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BTS가 남긴 '아이 퍼플 유'가 무슨 뜻?…염전마을에 연20만명 몰린 사연은

입력 2021/12/03 17:45
수정 2021/12/03 21:19
유엔세계관광기구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에 신안 퍼플섬·고창 운곡습지마을

보랏빛 치장한 반월도·박지도
BTS "보라해"에 아미 聖地로
작년·올해 각각 20만명 방문

쇠락 내몰린 시골 마을 운곡
인적끊긴 습지 원시생태 부활
지속가능한 관광지로 발돋움

인구소멸위기 지방 새 이정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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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한국관광공사]

#대한민국엔 퍼플섬이 있다. 이곳엔 하나같이 보라색 옷을 차려입은 할머니들이 가지치기 작업을 위해 줄지어 길을 간다. 라벤더향 가득한 밭은 온통 보랏빛으로 뒤덮여 있다. 손에는 보라색 긴 갈퀴가 들려 있다.(올해 3월 15일 로이터통신 보도)

#전라북도 고창의 운곡 습지. 인간이 버렸던 습지가 스스로 생태 기적을 만들어냈다. 유엔이 강조한 지속가능개발목표(SDGs)에 가장 부합한 관광지다.(유엔세계관광기구(UNWTO) 공식 평가)

전 세계를 '퍼플'과 '생태'로 홀려버린 전라도의 작은 두 마을이 '보랏빛 기적'과 '친환경 신화'를 만들어냈다.


유엔세계관광기구는 3일(한국시간) 새벽 스페인 마드리드에서 열린 제24차 총회에서 '제1회 유엔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Best Tourism Village)'로 전남 신안군 안좌면 반월·박지도(퍼플섬)와 전북 고창군 고인돌·운곡습지마을을 선정했다고 밝혔다.

유엔세계관광기구는 1925년 출발한 국제관광연맹(IUOTO)을 개편해 1975년 설립한 유엔 전문기구로 올해 처음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을 선정했다. 1회라는 상징성 때문에 경쟁도 치열했다. 국제 공모전 형태로 진행됐으며 세계 75개국 170개 마을이 본선에 진출해 경쟁을 펼친 결과 44곳이 최종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 신안 퍼플섬의 기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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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색 하나로 세계를 홀린 퍼플섬은 1004개 섬으로 이뤄진 신안군에서 쌍둥이섬 '반월도·박지도' 두 곳을 말한다. 색깔 아이디어 하나로 '염전' 이미지를 떨쳐낸 그야말로, '보랏빛 기적'인 셈이다.

주민이라고 해봐야 고작 130명 정도. 이 작은 마을에 변화가 시작된 건 4년 전인 2017년이다. 마을 지붕과 외벽, 마을의 핵심인 길이 1.4㎞ 다리(퍼플교)에 보라색을 입히자마자 입소문이 난다. 이후 이 섬을 찾은 외지인 숫자만 무려 70만명이 넘는다. 보라색을 택한 것도 이유가 있다. 이 섬 주변에 유독 보라색 꽃을 피우는 왕도라지, 꼴풀, 콜라비 등 보라색 농작물이 많았던 것. 보라색은 우아하고 화려해 예로부터 왕실의 색으로 사용됐다.


심리학적으로는 불안한 마음을 정화해준다고 한다.

퍼플섬 인기에 불을 지른 건 놀랍게도 K팝 한류의 주역 방탄소년단(BTS)이다. 일곱 빛깔 무지개의 마지막 색 보라를 떠올리며 상대방을 끝까지 믿고 함께 사랑하자는 의미로 BTS 멤버 뷔가 'I PURPLE YOU(아이 퍼플 유)'라는 말을 했는데, 이게 유행어처럼 번졌다. 퍼플섬이 이를 놓칠 리 없을 터. 곧바로 퍼플교에 'I PURPLE YOU'를 아로새겼고 여기가 인증샷 포인트로 뜨면서 '아미(BTS 팬덤)' 군대가 몰려온 것이다. '코로나19 폭격'으로 전국 여행지가 숨을 죽였던 2020년에도 20만명, 올해도 외국인 관광객 3500여 명을 포함해 20만명 넘는 여행족이 다녀갔다.

