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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ocal Mania |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믿음과 희생의 역사터

입력 2022/05/12 16:28
서대문구 염천교 칠패로, 그 바로 옆이 서소문 역사공원이다. 이곳에는 한국 천주교사에서 잊을 수 없는 순교가 이루어졌던 ‘피의 역사’의 현장이다. 역사공원 안에는 서소문 성지 역사박물관이 있다. 교인이 아니더라도 19세기 후반 조선의 역사를 들여다볼 수 있는 의미에서 한 번 가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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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서소문은 남대문과 서대문 사이 간문으로 사람의 통로 외에도 도성 안의 시신을 밖으로 들어내는 문 즉, 시구문이었다. 또한 서소문 밖 일대는 강화도를 거쳐 마포, 용산 나루터에 도착한 삼남지방의 물류가 도성으로 반입되는 통로였으며, 도성 내외를 잇는 육로가 교차되어 ‘성저십리’ 중 가장 번화한 지역이었다. ‘성저십리’는 도성으로부터 10리 이내의 지역을 뜻한다.


하지만 서소문 밖은 형조와 가까워 형의 집행에 편리하였고, 많은 사람이 오고 다녀 죄에 대한 경각심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적합한 장소였다. 이러한 이유로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시대 국가 공식 참형지가 되었다.

1784년, 한국 천주교회가 창설된 이후 100년의 세월 동안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는 수많은 천주교인이 처형을 당했다. 신유, 기해, 병인박해를 거치는 동안 순교자들은 참혹하게 스러져갔다. 즉, 서소문 밖 네거리는 조선의 신분제 사회에 맞서 하느님 앞에 모든 인간이 자유롭고 평등하며, 서로 사랑할 존재임을 증거한 순교자의 터가 된 것이다. 세월이 흘러 성 베드로 대성당 시복식으로 기해박해 등 순교자 79위가 복자품에 올랐고, 1968년 병인박해 순교자 24위가 추가로 시복되었다. 한국교회 설립 200주년의 해인 1984년 이들 103위 복자들은 성인 반열에 올랐다. 이때 서소문 밖 네거리에서 순교한 44명이 성인으로 선포되었다. 또한 2018년 서소문 밖 네거리 순교 성지를 포함한 서울 속 천주교 순례길은 세계에 유례가 없는 박해와 순교, 자발적 신앙 수용의 특별한 역사성을 바탕으로 아시아 최초 교황청 승인 국제 순례지가 되었다.

성지 역사박물관은 2019년 개관했다.


이곳은 건축 디자인으로도 특별하다. 내부는 굵은 직선과 곡선으로 이뤄졌으며 외부는 붉은 벽돌로 강렬한 인상이다. 박물관에서는 천주교 박해와 관련한 전시와 예술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역사박물관은 지하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하 2층에 상설전시장이 있다. 또 지하 3층은 하늘, 빛, 직선으로 이루어진 하늘광장이다. 절제된 사각형의 공간은 절로 경건해진다.

상설전시실 두 군데 중 하나의 테마는 건져 올리는 ‘오래된 미래’로 조선 후기 사상계의 전환기적 특성이 주 내용이다. 18세기 전후 조선에서는 성리학, 양명학, 실학, 사학으로 지목되었던 천주교 사상을 포함한 다양한 사상이 성행했다. 그리고 이들 사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인들이 정신 문화 형성에 기여해왔다. 전시는 사상계의 흐름과 그것이 지닌 담론을 이해하고자 하는 노력이다. 제2 상설전시는 성지 역사박물관이 자리한 이곳의 역사와 장소성을 담고 있다. 조선시대 서소문 밖 네거리는 번화가로 상업적 농업, 수산업, 수공업이 발달했던 장소이며 처형지였다. 망나니가 사람을 죽일 때 칼을 씻던 ‘뚜께우물’이 이곳에서 발견되어 역사 속 순교를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이곳은 중요 외교 통로였고 한국 최초의 성당 약현성당이 세워지기도 했다. 또 최초의 철도는 물론 1910년 우리나라 최초의 국가도로인 서소문 고가도 세워졌다. 그 밖에도 노숙자 예수, 서소문 밖 연대기, 103위 순교성인, 순교자의 칼, 수난자의 머리, 순교자의 문 등 수많은 전시품들이 순교를 받아들인 성인들의 깊은 신앙심을 추모하게 만드는 곳이다.

[글과 사진 장진혁(프리랜서)]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29호 (22.05.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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