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직장인 레시피] 권한과 책임의 균형감, 분수를 지키는 것이다

입력 2021/11/25 11:03
수정 2021/11/25 14:59
직장에서 분수를 지키는 것은 권한이 있는 리더에게 해당된다. 쥐꼬리만한 권한도 없으면 사실 지킬 분수도 없다. 이 권한의 행사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결정의 범위’다. 부장은 이사를, 이사는 상무나 전무를, 전무는 대표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권한을 행사한다. 혹시라도 나의 결정이 상사의 권한을 침범하는 월권이 되지 않을지 항상 신경이 쓰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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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의 범위는 상대적이다

‘분수’의 사전적 뜻은 ‘자기의 신분이나 처지에 알맞은 한도’ 또는 ‘사물을 잘 분별하고 헤아리는 슬기’(Daum 사전 인용)다. 우리는 보통 “분수껏 살아라” 혹은 “분수도 모르고 천방지축이다”는 말을 자주 쓴다.


이는 월급 300만 원 받는 이가 고가의 수입차에 명품 백을 갖고 다니는 경우나, 직급은 과장인데 부장이나 임원 행세를 하는 경우에도 해당된다. 물론 ‘분수껏’이란 말은 모자라거나 부족한 이가 넘치게 쓰는 경우에 적합한 말이지만 반대로 차고 넘침에도 ‘자신의 분수’를 지켜 겸손한 이에게도 “그는 항상 분수를 잊지 않는다”라고 말한다.

사실 없고 모자라지만 몇 달은 돈을 펑펑 쓰면서 살 수도 있다. 카드 돌려막기 신공을 발휘하거나 탁월한 사기 기질 혹은 아랫돌 빼어 위에 놓은 방법으로 말이다. 허나 이는 오래 유지될 수 없다. 마치 모래성처럼 한 곳이 무너지면 허무할 정도로 성 전체가 한낱 먼지처럼 사라진다. 정말로 분수 모르는 짓이다. 또 반대의 경우도 있다. 차고 넘치는 돈에, 드높은 명예와 권력을 쥐고 있는 이가 이를 칼집에 든 칼 마냥 감추는 것은 보통의 인내와 삶의 지혜가 없다면 어려운 일이다. 인간의 심리 중에 과시욕이 있다. 있는 사람의 과시는 미덕까지는 아니지만 부정하고 폄하할 일은 아니다. 왜냐면 돈은 돌아야 그 기능을 하기 때문이다.

각종 매체에 셀럽과 스타의 공항 패션, 방송국 출근 사진 혹은 파파라치 카메라에 찍힌 모습이 실린다. 대개 스타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른바 풀 착장 의상과 액세서리 등 온몸이 명품으로 도배되어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마다 따라붙는 사진 설명이 있다. ‘온몸에 1억 원 치장’ 등의 섹시한 기사 제목이 우리의 눈길을 모은다. 사진을 보면 부럽기도 하고 나의 모습에 금방 ‘현타’가 오기도 한다. 하지만 제일 한심한 것은 가방 3000만 원, 보석 목걸이와 반지 2000만 원, 구두 300만 원, 선글라스 200만 원, 카디건 800만 원 등등, 진짜 1억 원이 넘는지 이를 더해 보는 행동이다. 스스로 생각해도 모양 빠지는 일이다. 그렇다고 이들을 비난할 필요는 없다. 이들 역시 협찬이 대부분이고 설사 자신의 돈으로 샀다 해도 그들에게 수백만 원짜리 명품은 우리가 홈쇼핑에서 고민하며 바지 3개, 티셔츠 5개씩 주는 가성비 좋은 것을 사는 것의 가치 정도에 준할 뿐이다. 즉, 단위가 다르다. 어쨌든 그들이라도 돈을 써야 세상은, 경제는, 돈은 돌아간다는 생각을 하는 것이 정신 건강에 좋은 것이다.

