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바삐 걷는 사람들…현대인 자화상

입력 2021/10/19 17:02
수정 2021/10/19 19:21
영국 작가 줄리언 오피 개인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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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리언 오피 `Two bags fur hood`. [사진 제공 = 국제갤러리]

다양한 사람들이 거리를 바삐 걷고 있다. 소매를 걷어 올린 직장인과 가방을 멘 학생, 배가 부른 임신부와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까지 각양각색의 인간 군상이 보인다. 아주 자세하게 그리지 않고 기초적인 선과 색만을 사용했는데도 각 인물들 특징이 잘 드러난다. 영국 현대미술 작가 줄리언 오피 연작 'Old Street August'는 작가가 코로나19 시기 벨기에 크노케에 머물며 관찰한 현대인들을 담았다. 그는 "호기심과 놀라움을 선사해 관람객들이 작품의 연결점을 찾을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했다.

'걷는 사람'을 그린 작품으로 유명한 줄리언 오피 개인전이 국제갤러리에서 다음달 28일까지 열린다. 연작 'Old Street August'를 비롯해 전시실 K2, K3에서 30여 점의 회화, 설치, 조각 작품을 선보인다.


오피는 뉴욕 현대미술관·영국 빅토리아 앨버트 미술관 등 세계 주요 미술관에 작품이 걸려 있는 현대미술 거장으로 서울·부산·대구 등에서 설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한국에도 널리 알려졌다.

오피는 작품을 만들 때마다 "주어진 공간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관객이 흥미롭게 작품을 경험하도록 어떻게 조율할지를 고민한다"고 한다. 영국 런던 구시가지 건물들을 본뜬 알루미늄 설치물 2점, 그리고 행인들을 형상화한 조각들이 'Old Street August'와 조화를 이루는 K3 전시실이 대표적이다. 건물과 사람들이 화학작용을 일으키며 작은 도시에 초대받은 느낌을 준다.

K2 전시실 1층에서는 '걷는 사람'들 모습을 라이트 박스, 발광다이오드(LED) 영상 등 다양한 소재를 통해 표현한다.


특히 흰색 배경에서 서로 같은 방향으로 걷는 사람들을 그린 'Daytime 2'와 검은색 배경에서 서로 다른 방향으로 걷는 이들을 그린 'Nighttime 3'가 마주 보며 배치된 점이 인상적이다. 겨울 외투를 입고 걸어가는 사람들 조각도 있다. 모두 런던 동쪽의 작업실 근처에서 한파에 맞서는 이들을 보고 만들었다. 색감도 전체적으로 톤 다운돼 있어 겨울의 차분하고 쓸쓸한 정취를 형성한다.

K2 전시실 2층은 '동물'이 주인공이다. 고양이, 사슴, 수탉, 소, 개 등 일상에서 접할 수 있는 동물들이 화려한 색감의 회화와 알루미늄 조각들로 표현돼 있다.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서도 동세와 형태 표현이 좋다. K2 옆 정원에 설치된 '인천, 타워 2208'(2021)도 눈길을 끈다. 오피는 자신의 전시가 열리는 지역에서 포착한 이미지를 활용해 작품을 만드는 작가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번엔 인천의 한 빌딩을 모델로 삼았다. 코로나19로 직접 갈 수 없어 3차원(3D) 구글 지도로 보고 만들었다고 한다. 돌로 된 좌대 위에 마천루를 연상케 하는 흰색의 직육면체 구조물이 2.9m 높이로 솟아 있고 안은 비어 있다. 수백 개 직선으로 구현된 사각형 창문들은 견고하면서도 따분한 현대인의 삶을 떠올리게 한다.

[서정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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