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온천 대신 초록 여행 살랑살랑 설레는 아산의 봄

입력 2022/05/19 10:25
초록초록 신록이 물들기 시작하면 아산은 봄 세상이다. 오랜 세월 변하지 않은 것들과 새롭게 떠오른 것들을 찾아 거닐다 보면 봄날을 만끽할 수 있는 순정한 자연들이 근사하게 다가온다. 겨울에야 비로소 생각나던 온천의 고장 아산. 초록이 지천인 오월의 어느 날, 아산의 싱그러움을 품에 안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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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가 피천득 선생은 오월을 ‘금방 찬물로 세수를 한 스물한 살 청신한 얼굴’이라 했다. 또 이해인 수녀는 ‘풀잎은 풀잎대로, 바람은 바람대로, 축복의 서정시를 쓰는 오월’이라고 표현했다. 딱 그런 날이다. ‘원숙한 여인’처럼 우거지지 않은 녹음, 서서히 초록으로 물들어가는 자연은 나긋나긋 연하고 부드러우며 ‘밝고 맑고 순결’하다. 바로 지금, 오월의 꽃, 오월의 나무는 그런 모습으로 빛난다.


대표적인 겨울 여행지로 알려진 아산의 오월은 어떨까. 아주 오랜 세월, 충무공 이순신의 현충사와 온양, 도고 등 온천 지역으로 기억돼 온 고장 아산. 유년 시절의 수학여행이나 부모님 모시고 가는 온천 여행지 정도로 알고 있는 아산의 봄이 문득 궁금해졌다. 그곳에도 파릇파릇 돋아나는 신록의 아름다움, 그 계절다운 풍경이 있을 텐데 머릿속에 그려지는 그림은 어김없이 예의 그 익숙한 것들뿐이다. 그래도 새로운 시도는 마냥 좋기만 하다. 익숙한 아산의 모습과 아직 익숙하지 않은 아산의 새로운 풍경을 만나러 가는 길이 몹시도 설렌다.

▶옛 것과 새 것. 외암마을과 지중해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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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암마을 여행의 백미는 돌담길을 천천히 걷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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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중해마을의 실제 이름은 ‘블루 크리스탈 빌리지’다.

현충사와 온양온천 만큼이나 유명한 아산의 명소는 바로 외암마을이다. 아산의 봄, 아산의 자연을 느껴보기에 그만한 곳도 드물다. 500년이 넘는 역사가 고고히 흐르는, 변하지 않은 풍경이지만 언제 가 봐도 느낄 수 있는 그 넉넉한 품과 정겨움은 여행자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외암마을은 조선시대 예안 이씨의 집성촌으로 형성돼 아직까지도 80여 채의 전통 가옥이 옛 모습 그대로 마을을 지키고 있는 곳으로, 화가 장승업의 인생을 그린 영화 ‘취화선’의 촬영지로 유명하다. 마을 입구의 장승을 비롯, 조선시대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옛 가옥들과 사당 그리고 디딜방아, 연자방아 등의 농기구가 잘 보존되어 있고, 마을 내에는 조선시대 장터인 저잣거리도 만들어 놓았다.

외암마을은 마음을 내려놓고 그냥 마을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되는 그런 곳이다. 따사롭게 내리쬐는 오월의 햇살과 돌담길 사이로 살랑살랑 흘러 다니는 포근한 봄바람은 힐링 여행의 또 다른 선물이 된다. 마을을 대표하는 고택 중 하나인 영암군수 이상익 선생의 건재고택은 1869년에 지어진 이후 150년간 그 모습을 유지하며 국가민속문화재 제236호로도 지정됐다.


정원이 아름다운 건재고택 외에도 송화댁, 참판댁, 교수댁 등 기와집과 정겨운 모양의 초가집이 보기 좋게 어우러진 마을에는 실제 주민들이 거주하며 농사를 짓기도 한다. 마을에는 과거선조들이 논밭을 일구며 캐낸 돌로 만든 돌담이 마을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데 그 길이가 약 6㎞에 달한다. 이 길을 따라 걷는 것이 외암마을 여행의 백미다. 한적한 돌담길을 걷다 보면 도심 속 분주한 일상에서 쌓인 피로와 스트레스가 말끔히 사라진다. 향수가 깃든 민속 마을의 여운을 더 만끽하고 싶다면 그곳 고택에서 하룻밤 머물렀다 가는 방법도 있다.