청담동 명품거리를 지날 때가 있다. 양쪽으로 세계적인 명품숍이 즐비하다. 지날 때마다 명품숍 안을 들여다보면 매번 손님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그 순간, “이렇게 장사해도 남나?”라는 순진한 생각을 하지만 이것 또한 쓸데없는 걱정이다. 이 명품숍의 문을 유난히 두껍고 무겁다. 즉, 아무나 들어오지 말라는 뜻이다. 필자가 알고 있는 명품숍 총괄매니저의 말을 빌면 “하루에 예약 손님이 많아야 5팀 내외다. 하지만 이들은 이른바 큰손이다. 한 팀이 한 번 쇼핑을 하면 다른 잘되는 일반숍의 한달 치 수입 정도”란다. 그야말로 다른 세상인 셈이다. 어쩌면 1만 원 티셔츠 1000장을 파는 것과 1000만 원짜리 명품 옷 1벌을 파는 것의 셈법이니 이 명품숍은 오히려 지나가다 아이쇼핑 하러 들어오는 손님이 반갑지 않은 것이다. 그러니 이 거리를 지나다 구경하러 명품숍의 무거운 문을 밀고 들어서지 않는 것 역시 ‘분수’를 아는 보통 사람들의 상식일 것이다. 왜? 아무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분수는 직장에서도 통용되는 말이다. 직장에서 분수를 지키는 것은 직급의 차이와 업무 영역의 구분을 확실히 하는 것과 같은 말이다. 물론 직급에 의해 지시나 아이디어가 위에서 아래로만 흐르는 것 역시 발전적 직장 문화는 결코 아니다. 이런 폐해와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직장은 회의를 통해 아이디어를 공유하고 부서 협업을 통해 기획과 결정을 점검하는 절차를 거친다. 하지만 언로를 개방하고 소통을 중시한다는 이유로 상사가 결정한 것에 부하가 이의를 제기하거나 반기를 드는 것 역시 시간과 열정을 낭비하는 셈이 된다.

회사의 직급의 사회다. 위로는 대표부터 아래로는 사원까지 그야말로 층층시하다. 대표가 결정하고 지시하면 임원을 거쳐 실무책임자 부장에게 그 명령이 전달되고 그것은 바로 ‘무엇보다 먼저, 빨리 해야 할 의무’가 되는 것이다. 이를 중간에서 뒤집을 수 있을 방법은 사실 거의 없다. 물론 대표 역시 많은 협의와 회의를 거쳐 최선의 선택을 한다. 하지만 인간이기에, 인간이 움직이는 조직이기에 오류는 발생하고 그 과정에서 수정을 요하는 일이 발생한다. 그때 누군가는 움직여야 한다.


우선은 담당 책임자가 떠오르지만 어떤 직장이고 그 단계에 가면 또 아래에서 위로의 보고 단계를 거치기 마련이다. 우리가 흔히 쓰는 현장 경영, 즉각적인 대처 등등은 사실 듣기 좋은 말이지 현장에서는 통용되기 어렵다. 그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책임이 따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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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수를 지키는 것’ 의 범위

