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통과 현대의 조화…프랑스 파리 루브르 박물관 [랜선 사진기행]

입력 2021/10/23 15:01
수정 2021/11/10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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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전경. /사진=송경은 기자

[랜선 사진기행-71] 프랑스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 조용한 박물관에서 유독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이 바글바글 몰려든 곳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앞이었다. 까치발로 서서 겨우 마주친 모나리자의 눈은 신기하게도 계속 우리를 따라왔다.

이탈리아 로마의 바티칸 박물관, 영국의 대영 박물관과 함께 세계 3대 박물관으로 꼽히는 루브르 박물관의 소장품은 약 38만점에 이른다. 이 가운데 모나리자를 비롯한 13~19세기 회화작품이 6000여 점, 이집트 나일강 문명의 산물 등 고대 유물이 5만여 점이다.

하시엔디 리고의 ‘루이 14세’, 자크 루이 다비드의 ‘나폴레옹 황제의 대관식’, 렘브란트의 ‘엠마오에서의 저녁식사’, 카라바조의 ‘점성술사와 동정녀 마리아의 죽음’ 등이 대표적이다. 전체 회화작품 가운데 3분의 2는 프랑스 작가들의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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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에 전시된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사진=송경은 기자

루브르 박물관은 독특한 건물 외관으로도 유명하다.


박물관의 전시 공간은 대부분 옛 루브르 궁전 건물과 지하에 들어가 있지만 박물관 입구의 투명한 유리 피라미드는 루브르 박물관의 트레이드마크로 꼽힌다.

1989년 일반에 공개된 루브르 피라미드는 중국계 미국인 건축가인 I. M. 페이가 설계했다. 고전주의 양식으로 지어진 석조건물들로 둘러싸인 궁전 마당 한가운데에 들어선 유리 피라미드는 당시로서는 충격 그 자체였다.

루브르의 새로운 시대를 연 유리 피라미드는 신개선문(라데팡스), 바스티유 오페라, 국립도서관, 라빌레트 공원 등과 함께 프랑수아 미테랑 대통령이 프랑스 혁명 200주년 기념으로 추진한 ‘그랜드 프로젝트’ 중 하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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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로비. 투명한 유리 피라미드를 통해 자연광이 들어온다. /사진=송경은 기자

1983년 국제 현상설계 공모를 통해 당선된 초현대적인 디자인의 유리 피라미드 건축 계획은 파리의 주변 콘텍스트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초기에 거센 비난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준공 이후 이런 비난은 찬사로 바뀌었다.


유리와 금속이 만든 기하학적 형태는 주변의 오랜 건물들과 절묘하게 조화를 이뤘고, 프랑스의 위상을 다시금 도약시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루브르 피라미드의 높이는 21.6m, 전체 표면적은 1000㎡에 달한다.

루브르 피라미드의 또 다른 역할은 몰려드는 관람객을 질서 있게 입장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다. 기존 출입구로는 많은 관람객을 수용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 루브르 피라미드를 통해 입장하는 방문객들은 로비로 내려간 뒤 주요 전시 공간으로 다시 올라가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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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브르 박물관 내부에서 내려다 본 박물관 입구의 루브르 피라미드. /사진=송경은 기자

루브르 박물관 건물은 12세기 말 필립 2세가 건설한 요새에서 출발했다. 이후 14세기 후반 샤를 5세는 이 요새를 성으로 개조하도록 했다. 프랑스를 대표하는 건축가 피에르 레스코가 건설 총책임을 맡았고, 벽면 장식은 당대 최고의 조각가인 장 구종이 맡았다.

이후 루이 13세와 14세를 거치면서 궁전은 계속 확장됐다. 루이 14세가 1682년 거처를 베르사유 궁으로 옮기면서부터는 소수의 특권층이 소장품을 보관하거나 전시하는 공간으로 궁전이 활용됐다.

루브르 박물관이 대중적인 공간으로 변모한 것은 1789년 프랑스 대혁명 이후다. 1792년 국민의회는 루브르 궁전에 프랑스 박물관을 설립했다. 이후 다양한 근대 박물관이 들어서면서 루브르 박물관은 지금의 명실상부한 세계 3대 박물관으로 부상하게 됐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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