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직장인 레시피] 회사와 상사의 생각은 항상 일치하지 않는다

입력 2021/10/14 15:07
‘부러우면 지는 거다’는 말이 있다. 이 말의 본질은 ‘내가 없는 것 혹은 타고난 너의 재능이나 물질이 부러워서 질투가 난다. 그럼에도 질투심을 내보이기 싫어 내 감정을 감춘다’이다. 인간의 본성 중 가장 컨트롤 안 되는 것이 ‘질투심’이다. 분노, 실망, 거짓 등은 잠시 상대를 속일 수 있지만, 질투와 시기는 아무리 감추려 해도 주머니 속의 바늘처럼 표시가 나기 마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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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러우면 질투심이 따라온다

우리는 세계 최고의 부를 가진 일론 머스크, 제프 베이조스를 부러워하지만 그들을 질투하지는 않는다. 나와는 너무나 다른 별세계 인물이라는 생각 때문이다. 또 장동건, 정우성, 원빈, 송강의 유월한 유전자를 부러워하지만 그들을 질투하지는 않는다. 이 또한 그들이 사는 세상과 내가 속한 세상이 다름을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면 질투는 어느 순간, 어떤 대상을 향해 터질까. 그것은 의외로 가까운 상대에게 꽂힌다. 진정한 친구는 슬플 때 같이 울어 주는 친구가 아닌, 기쁘고 좋은 일이 생겼을 때 팔짝팔짝 뛰며 기뻐해 주는 친구다. 그만큼 친구나 심지어 형제간이라도 ‘상대의 잘남과 대박’을 인정하기 쉽지 않다. 그렇다. 질투의 대상은 나와 가장 근접 거리에 있다. 왕조 시절 구중궁궐에서 후궁은 왕비를, 또 다른 후궁을 질투했고, 왕의 총애를 받는 신하는 다른 이들의 질투의 타깃이 되었다. 친구, 가족간에도 질투는 있다. 학창 시절 1등을 좇는 2등에게 1등은 목표이자 질투의 대상이고, 무엇이든 잘하는 우등생인 장남을 상대로 차남은 질투한다. 서열, 순서, 직급의 차이가 있는 곳에서는 그래도 조금 낫다. 예를 들어 장남에 대한 차남의 질투, 왕비에 대한 후궁의 질투, 이조판서에 대한 이조좌랑의 질투는 그 독과 치열함이 덜하다. 하지만 반대의 경우라면 질투는 그 독성을 강하게 드러낸다. 후궁에 대한 왕비의 질투, 임금이 신임하고 총애하는 승지에 대한 판서나 정승의 질투, 차남의 우월함을 자랑하는 부모에 대해 장남은 무섭게 질투의 마음을 키우는 것이다.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다. 지위와 직책을 떠나 조직에는 특별한 능력자가 있다. 사실 ‘그 사람’ 덕분에 내가 편안하게 직장 생활을 영위해도 그에 대한 질투는 숨길 수 없다. 차라리 그 대상이 상사라면 속은 편하다. 하지만 그 상대가 부하라면 상사는 그의 존재를 인정하면서도 속으로는 그 잘난 부하의 ‘단 한 번의 실수’를 기다린다. 질투의 본질은 부러움에서 시작된다. 부러움이 질투로, 질투가 시기가 되어 결국 모함으로까지 발전한다. 질투 대상자에게 이럴 때 필요한 것이 ‘겸손’이다. 하루에도 몇 번씩 ‘나는 과장이고 저 사람은 부장이다’를 속으로 외쳐야 한다. 바보처럼 공은 양보하고 실수는 뒤집어쓰라는 것이 아니다. 공생 관계를 유지하는 최선의 방법을 찾는 것이다. 지금, 직장 상사들을 살펴보라. 그들의 마음속 아량과 관용이 지위에 따라 그들의 사무실 크기처럼 커지는 것이 아니다. 지킬 것이 많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자리와 마음에 울타리가 생긴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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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칙만으로 공생의 끈을 끊지 마라

