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경북 영주] 별 헤는 영주의 밤

입력 2021/10/05 04:01
부석사·소수서원…가을에 더 아름다운 영주
어딘가를 우연히 지나는데 노을이 눈으로 보기에도 너무 아깝게 아름다운 적이 있나요? 어두컴컴한 밤에 무섭게 혼자 운전해 가고 있는데 별이 쏟아질 듯한 차창 밖을 보며 감탄해본 적이 있나요? 우리가 여행이란 두 글자로 정의하지 않았지만, 뜻하지 않았던 장소와 평소 잘 다니지 않았던 시간, 그리고 의도하지 않았던 풍광의 궁합이 맞아떨어지는 바로 그 순간이 우연이 만들어낸 나만의 최고 감성 여행이 아닐까요. 경상북도의 시작점이 되고 소백산맥이 동서로 가로질러 사람 살기 좋은 곳, 영주가 가을 감성 명소로 떠올랐습니다. Before & After 콘셉트로 영주 여행법을 새롭게 만들어봤습니다. 예전 방식 Before와 요즘 MZ세대가 즐기는 After형 여행 방식. 끌리시는 쪽으로 달려가십시오. 가을은 훅 하고 지나니까요.

◆ Before 부석사 = 천년의 역사를 가진 역사 투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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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석사는 통일신라시대에 의상대사가 창건한 호국사찰이자 천년이 훌쩍 넘은 고찰이다.


일반적인 사찰은 산속 깊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반면, 부석사는 멀리서도 훤히 보이는 산 중턱에 위치해 절에서 내려다보는 풍광이 아주 아름답다. 절 안으로 들어가는 길이 오르막길이라 힘들어하는 이도 많지만 막상 무량수전 앞마당에 오르면 멋진 풍경에 한눈에 매료된다.

매표소를 지나 일주문과 천왕문까지는 오래된 은행나무와 사과나무가 양옆에 줄지어 있다. 천왕문을 지나 계단을 올라 회전문부터 본격적으로 부석사의 가람을 만날 수 있다. 부석사의 진짜를 보려면 차근차근 걸어 올라가면서 절집을 하나하나 자세히 봐야 깊은 맛을 느낄 수 있다. 위로 올라가는 산자락 경사를 이용해 지어진 가람의 배치 덕분에 오르면서 하나하나 보이는 건축물은 보물찾기를 하는 것 같은 재미도 준다. 회전문 앞에 보이는 건물은 범종루다. 범종루를 지나면 오른쪽을 바라보고 있는 안양루를 만난다. 안양루 밑으로 가파른 계단을 오르면 서서히 석등이 보이고, 석등 사이로 무량수전 현판이 보이고, 계단을 다 오르면 무량수전 마당에 도착한다. 무량수전을 바라본 후 뒤를 돌아보면 멀리 소백산의 길고 긴 자락과 올라오며 만났던 가람이 어우러진 부석사 최고의 아름다운 풍광을 마주하게 된다.


1400년이 훌쩍 넘은 역사와 문화재, 그리고 켜켜이 쌓인 절집과 산자락이 이렇게 조화를 이뤄낸 곳이 부석사 말고 또 있을까.

▶After 부석사 = 노을, 타종 소리의 합주 '시간을 바꿨더니…'

해가 멀리 보이는 산자락을 불타오르듯 넘어가는 풍광, 은은한 타종 소리. 때마침 협주하듯 절묘하게 타이밍을 맞춘 저녁 예불, 목탁 소리. 그 붉은 세상 안 아주 오래된 나무로 지어진 절집에 걸터앉아 있는 나를 상상했다. 낮에만 가는 부석사를 시간을 바꿔 해 질 녘에 가보기로 했다. 앞서 말한 풍광에 노을과 종소리와 목탁 소리를 더한다니 설렘이 가득했다.

일몰이 오후 6시 30분께란 정보를 보고 시간에 맞춰 오르기 시작했다. 무량수전 앞마당에 도착했을 때 해는 뉘엿뉘엿 지고 있었고, 회색빛 하늘과 천년고찰의 가람, 그리고 그러데이션을 한 듯 각기 색깔이 다르게 보이는 소백산의 산자락 풍광은 내 머릿속 잡념을 무(無)로 만들었다. 오후 7시께 하늘은 점차 붉은색으로 불타올랐다. 때마침 타종과 저녁 예불이 시작되면서 목탁 소리까지 더해졌다. 천년고찰, 역사, 문화, 호국사찰이란 단어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나는 무량수전 옆 석탑 옆에 걸터앉았다. 사진을 찍으러 갔지만 셔터를 누를 수 없었다. 그냥 걸터앉아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탄성을 자아낼 생각도 하지 못하고 내 몸의 힘이 빠지면서 새롭게 리셋되는 듯한 기운을 받았다. 눈물이 찔끔 났다.

