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산티아고 순례길] 십 리도 못가서 머뭇거리게 만드는, 순례자 발길 붙잡는 갈리시아 풍경들

권오균 기자
입력 2022/04/25 04:05
연 30만명 찾던 산티아고 순례길
출발지도 길이도 모두 다르지만
목적지는 대서양 낀 갈리시아주

지나치는 풍경도 넋 놓게 만들어
한번 방문하면 반드시 또 찾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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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티아고 대성당.

연 32만명이 찾는 산티아고 순례길은 한 길이 아니다. 그래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다녀왔다고 하면 응당 이런 질문이 뒤따른다. 어느 길? 가장 대중적인 프랑스 길을 필두로 포르투갈 길, 영국 길, 북쪽 길 등 출발지도 길이도 풍경도 다르다. 단 한 가지 공통점이 있으니 목적지다. 모두 스페인 17개 자치주 중 하나인 갈리시아주를 향한다. 최종 종착지인 산티아고 대성당이 있는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는 갈리시아의 주도다.

산티아고 순례길 방문자는 한국인이 세계 10위권에 있을 정도로 우리에게 익숙하고 매력적인 길이다. 그 이유로는 길에서 만난 세계 각국의 사람들, 그들과의 교류를 통해 얻은 교감과 위로가 꼽힌다. 그리하여 한국에는 순례길 체험기가 수도 없이 많이 올라오고, 출판 시장에서도 산티아고 순례길과 관련한 서적은 끊이지 않고 출간된다.


길에서 만난 인연과 사연은 여행자 각자의 경험일 테니, 전문 가이드 세르히오에게 특별히 요청해 산티아고 순례길의 목적지인 스페인 갈리시아주의 멋진 소도시를 탐색했다. 조금 속도를 늦춰 천천히 둘러보면 좋을 장소였다.

◆ 프랑스 길 오 세브레이로 성당

프랑스 길은 순례길 중 가장 점유율이 높다. 스페인 갈리시아주로 진입하면 성당이 반긴다. '순례자'를 쓴 작가 코엘류가 깨달음을 얻은 곳으로 알려진 스페인 북서부 깊은 산속 '산타마리아레알 오 세브레이로' 성당이다. 안으로 들어가면 25개국 언어로 된 기도문이 펼쳐져 있다. 반갑게도 한국어 기도문도 보인다. 마지막에 이렇게 적혀 있다. "행복하세요.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행복하게 하세요." 성당 밖 마을 기념품점에서 아기자기한 태극기 배지를 보면 괜스레 뭉클하다.

◆ 포르투갈 길 투이, 바요나

포르투갈 길은 리스본에서 출발한다. 스페인으로 넘어오는 다리를 건너는 일은 무척 생경하다. 유럽연합(EU) 회원국끼리는 검문도 검색도 해야 할 이유가 없어서 마치 우리 동네에서 옆 동네 가듯이 미뉴강 하구를 건너갈 수 있다. 1879년 놓인 미뉴대교를 건너 포르투갈 발렌사에서 스페인 땅에 첫발을 내딛는 도시는 투이다.


산타마리아 대성당에는 어부 출신으로 대서양 변 순례길을 개척한 산텔모의 모습을 볼 수 있다. 뱃사람답게 배를 들고 있는 모습이 독특하다.

길은 투이에서 바요나로 이어진다. 바요나는 1493년 콜럼버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돌아올 때 일행 중 가장 먼저 핀손 형제가 라핀타호를 이끌고 귀국한 항구다.

항구에는 '두 세계의 조우'라는 조각상이 있다. 이사벨라 여왕과 아메리카 주민, 켈틱인들이 새로운 세계를 만난 듯 멀뚱히 서로를 어색하게 대하고 있다. 바요나항 바로 옆엔 성채 주변으로 산책길이 조성돼 있다. 순례길 바로 옆길인데, 항만과 고성을 낀 해변길이 시원하게 펼쳐진다. 순례길에서 잠시만 이탈해도 후회 없을 것이다.

◆ 영국 길 코루냐, 베탄소스

산티아고 유해가 바다를 타고 스페인에 닿았듯이, 배를 타고 순례길 행렬에 동참하는 방법이 있다. 영국 길인데, 스페인 진입 시 코루냐를 거친다. 도시의 중심 마리아 피타 광장으로 가면 위엄 가득한 여인상이 터줏대감처럼 자리 잡고 있다. 마리아 피타는 1489년 영국군의 침략을 앞장서 무찌른 강철 같은 여인이다. 가이드 세르히오는 갈리시아에서 기가 센 여자를 비유하는 대명사로 사용한다고 했다. 자신의 아내는 그렇지 않다고 극구 부인했다. 코루냐의 랜드마크 헬라클레스 타워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이다. 로마 시대부터 등대로 기능해온 웅장한 등대를 보기 위해 스페인 전역에서 관광객이 몰려든다.


갈리시아에선 비고에서는 돈 벌고, 코루냐에서는 놀고,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에서는 기도하라는 말이 있다. 코루냐는 자라의 첫 매장을 연 곳이기도 할 정도로 소비도시다. 항구 변에 하얀색 발코니로 빛나는 낮과 좀처럼 불이 꺼지지 않는 휘황찬란한 밤바다 풍경은 순례길에 잠시 흥을 불어넣는다.

영국 길 순례길 주요 길목인 베탄소스는 두 형제의 귀환이 남긴 유산으로 일군 정겨운 마을이다. 19세기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갈리시아 지역에서 이민을 많이 갔다고 한다. 1896년 가르시아 나베이라 형제가 금의환향한 후 동네에 학교와 병원 등을 기부했다. 고향을 잊지 않은 두 형제의 기부는 산티아고의 귀환만큼이나 의미심장하고 따듯했다. 마을 사람들은 잊지 않고 두 사람의 동상을 시청 앞 광장에 세웠으며, 마리나스박물관에도 증거가 남아 있다.

◆ 땅끝마을 피니스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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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니스테르.

유일하게 종착지가 산티아고데콤포스텔라가 아닌 길이 있다. 이름 자체가 땅끝마을을 뜻하는 피니스테르로 향하는 길이다. 앨범의 보너스 트랙을 발견한 듯한 기쁨을 선사한다. 산티아고 대성당에서 다시 길을 잡고 걸어오기도 하지만, 당일치기로 버스를 타고 방문하기도 한다. 등대를 지나 대서양 망망대해 앞까지 도착하면, 신발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다. 거센 파도와 칼바람을 맞으면 세상의 끝에 선 듯한 느낌이 가슴 저리게 전해진다. 예전에는 순례길에 신은 신발과 옷가지 등을 태워 없애는 의식이 왕왕 행해졌다. 현재 엄격히 금지하고 있다. 환경이 먼저다. 사실 야심 차게 필수 방문 명소라고 선별해봤지만, 그냥 스쳐 지나치는 풍경도 마음을 아늑하게 해주었다. 갈리시아의 어디든 다시 걷고 싶다는 바람은 다녀온 누구나 갖게 되는 마음일 것이다. 좋은 영화를 반복해서 보는 것처럼 언젠가 다시 걷고 싶은 그런 길이다. 대서양이 준 선물인 갈리시아 해산물과 알바리뇨 와인도 자꾸 생각난다.

[갈리시아(스페인) = 권오균 여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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