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순풍산부인과 미달이 사업가로 변신…"미달이 마스크 기대해 주세요"[인물스토리]

입력 2021/11/12 16:56
수정 2021/11/12 23:50
[Weekend Interview] '돌아온 박미달' 배우 김성은씨
1069414 기사의 0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배우 김성은 씨는 월 200만개 이상 팔려나간 순풍 마스크를 만든 우노아르떼 이사를 맡고 있다. 작은 사진은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의 미달이. [하남 = 김호영 기자]

"박미달!"

'미달이'란 이름부터 튀어나왔다. 수십 번 되뇌었던 본명 '김성은'은 순식간에 사라졌다. 23년 전 TV 화면을 통해 '미달이'로 만났던 개구쟁이 꼬마. 멋쩍어하는 기자 앞에 훌쩍 커버린 30대 성숙한 여배우 김성은 씨가 익숙한 듯 받아쳤다. "괜찮아요. 요즘도 다들 미달이라고 불러요". 그제야, 오버랩된다. 익살스러운 표정. 당찬 말투. 영락없는 순풍산부인과 미달이, 그대로다.

1998년 방송된 SBS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장난스러운 연기력과 끼로, 한달음에 스타 반열에 올랐던 미달이는 2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대중의 기억에 선명하다. TV 시대를 넘어 유튜브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 시대, 미달이가 부활했다.


개구지면서 당찬 말투. MZ(밀레니얼+Z)세대는 클립(영상)과 '짤'로 현재진행형의 미달이를 만나고 있다.

그에게 시트콤 속 행복했던 캐릭터 미달이만 있었던 건 아니다. 밝게만 웃었던 미달이 뒤의 그림자는 짙었다. 갑작스러운 부모님의 사업 실패, 나 홀로 유학길, 불안하게 열린 20대 초, 아버지와의 이별까지 연이은 악운의 연속이었다. 오해도 더해졌다. 결국 미달이를 버렸다. 그런 그가 다시 미달이로 돌아왔다. 한결 더 단단한 마음으로, 미달이를 받아들였다. 전국을 돌며, 뮤지컬배우로 뛰는 것도 모자라, 카카오TV를 통해 방영되는 'NEW 사랑과 전쟁' 시즌2에도 출연하고 있다. 최근에는 마스크 사업에까지 뛰어들었다. 요즘 없어서 못 판다는 '미달이 마스크'다. 당연히, 인터뷰는 '미달이'와 김성은을 오가며 진행됐다.

1069414 기사의 1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그 옛날 미달이 얼굴이 남아 있다. 순풍산부인과 출연 당시 인기가 어느 정도였나.

▷아무것도 몰랐는데, 자고 일어나 보니, 벼락 출세, 뭐 그런 느낌. 믿기지 않겠지만, 광고만 30편을 찍었다. 번 돈으로 아파트 사고 유학비까지 벌었으니, 말 다했다. 서울 강남에 샀으면 대박 났을 텐데(웃음).

미달이로 더 친숙한 배우 김성은이 시트콤 순풍산부인과를 통해 방송계에 데뷔한 나이가 여덟 살이다. 순풍산부인과는 2년간 682회 방영, 평균 시청률 25%를 기록하며 뜨거운 사랑을 받은 시트콤이다. 출연진도 드림팀이다. 오지명, 선우용여, 박영규, 박미선을 포함해 이태란, 김소연, 송혜교, 김래원, 권오중, 표인봉, 송선미, 허영란, 박준형 등 당시 대한민국의 내로라하는 대표 배우들이 총출동해 안방극장을 뜨겁게 달궜다.

―오해가 많았다. '자신을 만든 미달이를 미워했다'는 루머까지 돌았다.

▷그 루머, 아직도 따라다닌다(웃음). 내가 미달이를 싫어한다니. 10년 이상 지난 일이다. 한 매체가 그렇게 보도했더니, 다 따라갔다. 앞뒤 자르고 '미달이가 너무 싫다'는 것만 부각됐다. 누구나 어려움을 겪는다.


