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장승제·고양이 부적…전염병과 싸운 조상의 흔적

입력 2021/11/30 17:31
수정 2021/11/30 20:30
국립민속박물관 '역병, 일상'展

삼국사기·조선기행 등
2천년 전염병 역사 조명

조선 역병 치료법 담은
'노상추 일기' 첫 공개
허준 '동의보감'에선
두창 특효약 매화꽃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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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를 바라의 `조선기행`에 실린 콜레라 쫓는 고양이 부적. [사진 제공 = 국립민속박물관]

'콜레라 쫓아내는 고양이 부적.'

1821년 조선에 퍼진 콜레라는 처음에 '괴질(怪疾)'로 불렸다. 민간에서는 쥐에 물린 통증과 비슷해 쥐통이라고 부르거나 몸 안에 쥐신이 들어왔다고 여겼다. 대문에 고양이 그림을 붙이고 괴질이 물러가길 염원했던 옛사람의 이색 처방은 19세기 프랑스 인류학자 샤를 바라의 '조선기행(1892년)'에 수록됐다. 국립민속박물관(관장 김종대)은 코로나19 시대 과거로 거슬러 전통사회를 휩쓴 역병과 그 속에서 일상을 지낸 사람들 이야기를 모은 특별전 '역병, 일상'을 내년 2월 28일까지 개최한다. 역병과 관련된 여역, 두창 등의 단어로 자료를 검색해 300개가 넘는 기록을 모아 소개했다.


전시장 입구부터 신문 형식 벽지와 시대별 역병 연대기를 나열하는 방식으로 한반도에서 2000년에 걸친 역병의 기록을 생활문화로 추적했다. 우리나라 역병 기록 중 가장 오래된 '삼국사기'(1145년 고려 문신 김부식 편찬)부터 코로나19로 분투하던 대구 동산병원 간호사들이 지난해 받은 위문 편지까지 아우른다. 삼국사기 백제 본기에 따르면 '온조왕 4년(BC 15년) 봄과 여름에 가물어 사람들이 굶주리고, 역병이 돌았다'는 기록이 나온다.

이번 전시에는 조선 시대 역병에 대한 인식과 치료법이 기록돼 의학사적으로 귀중한 '묵재일기'와 '노상추일기'가 처음으로 공개됐다. 묵재일기는 문신 이문건(1494~1567)이 1535년부터 1567년까지 17년간 기록한 일기다. "울타리 밖 인가에서 전염병에 걸린 자가 있어 3일 동안 앓았다. 그의 부인도 도망갔다고 하므로 염려스러웠다. <중략> 방문을 살펴서 붉은 글씨로 역병을 쫓는 글자를 써서 문의 창에 붙였다."(1547년 1월 26일 일기)

조선 시대에는 두창으로 목숨을 잃는 일이 흔했다. 이에 대한 공포심은 손님, 마마로 모시는 행위로 표출됐다.


마마배송굿은 마마신(神)을 달래어 짚말에 태워 보내는 과정이 포함돼 다른 굿과 차별화된다. 유교 국가 조선에서 무속신앙이 배척당했음에도 사대부마저 마마굿을 했을 정도다.

허준이 1610년 저술한 동의보감에 따르면 "매화꽃을 먹으면 두창에 걸리지 않는다. 음력 섣달에 딴 매화꽃을 수량에 관계없이 그늘에 말려 가루 내어 졸인 꿀로 반죽한 다음 가시연밥만 하게 알약을 만들어 먹는다"고 적혀 있다. 노상추의 일기에도 두창이 유행해 여동생 혼사를 연기했다는 기록이 나온다. "부로촌으로 방향을 바꾸어 가서 김순을 만나 혼사 일을 의논하였는데, 내가 두창 때문에 속히 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그러자 김순이 저쪽에 통지해서 가을까지 기다리도록 하겠다고 약속해 주어서 돌아왔다."(1767년 4월 25일 일기)

그 옆에 나란히 전시된, 253년 후인 2020년 청첩장 봉투에 쓰인 글귀 "이 시국에 드리는 청첩장의 무게가 무겁습니다"에서 인간 삶에 드리운 역병의 그림자가 비친다. 조선 시대에도 역병이 발생하면 지인의 집으로 피접(避接) 가고, 집 안의 외딴곳에 자신 스스로 격리하는 일이 빈번했다. 오늘날의 사회적 거리 두기의 원형인 셈이다. 우리 조상들의 초상화에는 또렷하게 두창 자국이 남아있고, 통영 오광대놀이 손님탈도 마마자국이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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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국립민속박물관 특별전 `역병, 일상` 개막을 기념해 열린 코로나19 퇴치 기원 장승 세우기와 장승제 행사에서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2리 마을 주민들이 장승제를 지내고 있다. [김호영 기자]

특별전을 앞두고 지난 23일 민속박물관 야외전시장 장승동산에서는 경기도 광주시 남한산성면 엄미2리 이창훈 이장을 포함한 주민 9명이 참여해 장승제를 올렸다. 코로나19 퇴치를 기원하기 위해 오리나무로 만든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 장승 1쌍에 황토 칠하고 눈을 그려 세웠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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