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Citylife 제828호 (22.05.10) BOOK

입력 2022/05/06 09:54
▶2차 대전 종전을 이끈 비극적 선택 『어떤 선택의 재검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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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콤 글래드웰 지음 / 이영래 옮김 / 김영사 펴냄

네덜란드인으로 ‘꼰대 다이너마이트’란 별명이 붙은 칼 노든은 폭격조준기를 만들었다. 레이더와 GPS가 없던 지난 세기까지 이 발명품은 전쟁의 성패를 가를 도구였다. 1940년대 항공기는 시속 800㎞로 날았고 9㎞ 상공에서 폭탄을 투하했다. 지상까지는 30초가 걸리고 바람은 시속 160㎞로 불었다. 비행기의 폭격은 눈 감고 다트를 던지는 것보다 어려웠다. 머릿속의 설계도만으로 폭격조준기를 만든 칼 노든의 작품은 본질적으로 아날로그 컴퓨터였다. 거울, 망원경, 볼베어링, 수준기, 다이얼로 이뤄진 치밀한 기계. 노든은 64개의 알고리즘을 만들어 공기와 바람과 폭탄의 궤적을 계산했다.


폭격수들은 목숨을 걸어서라도 비밀을 지킨다는 46㎝의 이 장치에 대한 선서를 하고 비행기에 올랐다. 노든의 장치는 전쟁의 성배였다. 9㎞ 상공에서 오크통에 정확하게 폭탄을 떨어뜨릴 수 있는 이 장치만 있으면 젊은 보병의 목숨이 희생되거나, 도시 전체가 파괴될 필요도 없었다. 항공단전술학교 지휘관은 이를 ‘폭격기 마피아’로 불렸다. 항공 기술 발전에 집착해 알루미늄과 철이 합판을 대체했고 엔진은 강력해졌다. 고고도, 주간, 정밀 폭격을 목표로 꿈을 향해 돌진하는 이들은 진보에 대한 신념이 있었다.

태평양전쟁에서 일본은 지리적으로 어떤 전쟁 상대보다 멀리 떨어져 있었다. 누구도 싸워보지 못한 종류의 공중전이 펼쳐졌다. 과학과 현실은 달랐다. 기상 악화, 제트기류가 복병이 됐다. 첫 공습은 나카지마 공장에 겨우 1%의 피해를 입히는 데 그쳤다. 젊은 준장 에이우드 핸셀은 3일 후 재시도에 나섰다. 폭탄은 단 하나도 공장을 맞추지 못했다. 결국 핸셀은 공장을 다섯 차례 공격했지만 거의 건드리지도 못했다.

미군 지휘부는 극적으로 방향을 전환했다.


폭격기 마피아의 고고도 주간 정밀 폭격을 철회하고 독일 폭격 작전의 영웅인 38세의 커티스 르메이 소장은 무차별 폭격을 택했다. 짧은 기간 안에 가능한 한 많은 피해를 입혀 일본의 전쟁 의지를 뿌리 뽑으려 했다. 1945년 3월9일, 도쿄는 불바다가 되었다. 1665톤의 네이팜탄은 화염폭풍을 일으켰다. 하룻밤에만 10만 명의 사망자와 100만 명의 이재민이 발생했다. 2차 세계대전의 가장 어두운 밤. 이후 반년도 지나지 않아 일본 67개 도시가 잿더미가 됐다. “우리에겐 결과가 필요했다.” 르메이의 변명이다. 심지어 핵 공격은 필요하지 않았다고 회고한다.

글래드웰은 이 과정에서 ‘충분한 숙고와 검토가 없었다’고 비판한다. 르메이의 희생을 멈추기 위한 대량 살상의 논리에는 인종차별적 사고방식도 깔려 있었음을 은연중에 꼬집는다. 도쿄 대공습은 군인의 신념과 과학적 진보, 오만함 등 모든 요소들이 맞물리면서 빚어진 참사였다. 이 책은 폭격기 마피아의 진보적 신념이 어떻게 좌절되었고, 전쟁은 얼마나 비극적 선택을 강요하는지 증언한다.

▶만능소리꾼의 평범한 일상 『오늘도 자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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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자람 지음 / 창비 펴냄

“매일의 나는 다르고, 그 다름이 내가 된다.” 동료들은 그를 ‘이잘함’이라고 부른다.


전통 판소리에서 일가를 이룬 소리꾼이자 창작 판소리를 만드는 작창가, 록밴드 ‘아마도이자람밴드’의 보컬, 연극·뮤지컬까지 섭렵한 만능예술인 이자람의 첫 산문집이 나왔다.

스스로를 “운 좋게 공연예술계에서 먹고 살고 있는 사십대 여성 예술인”이라 말하지만 그는 판소리 완창을 할 때는 4시간 동안 무대를 지키는 ‘철인’이 되기도 한다. 비결이 뭘까.

책에는 매일 반복하는 하루 일과가 적혀 있다. 반려견 산책으로 시작해 하루도 빼놓지 않는 소리 연습을 하고, 사소하게는 한 끼 밥상을 잘 차려 먹는 일까지…. 하기 싫어도 억지로 해낸 연습 한 시간, 꼼짝도 하기 싫지만 눈을 꼭 감고 펴는 요가 매트, 순간적으로 꾹 참은 콜라가 지금의 축적된 자신을 만들었다. “보이지 않는 축적을 믿는다. 보이지 않는 곳에 서서히 쌓이는 것의 강함과 무서움을 안다.” 예술가로 살아가면서 배운 삶의 지혜를 나누는 책이다. 창작자로서 전통이라는 틀에 갇히지 않고 자신만의 독보적인 장르를 개척한 과정, 기예를 다루는 공연예술인으로서 매일의 연습을 통해 자신을 단련해온 기술, 여성 직업인으로서 한국사회에서 자신을 지키는 방법, 프리랜서로서 일을 만들고 거절하는 법 등을 허심탄회하게 들려주는 솔직담백한 에세이다.

[글 김슬기 기자 사진 각 출판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28호 (22.05.10)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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