갑작스럽게 집안이 어려워졌고, 홀로 유학길에 올랐다. 가뜩이나 불안했던 20대에 아버지와 작별까지 하면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그건 '미달이' 탓이 아니다. 나, 김성은의 환경 탓이다. 이런 불운 역시 내가 어찌할 수 있는 게 아니지 않나. 그랬더니 마음이 편해졌다. (지금은) 시간이 많이 흘렀고, 미달이를 받아들일 수 있는 시간이 됐다. 그때의 미달이가 얼마나 귀엽고 감사한 아이인지 잘 안다. 나쁜 루머는 오래간다는 걸 지금 알았다. 간혹 댓글에 '미달이 싫다더니 미달이 이용한다'는 내용까지 나온다. 난 떳떳하다. 당당하게 미달이를 내세울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 나니까.

―가장 힘들었던 때는.

▷평온과 불운이 한꺼번에 겹쳤다. 어린 나이에 뉴질랜드로 유학을 떠났는데, 이때가 가장 평온했다. 갑작스럽게 아버지 사업이 부도났고, 귀국길에 올랐다. 영화를 보느라 (아버지) 전화를 놓쳤는데, 다시 콜백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2~3일 뒤 경찰서에서 아버지가 사망했다는 문자가 왔고, 나 자신이 용서가 안 됐다. 아직도 '그 전화만 받았더라면' 하는 생각을 한다. 그때 죄책감과 원망이 2~3년이나 이어졌다. 폭음, 우울증까지 겪었다.

아버지에 대한 애틋함은 아직도 남아 있다. 성은 씨 모친은 2018년 재혼한 뒤 새아버지와 살고 있다. "부모님 댁에 가 본 횟수가 10번도 안 되는 것 같다"는 그는 "미달이처럼 넉살 좋게 한번 찾아가서 불편함을 없애야 하는데, 그게 말처럼 쉽지 않다"고 쓴웃음을 지었다.

―힘든 시기를 어떻게 이겨냈나.

▷불안, 초조, 스트레스에 정신은 물론 몸까지 아팠다. 너무 센 약을 처방받아, 정신이 몽롱할 때도 많았다. 그러고도 어떻게 풀어야 할지 몰라 속으로만 앓고 힘들어했다. 그러면서 느낀 게 있다. 인간관계의 매듭은 결국 인간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 사람으로 풀었다. 좋은 에너지는 옮겨다닌다. 사람들도 소개받고 사람을 통해 에너지를 많이 얻었다. 그렇게 살았더니 '미달이'가 돌아왔다.

―표정이 밝다. 책도 냈던데. 어떤 얘기를 하고 싶었나.

▷1991년생, 서른이다.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시간을 책으로 엮었는데, 쓰고 보니 미달이와 김성은의 화해 같은 글이 돼 버렸다. 책 제목이 '한 뼘만 같이 걸을까요?'다. 미달이였던 시절, 어린 김성은이 느낀 솔직한 생각, 그리고 성인이 된 후의 방황, 극복에 대한 느낌을 담았다. 한 뼘이 늘 문제다. 한 뼘 다가서면 보이는 게, 한 뼘 멀어지면 영영 이별이 되곤 한다.


기타의 현이 따로 떨어져 울림을 만드는 것처럼, 그 한 뼘, 같이 걸으면, 그게 딱 알맞은 떨어짐이 된다. 한 뼘의 작은 위로라도 느껴졌으면, 하고 썼다.

―요즘 미달이 동영상과 짤이 인기다.

▷딱 미달이 같은 캐릭터가 먹히는 시대가 이제야 온 것 같다. 미달이는 예쁜 얼굴은 아니다. 그런데 당당하다. 외모에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자신을 표현하는 자존감이 미달이 트레이드 마크다. 유튜브나 아프리카TV에 익숙한 분들은 단박에 안다. 인기 인플루언서들은 미모로 승부하지 않는다. 개구지면서도 떳떳함. 익살스러움 속에 더 부각되는 자신감과 당당함. 그들의 무기다. 이 지점이다. 요즘 MZ세대가 미달이 캐릭터에 열광하는 이유인 것 같다.

1069414 기사의 2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마스크 사업가로 변신한 미달이 김성은 씨.

―마스크 사업에는 어떻게 뛰어들었나.