▶꽃 사이를 노닐다. 세계꽃식물원과 피나클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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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산의 봄에는 꽃이 빠지지 않는다. 옛 것과 새 것, 전통과 현대가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지만 꽃은 아산 어느 곳에서나 지천이다. 반도의 중간에 위치한 충청도는 수목원이 많고, 그만큼 다양하고도 아름다운 꽃들을 사계절 내내 감상할 수 있다. 아산에 있는 세계꽃식물원은 충청도의 대표적 식물원이자 아산의 여행 명소로 이름이 높다. 아산의 봄 역시 이곳 세계꽃식물원에서 완연히 빛난다. 이곳에는 3000여 종의 꽃과 나무가 식물원 안팎, 정원과 온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특히 사계절 이어지는 꽃들의 화려한 자태는 ‘겨울 온천 여행지’ 아산의 이미지를 다양한 테마의 여행지로서의 아산으로 바꿔놓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네덜란드식 가든센터를 기본 모델로 만들어진 이곳은 총 4만6795㎡의 유리온실을 갖춘 국내 최대 규모의 실내 온실 식물원으로 2004년 개장 이후 해마다 20만 명 내외의 관람객이 방문했던 힐링 스폿이다.

지금 세계꽃식물원에는 보라색 솜털이 몽실몽실한 알리움과 노란 수선화, 그리고 화려한 색상의 튤립이 정원을 뒤덮고 있다. 특히 메타세쿼이아 나무 아래 펼쳐진 색색의 튤립 세상이 환상적이다. 열대정원, 연못정원, 미로정원, 에코 정원, 허브 정원 등 다양한 테마 온실 안에는 세계 각 대륙에서 온 진귀한 꽃과 나무들이 황홀한 자태를 뽐낸다. 그 가운데는 시가 1억 원이 넘는다는 티트리와 킹벤자민 고무나무도 만나볼 수 있다. 온갖 종류의 꽃과 나무들이 있는 만큼 카메라만 들이대면 어느 곳이든 포토존이 되고, 온실 내에는 카페도 있어 향긋한 꽃향기를 느끼며 잠시 휴식을 취할 수도 있다. 입장료 8000원을 내면 관람 후에 리아프가든센터에서 다육식물이나 꽃 등과 교환해주기 때문에 공짜로 구경한 기분으로 식물원을 나설 수 있다.

세계꽃식물원과 함께 아산의 봄을 만끽할 수 있는 또 다른 곳이 있다.


꽃과 나무, 정원이 마치 그림처럼 아름답게 펼쳐져 있는 곳, 피나클랜드 수목원이다. 메타세쿼이아 나무가 양 옆으로 길게 늘어선 길을 따라 입구를 지나면 어디선가 본 듯한 느낌의 수목원이 가지런히 펼쳐진다. 거제도의 외도보타니아를 닮은 피나클랜드는 실제 외도 보타니아의 설립자인 이창호 선생이 그의 자녀들과 함께 가꿔 만든 곳이다. 아산만 방조제 매립을 위해 돌을 캐던 채석장을 목장으로 사용하다 10여 년의 노력 끝에 쉼과 치유가 있는 자연 테마 공원으로 기적 같이 바꿔놓았다. 수목원 가꾸기에 일가견이 있는 전문가의 DNA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공간으로 10만7300㎡의 대지에 수목원과 동물원, 전망대, 카페, 레스토랑, 둘레길 등 13개의 테마 공간이 꾸며져 있다. ‘육지에서 느끼는 또 다른 외도’라는 슬로건처럼, 자연과 인공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멋진 테마 파크다. 가족이나 연인이 한 나절 쉬면서 즐기기에 적합한 공간이다.