정밀을 요하는 물품 즉, 볼트와 너트를 예로 들어 보자. 길이 10㎝에 나사 회전이 303개가 있어야 되는 볼트를 생산한다. 하지만 미세하게 303개의 회전이 아닌 302.98의 회전으로 설계가 잘못되었다. 그럼에도 시제품 검증에서도 통과되어 대량 생산에 들어갔다. 현장 생산계장은 검수 과정에서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닫는다. 경험의 촉이 발동한 것이다. 그는 볼트와 너트가 딱 맞기는 하지만 미세 현미경 내시경으로 검수하면 누수 요인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한마디로 불량품이다. 그렇다고 영화나 드라마에서 보듯 생산계장은 당장 기계 스위치를 내릴 수는 없다. 그는 현장 부장에게 보고하고 부장은 공장장에게 보고한다. 그러면 공장장은 본사 부장과 임원에게 보고하게 된다. 그동안에도 수만 개의 불량품은 생산된다. 그렇다면 이 생산 기계를 멈출 수 있는 이는 누구인가? 엄밀하게 말하면 현장 책임자인 공장장이다. 하지만 그 역시 경험상 머리를 굴리게 된다. ‘만약 위에서 이 정도의 불량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면 어떡하지. 괜히 스위치 내렸다가 내가 문책 받는 거 아냐?’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책임을 나누기 위해 보고를 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볼트와 너트는 일반 가정용이 아니다. 일반 생활가전 부품이라면 오차 범위로 넘어갈 수도 있다. 하지만 이 볼트와 너트가 공작 정밀 기계의 부품이라면 이는 당연히 불량이다. 명품 시계라도 1년에 1, 2초 정도는 늦거나 빨라진다. 이는 대수롭지 않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지만 1년에 두 방울의 누수가 발생해도 안 되는 기계가 있다. 즉 이 부품이 선박이나 잠수함의 중요한 갑판용 볼트와 너트라면 이는 사람의 생명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이처럼 분수를 지키는 것은 어렵다. 기계를 멈추지 않은 것이 분수를 지킨 것인지, 아니면 기계를 당장 멈추고 보고를 하는 것이 분수껏 한 것인지에 대한 판단이 어렵다는 뜻이다. 이는 사풍, 상사의 성품 그리고 그 동안 회사에서의 전례가 기준이 된다. 이런 류의 일이 벌어졌을 때 상사나 회사가 어떻게 대처했고 또한 그 당사자가 향후 어떤 대접 혹은 처분을 받았는지에 따라 달라진다. 그만큼 직장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권한의 범위를 명확히 알고 있고 또 이를 행동에 옮기기는 매우 어렵다는 뜻이다.

그렇다고 모두 책임을 회피하고 패스만 잘하는 선수가 되자는 것은 아니다. 축구에서 모든 선수가 패스만 잘해서는 승리를 거머쥘 수가 없다. ‘닥공’으로 골을 넣는 선수가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11명에게 각각의 포지션을 부여해 조직적으로 경기를 운영한다. 스트라이커는 골을 넣고, 미드필더는 패스를 하는 것이 주 업무다. 물론 당연히 미드필더도 수비수도 기회가 오면 슛을 해야 한다. 가끔 우리는 골 넣는 수비수, 심지어 골 넣는 골키퍼를 보기도 한다. 그런 선수들이 골을 넣을 수 있는 기회가 왔음에도 ‘나는 미드필더니까, 혹은 나는 수비수이니까’라는 분수를 차려 슛을 하지 않고 후방에 있는 스트라이커에게 패스하는 것은 큰 실수이며 기회의 상실이다. 설사 슛을 해 골이 되지 않았어도 찬스가 오면 슛은 해야 하는 것이다. 물론 스포츠를 직장에 대입할 수는 없다. 직장은 축구처럼 90분만 일하고 그 결과를 검증받는 자리가 아니기 때문이다. 일의 연속성과 지속성이 직장 업무의 특징이다.

직장에서 분수를 지키는 것은 권한이 있는 리더에게 해당된다. 쥐꼬리만한 권한도 없으면 사실 지킬 분수도 없다. 이 권한 행사에서 가장 신경이 쓰이는 부분은 ‘권한의 범위’다. 부장은 이사를, 이사는 상무나 전무를, 전무는 대표를 염두에 두고 자신의 권한을 행사해야 한다. 혹시라도 나의 결정이 상사의 권한을 침범하는 월권이 아닌지 항상 신경 써야 한다. 모 회사에서 실제 있었던 일이다. 그 회사는 오너 회장과 전문 경영인 체제. 인사 때가 되었다. 모 임원이 회장에게 보고를 하면서 “직원들이 김 대표에게 언제 인사가 나는지 궁금해 물어보는 모양입니다”라고 가볍게 보고했다. 그러자 회장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리고 “무슨 소리야? 인사권은 내가 갖고 있는 거야. 김 대표도 인사 대상자야. 무슨 말인지 알아?” 회장의 말을 듣는 동안 임원은 등골이 오싹했다고 한다. 이는 직장에서 가장 중요한 권한인 인사권에 관한 ‘분수’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일이다.