▷일찌감치 유학을 갔다가 부도나고 집안이 어려워지면서 열다섯 살 때 한국에 돌아왔다. 그 뒤부터는 전쟁이나 다름없었다. 승마 교관 아르바이트부터 영어 학원 강사, 화장품 회사 마케팅, 무역회사 직원까지 안 해본 일이 없었다. 그러다 미국 대학 전문 입시 컨설팅 회사에 취직했는데, 그때 대표님과 인연이 됐다. 나중에 알게 된 건데, 그 대표님은 사원을 뽑을 때 내가 '미달이'인지 전혀 몰랐다. 하기야 청바지 입고 화장도 제대로 안 했으니. 그분이 사업을 확장하면서 MCN 스튜디오를 개설했고, 그때 방송과 인테리어 전반을 총괄해 맡았다. 10년 이상을 떠난 방송과의 인연도 그렇게 시작됐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면서 오히려 그 대표님 사업이 고전하기 시작했다. 마스크 얘기가 그때 나왔고, 바로 조인했다. 홍보와 마케팅 총괄 이사직을 맡고 있고, 지분도 가지고 있다.

―'미달이 마스크'라는 애칭으로 불린다고 들었다. 반응은 어떤가.

▷공장이 경기도 하남에 있다. 작년 8월께부터 본격 판매에 들어갔다. 코로나19가 한창일 때는 공급 부족으로 한 달에 200만장 넘게 나가기도 했다. 올해는 경쟁사가 늘어서 그 정도까지는 안 된다(웃음). 공식 명칭은 순풍 KF마스크인데 아이들이 '미달이 마스크'라고 부른다. 홍보 영상도 찍고 있다. 조만간 라이브커머스에 직접 출연해 미달이 마스크 판매에 나설 계획이다.

―연기 활동은 어떤가. 방송 복귀설도 있는데.

▷믿기지 않는다. 연기를 다시 할 줄 몰랐다. 대학로에서 공연되는 창작 뮤지컬의 주연 배우로 뛰고 있다. 최근에는 카카오TV에서 'NEW 사랑과 전쟁'에도 출연하고 있다. 공연할 때, 연기할 때는 끝장을 본다. 이를 악물고 한다. 옆에서 지켜 본 홍현희 씨가 "이제는 미달이라고 못 부르겠다"고까지 했을 정도다. '늘 한결같아라'라는 말을 새겨두고 있다. 항상 초심을 유지하며, 배우는 배우가 되려고 노력한다.

―지금의 성은 씨를 만들어 준 게 미달이다. 미달이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진짜 '고맙다'는 말. 마음속으로야 수없이 해 봤지만, 아직 한 번도 미달이에게 '고맙다'는 말을 입 밖으로 내뱉은 적이 없는 것 같다. 지금 여기서,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평생을 걸려도 하지 못할 일, (어린 나에게) 너무 빨리 이뤄줘서 고맙다. 물론 미운 점도 있다. 말하자면 애증의 존재다. 이렇게 말해 보는 건 어떨까. 아픔도 존재했지만, 그 아픔까지 고맙다고.

―대견해 보인다. 미달이 말고 김성은 스스로에게 해 주고 싶은 말은.

▷이제까지 잘 버텼다는 말을 미달이가 아닌, 나 김성은에게 해 주고 싶다. 앞으로는 잘 사는 이야기만 들려드리고 싶다. 아, 그러려면 '미달이 마스크'가 잘 팔려야 하는데(웃음).

▶▶김성은 씨는…

1991년생. 동덕여대 졸업. 옛 시트콤 '순풍산부인과'에서 '박미달' 역으로 유명세를 탔다. 뉴질랜드 유학을 마치고 한국으로 컴백, 유튜버와 아프리카TV BJ로도 활약하며 종종 미디어에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019년에는 순풍산부인과 유튜브 5000만 조회 수 달성 기념으로 SBS NOW 유튜브 생방송에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작년 첫 고백 에세이 '한 뼘만 같이 걸을까요?'를 썼고, 뮤지컬배우 겸 연기자 생활을 하며 최근에는 마스크 사업에까지 뛰어들었다.

1069414 기사의 3번째 이미지 이미지 크게 보기
※생생한 미달이 김성은 씨의 영상 인터뷰 모습은 매일경제 공식 유튜브 에브리데이 '근황이 알고싶다' 코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남 =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