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식물의 종족 번식…‘씨앗’ 그것은 우주

입력 2021/10/13 10:32
생물 가운데 번식률이 감소하는 지구의 종은 수두룩하다. 식물도 예외는 아니지만 인간을 포함한 동물에 비할 수는 없다.

968896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식물의 종족 번식에 대한 욕구는 가히 우주 최강이다. 스스로 움직일 수 없는 식물은 종족을 기후 영역 전체에 분포하도록 하기 위해 자신의 씨앗을 이동시키는 전략을 갖고 있다. 제비꽃, 깽깽이풀, 애기똥풀 등은 개미를 이용한다. 개미가 살아가기 위해 꼭 필요한 물질 가운데 ‘엘라이오솜’이 있다. 제비꽃 등은 씨앗을 만들 때 지방과 단백질이 풍부한 엘라이오솜을 함께 만들어낸다. 그러면 개미가 그 씨앗을 냉큼 물고 개미굴로 돌아가 어린 개미들에게 엘라이오솜을 먹이고 씨앗은 주변에 방치한다. 씨앗은 곧 발아하여 번식을 시작한다. 한편 감나무, 꼬리겨울살이 등은 달콤한 향기, 맛있는 과육, 눈에 띄는 색깔로 동물을 유혹한다.


동물들이 그 열매를 따 먹으면, 과육은 소화가 되고 씨앗은 배설물과 함께 대지에 안착한다. 도깨비바늘, 도둑놈의갈고리, 우엉 등은 첩보원처럼 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다 바람, 중력 등을 이용, 지나가는 동물의 털에 붙어버린다. 어느 순간, 털에서 떨어진 그 자리가 발아의 지점이 된다. 민들레, 버드나무, 단풍나무 등은 거의 무중력 무게의 씨앗을 바람에 태워 먼 곳으로 이동시킨다. 너무 가볍다 보니 생명 잉태에 실패할 확률이 높다. 그래서 민들레홀씨에 그 많은 씨앗이 달려 있는 것이다.

식물이 이렇듯 번식에 열을 올리는 것은, 그들에게는 흙과 바람, 물, 햇살만 있으면 살아가는 데 아무런 어려움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스팔트에서도 새싹은 돋는다. 농민은 물론 텃밭 농사라도 지어본 사람이라면 우리가 아무렇지 않게 뱉어버리는 잡초의 생명력에 두 손 두 발 다 들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10m 후방부터 잡초를 뽑으며 전진하다 뒤돌아 보면 잡초가 뽑힌 그 자리에서 새로운 풀들이 솟아오르고 있다는 웃지못할 농담이 그래서 나온 것이다.


시인 조기조는 ‘풀의 기술’이라는 시에서 ‘…풀처럼 살아라 / 내가 이기지 못한 것은 저 풀밖에 없다’라며 풀의 왕성한 생명력을 어머니의 이야기를 빌려 노래했다.

씨앗을 집에 가져와 정원에 뿌리거나 화분에 심어 발아하는 과정을 관찰하는 일은 생명의 고귀함과 신비로움을 심신에 배게 하는 최상의 방법이다. 식물이 보여주는 생명의 힘은 상상을 초월한다. 과연 그들에게 소멸이라는 게 존재할까. 서울식물원에서 ‘안녕! 씨앗’이라는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설치미술작가 양지윤 씨가 초등학교 교과서에 실린 15종의 씨앗을 종이 모빌로 만들어 전시 중이다. 전시장인 ‘씨앗도서관’은 씨앗과 꽃, 과일 등 사람에게 친근한 식물들의 이야기를 압축해 놓은 공간이다. 수많은 씨앗을 보관하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누구나 씨앗을 빌려갈 수도 있다. 월별로 씨앗 종자도 달라지는데, 9월에는 배조향, 꽃범의꼬리, 벌개미취, 에키나시아, 개성배추 등 다섯 종을 추천하고 있다. 안내 부스에 비치되어 있는 신청서에 간단히 메모를 하면 즉시 원하는 씨앗을 빌려준다. 데스크에 있는 대출씨앗도감을 들춰보면 내가 빌린 씨앗을 어떻게 키우는지 간단한 설명을 접할 수 있다. 빌려준다고 표현하는 것은 훗날 수확에 성공하면 거기에서 받은 씨앗을 갖고 와달라는 뜻이다. 물론 의무 사항은 아니고, 수확에 실패했다 해도 생육 사진 기록을 갖고 있을 경우 지속적인 씨앗 대출도 가능하다. 물론 이 같은 조건 없이도 씨앗 대출은 또 다시 받을 수 있다. 손가락으로 잡기조차 쉽지 않은 작은 씨앗 하나가 종족 번식에 미온적인 인간에게 해 주는 이야기는 한두 가지가 아니다. 인간은, 우리 사람은 흙과 바람과 물과 햇살만으로 살아갈 수 없을까?

[글 이영근 사진 이영근, 서울식물원]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99호 (21.10.12)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