여기 S기업 박 차장이 있다. 그는 매우 유능한 직장인이다. 그의 부서에는 바로 위에 심 부장이 있고 동급 차장이 3명, 그리고 부원 10여 명이 함께한다. 하지만 이 부서 실적의 30% 이상을 사실상 박 차장이 담당한다. 심 부장은 박 차장의 존재가 고마우면서도 부담스럽다. 심 부장은 항상 그리고 은연중에 ‘내가 상사’라는 점을 박 차장과 부서원에게 강조한다. 박 차장 역시 미련퉁이는 아니다. 겸손한 자세로 심 부장을 깍듯하게 모신다. 동급 차장이나 부서원들에게도 박 차장은 나이스한 동료이자 상사다.

하지만 박 차장의 마음속에는 프라이드가 있다. 공채로 회사에 입사해 차장까지 동기보다 빠르게 승진한 그는 자신의 능력을 회사와 상사가 인정하고 있다고 여긴다. 그는 이에 강한 자부심과 책임감을 느끼며 부서에서 자신의 성과를 은근히 즐긴다. 그리고 가끔씩 임원들이 불러 칭찬하고 격려할 때면 뿌듯한 마음에 회사에 대한 충성을 다짐한다. 박 차장의 주 임무는 거래처를 선정하고 이를 통해 납품받은 제품을 현장에 배치하는 것이다. 그는 새로운 거래선을 개발하고 이것이 매출 상승으로 이어지는 데 희열을 느낀다. 박 차장이 거래선을 정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원칙적으로 매뉴얼과 기준에 부합된 물품이나 회사를 선정한다. 어떠한 사적인 이익과 동기도 작용하지 않는다. 한때 박 차장의 대학 동창, 집안 인척들도 박 차장에게 은근히 부탁을 했지만 박 차장은 단호했다.

그 무렵 5년 동안 S기업과 거래를 한 B기업의 거래 연장건이 생겼다. 박 차장은 5년 동안의 실적과 새로운 거래처의 조건을 검토했다. 물론 B기업의 기술 수준, 납품 기일 맞춤 등등이 결함이 있지는 않았다. 하지만 박 차장은 B기업보다 새로운 C기업의 조건이 훨씬 좋다고 판단했다. 두 회사를 비교하는 자료를 만들고 향후 매출 전망표를 작성했다. 그때 동료인 오 차장이 박 차장에게 만나자고 한다.


술자리에서 오 차장은 “B기업도 잘 했잖아. 계약 기간을 3년으로 줄이더라도 B기업에 오더를 줘. 다 너를 위해서야. 그리고 B기업 우리 담당 이 부장이 심 부장과는 고등학교 동창이야. 나야 네 성격을 알지만 너무 원칙만 내세우면 심 부장이 너를 가만두지 않을 수도 있어. 그러지 않아도 은근히 벼르고 있던데. 그리고 네가 모르는 것 같아서 알려주는데, B기업에 심 부장만 연관된 것이 아니야. 우리 회사 더 윗선이 연결된 회사라는 말이 있어. 심 부장은 사실상 그 줄을 관리만 하고. 윗선이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실세라는 말이야. 무슨 말인지 알지? 잘 생각해”라고 박 차장에게 말했다. 하지만 박 차장은 단호했다. “기준과 원칙에 부합되면 내가 하고 말고 할 게 없어. 당연히 그 회사가 되는 거야. 동창이라고 봐줄 것도 없어. 그리고 회사 윗선이 관련되었더라도 상관없어. 그 사람이 누군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내 결정이 회사를 위한 길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야. 난 상사의 이익보다 회사의 이익에 부응하는 결정을 내리면 되는 거야. 심 부장이 뭐라 해도 어쩔 수 없어. 내가 새로운 거래선인 C회사에서 차 한 잔, 밥 한 끼 먹은 거라도 있어? 충고는 고맙지만 내 생각과 기준대로 할 거야.”

