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직장인 레시피] 따뜻함과 관용을 넘어서는 리더십은 없다

입력 2022/05/12 16:28
직장인은, 자신이 직장과 상사와 연애 중인 사실을 모른다. 밀당을 하고, 애정을 쏟다가, 어느 순간에는 미워한다. 하지만 결코 이 연애에서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헤어지자’는 말이다. ‘사랑하고, 너를 아끼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그럴듯한 말은 그야말로 개나 줘버려라. 직장에서 헤어지고, 인사 조치하고, 징계를 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다. 착각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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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근은 앞에서, 채찍은 뒤에서

직장인의 리얼한 모습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드라마 ‘미생’. 드라마는 여러 장면, 수많은 대사에서 직장의 모습을 그려냈다. 직장 내에서 벌어지는 암투, 권한 다툼, 너를 이겨야 내가 승리하는 경쟁까지. 이 중 한 대사가 생각이 난다. 인턴 발표가 예정된 날, 주인공 장그래는 같이 할 파트너가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한석율이 파트너를 자청한다. 하지만 한석율은 키를 쥐고 장그래를 조정한다. 장그래는 피곤하다. 그를 지켜보던 오 과장이 충고한다. “한석율은 성취 욕망이 큰 친구야. 그런 친구는 토네이도이지. 주변을 힘들게 하고 곤란에 빠트려. 하지만 토네이도의 중심은 고요야. 너도 그 중심에 있어야 해.” 이 조언을 듣고 장그래는 한석율과의 발표를 무사하게 치른다.

직장은 다양한 조직원들이 ‘하나가 되어’ 일을 하는 집단이다. 멀리서 보면 일사불란하게 잘 조직화 된 것처럼 보이지만 가까이에서 보면 마치 드라마 촬영 현장과 같다. 물론 드라마는 그 비중에 따라 대우가 다르다. 수많은 출연자, 스태프들이 모여 있지만 카메라와 조명을 받는 것은 주연이고, 단역은 하루 종일 기다리다 단 5초, 그것도 대사도 없는 촬영을 마친다. 주연 배우는 한 편에 1억 원이 넘는 출연료를 받고, 단역 배우는 몇만 원을 받는다. 그러면서도 단역 배우는 이 작은 출연의 기회조차 놓칠까봐 촬영이 끝나도 선뜻 발걸음을 돌리지 못한다. 감독, 조감독, 작가의 눈에 들기 위해 촬영장을 정돈하고, 스타들의 화려한 연기를 멀리서 모니터한다. 이것이 바로 프로의 현장이다.

그렇다면 직장은 어떤가. 직장도 주연 배우가 있다. 각 부서마다 에이스가 있고, 어지러울 정도로 초고속 승진하는 스타급 사원이 있다. 하지만 이는 불과 몇 명에 불과하다. 나머지 직장인들은 그저 자신의 좁은 책상이 온 우주인양 생각하고 그 자리에 뿌리를 내린다. 그러나 주연 배우와 책상 하나 차지한 단역 배우의 대우 차이는 거의 없다. 같은 금액의 월급 봉투를 매달 받고 때가 되면 또 승진도 가능하다. 그러다 보니 직장은 조명받는 무대도 있고, 또 그림자 연극처럼 마치 회사의 큰 기둥 뒤에서 시간을 소비하는 직장인들도 무수히 많다. 물론 그들은 입사라는 자격 테스트를 통과한 나름의 인재들이다. 이 다양한 처지, 위치, 능력의 직장인이자 배우들의 역량을 한 곳으로 집중시켜 성과를 내야 하는 것은 온전한 리더의 몫이다. 전생에 나라를 구한 은덕의 행운으로 내가 속한 조직 부서원 모두가 슈퍼맨이라 말 한마디, 지시 하나 없어도 착착 알아서 진행되는 조직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데 이는 절대 이루어질 수 없는 꿈이다. 그럼 부서원 모두가 만족하고, 성과를 낼 수 있는 최고의 리더십은 무엇일까. 애초부터 이런 리더십은 존재하지 않는다. 조선 왕조, 아니 우리나라 역대 모든 왕조를 통틀어 최고의 성군인 세종대왕님도 훈민정음 창제 시 자신의 측근을 설득하고 달래고 심지어 귀양까지 보냈다.

