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12명의 첼리스트가 이 독주곡을 위하여…

입력 2021/10/26 17:13
수정 2021/10/27 10:12
바흐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작곡가 류재준이 재해석해
대형 편성으로 바꿔 연주

서울국제음악제 폐막서
노라스·양성원·송영훈 등
유명 첼리스트 12명 협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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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아트홀에서 첼리스트 12명이 모여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을 연습하고 있다. [박형기 기자]

첼로 거장 아르토 노라스부터 드미트리 쿠조프, 양성원, 송영훈, 김민지, 안드레이 이오니처, 이상 엔더스까지. 지난 24~25일 오전 서울 서초동 코스모스아트홀은 현역 최고 첼리스트들이 빚는 묵직한 첼로 소리로 가득했다.

첼로 연주자 12명이 한자리에 모여 연습한 작품은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오케스트라 협연이나 피아노와 합주 없이 오직 첼로 한 대만을 위한 이 작품은 전설적인 첼리스트 파블로 카살스가 1889년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한 악기점에서 우연히 발견해 세상의 빛을 본 작품이다. 바흐 사후 무려 140여 년 만에 발견된 이 작품 덕분에 이전까지는 합주 때 저음 영역을 담당하는 악기에 불과했던 첼로가 독주악기로 주목받게 됐다.


작곡가 류재준은 '2021 서울국제음악제'를 맞아 이 작품을 첼로 12대를 위한 작품으로 재탄생시켰다. 작품 제목은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 바흐 작품의 첼로 독주 선율 내부에 숨겨진 오케스트라적인 음향과 풍부한 화성, 밀도 높은 대위법적 움직임을 집요하게 파헤쳐 첼로 12대를 위한 음악으로 확장해낸 것이다.

이번 연주에 참여한 첼리스트 양성원은 이 작품을 가리켜 "300여 년 전 바흐의 음악 언어와 현 시대를 살아가는 작곡가 류재준의 음악 어법의 만남"이라고 했다. 그는 "편곡 작품이라고 말할 순 없다. 류재준이 바흐 첼로 모음곡 1번을 재해석해낸 작품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며 "한 음악가가 옛 음악 스승을 만나 인사를 건네는 느낌"이라고 덧붙였다.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는 오는 30일 서울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리는 서울국제음악제 폐막공연을 장식할 예정이다.


류재준은 "바흐의 걸작 중 하나인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12개의 첼로를 위해 다시 탄생시키는 것은 다이아몬드 원석을 가공하는 것과 같았다"며 "바흐의 첼로 모음곡 안에는 한계 없는 상상의 캔버스가 펼쳐져 있다"고 했다.

그는 이번 작업에서 콘체르탄테(concertante)라는 형식을 택했다. 콘체르탄테는 연주에 참여하는 모든 악기에 주선율을 배분해 독자성을 부여하면서도 전체적인 조화를 추구하는 형식이다. 실제 12명의 첼리스트는 바흐 원곡 선율을 뼈대 삼아 최대 8개의 대선율(주선율과 어우러지는 또다른 선율)을 동시에 연주한다. 바흐 원곡이 품고 있던 무한한 음악적 가능성이 실제적인 소리로 구현되며 형성되는 음향은 300여 년 시간을 거슬러온 소리처럼 신비로우면서도 따뜻하다.

노라스는 "이 작품은 오케스트라 곡처럼 연주해야 한다"며 "첼로 음역대는 굉장히 낮은 저음부터 (고음 악기인) 바이올린이 낼 수 있는 소리에 이르기까지 매우 넓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넓은 음역 덕분에 우리는 마치 제1 바이올린과 제2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로 구성된 오케스트라처럼 연주할 수 있다"고 했다.

이번 연주에 참여하는 12명은 모두 쟁쟁한 독주자들이다.


자신의 연주와 해석에 자부심이 큰 독주자들을 한데 모아 합주한다는 것은 음악의 조화라는 측면에서 모험이기도 하다. 하지만 팽팽한 긴장감이 감돌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이들의 연습 풍경은 웃음과 유쾌한 대화로 가득했다. 누군가는 속도를 좀 더 빠르게 당기자고 제안했고, 프레이징(한 단락의 선율선)을 어떻게 구분할지를 두고도 제각각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서로 의견을 존중하며 접점을 찾아가는 이들 모습은 모든 것을 포용할 것 같은 따뜻한 첼로의 음색을 닮았다.

엔더스는 "첼리스트는 다양한 재능(multitalented)을 가진 사람들"이라며 "탁월한 솔리스트인 동시에 좋은 실내악 연주자이고, 오케스트라 내에선 조화를 이루는 구성원이다. 어떤 음악적 상황에서도 다양한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고 했다.

노라스는 "정확한 이유는 모르겠지만 첼리스트들은 서로 매우 친하게 지낸다"며 "첼리스트들이 함께 연주하는 것은 매우 즐겁고 기쁜 일이며, 이번 연주도 마치 휴가지에서 친구들을 만난 것 같은 기분으로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 첼리스트 12명은 '12대의 첼로를 위한 콘체르탄테' 외에도 율리우스 클렝겔 '12대의 첼로를 위한 찬가', 에이토르 빌라로부스 '브라질풍의 바흐', 아스토르 피아졸라 '사계' 등을 연주한다.

[오수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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