신안군이 퍼플섬에 입장료를 부과하는 등 유료화를 단행한 건 작년 8월. 코로나19 사태가 한창이었지만, 이후 올 10월까지 1년여 사이 직접적인 경제효과만 50억원 정도로 추산하고 있다.

박우량 신안군수는 "입장료 수입만 11억원을 넘었고, 관광협의회 등 지역 일자리도 새로 50개 이상 만들어졌다"며 "4만 신안군민과 신안군의 노력을 유엔과 전 세계가 인정한 점에서 매우 뜻깊은 경사"라고 말했다. 퍼플섬은 또 한 번 도약을 추진하고 있다. 아예 메타버스 전문 공간을 구축하는 작업에 착수한 것. 메타버스 전문 기업 시크릿타운이 내년 4월 가상체험 복합문화창고 '퍼플박스' 개관을 준비 중이다. 퍼플박스는 퍼플교를 배경 삼아 가상현실(VR)을 즐기는 '퍼플러너' VR 게임, 초대형 몰입형 미디어 상영공간 등 다양한 체험존으로 꾸며질 예정이다.

◆ 운곡습지마을의 변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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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제공 = 한국관광공사]



소리 없는 ESG(환경·책임·투명경영) 신화를 만들어 낸 곳은 고창 고인돌·운곡습지마을이다.


마을 주민이라고 해봐야 300여 명. 심지어 지역 소멸 고위험군으로 분류된 곳이다. 1980년대에는 한빛원자력발전소에 물을 대기 위해 골짜기 안쪽에 있던 마을이 수몰되는 아픔을 겪기도 했다. 30여 년이 흘러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폐경지는 놀라운 변화를 맞이한다. 인간은 대대로 살아온 터전을 잃었지만, 인적이 끊기니 자연이 움직였다. 경작으로 훼손된 습지가 스스로 정화작업을 거쳐 기적같이 원시 모습을 재현해낸 것이다.

운곡 기적의 시작은 자연이지만, 여기엔 '지역 소멸'을 스스로 극복하고자 하는 마을 주민들의 합치된 노력이 더해졌다. 마을 주민들은 생태관광의 핵심 지역을 보존·발전시키는 시스템을 인근 지역으로까지 확대하고 있다. 결국 자연과 함께 가겠다는 인간의 배려인 셈이다. 습지 구역 투어 코스만 봐도 이 배려가 느껴진다. 습지 보호 구역엔 한 사람이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데크를 설치하고, 바닥 목재 사이 틈을 벌려 그 아래에서 자라는 식물에도 볕이 닿도록 하고 있다. 조용호 고창운곡습지생태관광협의회 회장은 "인간과 자연이 함께 가자는 취지로 습지를 보호하고 있다. 2015년 유엔이 결의한 전 인류의 '지속가능개발목표'에 가장 부합한 관광지인 셈"이라며 "코로나 블루(우울증)를 날릴 수 있는 치유 습지로 서서히 변신하고 있다"고 말했다.

생태 기적은 불편했던 이미지도 바꿔놓고 있다. 한센인 정착촌이었던 호암마을의 경우 2005년까지는 축사가 들어서 접근을 꺼리던 곳이었지만 지금은 생태관광에서 빼놓을 수 없는 명소가 됐다. 유기상 고창군수는 "제1회 유엔 세계 최우수 관광마을 선정은 여러모로 의미가 있다"며 "해외여행 수요에도 적극 대응하겠다"고 말했다. 이 작은 마을이 세계적으로 인정을 받은 게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해 10월에는 국내 마을로는 유일하게 유럽연합(EU) 산하 공공조직인 '그린 데스티네이션'이 뽑은 '세계 100대 지속가능한 관광지'에 선정되기도 했다.

[신익수 여행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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