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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Mania | 사육신묘...죽을 때는 역적, 죽어서는 만고의 충신

입력 2022/05/06 09:46
서울 동작구 노량진. 지금은 고시생과 컵밥이 이 지역의 상징이 되었다. 고시생들은 공부에 지치면 가끔 인근 공원을 찾아 서울 야경을 감상한다. 나름 노량진에서 높은 지대인 공원 한 곳에 서면 63스퀘어, 서강대교, 마포대교, 원효대교, 올림픽대로, 백련산, 한강철교 등이 한눈에 보인다. 특히 밤에 보는 야경은 근사하다. 바로 이곳이 노량진 사육신묘, 공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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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육신묘(촬영년도 2015년), 사육신묘 불이문(촬영년도 2015년)

지하철 1, 9호선 노량진역과 노들역 딱 중간에 있는 공원에는 사육신 묘가 있다. 1456년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목숨을 바친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6명의 신하 즉 ‘사육신’을 모신 곳이다. 이들은 단종의 숙부 수양대군이 왕위를 빼앗고 단종을 몰아내자 이에 분개, 단종 복위를 꾀했다.


세조가 명나라 사신 환영회를 열기로 했는데, 그때 성승과 유응부가 칼을 차고 왕 옆에 시립하는 별운감을 맡게 되었다. 그런데 연회장이 좁다는 이유로 별운검을 세우지 않기로 해 거사가 보류되었다. 그때 동참했던 김질이 겁을 먹고 세조에게 밀고했다. 이에 거사에 가담한 이들은 모두 죽임을 당했는데 희생자는 70여 명에 이르렀다. 본인뿐 아니라 가족과 친척들까지도 연좌 처벌을 받아 멸문지화를 당했다. 남효온은 문집 『추강집』에 ‘육신전’을 싣고, 박팽년, 성삼문, 이개, 하위지, 유성원, 유응부 등 여섯 신하를 기록했다.

민간에서는 노량진에 있는 몇 기의 무덤을 사육신묘라 하여 이들의 넋을 위로하고 기리게 되었다. 이곳에는 박씨지묘, 유씨지묘, 이씨지묘, 성씨지묘라는 표석이 서 있는 네 개의 묘와 그 뒤에 하나의 묘가 있었고 해서 네 개의 묘를 사육신묘, 뒤 묘는 성삼문의 아버지 성승의 묘라 전해진다. 이후 사육신의 충절을 추모하여 숙종이 이곳에 민절서원을 세우고 정조는 비석을 세웠다.


세조 당대는 물론 오랫동안 사육신묘에 대한 기록은 찾기 어렵다. 그러다 이수광은 ‘지붕유설’에서 사람들이 전하는 말을 빌려 노량진에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3인의 묘가 있다고만 기록하였다. 이후 1650~1670년 사이에 박팽년의 후손 박숭고의 노력으로 육신묘가 국가의 인정을 받았다. 그렇지만 유성원, 하위지의 묘는 이곳에 있었다는 기록이 없어 정비하지는 못했다. 1950년대까지는 무덤과 비석 등이 훼손된 상태로 방치되다가 1972년 성삼문, 박팽년, 유응부, 이개의 4기 묘가 서울시유형문화재로 지정되고 1977~1978년 정화 사업 때 하위지와 유성원, 그리고 단종 복위를 추진한 김문기의 가묘를 추가로 안치, 지금에 이른다.

공원 벽에 함석헌 선생은 다음 글을 남겼다. “수양대군이 불러온 피바람. 그러지만 세조의 피바람 뒤에 우리는 ‘의’를 알았다. 사육신이 죽지 않았던들 우리가 ‘의’를 알았겠는가. 이것도 고난의 뜻이지 않을까. 고난 뒤에는 배울 것이 있다.


”(-함석헌 선생 ‘씨알의 소리’ 중에서) 이는 성리학의 신하는 두 군주를 모시지 않는다는 관점에서 세조에게는 역적이었지만 단종에게는 충신이었던 그들의 의를 칭송하는 뜻이다. 조선의 군주들 역시 충성심 고취를 위해 사육신을 복권한 것이다.

궁금한 것은 죽임을 당한 이들의 시신을 거둘 이는 한 명도 없었는데 과연 누가 이들의 시신을 거두었을까 하는 것이다. 1747년 영조는 육신묘에 비를 세우도록 했다. 해서 당시 예조판서 겸 홍문관제학 조관빈이 비문을 썼다. 비문에서 ‘앙화가 일어나 일가가 모두 죽임을 당해 아무도 그 유해를 거둘 수가 없었는데 어떤 승려가 그 시신을 등에 지고 가서 묻었다고 한다. 혹자는 그가 매월당 김시습 공이라고도 말한다’고 언급해 아마도 김시습이 시신을 거둔 것으로 보인다.

공원에는 많은 나무들가 있고 사당인 의절사, 홍살문, 불이문, 육각비, 신도비, 사육신역사관 등이 있다. 한번쯤 찾아 대체 ‘의’라 하는 것의 진실이란 무엇일까, 성찰해 볼 만한 곳이다.

[글 장진혁(프리랜서) 사진 문화재청]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28호 (22.05.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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