즉, 대표라도 ‘내가 인사를 한다’는 말을 써서는 안 되는 것이다. 그 역시 오너 회장의 마음먹기에 따라 당장 짐을 싸야 할 ‘월급쟁이 직원’일 뿐이고, 인사권은 회사에서 유일하게 회장만이 행사할 수 있는 권한이기에 아무도 침범할 수 없다. 대표는 자신을 포함한 임원진에 대한 인사안이나 구성에 대해 자료를 올리는 것까지 권한이지 실제 인사는 회장의 재가가 있어야 가능한 구조기 때문이다. 만약에 대표가 보통의 직원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인사를 마음대로 한다면 이는 정말 분수 모르는 짓이다. 물론 대표는 회사의 임직원에 대한 인사권이 당연히 있다. 그럼에도 보통의 전문 경영인들은 자신의 분수를 지켜 그 권한을 행사하지 않는다. 오직 오너의 의중을 파악하고, 오너의 결정에 따라 인사의 방을 붙일 수 있는 권한만 있다. 냉혹하지만 현실이다. 이처럼 직장에서 분수는 자신의 권한을 100% 행사하는 것이 아닌 80%만 행사하고 대신 그에 따른 책임은 200% 지는 것이다. 조금은 씁쓸하지만 이 원칙을 지키는 것이 임원으로서 장수하는 비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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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에게 상사를 험담하지 마라

여기 권한과 명예가 드높았지만 그 권한과 명예를 칼집에 넣어 두고 일에 몰두해 3대에 걸쳐 황제를 모신 재상이 있다.


바로 청나라의 ‘장정옥’이다. 청나라는 정치, 군사 권력을 제외한 관직을 한족에게 개방했다. 이 탁월한 통치술로 청나라는 130여 년간 전성기를 누렸다. 강희, 옹정, 건륭, 세 명의 황제는 명석했다. 이때 50여 년간 이 세 황제를 보필한 재상이 장정옥이다. 그는 여진족이 아닌 한족 출신이다. 그는 살아서 권력의 중심에 진출했고, 죽어서는 옹정제 태묘에 배향되는 영예를 얻었다. 한마디로 장정옥은 ‘분수를 지킬 줄 알았다.’

청나라는 270여 년 중국을 지배했다. 청나라는 한족을 억압 대상이 아닌 공존의 동반자로 여겼다. 청나라 전성시대인 ‘강건성세康乾盛世’ 130년의 지속은 강희제, 옹정제, 건륭제의 영민한 리더십도 있었지만 한족 출신 관리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장정옥이다. 그의 집안은 대대로 대학사를 지냈다. 당시 대학사는 재상급 대우를 받는 문관이었다. 장정옥은 1672년에 태어났다. 그는 28세에 한림원 학사로 관직을 시작했다. 당시 강희제가 특별 관리한 한족 출신 중 선두였다. 장정옥은 형부시랑에 오른다. 강희제의 뒤를 이은 옹정제는 일중독이었다. 그는 하루 중 20시간을 국정에 몰두했다. 옹정제는 장정옥을 총애해 옆에 두었다. 장정옥의 주 업무는 옹정제의 구두 명령을 문서로 완성하는 일. 이 일을 할 수 있는 조건은 까다로웠다. 시문에 능해야 하고, 무엇보다 옹정제의 심중을 정확히 읽고 그것을 글로 표현해야 했다. 옹정제는 조정은 물론 지방에서 올라오는 모든 상소와 업무를 직접 관장했다. 해서 장정옥이 하루에 90여 회나 옹정제의 지시를 문서화했다는 기록도 있다.