심 부장이 박 차장에게 B회사와의 계약 연장을 은근히 내비치는 자리에서 그는 새로운 C기업을 제안했다. 물론 C회사의 조건이 훨씬 이익이었다. 하지만 심 부장은 그 차이가 크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심 부장은 계속 박 차장에게 의견을 피력했지만 박 차장은 임원 보고 회의에서 자신의 의견을 개진했다. 결국 새로운 거래선으로 C회사가 3년 계약을 체결했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당한 심 부장은 속으로 결심했다. ‘그래, 너 잘났다. 너는 호랑이 수염을 건드린 거야. 직장 생활 너만 하냐. 나도 다 생각이 있어서 한 말을 단칼에 날려? 어디 실수 한 번 해 봐라. 내가 가만두나.’

1년 뒤, 박 차장이 제안한 C회사가 도마에 올랐다. 납품 기일을 못 맞춘 것은 물론 품질에서도 결정적인 실수를 저지른 것. 박 차장은 사방을 뛰어다니며 원인을 찾았지만 C회사는 죄송하다는 말만 하고 원인을 밝히지 않았다. 회사는 급하게 원래 거래선인 B회사에 부탁해 겨우 물량을 맞췄다. 이 일에는 심 부장이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S기업은 시장에서 막대한 손실을 입을 수 있는 상황을 가까스로 모면했다. 회사에서는 징계위원회를 열었다. C회사의 선정 작업부터 시작해 납품과 사고 원인 그리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B기업을 활용한 심 부장의 활약까지 모두 파악했다. 결국 몇 번의 회의 끝에 박 차장은 시말서를 쓰고 타 부서로 좌천되었고, 심 부장은 승진해 이사 대우 본부장이 되었다.

박 차장은 실망했다. 뭔가 음모가 있다고 판단했지만 알 수가 없었다. 1년이 지나 박 차장은 결국 사표를 쓰고 타 회사로 전직했다. 그 무렵 오 차장과 만났다. 오 차장은 이야기했다. “네가 억울하게 당한 거야. B회사가 심 부장이 밀어 주는 회사는 맞는데, 그건 표면적이고 실질적으로는 넘버1 조카인 유 부사장님이 관리하는 회사야. 네가 역린을 건드렸어. 물론 너는 B회사 대신 C회사로 대체하면 회사에 이익이 발생한다고 했지만 윗선에게 그 정도 규모는 문제가 아니야. 우리 같이 조 단위 회사에서 연 몇십억 원이 큰 건 아니잖아. 또 유 부사장님, 심 부장뿐 아니라 네 부서 애들 모두 B회사에서 명절과 분기마다 상품권도 받고 그랬어. 너만 모른 거라고. 그 사람들이 필요로 인해 알면서도 서로 눈 감아 주는 거였는데. 아무튼 힘 내라.”

물론 회사 입장에서는 단돈 1원이라도 절약할 수 있는 박 차장의 제안이 맞겠지만 조직원들의 생각은 달랐다. 그들에게는 같은 부서, 회사, 동일 기업 등으로 연결된 커뮤니티가 있고 그 안에서 공생이 이루어진다. 박 차장은 이 공생의 연결 고리를 끊은 것이다. 그는 실적이라는 눈에 보이는 숫자만 생각했지 그 숫자를 만들어 내는 사람과의 관계를 무시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다.

오래전 이야기다. 모 재벌사에서 백화점 사업에 진출했다. 그때 필자가 잘 아는 친구가 그 재벌사와 사돈이 되었다. 여동생이 바로 백화점 유통사의 사장으로 처남 매부 지간이 된 것이다. 친구는 매부를 만나 백화점에 작은 가게를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수십 층의 백화점에 입점하는 업소는 수백 개, 그중에 작은 아이스크림 가게 하나 정도는 쉽게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매부의 답변은 의외였다. “형님, 도와드리고 싶은데 저는 힘이 없습니다. 지금 백화점 두 개 세웠는데 솔직히 형님 차례까지 가려면 앞으로 백화점 8개는 더 세워야 합니다. 집안 어른들이 이미 다 선점하셔서 담당인 저도 권한이 없습니다.” 그렇다. 재벌의 직계로 담당 사장인 그도 백화점에 아이스크림 가게 하나 입점시킬 권한이 없었던 것이다.

