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흑인 맥베스·라틴계 백설공주…원작 '인종의 벽' 깨는 할리우드

입력 2022/01/18 07:00
수정 2022/01/18 12:05
'정치적 올바름' 요구하는 시대상 반영…"작위적·몰입 방해" 비판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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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맥베스의 비극'에서 맥베스를 연기한 배우 덴절 워싱턴

원작에서 백인으로 묘사된 캐릭터를 비백인 배우가 연기하는 사례가 최근 할리우드에서 잇따르고 있다.

과거 백인 편향으로 쓴소리를 들었던 할리우드의 이런 변화를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무리한 설정 때문에 몰입이 방해된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흑인 배우 덴절 워싱턴은 최근 애플TV+가 공개한 영화 '맥베스의 비극'에서 맥베스 역을 맡았다.

원작인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에서는 백인으로 나오는 인물이다.

맥베스를 처단하는 캐릭터인 맥더프와 아내 레이디 맥더프 역시 흑인 배우인 코리 호킨스와 모지스 잉그럼이 각각 연기했다.

워싱턴은 최근 미국 NBC 인터뷰에서 "우리는 다양성을 특별한 것처럼 언급하지 않는 곳에 있어야 한다"며 "하얗든 까맣든 파랗든 간에 재능과 자격이 있어서 이들이 영화에 나오는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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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듄'에서 챠니 역 맡은 젠데이아 콜먼

다음 달 개봉하는 뮤지컬 영화 '시라노'도 원작과 다른 인종 설정을 시도했다.




주인공 시라노의 연적이자 여주인공 록산느가 사랑하는 프랑스 군인 크리스티앙 역에 흑인인 켈빈 해리스 주니어를 캐스팅했다.

이 작품의 원작은 프랑스 작가 에드몽 로스탕이 쓴 희곡 '시라노 드 베르주라크'를 뼈대로 한 뮤지컬 '시라노'다. 그간 브로드웨이 뮤지컬에는 백인 배우가 크리스티앙 역을 대부분 맡아왔다.

지난해 10월 나온 SF 영화 '듄'에서 프리먼 소녀 챠니 역도 흑인 혼혈인 젠데이아 콜먼이 연기했다.

원작 소설에는 챠니의 외모와 관련해 마른 체형에 짙은 파란색 눈, 황갈색 긴 머리를 지닌 요정 같은 모습이라고만 나오고 인종에 대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눈에 띄지 않는다.

하지만 원작을 바탕으로 앞서 만들어진 드라마와 영화에서는 관습적으로 백인 여자 배우들을 내세워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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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이터널스'

이런 현상은 이른바 '화이트 워싱'으로 강하게 비판받았던 할리우드의 과거와 극명하게 대비된다.

화이트 워싱은 원작에서는 백인이 아닌 캐릭터인데도 백인 배우로 캐스팅하는 것을 말한다.


'공각기동대'에서 일본인 쿠사나기 소령 역할을 스칼릿 조핸슨이 맡고,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티베트인 에이션트원 역을 틸다 스윈턴이 소화한 게 대표적이다.

윤성은 영화평론가는 "미국은 여러 인종이 섞여 사는 국가인데도 불구하고 영화에는 주요 출연진 대다수가 백인이어서 비난을 받아왔다"며 "원작과 다른 인종 설정은 이런 비난에서 출발한 시도"라고 짚었다.

윤 평론가는 "사회적으로 정치적 올바름(political correctness)에 대한 요구가 확산하는 것도 이유"라며 소수자성을 반영한 다인종 히어로가 등장하는 마블의 '이터널스'를 예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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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즈니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백설공주로 캐스팅된 레이철 지글러.

그러나 이런 현상을 반대하는 목소리도 만만찮다. 다양성을 보여주려는 의도는 좋지만, 설정이 지나치게 작위적이라 몰입을 방해한다는 것이다.

특히 디즈니 실사 영화 '백설공주와 일곱 난쟁이'에서 백설공주 역으로 라틴계 배우 레이철 지글러가, '인어공주'의 공주 역할에 흑인 배우 할리 베일리가 캐스팅되며 논란에 휩싸였다.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에는 널리 알려진 원작 공주들의 외모와는 판이한 배우들이 캐스팅됐다며 할리우드가 정치적 올바름에 몰두하느라 영화의 개연성은 포기했다는 비판 글이 잇따라 게재됐다.

지글러가 자신의 소셜미디어에 "백설공주 연기를 위해 피부를 표백하지 않겠다"는 글을 써 원작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윤성은 평론가는 "원작의 전복으로 관객들로서는 부자연스럽다고 느낄 수 있다"며 "(대중적인 캐릭터를) 급작스럽고 억지스럽게 변화시키면 오히려 반감을 살 수 있기 때문에, 상업영화로 흥행할지는 지켜봐야 하는 문제"라고 말했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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