리더의 힘은 그의 권한에서 나온다. 그것은 리더가 합법적으로 갖고 있는 당근과 채찍이다. 인사권, 고과 평점부터 하다못해 야근과 특근 및 출장까지도 누군가에게 호의를, 누군가에게는 편파적인 고통을 줄 수 있는 것이 부서장의 권한이다.

당근만 사용해, 부활한 예수님처럼, 혹은 부처님의 염화시중 미소를 보이며 행동한다고 해서 부서원들은 절대 만족하고 고마워하지 않는다. 작게 시작한 배려도 잦으면 행하는 쪽에서는 불편한 의무가 되고 처음에는 고맙게 받아들인 쪽에서도 이 또한 당연한 권리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하루 종일 소리만 지르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도 지금 시대에 맞지 않는 ‘적폐 리더십’이다.

현명한 리더십은 당근은 앞에 놓아 누구나 볼 수 있게, 그리고 채찍은 가급적 눈에 띄지 않게 뒤로 쥐는 것이다. 도구를 이용하는 모든 스포츠, 즉 골프, 배드민턴, 테니스, 탁구를 접할 때 처음 배우는 것이 바로 채를 쥐는 방법이다. 채를 쥐는 것은 중요하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오른쪽에서 왼쪽으로 그리고 가까운 곳에서 먼 곳으로 시선을 돌린다. 즉 이면을 보는 것이다.


당근의 뒤에 존재하는 채찍을 부서원들은 100% 발견하고 인지한다. 어쩌면 회사원은, 직장과 상사와 연애를 하는지도 모른다. 밀고 당기고, 애정이 뿜뿜하고 어느 순간에는 미워지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내 의사가 아니라면 결코 이 연애에서 들어서는 안 되는 말이 있다. 그것은 ‘헤어지자’는 말이다. ‘사랑하고, 너를 아끼기 때문에 헤어진다’는 그럴듯한 말은 그야말로 개나 줘버려라. 직장에서 헤어지고, 인사조치하고, 징계를 하는 것은, 당신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조직을 유지하기 위해서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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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수의 책임자보다 원인을 찾아라

필자의 후배 K는 일류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취업했다. 그리고 회사에서도 인정받고 승진가도를 달렸지만 개인 사정으로 호주로 이민을 떠났다. 그곳에서 처음에는 정착하기 위해 고생을 했지만 7년여 동안 노력을 하고 준비한 끝에 여러 경력을 쌓고 비자 신청을 해 영주권을 받았다. 그리고 호주에서도 작지만 내실 있는 회사에 취직도 하고 아이들도 잘 적응했다. 그런 K가 오랜만에 서울에 왔다. 코로나 시국이라 떠들썩하게 환영회는 하지 못했고 몇몇이 모여 소주 한 잔을 했다. 우리는 그에게 이른바 ‘이민 성공기’를 들어보기로 했다. 그는 그저 ‘노력과 약간의 운’이 있었기에 정착이 가능했다며 말을 아꼈다. 그러나 대화 주제가 그가 다니는 회사로 돌려지자 K는 말이 많아졌다. 그는 한국과 호주에서 회사를 모두 다니며 느낀 미묘한 기업 문화 차이를 우리에게 들려주었다.