또 있다. 거대한 유통사의 고위 임원이 있었다. 당시 그 유통사는 두꺼운 카탈로그를 100만 권가량 만들어 가정에 배포하고 있었다. 그 고위 임원을 잘 아는 절친이 마침 인쇄 출판을 하고 있어 그에게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미안하다. 그것은 나도 건드릴 수 없는 영역이다. 차라리 다른 부탁을 들어줄게.” 또 하나의 예가 있다. 국내 굴지의 가구 목재 회사의 경영 사장이 있었다. 그 회사에서 가구를 만들고 목재를 가공하는 과정에서 나무 조각과 톱밥이 엄청나게 나왔다. 당시 화목 난로가 유행하고 있었다. 사장의 인척이 사장에게 찾아가 톱밥을 받을 수 있겠냐고 부탁했지만 그 역시 거절되었다. 사실 거절보다는 권한의 문제였다. “내가 명색이 사장이지만 이 건은 들어줄 수가 없어. 오너가에서 직접 관여한 부분이고 이미 다 사용처가 있어. 미안하다.”

그렇다. 크고 작은 기업을 막론하고 어떠한 권한을 행사하고 그 권한에 이익이 발생하는 곳에는 조밀하게 그리고 은근하게 연결된 공생과 공존의 끈이 있다. 설사 그것이 공정과 정의 그리고 원칙에서 약간은 비틀어져 있어도 모두 공정이라는, 원칙이라는 잣대의 칼로 끊어 낼 수는 없다. 너무나 많은 사람이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


100명이 연결된 끈을 단 한 명이 원칙이라는 칼만으로 끊어 낸다는 것은 100명을 모두 적으로 돌리는 것이다. 그래서 관행이라는 것, 서로 좋다는 것을 타파해야 한다고 말한다. 물론 옳은 소리지만 회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단 10억 원의 이익을 위해, 그것이 회사의 이익이라도 1억 원으로 맺어진 공생 관계는 10억 원을 크게 바라보지 않는 것이 조직원의 생리인 것이다. 물론 10억 원도 1억 원도 큰돈이다. 하지만 1억 원이 100명과 관련된 돈이라면, 공생의 관계에서 스스로에게 자문하는 부정과 부당의 몫은 각자 100만 원이 되어 그들의 죄의식, 부정한 행위에 스스로 면죄부를 끊는 것이다.

가끔 질문한다. 회사의 이익과 상사의 이익 중 무엇이 먼저인가. 대개는 두 가치가 일치하지만 일치하지 않을 때는 어떡할 것인가. 고민되는 질문이다. 원론적으로는 회사의 이익이 앞선다고 말하겠지만 이 역시 강하게 주장하기에는 주저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우리는 역사에서 그 예를 찾아본다. 바로 『삼국지』 조조의 제1 책사이자 한나라의 마지막 충신 ‘순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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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와 상사의 생각은 일치하지 않는다

순욱은 촉의 제갈공명, 오의 주유처럼 전쟁터를 누비며 대군을 지휘하지 않았다. 또한 화려한 2인자도 아니다. 게다가 조조에게 중요했던 관도대전, 적벽대전에 참전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는 조조가 안심하고 안방을 맡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의심 많은 조조 옆에서 무려 20년을 활약했던 순욱. 그의 마지막은 두 가지 선택지였다. 조조의 역심을 인정하고 화려한 2인자로 살 것인가, 아니면 원칙을 지켜 한나라의 마지막 충신이 될 것인가? 순욱의 선택은 죽음을 전제로 한 ‘마지막 충신’이었다. 그는 20년간 한순간도 자신이 한나라의 신하라는 것을 잊지 않았다. 그런데 그 점을 조조와 위나라의 신하들은 ‘배신’으로 생각했다.

