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삶이란 오직 혼자임을 확인하는 겁니다"

입력 2021/10/19 17:02
수정 2021/10/19 22:40
禪詩 해설서 펴낸 동명스님

유명시인으로 활동하다 출가
큰스님 32명 선시 번역하며
'어떻게 살 것인가' 답 찾아

"현대시가 의식의 산물이라면
선시엔 인생의 정수가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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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불교를 대표하는 선승들의 선시를 모아 해설서를 펴낸 동명스님이 경기도 광명시 금강정사에서 포즈를 취했다. [사진 제공 = 조계종출판사]

"수행이란 바다처럼 맑은 가을 하늘에 유유히 떠 있는 달 한 척을 보는 것. 삶이란 가을 하늘을 서서히 달려가는 달의 수레가 오직 혼자임을 확인하는 것."

스님들 교육기관인 중앙승가대 수행관장으로 있는 동명스님(55)이 선시집 '조용히 솔바람 소리를 듣는 것'(조계종출판사)을 냈다. 동명스님은 차창룡이라는 속명으로 활동했던 유명 시인이었다. 김수영문학상을 받았고 평론가로도 데뷔해 문단에 이름을 알렸다. 그러던 그가 2010년 갑작스럽게 출가했다.


"출가 전에는 모든 일을 너무 잘하려고만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니 자유롭지 못했죠. 출가 이전과 이후, 가장 크게 달라진 게 있다면 마음이 자유로워졌다는 거예요. 물론 승가에도 일은 있지만 일을 대하는 자세가 달라요."

스님이 이번에 펴낸 선시집은 태고 보우, 진각 혜심, 청허 휴정, 나옹 혜근, 사명 유정 등 고려에서 조선에 이르기까지 한국 불교 법맥을 이어 온 큰스님 32명의 선시(禪詩)를 번역하고 해설을 붙인 책이다.

"한때는 동화책에서 길을 찾았고, 한때는 위인전에서 길을 찾았고, 한때는 세계 명작에서 길을 찾았고, 한때는 시 속에서 길을 찾았고, 한때는 철학서에서 길을 찾았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부처님의 가르침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뜻을 실천한 선사들의 선시에서 길을 찾고 있습니다."

스님은 선시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의 답을 얻는다"고 했다. 스님이 책에 수록한 선시 중 진각 혜심스님의 선시가 있다.

'마음은 항상 명료하게 입은 함부로 열지 말라 / 한가한 바보처럼 살다 보면 마침내 도를 얻으리니 / 수행자의 바랑은 송곳을 감추어 끝을 보이지 않아야 / 이른바 훌륭한 고수로서 진실한 소식을 얻으리.'

진각 혜심스님이 제자에게 써 줬다는 이 시는 송곳을 옷 속에 감추라고 말한다. 지식이나 지혜를 함부로 내보이지 말고 우직하게 나아가라는 말이다. 지혜이든 지식이든 잘못 꺼내면 무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스님은 현대시와 선시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출가 이전에 썼던 현대시가 혼신의 힘을 다해서 만들어낸 '의식의 산물'이었다면, 선시는 작품으로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으로 썼다기보다는 자연스럽게 흘러나온 것들이죠. 선시는 예술적 뛰어남이 아닌 삶의 정수가 들어 있죠."

조선 중기 선승이었던 기암 법견스님의 선시에는 이런 게 있다. '나 그대를 의지하여 이 땅에 태어났으니 / 그대와 나 서로 의지한 지 어언 오십년 / 다만 아쉬운 것은 우리 서로 작별하는 날 / 백년을 함께한 정 하루아침에 멀어진다는 것.'

몸을 노래한 선시다. 선승은 몸을 자신과 한 시절을 함께한 친구처럼 묘사한다.

"육신 때문에 세상에 왔으니 몸에 감사하면서 살아야 하지만, 몸과 헤어질 때는 의미를 두지 말라는 뜻입니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 고생한 몸에게 따뜻한 시선으로 위로를 보내면서도 결국 이별해야 할 육신에 미련은 갖지 말라는 큰 가르침이죠."

동명스님은 태고 보우스님의 선시를 자신의 좌우명으로 꼽는다. "양 끝 어디에도 머물지 않으리니 / 중도(中道)엔들 어찌 안주하랴 / 물이면 물, 산이면 산, 마음대로 쥐고 펴면서 / 저 물결 위 흰 갈매기의 한가로움 웃는다."

양극단은 물론 중도마저 버린다는 선사의 선시는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겠다는 결의다.

"이번 생애에 반드시 깨치겠다는 굳은 결의가 있어야 한다지만 저는 그것마저 버렸습니다. 빨리 되기를 바라지 않고, 될 때까지 끈기 있게 수행하는 것이 제가 선시에서 배운 바 입니다. 흰 갈매기의 한가로운 웃음을 웃을 수 있을 때까지 중도라는 이름에도 집착하지 않고, 기다림마저 버린 채 정진할 것입니다."

[허연 문화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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