옹정제는 재위 13년 만에 급서했다. 옹정제의 뒤를 이은 건륭제는 젊은 황제였다. 그는 자신만의 제국을 운영하고 싶었다. 할아버지, 아버지 대의 원로들의 존재가 부담스러웠다. 특히 조정에 세를 형성한 장정옥과 악이태는 제거 대상이었다. 건륭제는 장정옥을 제거하려 했지만 명분도, 실수도 찾을 수 없었다. 장정옥의 생존 능력은 본능과 결합과 경험의 산물이었다. 장정옥에게는 이미 옹정제 즉위의 3대 공신 중 두 명이 제거되고 자신만 살아남은 경험이 있었다. 장정옥은 세 명의 황제를 모셨고, 50여 년의 관직 생활에서 22년을 재상으로 역임한 것도 대단하지만 그는 자신과 가문도 보존했다. 그것은 그의 능력, 성실, 충성심 등이 밑바탕이 된 때문이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따로 있었다. ‘꿈에서조차 1인자를 비난하지 말라’ ‘권력과 부는 모두 가질 수 없다’는 원칙 아래 ‘분수를 알고 행동’하는 것이었다.

옹정제의 죽음에 따른 혼란은 없었다. 옹정제가 넷째 아들 홍력을 후계자로 정했고 군기대신 장정옥, 악이태, 종친 장친왕 윤록, 과친왕 윤례를 고명대신으로 임명해 후계를 부탁했다. 네 명의 고명대신은 홍력이 황제임을 선언했다. 그가 6대 황제 건륭제다. 즉위 초 건륭제는 할아버지, 아버지를 보필한 원로 대신들을 대접했다. 당시 조정은 여진족 출신의 악이태가 군부에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고 장정옥은 한족 출신 관리와 사대부의 지지를 받고 있었다. 이 두 세력은 견제와 균형을 이루고 있었다. 건륭제는 친위 세력이 숙성될 때까지 두 세력을 인정했다. 하지만 건륭제는 참을성 많은 황제가 아니었다.

어느날 장정옥의 부하가 황후의 제문을 작성하면서 글자를 잘못 표기하는 실수를 저질렀다. 건륭제는 장정옥을 크게 질책했다. 장정옥은 불안했다. 건륭제의 분노를 단순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장정옥은 권력자의 분노 후폭풍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장정옥은 은퇴를 청했다. 건륭제는 허락하지 않고 4년 뒤에 허락했다. 장정옥은 건륭제에게 자신이 죽으면 ‘옹정제 태묘에 배향’을 청했다. 옹정제는 “내가 죽으면 태묘에 장정옥과 악이태를 같이 배향하라”는 유지를 남겼다. 건륭제는 불쾌했지만 허락했다. 장정옥은 아들을 시켜 건륭제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건륭제는 대노했다. 본인이 아닌 아들을 대신한 것을 황제에 대한 불경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장정옥은 무릎을 꿇었다. 3대에 걸쳐 50여 년을 봉직한 80세 원로 대신이 보일 행동은 아니었지만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었다. 건륭제는 장정옥의 작위를 박탈했다.

1년 뒤, 황태자가 병으로 죽었다. 황태자는 장정옥의 제자이기도 했다. 장정옥은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는 얼마 후 건륭제에게 고향으로 떠나겠다는 소를 올렸다. 건륭제는 대노했다. “태자의 상중인데 재상이었고 스승이었던 자가 떠난다니 이는 황실에 대한 불충이다. 장정옥은 옹정제의 태묘에 배향될 자격이 없다. 그는 선대 황제의 일개 비서였다”며 화를 냈다. 장정옥은 빈 몸으로 고향에 돌아왔다. 아무도 반겨 주는 이가 없었다.