“여러 차이가 있는데 가장 큰 차이는 퇴근 후에는 철저하게 사생활을 인정한다는 점이죠. 경천동지할 큰 일이 아니면 상사가 퇴근 후나 주말에 공적이든, 사적이든 절대로 연락을 하지 않아요. 그리고 어떤 결정도 자율적이고, 개인의 의견을 매우 중요시해요. 주말 특근, 야근, 휴가, 병가 등 모든 것이 자율적이고, 상사의 눈치를 보지 않아요. 초과 근무나 야근이 있을 때도 한국에서는 상사의 지시로 야근을 하지만 호주에서는 상사가 ‘혹시 연장 근무가 가능한 사람 있습니까’라고 물어요. 이때도 눈치 보지 않고 자신의 뜻을 밝힐 수 있어요. 처음에는 적응이 안돼서 야근, 특근에 손을 번쩍 들었는데 이제는 저도 그렇게 하지 않아요. 아주 당당하게 말이죠.”

그리고 K는 덧붙여 설명했다. “업무 중에 일어나는 실수를 바라보는 시선에서 가장 큰 차이를 발견했어요. 지금은 많이 달라진 것으로 알지만 한국 기업에서는 실패나 실수가 일어났을 때 제일 먼저 ‘실수의 책임자’를 규정짓고 실수를 회복하잖아요. 하지만 내가 지금 다니는 회사에서는 실수가 벌어지면, 실수의 원인, 그것의 재발 방지를 마련하는 것을 제일 먼저 시작해요.” 그러면서 이야기를 이어갔다.

“입사하고 아직 업무가 손에 익지 않아서 내가 실수를 했어요. 내가 주문받은 양보다 더 많이 입력해 그만 수많은 파지가 발생했어요. 머릿속이 하얘졌어요. 겨우 자리 잡았는데 이제 ‘잘리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런데 의외의 일이 벌어졌어요. 상사가 나를 위로하는데 그냥 말만의 위로가 아니었어요. 그는 ‘이런 실수는 일어날 수 있다. 하지만 실수가 왜 일어났는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리고 다시는 실수가 반복되지 않도록 작업 과정에서 체크 포인트를 한 번 더 만들자. 그리고 이번 일은 K의 책임만이 아니다. 이는 우리 모두의 잘못이다. 그리고 이 실수의 가장 큰 책임은 프로세스 과정을 책임지는 내게 있다’고 하는데 눈물이 핑 돌았어요.”

물론 이런 상사라고 한국의 기업에 없을 리가 없다. 수없이 존재할 것이다. 다만 내 직속상사가 그렇지 않다는 점이 문제일 뿐이다. 호주의 상사는 리더로서 격에 맞는 행동을 했다. 사실 그렇게 하라고 회사에서는 리더에게, 책임자에게, 타이틀 주고, 월급도 더 주는 것이다. 일의 성공보다 오히려 실패를 책임지는 상사를 누구나 바라지만 현실에선 권한과 혜택만 쏙 빼먹고 책임을 지는 순간이 오면 번개처럼 사라지거나 부하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상사가 의외로 많다. 그들에게 인간적인 배신감도 느끼지만 어쩔 수 없다. 그들 역시 나름의 영리한 처세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부하 직원이 따르는 리더의 조건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학벌, 능력, 인맥, 미래 보장, 밥 잘 사주는 것도 조건이겠지만 그보다는 말과 행동에 책임지는, 그래서 위기의 순간 선두에 서는 상사, 부하 직원의 고충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상사이다.

리더나 상사들도 할 말은 있다. 리더도 감정의 동물이다. 해서 능력은 인정하지만 왠지 꺼려지고 하다못해 커피 마시는 모습까지 마음에 들지 않는, 존재 자체가 싫은 직원도 있을 것이다. 이때 리더는 냉정해야 한다. 개인적 선호도를 떠나 미운 직원이라도 적재적소에 배치하고 그가 만들어낸 성과와 역할을 인정해야 한다.