조조는 수많은 장수와 책사를 거느렸다. 하후돈, 서황, 허저 등의 명장이 있었고, 책사로는 곽가, 양수, 가후, 정욱, 사마의, 순유 등 당대 천재들이 우글우글했다. 하지만 이 중에서도 조조가 가장 신임하면서도 존중한 인물이 바로 순욱이다. 청류세력의 구심점이던 순욱은 지략과 담력, 고고한 인품을 갖추었고, 원칙과 명분을 지킬 줄 아는 선비였다. 아무도 믿지 않는 성격의 조조였지만 순욱만은 예외였다. 조조는 수많은 전쟁터를 직접 출정했다. 그때마다 본거지를 믿고 맡긴 단 한 사람이 바로 순욱이다.

189년 순욱은 첫 관직에 오른다. 당시 조정은 동탁의 세상. 순욱은 이내 관직을 버리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그때 순욱의 명성을 듣고 지방 호족 한복이 그를 초빙한다. 순욱은 한복에게 간다. 하지만 한복은 이미 원소에게 제압당했다. 원소는 순욱에게 출사를 청하지만 순욱은 ‘원소는 소인배다’라며 그를 떠난다. 순욱은 조조를 찾는다. 조조는 순욱을 보고 “나의 장자방이 왔구나”라고 반겼다. 이때가 191년의 일이다. 순욱이 조조를 선택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당시 한 황실은 껍데기만 남아 있었다. 황제를 좌지우지하는 동탁을 아무도 제지하지 못했다. 즉 한나라와 황실을 지키겠다는 충의지사가 사라진 것이다. 그때 조조는 ‘역적 동탁을 멸하자’를 명분으로 내세웠다. 조조의 이 모습이 순욱 눈에는 충성심 있는 사람, 도리와 예를 지켜 한나라를 보좌할 사람으로 보여 순욱은 조조를 선택한 것이다.

194년, 조조는 도겸을 정벌하기 위해 떠나면서 텃밭 연주를 순욱에게 맡긴다. 물론 연주에는 소수 병력이 남아 있었다. 그때 장막과 진궁이 여포와 합세해 반란을 일으켰다. 그들은 기세등등했다. 연주 대부분이 반란군 손에 넘어가고 순욱의 영향력이 미치는 성은 견, 범, 동아 단 3개뿐이었다. 장막은 순욱을 회유하면서 계략을 꾸몄다. 하지만 순욱은 이를 간파하고 하후돈을 불러 이들을 진압했다. 그때 예주자사 곽공이 수만 명을 이끌고 연주로 들어왔다. 곽공이 여포와 공모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순욱이 나섰다. 그는 하후돈과 정욱에게 “내가 곽공을 만나겠다. 곽공은 급하게 군대를 몰아 연주로 왔다. 여포와 계책을 꾸밀 시간이 없다. 그를 설득해 우리 편이 되든가 아니면 중립을 지키도록 하겠다. 그러니 정욱이 나서서 백성들을 설득해 달라. 우리가 실패하면 조조 공은 터전을 잃게 된다”고 임무를 주었다. 순욱은 곽공을 설득했다. 곽공에게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순욱은 정면 돌파를 선택해 혼란을 수습했다. 순욱 덕분에 연주는 무사할 수 있었다. 조조는 급하게 귀환했다. 그리고 순욱을 치하했다. “순욱이 아니었으면 나는 집도 없이 떠도는 신세가 될 뻔했다.”

196년, 순욱은 조조의 위세에 명분이라는 날개를 달아 주었다. 그것은 천자를 모시는 일이었다. 천자 헌제는 이리저리 떠도는 신세였다. 그는 낙양에서 나와 갈 곳을 찾았다. 맨 처음 후보는 원소였다. 원소는 “이제 한 황실은 어려운 노릇이 됐다. 괜히 헌제를 모시면 행동에 구애를 받을 것이다”며 거절했다. 순욱은 조조를 설득했다. “천자를 모시면 군웅들의 마음을 잡고 그들을 복종케 할 수 있습니다.” 조조는 허락했다. 조조는 헌제와 함께 허도로 갔다. 그곳이 조조가 만드는 새로운 세상의 수도이자 중심이 되었다. 조조는 헌제를 등에 업고 정치적 명분에서 중원의 어떤 제후보다 당당한 위치에 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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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사 조조가 아닌 회사 한나라가 중요