장정옥의 불운은 멈추지 않았다. 장정옥 둘째 아들의 장인 주전이 부정 행위로 탄핵을 받은 것이다. 건륭제는 주전이 장정옥 사돈이고 또한 장정옥의 추천으로 관직에 오른 것을 알고 있었다. 건륭제는 집요했다. 그는 장정옥이 전대 황제에게 받은 모든 하사품을 압수했다. 그리고 흠차대신 덕보를 불렀다. “장정옥의 가산을 압수하라. 그리고 모든 기록을 찾아라. 선대 황제는 물론 나를 비방하거나, 원망하는 글이 있는지를 뒤져 보아라. 단 한 줄이라도 나온다면 내가 용서치 않겠다.”

덕보는 보름간 장정옥의 집을 뒤졌다. 서책, 문서, 기록물, 회고록, 일기도 살펴보았다. 당시 장정옥은 회고록을 쓰고 있었다. 조정과 선대 황제도 기록했지만 단 한 줄, 한 글자도 선대 황제는 물론이고 건륭제를 원망하거나 비방하는 글을 찾을 수가 없었다. 장정옥의 재산 목록도 검사해 보니 값나가는 물건은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다. 덕보는 건륭제에게 보고했다. 조정 대신들과 한족 사대부는 물론이고 백성조차 ‘황제가 원로에게 너무 무례하다’는 여론이 형성되었다. 그러나 건륭제는 장정옥을 옹정제의 태묘에 배향하라 명했다. 장정옥에게 대한 건륭제의 공격은 무차별적이었다. 그럼에도 장정옥이 무사할 수 있었던 것은 청렴하고 검소한 성품도 있지만 최고 권력자에 대한 비방과 원망의 흔적을 남기지 않아서다. 장정옥인들 건륭제에게 수모를 당하면서 분하고 수치스런 마음에 왜 원망스럽지 않았을까. 하지만 장정옥은 그것을 표현하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50년 관직 생활을 통해 터득했기에 가문도 보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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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한이 커지면 방심한다

오너가 있는 직장에서 가장 주의할 점은 오너를 평가하는 일이다. 이것은 두 가지에서 실수다. 직장인은 평가 받는 자이지 오너를 평가할 ‘권한’은 없다. 평가는 오너를 비롯한 상사가 하는 것이다. 물론 없는 자리에서는 임금님 욕도 한다고 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치고 싶다면 혼자 노래방에서 노래 크게 틀어 놓고 외치면 된다. 문제는 오너나 상사의 눈과 귀가 많다는 점이다. 그것은 오너에게 ‘고자질’을 하는 아부꾼의 존재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기업일수록 외가, 사돈, 이종, 고종, 친구 등 의외로 오너와 연결 고리를 가진 직원이 많다. 그들은 본능적으로 오너 일가에 대한 평판 관리에 예민하다. 직장 생활에서 오너는 물론이고 상사 험담을 한다는 것은 언젠가 그 말의 책임을 진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직장은 포커판이다. 포커 페이스를 잊어서는 안 된다. 내가 어떤 카드를 들고 있는지를 다른 이에게 굳이 알릴 필요가 없다. 말이 많아 실수하는 것보다 과묵한 것이, 섣부른 용기보다는 치밀함이 직장 생활에서 더욱 필요한 미덕이다.

강희제는 재위 60년 동안 35남 20녀의 자손을 두었다. 청나라 황실은 후계를 미리 정하지 않는 전통이 있다. 태자 자리를 놓고 ‘왕자의 난’이 벌어졌다. 윤잉의 황태자당, 윤시의 황장자당 그리고 4남인 윤진의 황사자당으로 좁혀졌다. 장정옥과 연갱요, 융과다는 윤진을 지지했다. 강희제가 사망했다. 윤진이 황제의 자리에 올랐다. 이가 옹정제다. 옹정제는 장정옥, 융과다, 연갱요 등 측근에게 주요 부서를 맡겼다. 옹정제는 남을 믿지 못하는 성격이었다. 그는 모든 일을 자신이 직접 처리했다. 대신들이 할 수 있는 일도 점검하고, 보고받고 지시했다.