Info (세계꽃식물원)위치 충남 아산시 도고면 아산만로 37-37

시간 09:00~18:00 입장료 개인 8000원, 단체 7000원

(피나클랜드)위치 충남 아산시 월선길 20-42 시간 09:00~19:00 입장료 성인 1만 원, 청소년 9000원, 어린이 8000원

▶아름다움이 된 슬픈 역사. 공세리성당과 봉곡사 천년의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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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 아산만방조제를 건너면 바로 그곳에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성당 중 하나로 꼽히는 공세리성당이 있다. 종교를 불문하고 아산을 찾는 젊은 여행자들이 가장 애정하는 아산의 명소다. 1894년 한국 천주교회에서 아홉 번째로 건립된 공세리성당은 붉은 벽돌, 뾰족한 탑과 높은 천장이 눈에 띄는 전형적인 고딕 양식의 건축물로 고풍스러움과 웅장함이 빼어나 충청남도 지정기념물 제144호로 보호되고 있다. 천주교인들에게 이 성당은 더욱 경건하고 의미 있는 곳이다. 천주교가 박해를 받던 조선 말, 신유·병인박해 때 이 지역에서 순교한 32명의 순교자들을 모시고 있는 성지이기 때문이다. 또 본당 이외에도 수령 350년이 넘는 국가 보호수가 4그루나 있고, 그에 버금가는 거목들이 성지를 한 폭의 수채화처럼 꾸며주는, 아름다운 곳이다. 돌아보면 안타깝고 슬픈 역사를 안고 있지만, 특유의 아름다운 풍광으로 인해 ‘태극기 휘날리며’, ‘사랑과 야망’, ‘에덴의 동쪽’ 등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의 촬영 장소로 사용된 바 있다.

아산 송악면 유곡리에 있는 봉곡사는 신라 진성여왕 원년(887년)에 도선국사에 의해 창건된 천년 고찰로 옛 이름은 석암사라고 전해진다. 임진왜란 때 6개의 암자가 모두 소실되고 그 이후 인조 24년(1646년)과 정조 18년(1794년)에 각각 중창된 후 봉곡사로 불리기 시작했다. 현재 봉곡사는 대웅전과 향각전, 고방 정도가 남아 있는 소박한 규모의 사찰이지만 새소리와 바람 소리, 울창한 솔 숲 사이로 흐르는 독경소리가 마음을 깨끗이 정화시켜주는 도량이다. 봉곡사와 함께 기억해야 할 인물도 있다. 바로 일제강점기 일제의 불교정책을 반대했던 만공선사다. 그는 이곳에서 깨달음을 얻어 오도송을 읊었다고 알려진다. 이를 기념하기 위해 만공탑이 세워졌으며 탑 위에 새겨진 ‘세계 제일’이란 글씨 역시 만공스님의 친필로 알려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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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수탈의 흔적이 남아 있는 소나무. (사진 아산시 웹사이트 갈무리)

봉곡사가 유명해진 이유 가운데에는 주차장에서 사찰에 이르는 약 700m의 울창한 소나무 숲길도 있다. ‘천년의 숲’이라 불릴 정도로 아름다운 이 길은 산림청에 의해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하기도 했을 만큼 빼어난 풍광을 지니고 있는데, 이 길을 따라 봉곡사까지 걸어 올라가다 보면 세파에 지친 마음에 따뜻한 위로가 전해지는 듯한 기분을 느끼게 된다. 그러나 속세의 사람들을 위로해주는 이 숲길의 소나무가 지울 수 없는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는 걸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커다란 아름드리 소나무 밑둥에 한결 같이 새겨진 ‘V’자 모양의 흉터 때문이다. 패망 직전의 일제가 연료로 쓰고자 송진을 채취하려고 주민들을 동원해 나무에 낸 상처다. 언뜻 나무가 웃는 것처럼 보이는 상처가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Info (공세리성당) 충남 아산시 인주면 공세리성당길 10, (봉곡사)충남 아산시 송악면 유곡리 595

[글 이상호(여행작가) 사진 이상호, (봉곡사 소나무 사진: 아산시 웹사이트 갈무리)]

[본 기사는 매일경제 Citylife 제830호 (22.05.24)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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