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직장인 레시피] 리더의 진정한 가치는 ‘책임감’이다

입력 2021/10/13 10:32
리더가 결정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하다. 결정과 선택의 기준이 사적 이익이 아니라 공익과 조직에게 득이 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마지막 순간까지 많은 고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책임이 무서워 결정을 미루는 것은 그 책임을 부하에게 떠맡기는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다.

968898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책임이 크기에 권한도 많은 것이다

오너가 아닌 직장인들이 회사에서 받을 수 있는 ‘돈’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월급, 인센티브, 스톡옵션, 성과급 그리고 사표 내야 받는 퇴직금 등이다. 물론 이 중에서 대다수의 보통의 직장인들이 받을 수 있는 것은 한정되어 있다.


월급, 주말 및 야근 수당, 규정된 보너스 그리고 몇몇 대기업에서 시행 중인 성과급과, 회사가 대박 매출을 올리거나 오너 회장이 기분이 너무 좋아 정말 어쩌다 지급하는 특별 보너스 등이다. 이 모든 것을 다 더해도 많아야 연봉 혹은 연봉의 약 30% 선이다. 물론 이것 역시 적지는 않다. 이 정도를 받는 직장인이라면 전체 월급쟁이 중에서 아마도 상위 5% 범주에 들 것이다.

작은 회사, 하청 기업 등에 종사하는 직장인은 가끔은 월급이 체불되기도 하고 남들 다 오르는 월급 인상도 몇 년째 동결이다. 급여가 물가상승률을 따라가지 못해 사실상 월급이 깎이는 상황도 발생한다. 그럼에도 대다수의 직장인들은 이 월급이라도 받기 위해 오늘도 땀 흘린다.

그러다 직장인들은 종종 대기업에서 등기 이사에게 엄청난 연봉과 스톡옵션 행사 권한을 지급한다는 기사를 접한다. 오너가 아닌 전문 경영인 혹은 개발자들이 주인공들인데, 그 액수가 거의 천문학적인 숫자다. 수십 억 원은 보통이고 많으면 백억 원대를 넘어선다. 직장인들은 이런 기사를 보면서 두 가지 생각을 한다. 거의 대부분은 ‘남의 이야기’라고 치부하고, 일부는 이런 ‘대박’을 목표로 삼기도 한다. 사실 그 어떤 것이든 속내는 부럽고, 또 부럽다. 그래서 대박의 주인공들을 침 튀겨 가며 씹어도 보지만 곧 잊게 된다. 그들은 진짜 남이고, 남의 일이기 때문이다. 일테면 우리가 재벌 걱정, 연예인 걱정하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여기서 직장인들이 챙겨야 하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이 대박 직장인들의 대부분이 그 회사의 등기 임원이거나 혹은 회사의 창업 멤버, 특별한 재주를 지닌 개발자라는 사실이다. 등기 임원, 즉 등기 이사는 그 역할이 비등기 이사와 엄연히 구분된다. 등기 이사는 ‘이사회 구성원으로 기업 경영에서 중요한 의사 결정을 하고 그에 대한 법적인 지위와 책임을 갖는다’로 회사의 경영이나 결정에 대해 법적인 문제가 발생했을 때 현재는 물론이고 과거의 결정에 대해 책임을 지는 것이다. 즉, 권한 못지않게 책임에 대한 무게감 역시 크며 이 무게 값이 바로 고액 연봉이자 스톡옵션이다.

결정에 책임은 필수적이다. 그것은 결정과 선택의 기준이 사적 이익과 개인적 판단이 아닌 공익과 조직에게 득이 되는 것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결정의 순간까지도 많은 고민,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 하지만 책임이 무서워 결정을 미루는 것은 그 책임을 부하에게 떠맡기는 행위와 별반 다를 것이 없다. 리더는 결정을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 자신의 능력이 못 미치는 것이라면 당연히 전체 의견을 듣거나 타 부서와 협의를 거쳐야 하겠지만, ‘내 결정의 후유증’이 두려워 결재 서류를 책상 위에 잔뜩 쌓아놓는다면 사실 최악의 리더인 셈이다.

