현재의 모순을 씨줄로 따뜻하고 아름다운 소설을 직조했다.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97호 (21.09.28)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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