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세계 정상 향해…몸집 키우는 K콘텐츠

입력 2021/12/08 17:09
수정 2021/12/09 06:37
CJ ENM·카카오·하이브 등
외국 기업 M&A·제휴 활발
국내 제작 일변도 탈피하고
해외 제작거점·유통망 마련
한류 작품 확산 손쉬워질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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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류 콘텐츠의 영향력이 확대되면서 국내 제작사들이 적극적으로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다. 왼쪽부터 CJ ENM이 투자 배급한 영화 `기생충`, 하이브 소속 방탄소년단(BTS), 카카오엔터테인먼트 웹툰 `나 혼자만 레벨업`.

한류 콘텐츠의 세계적 영향력 확대가 자연스럽게 국내 제작사들의 해외 진출로 이어지고 있다. 한국에서 제작한 결과물을 세계로 확산시키는 일방적인 구조를 탈피하고 세계 어디에서나 한류 콘텐츠를 만들 수 있는 새로운 환경을 조성하는 데 몰두하고 있다. 대규모 자본으로 콘텐츠 시장을 장악해온 해외 제작사들과의 직접 경쟁에서 밀리지 않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고 있다.

한국 드라마와 영화가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의 확산으로 새로운 전성기를 맞으면서 이를 효과적으로 선보일 수 있는 시스템 마련의 필요성은 지속적으로 제기돼왔다. CJ ENM 등 국내 제작사가 미국 업체와 손을 잡아 OTT의 경쟁 과열 속에서 시장 주도권을 제작사가 잡을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 제작사 인수로 자체 보유한 지식재산권(IP)을 확보할 수 있다는 점도 의미가 크다. CJ ENM은 자체 보유한 IP를 지난달 인수한 엔데버콘텐트의 IP와 융합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방탄소년단(BTS) 소속사 하이브는 저스틴 비버, 아라아나 그란데 등이 소속된 미국 이타카홀딩스를 인수해 해외 시장 확대의 기반을 다졌다.

연예기획사는 K팝 열풍에 힘입어 국내에서 검증된 아티스트 육성 시스템을 해외에 수출하는 방식으로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과거 완성된 가수의 상품을 해외에 수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JYP엔터테인먼트는 일본 소니뮤직과 지난해 오디션 프로그램을 진행해 '니쥬(NiziU)'를 데뷔시켰다. SM엔터테인먼트는 중국 현지 합작 레이블 '레이블 브이'를 통해 한국식 훈련을 받은 중화권 그룹을 선보이고 있다. CJ ENM은 일본 요시모토흥업과의 합작법인 라포네엔터테인먼트를 통해 현지 아이돌 그룹 육성에 나서고 있다.

한국 제작사의 해외사업 확대는 세계적인 미디어 업체들의 몸집 키우기가 영향을 주고 있다. 미국, 프랑스 등 미디어 선진국에서는 콘텐츠 제작 시장에서 규모의 경제를 만들기 위해 경쟁업체들이 서로 손을 잡는 합종연횡 사례가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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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는 지난 6월 워너미디어와 디스커버리가 합병한 '워너브러더스 디스커버리'가 출범했다.


수십 년간 축적해온 IP를 HBO맥스, 디스커버리플러스 등 자체 OTT를 통해 제공하며 미디어 환경 변화에 대응하려는 전략이다. 합병회사 가치는 1500억달러(약 176조원)로 추산된다. 워너미디어는 내년에 자회사 CNN의 OTT 출범 계획을 밝히면서 새로운 형태의 뉴스 플랫폼을 선보일 계획이다. 전자상거래 업체 아마존은 자체 OTT '아마존프라임'의 콘텐츠 역량을 키우기 위해 84억5000만달러(약 10조원)에 MGM스튜디오를 인수했다.

프랑스에서는 지난 10월 민영 방송사 MF1과 M6가 OTT에 대항하는 취지로 손을 잡았다. 이른바 '레거시 미디어'로 불리는 전통 사업자의 합병이 어떤 성과를 낼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미디어 생태계 변화가 특정 지역으로 국한되지 않으면서 국내 제작사의 해외 진출은 선택이 아닌 필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규모 면에서 뒤처지는 국내 제작사가 현지 제작 환경과 유통망을 확보해 해외 콘텐츠와 직접 대결할 수 있는 구도를 만들어야 한류 콘텐츠가 장기적으로 명맥을 이을 수 있다는 분석이다.


곽규태 순천향대 글로벌문화산업학과 교수는 "지금까지 국내 업체들이 내수 시장을 나눠갖는 것에 안주했다면 이제 범위가 세계 시장으로 확장된 상황에서 사업 형태를 전환하는 것은 불가피한 선택일 것"이라며 "앞으로 지속적인 성공 사례를 안정적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국내 제작의 한계를 뛰어넘는 세계적인 제작환경과 유통망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곽 교수는 "한국 콘텐츠가 제작 역량으로만 성공할 수 있었다면 '오징어게임'처럼 전 세계적으로 관심을 받은 작품은 예전에 나왔어야 했다"며 "국내 제작사들의 노력과 작품을 유통한 전 세계 플랫폼이 함께 이뤄낸 성과라는 점이 증명된 상황에서 국내 사업자들의 약점인 해외 제작·유통 환경 구축의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덧붙였다.

해외사업자와 다양한 협력체계를 갖추면 한류 콘텐츠가 세계적으로 통용될 수 있는 보편성 확보에도 기여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금까지는 한국적 요소를 살린 신선한 작품으로 해외 시장 침투에 성공했지만 이를 장기화하기 위해서는 현지 수요에 맞는 작품을 제작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심상민 성신여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과거 일본 소니가 거대 자본을 활용해 미국 콜롬비아픽처스를 인수하면서 전 세계 콘텐츠 시장에서 성공을 거뒀지만 일본 문화를 현지 제작 시스템에 맞추려는 시도는 하지 않으면서 결국 할리우드에 종속되는 결과를 낳았다"며 "국내에 자체적인 제작 시스템을 구축해온 한국 기업들은 미국 기업이 가진 IP 활용과 함께 현지 제작 기술을 흡수해 전 세계적으로 한류 콘텐츠를 보편화하려는 시도를 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이어 "해외 수요의 작품을 국내에서만 제작하는 데는 한계가 있었을 것"이라며 "CJ ENM이 할리우드 미니 메이저급 회사를 인수해 한류를 초월하는 세계적인 콘텐츠를 만들려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긍정적"이라고 평가했다.

[박대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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