리더에게 주어진 책임, 이는 당연하다. 하지만 이 당연함이 직장에서는 가끔은 당연하게 적용되지 않는다. 책임에는 분명히 권한이 주어진다. 그런데 권한과 혜택만 쏙 빼먹고 책임을 지는 순간이 오면 번개처럼 사라져 버리거나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사가 의외로 많다. 어이없는 정도를 넘어 인간적인 배신감마저 안기는 상사도 사실은 많다. 진정, 부하가 따르는 상사와 리더가 갖추어야 할 미덕, 이는 거창한 것이 아니다. 학벌, 능력, 인맥, 미래 보장 등등도 있겠지만 최우선은 자신의 말과 행동에 책임을 지는 상사, 위기와 위험의 순간에 선두에서 이끄는 상사, 부하 직원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상사, 부하 직원을 디딤돌 삼아 전진하지 않는 상사다.

968898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책임감이 두렵다면 리더를 그만두라

S기업 최 이사 이야기다. S기업은 재벌급 회사는 아니다. 계열사가 10개로 재무 구조가 탄탄하고 성장세도 뛰어난 중견 기업이다.


그룹의 주력인 S기업은 섬유, 의류를 중심으로 세계적인 의류 브랜드의 주문자 생산 방식, 즉 OEM이 매출의 주를 이룬다. 물론 지금은 자체 브랜드를 개발했고 이를 바탕으로 시장에서의 성장도 주목 받고 있다. 최 이사는 회사의 생산 기지를 총괄하는 부서의 책임자다. S기업의 해외에 생산 기지는 대부분 동남아시아와 중남미에 위치한다.

최 이사는 해외 생산 담당 부서장이었다. 그는 낮에는 동남아 공장과의 연락을 주로 했고, 시차로 인해 밤이나 새벽에는 중남미 공장과 소통을 하는 고된 업무를 담당했다. 최 부장은 부서를 두 팀으로 나누어 동남아시아, 중남미를 담당하게 하고 일정 기간 후 이를 바꾸는 시스템으로 부서를 운용했다. 물론 그의 부서에는 차장급이 두 명 있었지만 자청해서 중남미 지역을 담당했다. 부서원들도 이런 최 부장의 책임감과 부하에 대한 배려를 잘 알고 있었다. 업무는 월별, 분기별로 생산 일정이 다 계획되어 있어 굳이 밤을 새거나 새벽에 출근하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그러다 일이 발생했다. 중남미 공장에 총 10여 만 벌 이상의 의류를 주문하는 일정이 급하게 생긴 것이다. 회사의 주요 고객사인 모 브랜드에서 새로운 디자인의 의류를 전략적으로 시장에 풀기 위해 급하게 오더한 것. 회사 내에서도 임원급만 알고 있는 프로젝트였다. 이미 디자인실과 자재부, 마케팅 부서는 중남미 공장에 일정과 디자인을 알려주었고, 최 부장은 수량, 생산 개시 일정을 담당하게 되었다. 최 부장은 중남미 공장과 연락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일정이 매우 촉박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현재 공장에서 생산 중인 의류도 역시 중요한 고객사의 것. 이 생산을 마치고 새로운 물품 생산에 들어가면 납기를 맞추기가 매우 어렵다는 것을 알았다. 최 부장은 담당인 유 상무에게 이를 보고하고 두 가지 방법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한다고 말했다. 첫 번째는 현재 물량 생산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새로운 의류를 생산하는 것, 두 번째는 새로운 의류의 납기일을 조금 늦추는 것이다. 유 상무는 펄쩍 뛰었다. “둘 다 기일 내에 맞추라고 해. 공장을 풀가동하고 밤을 새더라도 맞춰야 해. 이 프로젝트에 사장님이 얼마나 관심이 많은데. 최 부장이 책임지고 해”라며 닦달했다. 최 부장은 차분하게 다시 보고했다. “상무님, 저도 두 가지 일을 다 맞추고 싶지만 여건이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하다못해 중남미 공장장에게 다른 공장으로 위탁하는 것도 알아보라 했지만 이 역시 불가능하다는 연락을 받았습니다. 선택해야 합니다.” 그러나 유 상무는 철벽이었다. 그는 무조건 두 가지를 다 완성해 납기일에 맞추라고 소리만 질러댔다.

최 부장은 더 이상 유 상무와는 이야기가 되지 않는다고 판단하고 혼자 고민에 잠겼다. 첫 번째 방법인 지금 생산 물량을 중단하면 분명 이 물량도 납기일을 맞추지 못해 항의가 들어오고 아마도 거액의 손해 배상을 할 것이 뻔했다. 그렇다고 두 번째인 새로운 의류의 납기일을 못 맞추는 것 역시 손해 배상을 각오해야 했다.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어떤 선택이든 회사의 신뢰에 큰 손상을 입혀 후에 글로벌 브랜드들의 물량 수주에 영향을 끼친다는 점이었다.

