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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 5000년 전 신대륙을 발견한 사람들…바다, 장벽이 아닌 기회의 통로였다

입력 2022/01/21 17:02
수정 2022/01/21 18:09
바다 인류 / 주경철 지음 / 휴머니스트 펴냄 / 4만6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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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 = 게티이미지뱅크]

'대항해 시대' 연구에 천착해온 주경철 서울대 서양사학과 교수가 다시 바다 이야기로 돌아왔다.

주 교수는 근대 문명의 발전 과정에 해양이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근대가 시작된 것은 대륙을 연결하는 해로가 개척되면서 문명권이 교류를 하게 됐고 비약적 발전이 뒤따랐다고 설명해왔다. 이 책은 15~18세기에 한정돼 온 그간의 연구를 확장해 기원전부터 오늘에 이르는 통사를 바다의 관점으로 온전하게 쓴 '빅히스토리'다. 저자는 코로나19로 가택연금을 당한 덕에 976쪽의 벽돌책을 쓸 수 있었다고 털어놓는다.

인간은 육지와 바다를 동시에 이용하는 특별한 동물이다. 6만~7만년 전 아프리카를 빠져나온 현생 인류가 다른 대륙으로 이동하는 과정에서부터 바다는 중요한 역할을 했다.


마지막 대빙하기 중 약 2만년은 추위가 정점에 달해 지표면의 25%가 얼어 있었다. 해수면은 현재보다 50~130m 하강했다. 한반도는 중국과 일본, 영국은 유럽과 연결돼 있었다. 심지어 호주는 뉴기니, 태즈메이니아 등과 수심이 낮은 바다 위의 섬으로 산재해 대륙을 이뤘다.

해수면이 상승해 지금의 해안선이 자리 잡은 건 기원전 5000년께. 이 책은 거대한 해양 이동이 끝난 뒤인 초기 문명부터 원양항해가 중요했다는 가설을 편다. 16세기 유럽인들은 광대한 태평양 바다에 퍼져 있는 거의 모든 섬에 사람이 거주하게 된 이유를 '우연적인 표류'로 봤다. 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오스트로네시아어를 쓰는 사람들이 이주해간 흐름은 풍향과 해류의 반대 방향이기 때문이다. 실제 확산은 바람의 흐름과 반대인 서쪽에서 동쪽으로 이뤄졌다. 기원전 3500년쯤 이들은 세계에서 가장 발전된 선박과 항해 기술을 보유하고 있었다. 200개가 넘는 별자리 지식과 바다의 물 색깔, 파도 모양과 소리, 구름새와 바다 생물을 관찰하며 방향을 잡았다.

이들이 탄 카누는 당시 어떤 지역에서도 보기 힘든 큰 범장(帆檣)을 갖춘 대형 선체였다. 식량으로 타로를 먹고 호리병박에 식수를 담아 원양으로 나섰다.


씨앗과 묘목, 가축을 이동시켜 새로운 섬에 정착했다. 고대의 항해 기술을 유산으로 물려받은 인간문화재는 미크로네시아에 여전히 있다. 이들은 1930년대까지도 선발된 5세 아이에게 할아버지가 구술로 '비밀의 과학'을 전수했다. 16세면 돌이나 나뭇가지로 항해용 별자리를 표시할 수 있어야 합격할 수 있었다. 1976년 고대의 배를 복원한 20m의 호쿨레아호를 타고 이들은 하와이에서 타히티까지 항해하는 실험에 성공했다. 태평양의 이주사를 연구하면 해상 세계는 소수의 섬이 거대한 '청동의 벽'(바다)에 갇힌 고립된 공간이 아니었음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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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결정적 순간으로 '바다로 나간 로마'를 지목한다. 육군만으로는 단지 가까운 이웃 나라에 위협을 줄 뿐이지만 로마가 해양 세력이 되자 차원이 다르게 강대해졌다. 1차 포에니 전쟁을 앞두고는 나포한 카르타고 선박을 분석해 5단 갤리선을 건조할 만큼 해상 전력은 뒤져 있었다. 하지만 육상에서 미리 노를 젓는 훈련을 한 선원이 배에 오른 것이 로마의 강점이었다.

'바다의 여왕' 카르타고 해군을 상대하면서도 로마는 초기에 적선과 충돌한 후 백병전을 벌이는 방식을 선호했고 결국 이 세기의 전쟁에서 완승했다. 한니발과 맞붙은 2차 포에니 전쟁은 육지에서 주로 싸웠지만 바다의 역할은 더 컸다.


한니발이 위험을 무릅쓰고 육상으로 진격해 알프스를 넘은 건 로마가 바다를 점령했기 때문이었다. 해로로 갔다면 한니발은 6만명의 병사 중 3만여 명을 잃지 않을 수 있었고 해상 보급이 막히지도 않았을 것이다. 카르타고를 폐허로 만든 뒤 로마의 적수는 사라졌다.

카이사르가 납치된 적이 있을 만큼 로마의 골칫거리는 해적의 출몰이었다. 폼페이우스는 해적 10만명을 소탕하면서 삼두정의 한 축으로 부상했다. 카이사르 암살 후 2차 삼두정 시기를 끝낸 전쟁이 악티움에서 벌어진 해전이다. 옥타비아누스의 오른팔 아그리파와 안토니우스, 클레오파트라 연합 해군을 완파했다. 로프에 묶은 화살을 쏘는 노포로 적의 갤리선을 잡아당겨 접전을 벌였다. 이 전쟁으로 이집트는 로마의 속주로 전락했고, 로마의 제정이 시작됐다. 지중해 전역은 로마로 식량과 포도주와 건설 자재를 공급했다. 지배와 교역은 함께 발전했는데 로마제국은 최종적으로 바다에서 완성된 셈이다.

이 밖에도 이슬람 상인과 당송 제국의 교류,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항시(港市)국가들의 경제문화적 중개, 몽골의 해상력 발전과 명의 남해 원정, 증기선과 운하를 통한 세계 경제의 연결과 성장, 막강한 전함을 통한 제국주의적 침탈 등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을 만날 수 있는 책이다. 만국보편의 공간인 바다를 역사의 주인공으로 옹립하는 이 책은 그 시각만으로도 독창적이다. 저술이 부족했던 아시아 해양 세계에 대한 연구를 충실하게 싣고 인도양 세계의 복권을 꾀한다는 점도 미덕으로 꼽을 만했다. 21세기 들어 다시 초강대국들의 패권 쟁탈은 바다를 무대로 벌어지고 있다. 역사의 도도한 흐름을 조망한 이 책의 쓸모는 그래서 과거를 돌아보는 용도로만 그치지 않는다.

[김슬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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