옹정제 즉위의 절대 공신은 장정옥, 융과다, 연갱요였다. 옹정제는 이들에게 권력과 부를 주었지만 이는 유한한 것. 장정옥은 잘 알고 있었다. 그는 더 성실하고 겸손하게 옹정제를 보필했다. 장정옥의 장남 장약애가 과거에 응시했다. 옹정제는 한 답안지가 마음에 들었다. 옹정제는 이를 3등으로 결정했다. 바로 장정옥의 아들이었다. 장정옥이 옹정제를 찾아서 고했다. “제 자식에게 3등을 내리신 것을 취소해 주십시오. 제가 조정의 대신인데 아들이 3등에 뽑히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 자식은 더 공부한 뒤 세상에 나서야 합니다. 3년에 한 번 보는 과거에 사대부들이 급제를 원합니다. 재상의 아들이 3등이 되면 선비들이 이를 공정하게 보지 않습니다.”

옹정제는 장정옥의 아들을 4등으로 뽑았다. 이는 양손에 떡을 쥐면 나중에 위급할 때 내려오는 ‘구원의 동아줄’을 잡을 수 없다는 이치. 그는 자식들에게 “권력이 있다고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되고 복이 있다고 전부 누려서도 안 된다. 충성의 마음으로 검소하고 겸손해야 한다”고 강제했다.

융과다와 연갱요는 장정옥과는 달랐다. 그들은 권세의 달콤함에 빠져들었다. 옹정제 즉위 후 융과다는 방심했다. 그는 옹정제의 이복동생 8황자 윤사와 접촉했다. 물론 반란을 도모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옹정제를 이를 용납치 않았다. 그는 목숨을 건 ‘왕자의 난’을 겪고 황제가 되었다. 즉위하자마자 경쟁자가 될 만한 모든 황자들을 귀양 보냈다. 옹정제는 융과다를 용서하지 않았다. 황제 기만죄로 연금이 된 융과다는 화병으로 죽고 말았다.

연갱요는 공이 많았다. 그는 군부를 장악하고 있었다. 그의 누이는 옹정제가 총애하는 연귀비. 옹정제 즉위 초 연갱요는 전쟁에서 대승을 거두었다. 옹정제가 환영식을 열어 주었다. 연갱요는 말을 타고 황궁까지 행군했다. 옹정제가 나오자 말에서 내려 고개를 숙였다. 연갱요는 자신의 승리에 도취했다. “내가 백만 대군을 지휘하는 장수가 되었다.” 옹정제는 조용히 듣고 있었다. 옹정제가 참석한 팔기군 열병식이 벌어졌다. 중무장한 3000명이 더위에 도열했다. 옹정제는 병사들이 안쓰러워 “갑옷을 벗어라”고 명령했다.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옹정제는 다시 “갑옷을 벗으라 하고 얼음을 주어라”고 명령했다. 병사들은 움직이지 않았다. 그 순간 연갱요가 “갑옷을 벗고 쉬어라”고 하자 병사들이 움직였다. 옹정제는 연갱요를 제거하기로 결심했다.

연갱요가 추천한 순무 호기항이 무능하다며 채정이 탄핵하자 연갱요가 채정을 공격했다. 옹정제는 연갱요에 대한 공격 신호를 보냈다. 모든 관리들이 연갱요를 물어뜯었다. 옹정제는 92개 죄목으로 자살을 명했다. 이런 옹정제를 장정옥은 13년간 모셨다. 옹정제가 죽으면서 “내 태묘에 장정옥을 배향해라. 죽어서도 같이 있겠다”고 유언을 남길 정도로 장정옥은 옹정제에게 전심전력했다.

장정옥은 분수를 지키는 마음을 잃지 않았기에 명예와 가문을 지킬 수 있었다. 장정옥은 몇 번의 정치적 위기를 벗어나며 한족 출신으로는 유일하게 황제의 태묘에 배향되는 영광을 얻었다.

[글 박기종(커리어 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포토파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06호 (21.11.3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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