200년, 조조와 원소는 칼끝을 서로에게 겨누고 있었다. 두 사람 중 하나는 없어져야 할 운명이었다. 조조에 비해 원소의 세력은 강력했다. 조조는 연주와 예주 2개 주를 장악하고 있었지만 원소는 유주, 기주, 양주 등 3개 주를 보유하며 군사도 100만 명에 육박하했다. 지략이 뛰어난 조조도 전면전을 두려워할 정도였다. 세상에는 ‘조조 열세론’이 급격히 퍼져 나갔다. 이때 순욱이 나섰다. 조조와 장수, 책사가 모인 가운데 순욱이 ‘조조 필승론’을 펼쳤다. “세상은 원소의 세가 강하다고 말하지만 잘못된 판단입니다. 원소는 군사는 많으나 조정으로부터 관직을 받지 못한 군벌입니다. 주공은 천자의 명을 받은 대장군으로, 정치적 명분이 있습니다. 또한 원소에게는 사람을 부리는 재주가 없습니다. 그에 비해 주공은 용맹과 지혜를 겸비했으며 법도와 순리를 얻어 천하에 당당하게 나설 수 있습니다. 당연히 원소와 싸우면 백전백승할 것입니다.” 조조는 순욱의 말을 듣고 군사를 일으켰다. 물론 연주와 예주 등 조조의 터전을 지키는 임무는 순욱에게 맡겼다. 하지만 전황은 지지부진했다. 조조와 원소는 서로 대치한 채 일진일퇴를 거듭했다. 관도성을 수비하는 조조나 포위한 원소군 모두 서서히 지쳐 갔다. 조조는 순욱에게 편지를 썼다.

“군사들은 지쳐 가고 있다. 지금은 포위된 채 수개월 동안 한 발짝도 못 움직이는 처지다. 철수하고 훗날을 도모하는 것이 어떤가?”

순욱은 반대했다. “적은 100명인데 주공은 10명의 군사로 원소와 맞서고 있습니다. 오히려 원소가 조임을 당해 한 걸음도 못 뗀 지 반년입니다. 원소는 관용이 없습니다. 장수가 승리하기 위해서는 계략, 도량, 무력, 덕이 필요한데 이 모든 것을 주공은 갖추고 있으나 원소는 없습니다. 필히 주공이 승리할 것입니다. 제가 정세를 보니 곧 그의 군대는 배신이 난무하고 내란이 일어날 것입니다. 조금만 더 힘을 내면 승세를 얻을 것입니다.”

순욱의 예언대로 원소군은 사분오열되고 배신이 난무했다. 이때 허유가 원소군의 심장에 배신의 칼을 꽂았다. 바로 원소군의 비밀 군량 창고 위치를 알려준 것이다. 원소를 제압하고 조조는 승상 직위에 오르며 중원의 강자가 되었다. 조조는 순욱에게 후의 직책을 내리고 자신의 딸을 순욱의 장남 순운과 결혼시켰다. 조조와 순욱은 사돈이 된 것이다. 조조는 두 딸을 시집 보냈는데 바로 황제 헌제와 순운이었다. 그만큼 조조에게 순욱은 중요한 사람이었다.

천하는 조조의 손에 반쯤 들어왔다. 조조는 헌제를 모시는 명분과 한나라의 승상이라는 공식 직함에서 유비와 손권을 능가했다. 조조의 가신 그룹은 도처의 요직을 장악하고 있었다. 한나라 조정은 조조의 것이었다. 조조는 왕이 되고 싶었다. 212년, 동소가 조조의 야망을 실현시킬 계획을 마련했다. 동소는 순욱을 찾아 상의했다. 동소는 조조를 위왕으로 임명하자고 제안했다. 순욱은 반대했다. 동소는 천자가 있는 자리에서 이 문제를 공식화했다. 그 시작은 정욱이다.

