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로펌 사표내고 조각가 데뷔"…이런 검찰총장도 있습니다

입력 2021/10/13 17:35
수정 2021/10/13 19:49
테라코타 작가 데뷔 전시회

고교 시절 조소대회 1위
"그때 만진 흙이 그리워
검사장 때도 조소 공부
흙작가, 취미 아닌 직업"
22일부터 북촌서 데뷔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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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작품 50여 점의 전시회를 여는 김준규 전 검찰총장. 앞쪽 작품은 탕자를 반기며 뛰쳐나가는 예수를 형상화한 `돌아온 탕자`, 소년이 손을 들고 벌 서는 뒤쪽 작품은 `억울하다`이다. [이승환 기자]

김준규 전 검찰총장(65)에게는 소년 시절 이색적인 경력이 있다. 고교 1학년 때 홍익대가 주최한 미술경시대회에서 흙작품으로 '조소 부문 1위' 성적을 낸 것. 이후 1년간 미대 진학을 깊이 고민했던 그는, 그러나 세상이 다 알 듯 법학을 공부한 뒤 평생 법조인으로 살았다.

그는 2019년 말 변호사로 재직하던 로펌에 사표를 냈다. 남은 삶 동안 오직 흙을 만지기 위해서였다. 이달 말 테라코타 전시회를 열고 데뷔하는 '김준규 흙작가'를 흙가루가 묻어나는 서울 용산구 자택 작업실에서 최근 만났다.

"흙만큼 우연적인 재료도 없어요. 말라 깨질 수도 있고 구운 뒤 색이 변할 수도 있지만 그저 받아들여야 하는 재료입니다. 불완전함이 흙의 매력 같아요." 김 전 총장 손이 흙투성이가 된 건 은퇴 후의 일이 아니다.


물을 붓고 쇠방망이로 때려가며 흙을 곱게 만들던 10대 시절 기억은 아직 선명하다. '흙 사랑'은 이후로도 이어졌다. 1994년 주미 한국대사관 법무협력관 근무 시절에는 클레이 모델링 강의를 수강해 홀로 작업했고, 검사장 승진 후 광주고검 차장검사로 일하던 2004년에는 조선대에서 미대 교수를 찾아 강의를 들었다.

"흙을 만지면 편안해져요. 서양 대리석은 정밀하지만 우리 동양은 거칠되 형태와 움직임에 영향을 받습니다. 저는 그걸 아날로그적 편안함이라고 부릅니다. 그 편안함이 흙을 찾게 해요."

만 65세에 이르러 불현듯 느껴진 근심이 그를 '두 번째 직업'으로 이끌었다. '성공의 후광만 붙들고 살아갈 순 없다'란 생각이 찾아왔고 '새로운 삶을 살려면 기존의 삶을 포기해야 한다'는 생각까지 더해졌다. 책이 빼곡했던 서재에 옹기토 조형토 동명토를 가져다 놓고 매일같이 떠오르는 형상을 흙으로 빚었다. "이제 로펌이 아니라 서재와 거실이 직장"이라고 그는 말한다.


"총장을 지냈으니 마라톤에서 우승한 건데, 끝나고도 트랙을 뛰는 사람 같더라고요. '왕년'의 기억, 요즘말로 '라떼는 말이야'만 갖고 살 순 없잖아요. 흙작가는 지금의 제게 취미가 아니라 직업입니다. 낚시꾼은 하고 싶을 때 고기를 잡지만 어부는 추우나 더우나 배를 타잖아요."

흙에 천착하는 김 전 총장이 가장 애정하는 조각가는 한국 구상조각의 거인으로 불리는 권진규 작가(1922~1973)다. 고교 시절 처음 흙작품을 만들기 시작한 이유도 권 작가 영향이 컸다. "권진규 작가는 흙의 의미를 깊이 고민하신 분"이란 이유에서다.

"흙의 의미를 탐구하셨던 권 조각가를 흠모해 그분 사진 한 장을 두고 부조 형태로 만들어보기도 했어요. 하지만 아직 완성이라고 할 수 없어 제목도 '미완성'이라 정했습니다."

김 전 총장이 생각하는 자신의 대표작은 자소상(自塑像) '메멘토 모리'다. 김 전 총장 자신의 얼굴을 빚은 작품인데 곱게 구워진 다른 수십 점의 작품과 달리 이 작품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듯 갈라져 위태로워 보인다.

"사람은 자기 얼굴을 입체적으로 볼 수 없잖아요. 그래서 자소상을 빚었는데 구웠더니 갈라져 실패작이 됐어요. 생각해보면 사람은 다 흙으로 돌아가잖아요. 그래서 부서질 듯한 모습도 작품으로 두기로 했어요." 그의 흙작품 50여 점을 모은 첫 전시회 '흙을 만지며 다시, 나를 찾다'는 이달 22일부터 28일까지 서울 북촌갤러리 일백헌에서 열린다. "이번 첫 전시회 이후 100점을 만들 계획"이라는 '김준규 작가'는 "흙작품을 만들며 깨달은 하나의 사실은 죽을 때까지는 모든 게 습작이란 점"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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