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불의 사고 후 그리는 빛은 '희망'

입력 2022/05/24 17:23
수정 2022/05/24 17:30
도성욱 가나부산 개인전

손가락 운동신경 사라져
손목으로 붓질하며 재기
'Emotion' 등 30점 펼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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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motion-Light` (162×112㎝).

사진인 줄 알았는데 아니다.

찬란하게 쏟아지는 역광 덕분인지 아주 사실적이면서도 환상적인 또 다른 공간이 눈앞에 펼쳐졌다. 또 다른 차원의 세상으로 이끌어 주는 것만 같다.

가까이서 보니 인상파 화가 그림처럼 뭉개진 붓질이다. 평면 회화에서 이런 깊이감이 느껴지다니 놀랍다. 근경에서 원경까지 유화물감이 무려 7~8겹이나 쌓였다.

상상의 빛을 그리는 화가 도성욱이 10년 만에 개인전 '이모션(Emotion)'을 열며 돌아왔다. 그랜드조선부산호텔 4층에 있는 가나부산에서 오는 6월 12일까지 처음 선보이는 'Emotion' 연작 등 총 30여 점을 펼쳤다.

오랜만에 열리는 전시는 작가의 불굴의 의지로 가능했다. 몇 년 전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했다. 수술을 했지만 걷지도 못하고 손가락으로 붓조차도 들 수 없었다.


전시장에 켜진 영상에서 작가는 휠체어를 탄 채 작업실 안에 있다. 운동신경이 사라지고 감각신경만 남은 손가락을 대신해 트레이닝 장갑을 끼고, 그 사이에 붓을 끼워 장착한 후 손목으로 그리는 법을 연마했다고 한다. 붓 끝이 흔들리지 않게 손목과 팔의 힘을 기르고 체력도 키워야 했다. 예전같은 움직임을 되찾지 못했기에 재활은 계속된다. 직접 고안한 전동식 캔버스 틀을 설치해 150호 대형 작품도 거뜬히 제작할 수 있는 작업 환경이 갖춰졌다. 과거 풍채 좋던 작가를 기억하는 이들은 전시장 영상을 보며 울컥 하기도 한다. 국내에서 특히 구상화 전통이 강한 지역인 대구 출신 유망주로 주목받았던 터라 그의 불운이 더욱 안타까웠다.


빛을 그리기 시작한 계기에 대해서 작가는 "휴양림에서 잠깐 졸다 눈을 떴는데 잎들 사이에서 비치는 반짝거림을 보고 그 부분을 그리기 시작했다"며 "학교에 다닐 때 풍경과 접목하다보니 풍경화처럼 보이지만 이건 상상화"라고 했다.

이전 그림에서는 빛을 표현하기 위한 나뭇잎과 물의 묘사가 좀더 세밀하고 사실적이었다면 이제는 좀더 단순화된 느낌이다. 또 기존 그림 속 숲이 차갑고 습한 느낌이었다면 좀더 찬란하고 밝은 빛이 새어나온다.

그는 "예전에는 어떻게 색을 채워 넣을까 고민했다면 이제는 좀더 걷어내고 짧고 간결하게 보여주는 그림을 그리려 한다"고 했다.

[이한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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