이런 행동이 몇 번 반복되면 어느 순간 그의 장점이 보일 것이고 부하 직원 역시 당신을 리더로서 진정 따르게 될 것이다.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어도 싫은 부하라면? 그러면 그와 나의 감정과 타협해야 한다. 그를 타부서로 보내고, 보지 않는 것이 차선이다. 능력자 부하 직원에게 인턴 일 정도를 맡겨 함몰시키는 것은 모두 손해 보는 짓이다. 유능한 리더는 이끌고, 다스리고, 평가하는 자리이기에 당신이 이끌고, 다스리고, 평가할 수 있는 인재를 많이 모으는 것이 리더가 해야 할 우선적인 일이다.

일을 즐기고 그 결과에 성취감을 느끼는 직장인도 있다. 또 이름 석 자를 알리려는 공명심에 협업의 관계를 깨뜨리는 직장인도 있다. 두 가지 모두 성과를 내도 결과는 다른 방향이다. 욕심과 사심이 앞선 성과에는 누군가 분명하게 설거지를 해야 하는 흔적을 남기게 된다. 직장 생활은 개인기가 돋보이는 단체 경기이다. 승패의 과정에서 각자의 역할은 기록되고 상사의 머리에 각인된다. 우선 중요한 것은 팀이 이기는 것. 실패한 조직에서 독보적인 개인기를 갖고 있어도 성공한 선수가 되기 어렵다. 프로 축구, 야구의 세계에는 1부 리그는 물론이고 2부, 3부 심지어 4, 5부 리그가 있다. 우리가 보는 손흥민, 류현진의 모습은 자랑스럽게도 1부 리그이다. 그 안에 있어야 언론도, 관객도 관심을 갖는 것이다. 아무리 뛰어난 능력자라도 팀이 3부, 5부 리그에 있으면 일단 사람들의 관심권 밖이다. 일에 있어 사심을 버려야 한다. 바로 눈앞에 있는 것도 체크해야 한다. 인생의 저울추는 항상 균형감을 유지한다. 명예를 얻으면 재물이 없고, 재물이 많으면 그만큼 명예의 추는 가벼워야 균형이 유지되는 것이다. 하나 더 가지려다 그나마 손에 있는 것을 다 놓치는 경우를 우리는 흔히 볼 수 있다.

승진, 연봉, 기대와 신임, 화려한 인맥, 후배들의 지지와 존경 등등을 다 가질 수 있는 리더는 없다. 직장이란, 모두에게 역할을 준다. 리더는 검증을 하는 자리가 아닌 성과를 내야 하고, 직원은 검증과 성과를 동시에 내야 한다. 자신의 위치에서 역할을 명확히 인지해야 한다. 직장에서 리더가 체면 때문에, 자존심 때문에 잃는 것이 많다면 그것은 리더 개인 문제가 아니다. 부서원 모두에게 피해의 양이 분배되기 때문이다. 리더는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다가가기 위한 동기를 부여한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팀을 강하게 만드는 것이다. 강팀을 만들기 위한 비결은 상대의 마음을 얻어내는 것이다. 우선 나를 낮추고 상대는 높이고, 체면과 자존심으로 바꿀 수 있는 최대의 이익이 무엇일까를 계산해낼 수 있는 실용의 머리가 필요하다. 직장에서 명심해야 할 것은 사소한 것에 체면과 자존심을 거는 일이다. 직장은 주고받는 장이다. 상사라 할지라도 부하에게 일방적일 수 없고 부하도 마찬가지이다. 주는 만큼 받을 수 있는 것이 인생이고 직장생활이라면 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 좋다. 그래야 나중에 맘 편히 두 손으로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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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량한 자존심, 오만, 권위는 버려라

조조. 그는 유비, 손권과 천하를 겨룬 인물이지만 사실 세 사람 중에서 개인적 능력은 가장 출중했다. 특히 조조는 수많은 책사와 장수를 거느리고 100만 대군을 지휘한 리더였다. 조조는 훗날 후계들에게 교훈을 남겼다.