최 부장은 전무와 사장에게 보고하는 것도 생각했지만 이 역시 여의치 않았다. 이제 주어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결정을 해야 했다. 부서원들 모두 이 선택의 여파가 크다는 것을 알고 최 부장의 눈치만 보고 있었다. 최 부장은 1팀에게 동남아 공장의 생산 여건을 체크하라고 지시했다. 현재 동남아 공장에서는 S기업의 자체 브랜드를 생산하고 있었다. 곧 최 부장은 현재 중남미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의 납품 지역을 체크했다. 중남미 공장에서 생산하는 물량의 대부분은 미국과 캐나다 지역으로 운송되는 것. 그리고 새로운 물량의 대부분은 유럽과 중동이었고 일부만 미국 지역이었다.

최 부장은 결단을 내렸다. 동남아 공장에 현재 생산을 중단하고 새로운 의류 생산을 지시했다. 급하게 디자인, 물량, 자재 및 원단 계획서를 보내고 납기일을 맞추라고 지시했다. 그리고 중남미 공장에는 현재 생산 중인 의류를 그대로 생산하고 이것이 끝나면 S사 자체 브랜드 의류를 생산하라고 지시했다. 급한 결정이었지만 부서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였고 동남아와 중남미 공장에서도 차질 없이 물량을 생산할 수 있었다. 물론 자체 브랜드 생산 의류의 납기는 조금 늦어졌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마케팅 부서에서 유 상무에게 항의성 보고를 한 것. 즉, 자체 브랜드 의상의 납기가 늦어져 판매처에서 클레임이 들어오고 이로 인해 판매도 미진하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면서 “최 부장의 독단적인 결정으로 인해 우리 브랜드 마케팅 시점이 늦추어지는 바람에 판매 부진까지 연결되었다”고 회사와 임원들에게 보고한 것이다. 유 상무는 최 부장을 징계해야 한다고 난리를 쳤다. “누구 맘대로 생산처를 바꾸고, 출시 타이밍도 바꾸나. 지가 무슨 임원이야? 가만 두어서는 안 되겠어. 이번에 책임을 물어야지.” 회사에서는 곧 징계위원회가 열렸다. 최 부장은 이 자리에서도 변명하지 않았다. “당시로서는 그렇게 결정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습니다. 제가 결정한 것에 대해 변명하거나 회피하지 않고 그 책임을 지겠습니다. 한 가지 부탁이 있다면 저의 부서원과 차장에게는 책임이 없으니 징계는 저에게만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회사는 최 부장에게 감봉 3개월의 징계를 내렸다. 부서원들은 모두 분노하고 항의하자고 했지만 최 부장이 말렸다. 사실 브랜드실과 유 상무가 유독 심할 정도로 최 부장에게 책임을 물은 것은 다른 이유가 있었다. 자체 브랜드로 생산한 의류의 판매 부진이 단순히 출고 시점이 늦어서가 아니라, 시장의 트렌드를 따라가지 못하고 더구나 경쟁사 디자인에 비해 뒤떨어진다는 평이 있었기 때문이다. 즉, 이를 책임지지 않기 위해 엉뚱하게 최 부장에게 실패의 책임을 물은 것이다.

그리고 몇 달 후 최 부장은 사장실의 호출을 받았다. 오너 2세인 사장은 최 부장에게 있던 일을 기획실과 감사실의 보고를 통해 다 알고 있었다. 기획실에서는 동남아와 중남미 공장의 현지 사정은 물론이고 자체 브랜드 시장에서의 반응도 모두 파악해 사장에게 보고한 것이다. 사장은 당시 최 부장의 선택과 결정이 최선이었다는 것을 알았지만 회사 임원들의 행태를 보고 싶어 최 부장의 징계까지 다 지켜보았다. 사장은 최 부장의 책임감과 부하 직원에 대한 배려와 징계 후에도 여전히 회사 일에 열심인 것을 보고 최 부장을 믿을 수 있는 직원이라고 판단했다.

다음 날, 회사의 인사 발령이 났다. 최 부장은 생산 담당 총괄이사로, 최 부장 부서의 팀장인 차장은 부장으로 발령이 났다. 최 부장은 부장 승진 2년 만에 동기들 중에서 가장 먼저 임원이 된 것이다. 그리고 유 상무는 생산 총괄에서 국내 영업관리 임원으로 좌천되었다.

