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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3배' 집어삼킨 대화재…세계 첫 마천루 탄생시켰다 [랜선 사진기행]

입력 2021/11/27 15:01
수정 2021/11/27 1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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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일리노이 주 시카고 도심 전경. 근대 건축을 대표하는 고층 건물들이 스카이라인을 이루고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랜선 사진기행-76] 미국 일리노이주 시카고의 스카이라인은 여느 도시보다 다채로웠다. 빌딩 숲 사이로 도시 중앙을 가로지르는 운하와 강변을 따라 들어선 레스토랑과 카페, 곳곳에서 들려오는 음악, 강을 타고 불어오는 선선한 바람이 낭만적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미시간호 남쪽 끝의 시카고는 1848년 미시간호와 일리노이강이 운하로 연결되고, 1860년 철도가 개통되면서 미국 내 주요 거점 도시가 됐다.

이후 미시간호, 미시시피강, 시카고강이 인공 운하로 연결되면서 대규모 내륙항을 중심으로 제조업과 물류기지가 들어섰고 이후에는 금융도시로 발전했다. 미시간호에서 사시사철 바람이 불어와 '바람의 도시'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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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객선이 빌딩숲 사이로 시카고 시내를 관통하는 운하 위를 지나고 있다. 이곳에는 1803년 지어진 디어본 요새가 있던 터가 남아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시카고는 도시 건물 중 3분의 1가량이 전소한 1871년 대화재 이후 건축가들에게 빈 캔버스와 같은 곳이었다.


19세기 최악의 피해를 끼친 재해 중 하나인 시카고 대화재는 화재 발생 27시간 만에 여의도보다 넓은 9㎢에 달하는 시카고 중심 지역을 모두 불태웠다.

300여 명이 숨졌고, 10만명이 이재민이 됐다. 화재 원인은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당시 나무로 지어진 건축물은 모두 탔고 돌과 철로 만든 것만 남았다. 시카고는 도시 건물 절반 이상이 나무로 지어져 있었고, 보도와 찻길도 대부분 나무로 이뤄진 상태였다.

이를 경험 삼아 시카고는 나무가 아닌 돌과 철로 대대적인 도시 재건을 시작했다. 도시 전체가 근대건축의 거대한 실험실이 된 것이다. 마침 철골 공법과 건축재로서의 유리가 주목받던 때였다. 곧 야심 찬 건축가들이 시카고로 몰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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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수수 빌딩`으로 불리는 시카고의 주거-사무 복합빌딩인 `마리나 시티`. 저층은 주차공간으로 이뤄져 있다. /사진=송경은 기자

시카고시는 기존 건물과 같은 디자인의 건물은 건축 허가를 내주지 않았고, 그렇게 세계 첫 마천루인 '홈 인슈런스 빌딩'(1885년)을 비롯해 '웨인라이트 빌딩' '시어스타워' 'AON센터' '존 핸콕 센터' 등 마천루가 속속 들어섰다.


근대건축의 기능주의적인 고층 건축 미학과 모더니즘 디자인이 도시를 이루는 빌딩 곳곳에 담겼다.

강철 구조와 자연 채광에 좋은 넓은 유리창은 도시에 활기를 더해줬고 1950년 중반부터는 이 일대에 고밀도 상업지구가 형성됐다. 화재 후 남은 건축물을 보존하는 사업도 건축물 재건의 새로운 모델이 됐다. '시카고 워터 타워'가 대표적이다.

[송경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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