‘첫째, 적당히 비겁해라. 그러면 사는 것이 편하다. 둘째, 자존심을 버려라. 그러면 성공이 보인다. 셋째, 체면을 버려라. 그러면 사람이 모인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버리라’는 것이다. 체면, 자존심 등 겉치레의 두꺼운 갑옷을 벗어버리는 순간, 새로운 세상이 열린다는 뜻이다. 이 말은 버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것임을 역설적으로 보여준다. 삼국 중 가장 강한 세를 과시했던 영웅 조조마저도 쓸데없는 자존심, 체면을 버리고 머리를 숙였다. 그래서 그는 인재를, 성공을, 그리고 천하를 얻는 기회를 잡은 것이다.

위계가 있는 조직은 규칙과 질서를 중시한다. 그것은 명령과 실행 그리고 평가에 의한 상벌의 단계를 가장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찾은 키워드의 교집합이 바로 규칙과 질서이기 때문이다. 고개를 숙여라. 그리고 때를 기다려라. 물론 그 순간에도 눈과 귀 등 오감은 열어놓아야 한다. 기회가 오는 소리를 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조직에서 선두를 달리는 직원의 공통점은 목표가 분명하고 집중력이 뛰어나다는 것이다. 1위를 주시하고 배워라. 공자는 ‘삼인행이면 필유아사언’이라고 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면 거기에는 분명 나의 스승이 있다는 뜻이다. 하물며 1위를 달리고 있는 리더에게 배울 것이 없겠는가.

실수를 줄이는 최고의 방법은 책임질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관료들 세계의 전설이 있다. 지금은 이미 은퇴한 모 고위 공무원에 대한 소문이다. 그는 정권을 거치면서 관직을 유지했다. 남들은 평생 한 번도 갖기 어려운 직을 그는 수십 년 동안 다양하게 한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그를 공무원의 표상이라고 칭찬한다. 하지만 관가에는 그의 처세 비결이 바로 도장 찍는 일을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는 서류를 읽어보고 나중에 정치적, 정책적 부담으로 작용될 수 있는 것은 아무리 급하고 상사나 부하들이 재촉해도 결코 도장을 찍지 않았다고 한다. 훗날 어떤 사건이 벌어져도 그가 화를 면할 수 있었던 비결이지만 결코 나라의 녹을 먹는 공무원으로서는 권장할 수준은 아니다. 하지만 이 점 또한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있다. 직장에선 누구도 희생양이 되거나 순교자가 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럼에도 대부분의 조직은 실패와 손실에 대한 책임을 분명히 하고 또 해야 하는 것이 조직을 유지하는 방법이다. 물론 당장의 공명심으로, 아니면 남자다움의 발로와 누군가의 부추김으로 잘못이 없는데도 희생양을 자처해서는 안 된다. 문서로, 기록으로 그 실수를 기록하기 때문이다. 마치 전과자의 기록처럼 말이다. 직장인이라면 실수에 따른 문책을 가볍게 생각하지 말라. 회사는 당신이 나갈 순간을, 아니 당신을 쫓아낼 순간을 기다리며 명분과 이유를 만들어 갈 수도 있다. 실수와 실패에 대한 혹은 공로와 영광에 대한 엄격한 신상필벌은 필요하다. 하지만 업무 시스템상, 조직 운용상, 목표를 위해 열심히 일하다가 범할 수밖에 없는 실수와 실패마저 엄격하게 처벌한다면 결국 아무도 책임지는 것에 도장을 찍거나 사인을 하지 않는 조직이 되는 것이다. 조직이 설거지를 하다가 깨뜨리는 접시 한두 장쯤은 용서해줄 수 있을 때, 조직과 조직원은 살아 숨쉴 수 있는 것이다.