최 부장의 선택과 결정이 해피엔딩으로 끝난 것은 행운이 따른 것도 있지만 최 부장은 두 가지에서 리더로서의 역할을 다했다. 첫 번째는 결정의 순간에 도망가지 않았다. 하다못해 유 상무가 최 부장에게 결정과 책임을 미루었듯이 그 역시 중남미 담당 차장에게 책임을 전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최 부장은 최선의 방법을 생각해 결정을 내렸고 비록 모함이지만 징계도 책임으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두 번째는 그는 부서원들에게 피해가 돌아가는 것을 막기 위해 본인만 징계를 받고 이를 그대로 불만 없이 받아들인 것이다. 당연히 최 부장도 억울했지만 혹시라도 자신이 항의하거나 징계를 받아들일 수 없다고 하면 그 피해가 부서원들에게도 미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자제한 것이다. 이 역시 쉬운 선택이 아니다. 고민하고 결정하고, 그 책임을 받아들이고, 책임에 따르는 질책을 부하 직원과 나누지 않고 자신이 온전히 받는 것. 그런 의미에서 최 이사는 리더의 자격을 충분히 갖춘 셈이다.

최악의 신체 조건을 이겨 낸 불굴의 리더

여기 한 리더가 있다. 바로 대영 제국의 해군 제독 넬슨이다. 그는 해군 제독임에도 뱃멀미에 시달리고 오른쪽 눈과 오른팔을 전투 중에 잃었다. 또한 유부녀와 염문설로 비난을 받기도 했지만 영국 국민은 넬슨을 사랑한다. 그것은 그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승장이기 때문만은 아니다. 오히려 위기와 좌절을 이겨 내고 부하들에게 용기와 임무의 중요성을 불어넣어 주었고, 위기 때마다 항상 선두에 섰기 때문이다.

넬슨 제독은 영국이 낳은 위대한 해군 전사이며 위기의 순간을 승리로 이끄는 리더였다. 그의 동상은 지금도 런던 한복판에 서 있다. 트래펄가 광장에 들어서면 55미터 높이의 돌기둥 위에 넬슨이 청동 사자상 네 마리를 거느리고 서서 기상과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그는 트라팔가르 해전을 승리로 이끌어 이후 영국을 100년간 전 대양을 지배하는 ‘해가 지지 않는 제국’으로 만들었다.

넬슨은 1758년, 영국 노포크에서 11남매 중 여섯째로 태어났다. 그의 집은 가난했다. 넬슨은 병으로 많은 형제를 잃었고 아홉 살에는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났다. 넬슨은 학교를 중도에 포기하고 해군에 입대한다. 배에서 키잡이로 선원 생활을 시작한 뒤 해군 사관 학교에 입학했다. 그리고 불과 21세에 최연소 함장이 되었다. 이때부터 넬슨은 주로 서인도 제도와 미국 독립 전쟁에 참가했다. 1780년 스페인과의 전투에서 패배했지만 넬슨은 평소의 성실함과 열정을 인정받아 징계를 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때 넬슨은 말라리아에 걸린다. 사경을 헤맨 끝에 겨우 안정을 찾았지만 영국으로 돌아와 1년간 요양을 한다. 그리고 두 살 연상의 미망인 프랜시스 네스빗과 결혼한다. 1794년 넬슨에게는 잊을 수 없는 전투가 벌어진다. 코르시카섬 인근의 칼비 전투를 지휘하던 넬슨은 승전했지만 오른쪽 눈을 잃는다. 이후에도 그에게는 신체적 불행이 끝없이 찾아온다. 넬슨은 성 빈센트 해전에서 오른팔에 적탄을 맞는다. 팔이 썩어 들어가자 넬슨은 오른팔을 잘라 냈다. 이제 그는 오른쪽 눈과 오른팔이 없는 불구의 선장이 되었다. 넬슨의 좌절은 컸다.