◆ Before 소수서원 = 하버드보다 일렀던 최초 사립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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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은 주세붕이 순흥 출신 안향을 배향하기 위해 만든 우리나라 최초 서원이다. 사적 제55호로 1541년에 지어졌다. 결은 약간 다르지만 쉽게 말해 지금의 사립대학교로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대학인 하버드대가 1636년 개교했으니 조선의 사립대학인 소수서원은 95년 앞서 설립된 자랑스러운 서원이다. 조선 중후기에 걸쳐 많은 인재를 배출하면서 학문과 정치의 중심이 됐다. 그 후 경상도에 세워진 서원만 173개일 정도로 서원의 모태가 된 역사적인 서원이다.

특이한 것은 소수서원에 들어설 때 만나는 당간지주다.


소수서원 자리에는 본래 숙수사라는 절이 있었다. 숙수사의 석등, 석탑, 조그만 금동불 수십 구가 발견돼 사료 전시관 마당에 모아놓았다.

소수서원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만나는 건물은 강의를 듣던 강당인 강학당이다. '백운동(白雲洞)'이란 현판이 달려 있고 강당 안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이란 현판이 걸려 있다. 그 뒤에는 일신재와 직방재가 있는데 선비들이 기거했던 동재와 서재다. 또 개울 쪽에는 '학문을 연구한다'는 의미의 학구재와 '배움의 깊이를 더하면 즐거움이 온다'는 지락재가 있다. 제향 공간에는 문성공묘, 전사청, 그리고 안향과 여섯 사람의 초상이 봉안돼 있는 영정각이 있다(서원은 제사를 지내는 기능이 있는데 어떤 선비를 모셨는가에 따라 서원의 품격과 세력을 가늠할 수 있다.) 그 외 책을 보관하는 장서각과 제사 때 음식을 준비하던 전사청이 있다. 최초의 서원이니만큼 가진 문화재도 많고 연구할 거리도 많아 역사·문화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곳이다.

▶After 감성 여행 = 별 헤는 밤, 가봤더니…

영주시 순흥면 내죽리는 밤에 빛 공해가 영주에서 가장 적은 곳 중 하나다. 빛 공해가 없다는 것은 달이나 별을 보기 가장 좋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별을 보기 위해 영주시의 도움으로 오후 6시 이후 출입이 통제된 소수서원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해설자가 필요하느냐는 말에 필요 없다고 거절했다.

당직자가 굳게 닫힌 철문을 열어줘 휴대폰 불빛 하나에만 의지한 채 소수서원으로 들어갔다. 눈이 곧 어둠에 익숙해졌다. 양옆에 보이는 노송들이 마치 아무도 없는 어두운 밤 깊은 산속에 있는 듯한 긴장감을 더해줬다. 끼익 하는 문 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드디어 소수서원 내부에 들어섰다. 하늘을 본 순간 별들이 제각기 잘 보여주려고 서로 다툼을 하듯이 반짝였다. 학구재와 지락재 사이에 자리를 잡고 강학당과 일신재, 직방재 사이를 바라봤다. 정면에 마치 준비해놓은 듯한 나무 한 그루와 문성공묘가 피사체가 돼줬고, 문성공묘 뒤로는 노송숲이 배경을 더해줬다. 나무 위로 쏟아지는 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을 어느 정도 찍은 뒤 학구재 마루에 누워 별을 빤히 바라봤다. 주변의 불을 다 꺼줬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 생겼다. 그리고 이대로 여기 누워서 아무 생각 없이 밤새 있고 싶었다. 사진·글/이원근 여행작가

▶▶영주 감성 여행 100배 즐기는 Tip

영주시가 소수서원에서 별을 볼 수 있는 밤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소수서원 야간 투어는 최초다. 11월 말까지 매주 금·토·일요일 한정판으로 진행된다. 문화재 보호 차원으로 사전 예약을 받아 하루 50명 선착순으로만 입장할 수 있다. 사전 예약은 인터넷으로만 가능하며 영주시 관광협의회에서 운영하는 영주투어닷컴에서 하면 된다. 승우여행사를 통하면 패키지 여행을 할 수 있다. 당일치기와 1박2일 웰니스 체험코스 두 가지다.

▶▶이원근 여행작가는…

국내 여행전문가 이종승이 창업한 승우여행사를 2대째 운영하고 있다. 2015년 국내 여행 전문서적 '주말에는 아무데나 가야겠다'를 냈다. 지금도 전국을 답사하며 색다른 여행법을 발굴하고 있다.

[이원근 여행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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