“폐하, 조 승상이 천하를 누비며 도적을 토벌하는 등 공이 많습니다. 승상에게 구석(九錫)을 누릴 수 있는 영광과 위왕의 직책을 내려 주시길 바랍니다.” 헌제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이때 순욱이 나섰다. “승상이 천하에 기치를 높인 것은 충성스런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가 덕으로 군사를 일으켜 사직을 구하고자 한 것이지 이익을 보고자 한 뜻은 아닙니다. 구석을 내리고 위왕으로 책봉하는 것은 불가합니다.”

조정은 모두 조조의 사람이었다. 순욱의 반대에도 헌제는 조조를 위왕으로 책봉했다. 순욱은 “한나라에 진정한 충신이 없구나”라며 탄식했다. 순욱은 퇴청하는 길에 조조의 셋째 아들 조식이 수레를 타고 백마문을 들어서는 것을 보았다. 순욱은 조식의 수레를 막았다. “천자만이 다닐 수 있는 문입니다. 어찌 이곳을 가려고 합니까.” 조식은 고집을 피웠다. 조조가 이 광경을 보고 연유를 물었다. 조조는 수문장을 참수하라고 명했다. 순욱이 조조에게 따졌다.

“규율을 어긴 것은 조식 공자인데 어찌 죄 없는 수문장을 참수하시는 것입니까?”

“만약 수문장이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면 조식이 어찌 규율을 어겼겠는가?”

“그렇다면 승상께서 왕으로 가는 문을 열어 준 만조백관들은 모조리 죽어야 합니다.”

천하의 조조도 순욱의 말에는 대꾸할 말이 없었다. 조조와 순욱은 점차 멀어지지 시작했다. 조조는 손권 정벌에 나섰다. 순욱은 병에 걸렸다. 조조는 정욱을 통해 순욱에게 먹을 것을 보냈다. 정욱은 순욱에게 찬합을 내놓고 말없이 나갔다. 순욱은 찬합을 열었다. 찬합은 비어 있었다. 순욱이 빈 찬합을 보낸 조조의 뜻을 모를 리가 없었다. 순욱은 자살했다. 그의 나이 50세다. 순욱의 장례식은 초라하게 치러졌다. 당대의 실력자이고, 학자이며, 재상이었지만 세상 사람들은 조조가 순욱을 죽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물론 조조도 순욱의 빈소를 찾았다. 그리고 순욱을 죽인 것을 후회했다고 역사는 전한다. 조조는 유일한 동지를 잃은 셈이다.

조조가 후계를 부탁할 정도로 신임했던 인물은 단 두 명이다. 순욱과 곽가다. 곽가는 순욱의 천거로 책사가 된다. 조조는 곽가의 재주를 심히 아꼈다. 조조는 큰 아들 조비는 곽가에게, 셋째 아들 조식은 순욱에게 부탁했다. 하지만 곽가는 38세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죽었다. 그리고 순욱마저 212년 죽어 조조는 후계를 맡길 인재들을 모두 잃고 만다.

그 대안으로 떠오른 인물이 사마의다. 사마의 역시 인재다. 하지만 조조가 죽고 조비, 조예를 거치면서 조 씨의 위나라는 사마의 후손에게 권력을 빼앗기고 265년에 멸망한다. 조조가 수십 년을 전쟁터를 누비며 만든 왕조의 기틀이 불과 55년 만에 무너진 것이다. 아마도, 순욱과 곽가가 조조의 바람대로 조비와 조예의 치세에서 재상으로 봉직했다면 위나라의 수명은 더 길었을 것이다.

순욱은 조조에게 특별한 존재였다. 그는 제갈량처럼 전면에 나서서 권한을 행사하지도 않았고, 주유나, 육손처럼 화려하고 영웅적인 삶을 누리지 않았다. 그것이 순욱의 현명함이다. 순욱은 일찍이 조조의 성품과 기질을 잘 알고 있었고 또한 조조를 영원한 주군보다는 한나라를 부흥시키는 ‘동지’로 생각했다. 순욱은 분명 조조의 아랫사람이었지만 조조도 함부로 그를 대하지 못했다. 순욱은 학자로서의 위엄과 기품을 항상 잊지 않았고, 청류학자 세력의 대변자라는 위치를 한시도 망각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언스플래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00호 (21.10.19)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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