회사에서 부장급 리더들이 가장 어려운 직급이다. 연령도 40대 중후반, 경험도 축적되고 한창 일할 수 있는 인재들이다. 그들에게는 이사로 승진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지고 그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은 모두에게 있다. 이때 회사의 고위 임원들이 내 뒤에 서라는 압력을 가할 때 이를 무시할 수 있는 부장은 거의 없다. 이때 남은 회사 생활을 걸고 베팅을 하게 된다. 실세, 오너의 친인척, 학맥, 능력 등등 온갖 방법을 통해 얻은 정보를 기준으로 동아줄을 잡는다. 하지만 이는 동아줄 선택의 정확한 기준이 될 수 없다.

우선은 ‘회사가 진정 필요한 인물은 누구인가’를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물론 능력자 임원들도 회사에서 쫓겨나는 경우는 수없이 많다. 가혹하지만 그것 역시 조직이 움직이는 증거이다. 확률을 보자. 오너의 인척 상무가 있고, 능력만으로 임원이 된 리더가 있다. 대개 전자를 선택하게 된다. 하지만 이는 안전할 수는 있지만 인정받으려는 경쟁률이 치열하다. 10명이 줄 서 있는 곳에서 받는 배급품과 2명이 서 있는 곳의 배급품의 양은 차이가 있다. 물론 후자를 선택하는 것 역시 최선은 아니다. 확률은 높지만 당첨 가능성이 낮은 복권일 뿐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방법은 포용력과 부하를 아끼는 상사를 선택하는 것이다. 포용력이 있는 상사라면 당연히 그가 성공했을 때 적도 껴안겠지만 자신의 사람이 된 당신 역시 내버려두지 않을 것이다. 반대로 포용력이 없는 상사는 자신의 성공 원인이 온전히 자신의 능력과 그 잘남 때문이라고 생각하기에 그 뒤에 줄 서 있어도 그리 반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이 세상에 따뜻함과 미소 그리고 두 팔 벌려 안는 관대함과 포용을 이길 엄격함과 매서움은 없다.

직장인이 가장 싫어하는 ‘밉상 상사’는 누구일까. 여러 유형이 있겠지만 ‘실수는 부하 직원에게, 성공의 영광은 자신에게’ 돌리는 상사이다. 이런 경우 대부분의 직장인은 스스로를 합리화시키며 소주 한 잔으로 쓰린 속을 달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그렇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납득이’가 된다. 그러면서 ‘부장님이 잊지 않겠지’라고 중얼거릴 것이다. 만약 부서에서 이런 목소리가 들린다면 그것은 분명 리더로서 실패자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리더는 베푸는 것, 실수를 용서하고 기회를 주는 것, 실적 미비와 사장의 질책을 겸허하게 자기반성으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다.

권모술수를 중시하는 리더들도 있다. 즉 살아남기 위해 실력보다는 음모, 소문 등등에 귀를 집중하고 사장의 관심사를 하이에나처럼 찾아 다니는 리더다. 노력 대비 효과 큰 것, 숟가락만 얹을 기회를 찾아다니는 것이다. 이들은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데 능숙하다. 이런 리더는 부하들의 복종은 얻어도 진심은 얻지 못한다. 또 이런 리더에게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은 ‘우린 가족이다’를 외치는 리더십이다. 시도 때도 없이 모이고 술 마시고 서로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하며 겉으로는 모든 것을 앙금 없이 공유하고 풀었다고 스스로 만족하는 리더십이다. 이것은 원칙과 책임 앞에서 경계가 모호해지고 조직 기강 역시 무너지는 리더십이 된다. 진정, 부서원 모두를 승자를 만들겠다는 리더는 흔치 않다. 그 리더십의 특징은 바로 ‘최소의 희생으로 최대의 효과’를 얻는 능력이다. 여기서 희생은 조직원의 해고나 전출 같은 희생을 의미하지 않는다. 조직 전체의 효율을 목표에 집중시킬 수 있는 리더의 탁월한 현실 분석이 우선이다.

[글 박기종(커리어코칭 칼럼니스트) 사진 픽사베이]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29호 (22.05.17)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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