넬슨은 좌절을 딛고 불 같은 의지로 다시 복귀했다. 당시 나폴레옹은 영국을 정복하기 위해 영국의 자원 보고인 인도 점령을 계획한다. 그리고 우선 이집트 정벌에 나선다. 넬슨은 지중해에서 함대를 지휘하며 프랑스 함대 공격 계획을 세웠다. 하지만 공격 직전 태풍이 불어 프랑스 함대를 놓치고 만다. 부관들은 항구에 정박하고 새로운 전략을 수립하자고 권유하지만 넬슨은 듣지 않는다. 그는 몇 달 동안 지중해 탐색 작전을 펼친다. 이런 끈기로 넬슨은 프랑스 함대가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정박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기습전으로 프랑스 함대를 전멸시킨다.

968898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승리보다 값진 것은 부하의 목숨이다

나폴레옹은 영국을 공격할 프랑스-스페인 연합 함대 33척을 구성한다. 넬슨은 프랑스 침략을 막는 중책을 맡았다. 넬슨은 27척의 함대를 몰고 스페인 연안에 도착했다. 기함은 빅토리 호였다. 1805년 10월21일 트라팔가르, 넬슨의 함대는 출격했다. 넬슨은 선두에서 함대를 지휘했다. 프랑스-스페인 함대의 20여 척 함선은 침몰하고, 영국군에게 나포되었다. 그때 한 발의 총성이 울렸다. 프랑스 저격수의 탄환이었다. 총탄은 넬슨의 등뼈에 박혔다. 넬슨은 지휘를 멈추지 않았지만 얼마 후 넬슨의 마지막이 다가왔다. 의사가 다가오자 넬슨은 “나보다 병사를 돌봐 주라”고 돌려보냈다. 그리고 “제독으로서 내 임무를 완수할 수 있게 도와주신 신께 감사 드린다”는 말을 남기고 숨을 거두었다.

당시 해군은 사망하면 바다에 수장하는 것이 관례였지만 병사들은 넬슨의 유해를 보존하기로 결정했다. 병사들은 유해가 부패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유해를 브랜디가 가득 담긴 술통에 넣었다. 드디어 영국에 도착해 국장으로 장례를 치렀다. 영국 역사에서 왕족이 아닌 이가 국장의 예우를 받은 것은 넬슨 제독, 워털루 전투의 영웅 웰링턴 공작 그리고 윈스턴 처칠 수상 단 세 명뿐이다. 넬슨의 유해는 성 바울 대성당에 안치되었다. 또한 런던 트래펄가 광장에 넬슨의 동상이 세워지고, 넬슨이 지휘했던 기함 빅토리 호는 포츠머스 해군 기지에 영구 보존되었다. 또한 그의 몸을 관통한 총탄은 원저 성에, 그의 제독 제복은 국립해양박물관에 전시되었다. 또 하나, 넬슨의 유해를 꺼내기 위해 술통을 여니 술통이 텅 비어 있었다. 병사들이 넬슨의 혼이 담긴 술을 마시고 싶어서 한 잔씩 먹어서 술통이 빈 것이다.

넬슨은 천성적으로 약골이었다. 키도 작았고 우울증도 있었으며 사지 마비 증상도 있었다. 전투에서 오른쪽 눈과 오른팔을 잃었고, 각혈까지 하는 등 신체적으로는 거의 병자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의 정신력은 강인했다. 그는 불굴의 의지로 신체적 약점을 이겨 내면서 부하들의 잠재 능력을 끌어내는 리더십을 보였다. 넬슨은 부하들의 이야기를 경청했다. ‘담요와 식수가 부족하다’, ‘읽을 책을 달라’ 등 그들의 사소한 요구조차 소홀히 하지 않았다. 또 장교 식당이 따로 있었지만 넬슨은 부하들과 같은 메뉴의 식사를 했다.

그리고 그는 부하들을 아끼고 그 표시로 칭찬에 인색하지 않았다. 상관이 자신의 존재 가치와 능력을 인정하고 있다고 믿는 부하들은 투지와 열정에서 그 어떤 군대보다 강했다. 넬슨은 인자하고 베풀 줄 아는 상사였다. 그는 “가장 큰 승리는 이기는 것보다 부하들이 죽거나 다치지 않는 것이다”고 말하는, 진정 부하들을 사랑하는 리더였다. 넬슨 리더십에서 빼놓을 수 없는 점은 그가 전투에서 숨지 않았다는 점이다. 당시 대개의 함장이나 장교들은 방패 뒤에서 지휘를 했다. 하지만 넬슨은 항상 선두에 있었다. 심지어 적선에 오르는 일까지 있을 정도로 넬슨은 부하 직원과 항상 같이 하는 리더였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799호 (21.10.12) 기사입니다]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