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2022 칸영화제] 금기와 욕망의 이중주…박찬욱표 멜로에 8분간 기립박수

입력 2022/05/24 17:23
수정 2022/05/24 23:09
칸영화제 경쟁 부문 '헤어질 결심' 공식 상영

피튀기는 폭력 장면 없지만
더 섬뜩한 공포로 다가오는
고전적 멜로 스릴러에 도전

빗나간 사랑으로 파국 맞는
탕웨이·박해일 연기 일품

외신 "또 하나의 걸작" 찬사
전 세계 192개국에 선판매

탕웨이 "박감독님 정말 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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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칸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영화 `헤어질 결심` 상영 직후 관객들이 박찬욱 감독을 향해 기립박수를 치고 있다. 앞줄 왼쪽부터 배우 박해일, 박 감독, 배우 탕웨이, 이미경 CJ 부회장. [김유태 기자]

사랑 직후의 폐허는, 보통 썰물이 빠져나간 빈자리의 상실감으로 은유되곤 했다. 그러나 연안에 가득차기 시작한 바닷물, 끝도 없는 밀물로 이뤄진 만조(滿潮)도 흉몽처럼 비극적일 수 있을까. '가득찰수록 공허하다'는 반어법적 절규가 들리는 현대판 비극. 올해 칸영화제 경쟁 부문 진출작이자 박찬욱 감독의 11번째 장편 영화 '헤어질 결심'의 결말 얘기다.

신작 '헤어질 결심'이 칸영화제가 개최 중인 프랑스 팔레 데 페스티벌 뤼미에르 대극장에서 23일(현지시간) 첫 모습을 드러냈다. 뤼미에르 극장 1층 O열 31번 좌석에 앉아 신작 '헤어질 결심'을 미리 관람했다. '칸느 박'이란 별명이 뒤따라 다니는 박 감독과 탕웨이·박해일 배우가 큰 박수 속에 입장한 뒤 극장의 불이 꺼졌고, 완전한 암전을 이뤄야 이야기는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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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시간 18분 러닝타임이 '1시간 78분'으로 기억되길 바란다"는 전날 박 감독의 전언처럼, 영화는 속도와 호흡 조절 따위 없이 관객의 심장을 마구 움켜쥐었다 펴기를 반복한다.


바위산 정상에서 한 남성이 떨어져 즉사한다. 형사 장해준(박해일)은 유력한 피의자인 망자의 아내 송서래(탕웨이)가 조사실에서 시도 때도 없이 킥킥 대던 모습이 자꾸 마음에 걸린다. 평소 거스러미 없는 성격이지만 해준은 아내의 내조에도 서래의 존재를 깊이 의식한다. 한 눈에 의심을, 다른 한 눈에 욕망의 렌즈를 끼면서도 결국 서래의 무죄를 확신하기에 이른다. 서래는 여전히 슬픔의 기색이 없고, 그 옆에서 해준은 "서서히 물드는 슬픔도 있다"며 서래를 풀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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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이 흐르고 해준이 뭔가 잘못됐다고 확신할 무렵, 두 사람의 관계는 파국을 맞는다. 여기까지가 대략 러닝타임 한 시간 남짓. 영화는 빗나간 연인의 운명을 재회시키며 충격적인 두 번째 막을 준비한다.


다시 한 시간의 서스펜스. 해준은 서래의 굴레에서 벗어났지만, 한 시간에 '47번'이나 깨는 불면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해준이 옮긴 거처에 난데없이 서래가 등장한다. 문제는 서래의 새 남편이 또 사망했다는 것. 관할구역에서 한 여성이 '두 남편'을 잃었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의도이자 신호가 아닐 수 없다는 사실에 해준은 침잠한다. 그나마 다른 점은 이번에는 서래의 알리바이가 불확실하다는 점이다. 해준의 판단과 달리, 서래에겐 더 큰 비밀이 숨겨져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는 완전히 이지러지지만 이제 둘 다 뒤돌아갈 곳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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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신 한 컷 없음에도 탕웨이와 박해일이 쌓는 사랑의 서사는 반어와 후회로 가득할 만큼 비극적이다. 특히 영화는 마지막 10여 분의 장면과 설정에 온힘을 다 바치는 기색을 보이는데, 탕웨이가 '스스로 사라진' 방법은 경악스러우면서도 사전에 예고된 듯한 환각에 사로잡힐 정도로 매력적이다. 이 지점에 해변이 등장하고, 박해일이 어두워지는 해안에서 자꾸 쓰러지는 모습은 부재의 공포를 환기시킨다. 박찬욱표 '자살의 상상력'은 매혹과 금기라는 이중성의 미학을 고스란히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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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영이 끝나고 불이 켜진 뤼미에르 극장에서는 8분간 기립박수가 이어졌다. 외신 반응도 뜨겁다.


독일 배급사 코치 필름의 모리스 피터스는 "단연코 박찬욱 작품 중 최고다. 촘촘한 층과 디테일한 감정선이 긴 여운을 주고, 계속 작품을 생각나게 한다"고, 영미권 배급사 무비(Mubi)의 케이트 케인은 "또 하나의 마스터 피스(걸작)가 탄생했다"라고 평했다. 이미경 CJ그룹 부회장이 박 감독 옆에서 영화를 관람하며 찬사를 보냈고, 이번 칸영화제에서 '헌트'로 감독으로 데뷔해 세계적인 주목을 받은 이정재 배우도 동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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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감독은 상영 이튿날 오전 글로벌 기자회견에서 "사랑은 인간이 맺을 수 있는 관계 중에 인간이 무엇인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인간이란 종족이 뭔지를 가장 잘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박 감독 영화의 특징인 '폭력과 정사'가 나오지 않는 점을 두고는 "뭔가가 나오면 나온 것에 대해 물어야 하는데, 나오지 않은 것에 대해 묻느냐"며 웃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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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탕웨이는 박 감독 영화에 출연을 결심한 계기를 두고 "박 감독님을 정말로 애정하기 때문이다. 이 자리가 정말 가슴이 떨린다. 저를 완전하게 만들어주시는 분"이라고 털어놨다. 박 감독은 이 말을 듣고 "탕웨이에게 그대로 똑같은 말을 돌려주고 싶다. 반사"라고 말해 좌중을 웃게 했다. 박해일은 "박 감독님 영화에 출연한 게 아직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행운이라고 생각한다. 박 감독님의 '그림' 안에서 장해준이라는 인물의 감정을 저를 통해서 어떻게 보여줘야 되는지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영화는 호평을 받고 전 세계 192개국에 선판매됐다.

[칸 = 김유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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